부유세 도입 추진하다 실망하고 민주노동당 뛰쳐나온 윤종훈 회계사
“당내 수구적 성향 가진 사람들 있어… 양의 탈 쓴 진보는 정말 해롭다”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민주노동당에 과연 ‘진보’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실장으로 조세정의 실현에 앞장섰던 윤종훈 공인회계사는 지난 1월14일 이런 폭탄 발언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왔다. 부유세 도입을 외치며 원내 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을 돕겠다며 스스로 당 정책연구원을 자청한 지 일곱달 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자신의 깊은 속내를 모두 털어놓지는 않았다.
7월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시민경제사회연구소에서 만난 윤종훈 회계사는 달랐다. “당시 민주노동당에 누가 될까봐 밀도 있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이제 당 안팎에서도 당 지도부의 진보성 부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제대로 말할 때가 됐다”면서 민주노동당을 향해 거침없이 직격탄을 날렸다.
돌 맞더라도 원칙 지켜야 진보정당
왜 민주노동당에는 진보가 없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는가.
직접적 계기는 당의 공약인 부유세 도입을 둘러싼 최고위원들과의 갈등인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정책 정당을 지향할 의지가 있는지 상당한 회의를 느꼈다. 또 당 지도부가 일반 당원들보다 진보적 가치에 대한 진정성, 진보적 정책에 대한 바람과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부산시당에서 부유세를 설명하자 당원들은 열성적으로 지지하며 제대로 된 정보에 목말라했다. 그런데 중앙당 지도부는 선거 때 구호로 외쳐 재미를 봤으면 됐지 당 차원의 역량을 투입할 일이 아니다, 너 혼자서 잘 해봐라면서 도와줘도 안 될 판에 딴죽을 걸었다.
그렇지만 당을 박차고 나간 윤 회계사의 태도가 지나쳤다는 비판도 많다.
안에서 미리 말하고 보고서 올리는 절차를 통해 받아들여졌다면 왜 뛰쳐나왔겠나. 그런 비판은 나중에 물타기한 것에 불과하다. 당 최고위원들의 수준에 대해 당시 당직자들 사이에도 말이 많았다. 연구원들이 브리핑하는 정책에 대한 기본 상식조차 없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 핵심 공약인 부유세 문제가 워낙 중요하니 법률안 상정 전에 최고위원회에 보고서를 올렸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1세대 1주택의 양도세 면세를 폐지하면서 2억원의 시세차익까지 (세액)공제를 해주는 안을 냈는데 “하면 안 된다” “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국민들 반대로 난리가 난다”며 최고위원들이 반대한 것이다. 국세청 통계자료까지 제시하며 이 법 해당자는 전체 주택 양도자의 1%밖에 안 된다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국회 입법보좌관 워크숍에서는 민주노동당이 2억원까지 세액공제를 하는 것은 집 있는 사람들을 너무 봐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는데, 최고위원들은 그와 반대로 갔다. 자영업자 간이과세 폐지도 마찬가지다. 당 강령에 있는 것인데도, 자영업자의 비난을 받는다며 반대했다.
현실정치에 발을 담근 정당이 국민 여론을 신경쓰는 건 당연하지 않나.
