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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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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질하기 정말 피곤하다

등록 2005-05-17 00:00 수정 2020-05-02 04:24

미니홈피 사진으로 형사입건까지 간 ‘신생아 희롱사건’… 세상은 좁고 은밀한 이야기는 없다네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미니홈피의 번식력은 놀라웠고 그 위력은 대단했다. 총 4명의 간호조무사가 형사 입건되는 것으로 일단락된 ‘신생아 희롱 사건’은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진으로 시작됐다. 대구의 간호조무사 이씨는 4월28일부터 5월5일에 걸쳐 ‘하루에 한장씩’ 신생아실에 강아지를 갖고 들어가거나, 반창고를 붙이고 있거나, 두 아기가 마주 보는 사진을 찍어서 미니홈피에 올렸다. 이 사진은 여러 사이트로 스크랩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경찰은 이씨를 5월8일 구속했다. 학대 사진이 더 있다는 네티즌들의 닦달에 경찰은 정밀 추적을 벌였다. 이에 따라 2003년에 찍어 지난해 말에 ‘볼펜 사진’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안양의 간호조무사 김씨도 구속됐다. 간호조무사의 자질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시민단체들은 의료법 시행규칙 및 아동복지법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음주운전 적발에 변심 애인 ‘합동수사’까지

간호조무사 이씨가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코멘트와 함께 업로드 버튼을 클릭할 때만 해도 경찰서에 출두하고 입건되고 나아가 법 개정 논의로까지 번질 줄 몰랐을 것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연출’했을 뿐이라는 (따라서 평상시에 학대한 것은 아니라는) 이씨의 말대로라면 그는 자신의 ‘범죄 순간’을 캡처했다.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포착하지 못했을 현장을 말이다. 이씨는 문제가 커지자 “제 사진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 저도 무척 무섭고 두렵고 떨립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고 미니홈피의 모든 메뉴를 삭제했다. 그리고 현재 이 미니홈피는 폐쇄됐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증거’로 제시된 사건은 많다. 음주 및 폭행으로 4월13일 기소된 클릭B 멤버 김상혁도 미니홈피의 방명록 글로 덜미를 잡힌 경우다. 김씨는 출두 명령을 받은 11시간 뒤 경찰에 출두하고 음주운전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같이 술 마신 ‘형’이 또 다른 친구의 방명록에 “그날 나랑 술 먹다가 걸려서 마음이 좀 구래”라고 글을 올렸다. ‘봐주기 수사’라는 여론이 들끓고 이 방명록 캡처 화면이 ‘투고’되면서 경찰은 재수사에 들어갔다. 김상혁은 음주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알려진 대로 김상혁은 경찰 출두 당일로 모든 쇼프로의 패널과 라디오 진행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4월엔 한 문학상 신인작가상 발표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수상작의 경우 공식 발표 전 개인에게 통보가 가게 마련이다. 개인 통보가 간 직후 당선자는 이 사실을 소설가인 자신의 은사에게 알렸다. 은사는 4월17일 자신의 미니홈피 게시판에 제자의 당선을 축하하는 글을 남겼다. 신인작가상 발표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한 공모자는 이 글을 우연히 읽고 4월18일 공모사쪽에 “이미 결정되었는데 왜 알리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간호조무사 이씨가 사건 확대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유서 공개 사건’은 당사자가 미니홈피의 위력을 이용한 사례다. 변심한 남자친구 때문에 자살한 딸의 어머니는 몇몇 인터넷 게시판에 딸의 억울한 사연을 올렸다. 어머니의 호소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곳은 제 딸의 싸이월드이니 꼭 한번 들러주세요.” 추모 미니홈피는 2003년 10월 개설됐지만 4월25일 게시판에 첫 글이 있다. 미니홈피를 방문하고 유서를 접한 뒤 분노한 네티즌들은 남자친구에 대한 ‘합동수사’에 들어간다. 이와 함께 어머니의 호소글도 다른 곳으로 퍼나르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 남자의 개인 홈페이지, 사진, 직장명, 직장 주소 그리고 연락처가 밝혀지고 네티즌들은 이 신상명세를 각종 인터넷 사이트 등에 ‘공개 수배’한다. 남자친구의 미니홈피는 곧 폐쇄됐다. 폐쇄에 대한 글은 5월8일에 올려져 있는데 내용 중에 “동명이인께 죄송하다”는 글귀가 눈에 띈다.

