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쾌거 이룬 PSV에인트호벤, 신기의 용병술로 유럽 축구 제패 꿈꾼다
▣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kimck@hani.co.kr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이번엔 유럽에서.” 거스 히딩크(59) PSV에인트호벤 감독이 축구의 왕국 유럽 정복에 나섰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인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벤팀을 올 시즌 세계 최고권위의 클럽대항전인 2004~200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끌어올렸다. 국내 팬들은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보며 2002년 초여름의 감동을 되새겼다.
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스타 공장
4월27일 새벽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AC밀란과의 4강 1차전, 5월5일 새벽 안방 에인트호벤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히딩크 감독의 ‘마법의 용병술’이 통한다면, 에인트호벤의 결승 진출과 정상 제패도 꿈만은 아니다.
흔히 유럽의 프로축구 빅리그라고 하면 축구의 본고장 잉글랜드, 열정의 나라 스페인, 거친 몸싸움의 이탈리아를 ‘빅3’로 꼽는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4강에 올라온 다른 팀 AC밀란, 첼시(잉글랜드), 리버풀(잉글랜드)과 비교할 때 에인트호벤 구단의 선수 몸값 총합, 구단 재정, 유럽 내 지명도는 마치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형국이다.
그러나 명장 히딩크 감독이 팀을 맡은 이후 에인트호벤은 유럽 빅리그 팀들조차 쉽게 이길 수 없는 깐깐한 팀으로 비쳐지고 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과 본선 32강 조리그부터 시작된 험난한 여정에서 에인트호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49경기 무패 기록을 남긴 강호 아스날을 꺾고 살아남았다. 16강에서는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팀 AS모나코(프랑스)를 원정 1-0, 안방 2-0 완승으로 누르고 8강에 진입하면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가장 힘든 싸움인 8강전에서는 프랑스 리그 4연패를 노리는 올랭피크 리옹과 원정(1-1), 안방(1-1) 무승부를 이끌어낸 뒤 승부차기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에인트호벤 선수 개개인의 면면을 보면 ‘아! 그 선수’라고 떠올릴 만한 선수는 없다. 이영표와 박지성은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유럽 무대에서는 아직 도드라진 스타는 아니다. 최전방 공격수 헤셀링크, 제페르손 파르판, 다마르커스 비즐리 역시 에인트호벤에서 ‘키워서 팔’ 잠재력 큰 선수들일 뿐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마르크 반 봄멜, 필리프 코쿠도 각각 국내 최고이거나 전성기 지난 노장이다. 중앙 수비수 알렉스는 지난해 유럽 땅을 처음 밟은 브라질 출신 신출내기다.
그러나 에인트호벤은 어떤 선수든 ‘원석에서 보석’으로 만드는 스타 제조 공장이다. 마치 15세기부터 세계 무역을 주름잡고 식민지를 ‘경영’한 네덜란드 선조 상인의 장사 마인드가 에인트호벤의 선수 관리 시스템에 그대로 배어 있는 것 같다. 90년대 브라질 축구의 영웅 호마리우,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호나우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득점기계 뤼트 반 니스털루이가 모두 에인트호벤을 거쳐 ‘큰 물’로 진출한 선수들이다. 지난해에는 ‘총알’ 아르옌 로벤, ‘킬러’ 마테야 케즈만을 유럽의 스타로 만들어 부자구단 첼시로 팔아넘겼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비교적 낮은 값에 데려와, 몇배 이익을 남겨서 내보내는 것이다. 물론 알렉스, 비즐리, 파르판, 박지성 등은 점차 빅리그 스카우트의 눈길을 받기 시작했고 지난해 데려온 브라질 출신의 장신 문지기 고메스도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떴다.