옳다면 당장 국민의 시선이 따가와도, 돌을 던지면 돌 맞아가며 지켜야 하는 게 진보정당이다. 이해관계를 떠나 자기가 지향하는 바가 옳으면 당장 표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진보정치의 핵심이고, 진보정당의 참모습이다. 그런데 지도부가 당의 핵심 정책 과제조차 거부했다. 도대체 주택 양도자의 1%에게조차 과세를 못한다면 민주노동당이 내건 조세정책은 다 뭐냐. 자영업자 간이과세 폐지도 시민단체에서 충분히 논의해온 문제다. 이미 1999년에 참여연대는 더 파격적인 일도 했다. (간이과세 기준을) 연 매출 1억5천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내린 것이다. 1998년 참여연대가 변호사, 공인회계사 면세혜택 폐지법안을 통과시켰는데, 변호사 조직이라던 참여연대 안에서 사퇴 파동까지 발생했다. 자신들의 이익에 칼을 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옳기 때문에 했고, 그것으로 인정받았다. 옳은 것에 당장 닥칠 불리함을 감수하는 게 민주노동당이 진짜 진보를 실천하는 세력이란 국민적 믿음을 주고 지지를 얻는 길이다. 끊임없이 안에서 이런 얘기를 했지만, 파벌적 이해, 정치적 이해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그 정도로 진보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한두 가지로 진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전반적인 문화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지구당의 30대 젊은 당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자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만 당 지도부의 마인드는 완전히 다르다. 암울한 시기에 한 길을 간 지조는 높이 살 만하지만, 정상적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아 대중과 유리된 감성과 시각에 갇혀 있다. 과거의 치열한 파벌 투쟁에 매몰된 모습, 내 편이 아니면 나를 죽일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뼛속 깊숙이 남아 있다. 과거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지만 이제는 치열한 노력으로 그 껍질을 벗고 사회 일반의 상식과 호흡을 함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적 자폐증 비슷하게 돼 있다. 정상 사회와는 소통을 못하고 자기들끼리의 언어로만 얘기하고 성토한다. 이런 자폐증을 스스로 깨지 못하면 민주노동당은 안 된다. 지구당에서 부딪힌 사람들은 중앙당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다. 자주파 성향, 무슨 성향 있어도 구분이 희미하고 주민 복지 등 지역 현안과 공통의 정책적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 치열하게 충돌하지 않는다. 결국 당 지도부가 변하거나, 이런 정상적 상식을 가진 일반 당원들이 지도부를 장악하는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 말고는 민주노동당이 살길은 없는 상황이다.
당 지도부가 진보적 가치를 전면에 내걸지 못한 것은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레드 콤플렉스는 대중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진보 진영이 가지고 있다. 지난 5월 <한겨레>를 봐라. 창간 기념 여론조사에서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떻게 가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미국식 자본주의는 37%였고, 47%가 유럽식 복지국가를 원했다. 부유세 찬성률은 70%가 넘었다. 그런데 왜 부유세를 과감하게 제기하지 못하는가. 레드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라 내부적 역학관계 때문이다. 파벌 내부에서 정리가 안 돼 짬뽕이 되는 것이지,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진보적 구호를 내걸지 못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 탓하지 마라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최근 “이제는 당 해체를 두려워 말고 해볼 것은 해보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민주노동당의 정치·사회적 위치가 지금 그렇게 위태로운가.
일반 당원이 탄탄하기 때문에 당장 당이 깨질 일은 없다. 나는 이제 당 내부의 문제를 까발리고, 솎아낼 것은 좀 솎아내자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민주노동당 안에는 전혀 진보가 아니면서 진보의 탈을 쓴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걸 까발려 교통정리하자는 의미다. 지도부 몇명 나간다고 당이 깨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진보의 탈을 쓴 사람이란 뭘 뜻하는 것인가.
당은 진보 감각인데, 개인 성향은 완전히 수구적인 사람들이 있다.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자기의 사적 이익과 부합하느냐 않느냐로 가르는 게 수구 아닌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면 여기 오면 안 된다. 이익단체나 보수 정당에 가야 한다. 그런데 진보 정당에 있으면서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따져 처신하고, 그런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사들이 상당수 있다. 이제 그런 부분을 솎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늑대는 해롭지 않지만 양의 탈을 쓴 진보는 정말 해롭다. 또 파벌적 갈등 구조를 언제까지 쉬쉬하고 봉합해야 하나. 이제 화끈하게 드러내고 논쟁하자.
최근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양심운동만 있고 진보운동은 없다고 문제가 제기됐는데.
한계점에 온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남들이 몰랐던 걸 알려준 것이 아니고, 이미 서로 다 아는 것이다. 언제까지 쉬쉬하고 넘어갈 수 있겠나. 이제 정리하고 털 것은 털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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