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디지털 음악 재생기가 궁금해진 MP3 초보 기자들의 용산 전자상가 방문기
▣ 글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예전에 그는 출퇴근길이 지루했다. 음악을 듣고 싶었으나 중요한 업무 전화를 놓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맘놓고 이어폰을 꽂고 있을 수 없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신문에 계속 눈길을 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두달 전 MP3폰을 사면서부터 배명희(40·회사원)씨의 아침이 달라졌다. 클래식 소품들과 좋아하는 가요 30곡 정도를 저장해놓은 휴대전화를 들고 버스를 타면 웬만한 교통체증은 참을 수 있다. 그는 매주 서너 차례 이동통신 회사가 계약을 맺어놓은 음악 사이트에 접속해 음악 목록을 살피고 1곡에 300원씩 하는 MP3파일을 다운받는다.
“MP3로 옛날 노래 들을 수 있다더라"
새로운 장난감은 배씨에게만 신기한 것이 아니다. 퇴근 뒤엔 7살배기 아들이 MP3폰을 만지작거리며 논다. 어리지만 스타일이 뭔지 아는 아들, 좋아하는 ‘다이내믹 듀오’의 힙합을 듣는다. “80만원을 투자한 것이 아깝지 않다”고 배씨는 만족스러워한다. 디카 열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 마련한 100만 화소 디카도 싫증이 났고, 2년 전 산 60화음 컬러폰으로 컬러링·벨소리 다운받는 것도 이미 학습 진도 다 나갔으니 화소 300만 렌즈에 MP3플레이어 기능이 덧붙여진 MP3폰을 구입한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디카·MP3플레이어·휴대전화를 한꺼번에 가지고 다니기는 힘들죠. 게다가 여자들 정장은 주머니가 작거나 없잖아요.”
한번 젖어들면 퐁당 빠져버리는 걸까. MP3에 맛들인 사람들의 깨소금 자랑이 들려온다. MP3가 첫선을 보였던 초반 10대·20대는 물론 LP·카세트 세대인 중년들까지 MP3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유행은 코앞에서도 불었다. 조용필 세대인 <한겨레21> 김수현 기자의 어머니, “MP3로 옛날 노래도 들을 수 있다더라”. 한두 마디 은근히 던지시는 말이 심상찮았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3월23일 오후 김수현 기자 동료와 함께 시장조사차 용산역 전자상가를 찾았다.
첫 번째 선택은 정통 코스. 4층 MP3플레이어 전문 숍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5기가(G) 빠방한 외장 메모리(1천여곡 수록 가능)에 손안에 냉큼 들어오는 미끈한 디자인의 하드디스크(HDD) 타입 플레이어, 지우개만 한 크기의 플래시메모리 타입, MP3가 덧붙여진 전자사전까지. 어느 하나만 눈길을 주기가 쉽지 않다. 2000년대 초반 시작된 MP3 유행을 주도한 것은 모두 플래시메모리 타입의 제품들이었다. 음악 재생뿐 아니라 녹음·라디오까지 가능한, 작고 가볍고 간편한 플레이어가 대세였던 셈이다. 요즘엔 건전지를 갈아끼우는 대신 컴퓨터 USB포트와 연결해 급속 충전하는 리튬전지 내장형 모델까지 나왔다. “한푼두푼 용돈을 모아야 하는 청소년들은 주로 10만원대 중·후반의 플래시메모리 플레이어를 많이 구입한다”고 ㅈ전자 김대형 주임은 설명한다.
플래시메모리의 흐름을 거스른 것은 태평양 건너편에서 시작됐다. 애플사의 MP3플레이어 ‘아이팟(iPod)’이 순백색의 단순명료한 디자인으로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제 친구 중에도 아이팟 마니아가 있어요. 기존의 MP3플레이어가 투박하고,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기계라는 기분이 든다면 아이팟은 말 그대로 기계 맛을 뺀 장난감이래요. 마치 매킨토시 컴퓨터 사용자들끼리 은근한 유대감을 느끼는 것처럼, 아이팟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뭔가 독점적이고 유니크한 공유의식 같은 게 생긴다더라고요. 녹음이나 라디오 수신 기능 없이 그저 음악만 들어도 만족한대요.”
