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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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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비뚤 뭉텅뭉텅, 모내기 전투!

등록 2005-06-1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금강산 삼일포 협동농장에서 20평을 할당받은 하루
북한 식량난 해결에 티끌만 한 보탬이 되겠다며 뛰어들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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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포=글 ·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이 사람아, 모를 그렇게 심으면 어떻게 해…. 모를 너무 깊게 박으면 안 돼. 모를 논바닥에 살짝 얹어놓듯 심어야 해.”

이해극 농민발명가협회 회장은 못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모심기에 무모하게 뛰어든 기자의 손놀림에 눈길을 떼지 않는다. 그는 지난 1999년 처음으로 고성읍에 들어가 온실농장을 세워 남쪽 관광객들에게 싱싱한 야채를 제공하고, 북쪽 농민들의 영농 소득 향상에 기여한 주인공이다. 남북 농업협력의 산증인인 셈이다.

“북한 농민들 1cm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기자가 처음 모를 심은 기억은 참으로 가물가물하다. 어릴 때 부모 따라 어딘가에서 모심는 흉내를 낸 적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모를 어떻게 심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왼손으로 어떻게 모를 잡고, 또 오른손으로 어떻게 심어야 모가 씩씩하게 잘 자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괜히 아는 체하며 모심기를 도와준다고 와놓고는 다 망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5월27일, 북한 내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금강산 지구 삼일포 협동농장. 통일농수산사업단이 지난 몇년간 펼쳐온 북한 영농지원 사업이 작은 결실을 맺고 북쪽과 신뢰가 쌓이면서 성사된 남북 공동 모내기 현장이었다. 남쪽 농업 관계자 105명이 참석한 이번 모심기에는 애초 북쪽 농민들도 함께 어깨를 부딪치며 모를 심을 예정이었으나, 북쪽이 여러 곤란한 사정을 들어 양해를 구하는 바람에 남쪽 인사들만 모를 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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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도 전체 2천평 가운데 20여평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요령을 모르고 쭈뼛쭈뼛거리던 기자는 이해극 회장에게 여러 도움을 받아야 했다. “깊이 심으면 절단이 납니다. 모가 새끼를 못 치니까 조심해야 해요.” 전형적인 농사꾼이자 발명가 칭호까지 갖고 있어 선진 영농인으로 평가받는 이해극 회장의 당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북쪽 농민들은 일단 일하면 정성껏 한다는 점입니다. 함께 일하면서 지켜보니까 1cm도 어긋나지 않게 일합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어렵게 와서 모를 삐딱삐딱하게 심으면 실컷 일하고도 욕을 작살나게 얻어먹습니다. 모는 3∼4포기로 나눠 정확하게, 얕게 심어야 합니다.” 이번에 삼일포 협동농장에 심은 모는 남쪽에서 북쪽에 시험재배하고 있는 화동벼에 속했다. 그는 모를 어린애 대하듯 정성스레 심을 것을 강조했다.

기자가 모를 심던 바로 옆 논두렁에는 북쪽 당국이 박아놓은 붉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북녘 땅임을 실감케 했다. 깃발에는 ‘4분조’라는 검정 글씨가 진하게 새겨 있었다. 말로만 듣던 북한 농업의 기본 조직인 ‘분조관리제’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분조관리제는 가족, 친척을 단위로 7∼10명 혹은 5∼8명으로 분조를 구성해 분조원 사이의 결속력을 도모하고, 생산계획 목표치를 낮춰 분조가 추가 분배를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또 분조에 귀속된 초가 생산분은 자유 처분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오전 9시30분께부터 시작해 나름대로 부지런히 손을 놀렸지만 다른 사람들이 심어놓은 것들의 절반도 쫓아갈 수 없었다. 허리는 아프고, 신경을 쓰느라고 힘을 주다 보니 손가락 사이의 통증도 점점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허리를 조금이라도 펼라치면 바로 옆에서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묵묵히 일하는 50, 60대 어르신들이 있어 차마 꾀를 부릴 수가 없었다. 흔히 모심기하러 논에 들어가면 사람의 종아리 피를 빨아먹는다는 거머리에 물리게 마련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약간 긴장했으나 다행히도 종아리만은 말짱했다.