선수와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결합
선수 보는 눈, 뱃사람의 모험심, 이문이 큰 장사와 결합된 현실주의가 없다면 에인트호벤의 역동적인 선수 구성은 있을 수 없다. 여기서 감독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히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을 몰아치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기관차형 지도자가 아니고, 다양한 선수들을 하나의 목표로 응집시켜내는 ‘로마 전차형’ 스타일로 꼽힌다. 심리학 전공자답게 선수 개개인의 성격과 배경을 장악해서 마음으로부터 움직이게 만든다. 지도철학의 핵심은 ‘한 선수를 위한 팀, 팀을 위한 한 선수’로 압축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더라도 튀는 행동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1996년 열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96) 기간 중에 팀내 불화를 일으킨 자존심 강한 에드가 다비즈를 단칼에 내칠 정도로 사안에 대해 판단이 서면 매서운 추진력을 발휘한다.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은 0-1로 뒤지다가 막판 동점을 일궈낸 리옹과의 8강 1, 2차전에서 잘 드러난다. 1차전에서는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단 한번의 역습 기회를 코쿠가 마무리했고, 2차전에서는 알렉스의 후반 동점골 이후 ‘높이보다는 기동력’이라는 판단으로 비즐리와 호베르트를 투입해 연장까지 몰고 가는 끈질김을 보였다. 히딩크 감독은 특히 공격진 후보 호베르투를 승부차기 5번 키커로 내세우며 끝까지 신뢰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호베르투가 승부차기 마지막 골을 넣어 승리가 확정되자 히딩크 감독한테 달려와 아이처럼 매달리며 감격해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 선수와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결합돼 있는 본보기다. 이영표는 리옹과의 2차전 뒤 히딩크 감독의 행동을 이렇게 적었다. “감독님은 선수 모두를 돌아가면서 포옹하면서 일일이 수고했다고 칭찬했다. 선수들도 서로 껴안고 축하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유럽 정상의 꿈은 그의 전술과 용병술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어찌 보면 운도 따라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32강 본선 E조(아스날, 에인트호벤, 파나이나이코스, 로젠보리) 편성 때부터 운이 따랐다. 아스날 강호는 버거운 상대였지만 그리스와 노르웨이에서 올라온 다른 두 팀한테는 우위였기 때문이다. 8강전 승부차기도 운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욱일승천하는 기세, 심상치 않다
에인트호벤이 1988년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을 제패할 때와 지금의 상황이 비슷한 것도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에인트호벤 사령탑으로 1987~88 유러피언리그 8강에서 프랑스의 보로도를 꺾고 4강에 올랐고, 4강에서는 ‘우승후보’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한 뒤 결승에서 포르투갈의 벤피카를 눕혔다. 묘하게도 올 시즌 에인트호벤의 8강전 상대는 프랑스 대표클럽 리옹이었고, 4강전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 AC밀란과 맞닥뜨렸다. 17년 전을 상상했을 법한 히딩크 감독은 “이제 우리는 강호 AC밀란과 4강전에서 만났다. 17년 전에도 우리는 강팀을 만났고, 결국 이겼다”고 말했다.
넘치는 카리스마와 풍부한 경험, 욱일승천하는 팀 분위기로 에인트호벤은 유럽 클럽축구를 평정할 수 있는 문턱에 와 있다. 지난해 변방의 FC포르투(포르투갈)가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차지했듯이, 올 시즌 에인트호벤의 돌풍도 심상치 않다.
지도자 생활의 정점에 와 있는 히딩크 감독. 8강 리옹과 2차전 뒤 30분간 필립스스타디움을 떠나지 않은 채 감격해 울던 에인트호벤 팬들은 히딩크 감독한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기적을 보여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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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박지성 세 글자를 치면 가장 위쪽에 뜨는 한 축구팬의 글이다. 3월 말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예선 우즈베키스탄전 활약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이후 박지성(24·PSV에인트호벤)의 인기는 폭발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첫 골을 터뜨려주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도 간절하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박지성은 팀내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나 날개 공격수로 출격하기 때문에 늘 득점포 사정 범위에 있다. 눈에 띄게 달라진 공 관리 능력, 경기를 읽는 눈, 흐름을 타는 듯한 드리블, 적절한 슈팅 타임 등은 박지성의 골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준다.