놀라운 번식력과 사회 파급력을 보여주지만 미니홈피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공간’이다. 아는 사람들과 속삭이는 친밀한 공간이다. 하지만 싸이질에 열중한 얼마 뒤면 이러한 ‘환상’을 깨는 깨달음은 갑자기 온다. 동창이 “너가 걔니?”라는 말을 방명록에 남기거나, 옛 여자친구가 “잘 지내는 것 같구나”라는 말을 던지고 가는 경우다. 미니홈피에 재미 들인 시절 제일 먼저 ‘사람 찾기’를 통해 ‘잘 알지 못하지만 속내를 알고 싶은’ 혹은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갔던 기억이 여기에 보태지면, 아이코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정보 공개 설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상자기사 참조). 옛 남자친구가 남긴 방명록 글 때문에 방명록 자체를 삭제하는(비공개 설정) 경우도 있고, 사진첩 폴더도 몇개만 전체 공개하기도 한다. 프로필을 제외한 모든 메뉴를 삭제하기도 한다. 랜덤홈피(이에 대한 제어도 가능하다)를 타다 보면 이런 메뉴 한두개의 미니홈피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골라서 피해갈’ 자유는 없다

<오마이뉴스> 오스트리아 통신원 배을선 기자는 외국에 나가 있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미니홈피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곤혹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나의 싸이질을 부추겼던 친구 녀석이 도통 내 싸이를 방문하지 않는 거다. 궁금해서 연락해보니 회사에서 싸이월드를 막아놓았다는 거다. 때를 같이해 오랜만에 소식을 전했던 대학 선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싸이월드를 탈퇴해버렸고, 디자이너 동생은 전시회가 바쁘다며 몇달간 싸이의 미니홈피를 닫는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한명은 스토커처럼 찾아오는 대학 후배가 귀찮다며 탈퇴해버렸고, 또 다른 후배 한명은 싸이질에 중독되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며 방명록만 열어놓았다.”(<오마이뉴>스, 3월14일 글)

그래서 결국 싸이질을 그만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회원 탈퇴’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싸이월드 홍보팀의 전창현 부장에 따르면 싸이월드의 가입자는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지만, 초창기부터 가입자의 10% 정도는 회원 탈퇴를 한다. ‘남은 자’들의 미니홈피 활성화 정도는 80%다(일주일에 한번 로그인 기준). 이들이 미니홈피를 관리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0~30분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인간관계의 그물망을 던지면 적어도 6번 만에 아는 사람으로 연결된다, 그게 싸이월드의 힘이었다. 하지만 익명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 동료의 남편의 직장상사, 사돈의 팔촌의 옆집 사람이라면 세상은 좁고 놀랄 일은 많은 걸까. 내 걸작 사진을 보여주고 싶지만 누구누구는 안 봤으면 싶고, 웃기는 이야기지만 누구는 듣지 않았으면 싶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기서는 누구도 ‘골라서 피해갈’ 자유가 없다. 민주사회의 로망 ‘정보 민주화’를 이룬 듯 보였던 인터넷에서 다시 개인의 자유 문제라니. 안타깝게도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었으니 ‘공동경비구역’ 인터넷에서 싸이질하기 정말 피곤하다.



실명주의가 발목 잡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어떤 곳보다도 ‘정보 공개 설정’에서 세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미니홈피 내 메뉴별로 공개 수위를 ‘전체 공개’ ‘일촌(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관계) 공개’ ‘비공개’ 등으로 나눌 수 있고, 이것은 메뉴 아래 각 사진과 글도 마찬가지다. 일촌 공개된 사진을 스크랩해서 미니홈피에 옮길 경우 그 사진은 일촌 공개 또는 비공개만 가능하다(‘전체 공개’는 되지 않는다). 사진 스크랩도 ‘스크랩’ 메뉴만을 통해서 할 수 있다(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뜨는 ‘다른 이름으로 저장’ 등의 기능이 제한돼 있다). 하지만 사진과 글의 스크랩은 어렵지 않다. 사진은 그림 위에 뜨는 프린트, 저장 등의 윈도 메뉴로 저장할 수 있고 캡처 프로그램으로도 가능하다. 간호조무사 이씨도 미니홈피에 문제의 사진을 올릴 때 ‘일촌 공개’로 설정했다고 한다.
싸이월드는 출발 때부터 ‘실명주의’를 표방했다. 그래서 다른 사이트에 비해 비방이나 욕설이 많지 않은 편. 단어를 등록해서 스크리닝하는 프로그램을 기본적으로 돌린다. 신고를 통한 모니터링도 이루어진다. 신고는 하루에 100건 정도 들어오며 내용을 보고 경고 조치가 내려진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경고에 따라 게시물을 삭제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강퇴’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이트 정화 노력’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에서 ‘확증’을 제공할 수 있다. ‘정보 공개 설정’의 세밀한 기준은 ‘공개를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세밀한 기준이 실질적인 공개 제어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착각’은 은밀한 말을 남기는 용기를 심어줄 수 있다. 그리고 ‘실명주의’이기 때문에 아이디 추적이 필요 없다. 그 사람이 남긴 글과 사진은 의심할 필요 없는 ‘고급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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