어르신들 앞에서 꾀를 부릴 수가 있나

세 시간쯤 흘렀을까. 이미 할당된 몫의 모심기를 끝낸 사람들이 기자를 도와준 덕분에 20여평의 모심기는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웬지 기자가 심은 모들은 가지런해 보이지가 않았다. “줄을 맞춰 심어라.” “모는 서너 포기씩 9개씩 한 줄을 만들어 심어라.” 이런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나름대로 줄과 열을 맞췄는데도 엉망이었다. 게다가 한번에 서너 포기씩 심으라고 전문가들이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기자가 심은 모는 적어도 평균 10포기씩은 되는 듯했다. 솔직히 다른 사람에 견줘 모심는 속도가 더디자 나도 모르게 뭉텅뭉텅 심은 게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모가 땅에 박히지 않고 논물 위로 떠 있는 것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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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수확기에 누가 모를 잘 심고 못했는지를 가려내기 위해 담당 구역별로 이름까지 써놓았다는 통일농수산사업단 관계자의 엄포가 신경이 쓰였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 해결에 티끌만 한 보탬이 되겠다고 뛰어든 터라 걱정이 내내 떠나질 않았다. 북쪽에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우면서 이런 고민을 북쪽 관계자에게 슬쩍 토로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걸작이었다. “임 선생은 모를 제대로 심을 때까지 여기에 남아야 되겠습니다.” 남북한 농민 관계자들이 막걸리를 주거니받거니 마시면서 덕담을 나누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심각한 식량난을 숨기지 않았고, 각종 영농자재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쪽은 함께 모내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통일농수산사업단의 파트너인 금강산관광총회사 관계자들과 일부 농민들이 나와 인사말을 건네는 수준에서 성의를 표시했다. “다음에 농사를 잘 지은 다음에 볏짚을 쌓아놓고 밤새 얘기합시다.”

삼일포 협동농장의 들녘은 겉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고, 한들한들 봄바람이 불면서 모심기에는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는 날씨였다. 바로 옆 논에는 남쪽에서 제공한 기계식 이앙기로 심기 위해 준비된 반듯한 모판 안에 모들이 한들한들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농민들의 주름진 얼굴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올해 농사에 사활을 걸고 있는 평양 당국의 비장한 각오가 이곳까지 전해진 탓인지 다들 논과 밭으로 달려나가 묵묵히 농사일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북한은 5월 말까지 이른바 ‘모내기 전투’를 치르고 있다. “평양 등 대도시의 시내에는 사람들이 없어요. 다들 모심기에 동원돼 있지요. 5월31일까지 모심기를 끝내라는 당국의 지시가 떨어진 것 같아요.” 통일농수산사업단 관계자의 귀뜸이다.

올해 심각한 식량 및 연료 부족으로 고심하는 북한 당국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으며, 수백만의 도시 주민을 농사일에 동원하고 있다고 현지 구호요원들은 속속 전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리처드 레이건 평양사무소장도 5월31일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졌으며 모든 직종의 사람들에게 모내기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WFP 직원들을 담당하는 외무성 직원들조차 주말에는 농촌 지원에 나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땅의 힘이 회복돼야 하는데…

삼일포 들녘에도 이런 긴장감이 곳곳에 배어 있다. 문외한의 눈에 비친 북한 농촌의 들녘은 남쪽의 그것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농업 전문가들은 흙을 만져보고는 땅이 산성화돼 지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장 농업 증산을 도모하는 화학비료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유기질 비료가 투입돼야 근본적으로 북한 땅의 힘을 회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행사를 성사시킨 통일농수산사업단은 이번 모심기를 계기로 통일농업 재건을 위한 여러 사업들을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평화로웠던 하루가 산들바람과 함께 그렇게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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