에인트호벤 선수 가운데 챔피언스리그 본선 32강부터 8강까지 최다 득점자는 미국 출신의 다마르커스 비즐리(3골)이다. 그 뒤를 수비수 알렉스(2골), 공격수 헤셀링크(2골)가 추격하고 있으며 필리프 코쿠, 제페르손 파르판, 욘데용, 오이에르가 각각 1골씩을 터뜨렸다. 박지성은 본선 32강 직전에 열린 예선 경기에서 1골을 터뜨렸으나 본선 골은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국내 무대인 에레디지비리그에서 박지성은 6골로 팀내에서도 득점 상위에 올라 있다. 챔피언스리그 8강 1·2차전 때는 강력한 중거리 슛이 골대를 비켜나가는 등 위력적인 대포로 상대 수비수들을 긴장시켰다.
무엇보다 나이답지 않게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는 것은 큰 강점. 박지성은 최강 클럽팀들이 즐비한 본선 무대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런 경험은 많이 해보았다. 2002 월드컵 때는 훨씬 더 긴장했다”며 “덤덤하다”라고 말했다. 속으로 떨리는(?) 마음이 없으랴마는, 평소 그의 성격으로 봤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적 기복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원의 일개미’ ‘성실파’ ‘기계인간’ ‘심장이 두개 달린 사나이’ 등 여러 개의 별칭을 달고 다닐 정도로 죽기살기로 뛰는 박지성. 그의 치열함에서 챔피언스리그 ‘한국인 최초의 골’ 대박이 점쳐진다. 실제 그는 AC밀란전을 앞두고 주변에서 (지성이의) 골이 터질 것 같다는 말에, “넣을 때가 됐죠”라며 당차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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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스리그에서 뜨면 팔린다.”
축구선수라면 누구라도 서보고 싶은 게 월드컵이다. 그러나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린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뺀 미니 월드컵으로 불리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도 월드컵 중간 4년마다 열린다. 두 무대 말고 선수가 설 수 있는 최고의 무대는 역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다.
각 클럽의 정상권 팀이 참가하는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신인의 등장보다는 ‘무명선수’가 빛을 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럽의 빅리그가 아닌 주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챔피언스리그가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뛰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열린 200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에서는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노 호나우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반면 지난해 열린 2003~2004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FC포르투는 주제 무리뉴라는 ‘새로운 명장’뿐 아니라, 언론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이름들을 한순간에 스타로 만들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던 미드필더 데코는 올 시즌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해 팀의 리그 선두를 이끌고 있고, 무리뉴 감독은 첼시 사령탑으로 옮겨 칼링컵을 제패(2월)했고,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3관왕을 노리고 있다. FC포르투 출신의 수비수 카르발요도 첼시로 이적해 막강 수비벽을 구축하고 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두드러진 선수도 새로운 인물보다는 기존의 선수들이 많다. 첼시의 공격형 미드필더 프랭크 램퍼드, 수비수 존 테리,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가 대표적이다. 이 중 램퍼드와 테리는 조 콜과 함께 챔피언스리그와 국내리그 맹활약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새롭게 자리를 굳히면서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을 기쁘게 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의회에서는 첼시의 램퍼드, 테리, 문지기 페트르 체흐(체코) 3명을 ‘올해의 선수’ 후보로 꼽았다.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한 PSV에인트호벤의 마르크 반 봄멜도 주로 네덜란드 리그에서만 뛰었지만, 막강한 수비력, 넓은 시야, 놀라운 중거리슛 능력 등으로 국제적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에인트호벤의 다마르커스 비즐리(미국)나 제페르손 파르판(페루) 등도 스피드와 개인기를 갖추고 있어 빅리그 스카우트의 관심권에 들고 있다. 한국의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전에서 1골을 기록했고, 본선에서는 득점이 없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영리한 플레이로 격을 한 단계 높였다.
이 밖에 올랭피크 리옹의 미드필더 미셸 에시앙(프랑스)과 공격수 플로랑 마루다(프랑스) 등도 2004~2005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부각된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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