김수현은 은근히 ‘아이팟’에 침을 흘린다. 국내에 보급된 MP3플레이어는 플래시메모리를 채택하고 있기에, 가볍긴 하지만 저장 용량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아이팟은 HDD라 저장용량이 수십G에 달하며, 대신 크기나 무게 면에서 휴대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친구의 비유에 따르면, HDD플레이어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들고 다니는 ‘라이브러리’이고 플래시메모리는 음반을 갈아끼워야 하는 오디오라고 하더군요.” ‘HDD’와 ‘플래시메모리’는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아이팟이 몰고 온 ‘HDD 바람’에 자극받은 우리나라 업체들도 맞불을 놓아 ‘아이리버’로 유명한 레이콤과 삼성전자가 HDD플레이어를 출시했다. 애플사도 질세라 플래시메모리 ‘셔플’을 내놓았다.
‘아이팟’에 침흘리고, 전자사전에 혹하고
미국인들은 단순히 섞어듣기 재생 기능만으로도 만족하는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기능’을 선호한다. 새 학기를 맞아 전자사전에 MP3를 덧붙인 제품들도 인기다. 한·중·일 사전에 녹음·MP3 재생·라디오 기능까지.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들은 초등학생 아이들의 손에 30만원대 MP3 전자사전을 기꺼이 들려준다. 사실 사전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줄곧 종이사전을 고집하던 ‘브리태니커’가 CD 제품을 내놓기로 결정한 것도 끝까지 버티다 마침내 항복한 결과였다. 이제 사전은 디지털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업데이트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김 주임은 ‘진화하는 사전’이라는 홍보 카피가 과장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전엔 사전은 한번 입력된 내용만으로 끝이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새로운 내용을 다운받을 수 있죠. 사전 내용도 계속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외장 메모리도 용량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아참, 어머니는 휴대전화도 낡았지! 기왕 사는 김에 돈을 좀더 주고 MP3폰을 사면 어떨까? 전자사전에 넋을 놓았던 두 사람은 휴대전화 코너로 발길을 돌렸다. 40화음·60화음 운운하던 것이 어제 일 같고, 컬러폰 유행도 얼마 전이었던 듯한데 이제 휴대전화는 카메라 렌즈 화소 경쟁에 뒤이어 MP3폰에 열을 올리고 있다. ㅅ전자 직원들은 외장형 MP3플레이어가 달려 있는 신제품을 추천했다. “휴대전화에 MP3플레이어를 연결해 듣는 거죠. 256M 플레이어에는 20곡 정도를 담을 수 있고요. 나중에 휴대전화 기기 보상받으실 땐 MP3플레이어는 따로 떼서 그냥 가져도 돼요.” 또한 설명을 들으니 휴대전화로 음악을 다운받는 것은 다소 복잡해 보였다. “최신곡을 이동통신사와 연결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을 받아서 들을 수 있죠. 자기가 가지고 있던 MP3 파일을 그대로 휴대전화에 옮길 때엔 다른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파일을 변환시켜야 휴대전화에 저장해 들을 수 있어요.” 이동통신사마다 음악 저작권료 계약이 다 달라서 구입가능 곡수나 재생 기간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유료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면 MP3폰을 사기 전에 이런 조건들을 따져봐야 한다. 가령 SK의 음악서비스 ‘멜론’은 휴대전화에 음악을 다운받아도 한달 뒤엔 들을 수 없을 수도 있다. 최신가요를 다운받아 계속 반복해 듣고 다른 노래로 넘어가는지, 좋아하는 노래는를 몇 곡만 골라서 즐겨 듣는 스타일인지, 본인이 음악을 듣는 패턴에 따라 MP3폰의 선택도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MP3폰, 내 음악취향에 맞나?
이제 남아 있는 또 하나의 대안은 MP3 디지털카메라. 카메라폰을 갖고 있지 않은 어머니는 가끔 디카에도 관심을 보였다. “디카에서 얼굴을 예쁘게 찍으려면 렌즈를 이마쪽에 갖다대야 한다지” 하면서 말이다. “올림푸스에서 나온 MP3 디카 있나요?” 우리의 질문에 카메라숍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파나소닉 디카를 들어보이며 “지난해 홈쇼핑에서 인기를 모은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얼른 보기에도 디카와 MP3의 합체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듯했다. “카메라를 사려는 고객들은 MP3는 아주 부차적인 문제로 생각하니까요.”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3년 전쯤 카시오에서 MP3 기능이 달린 디카를 내놓았지만 별 호응이 없어 품절됐고, 올림푸스에서 출시했다는 제품도 국내 시장엔 아직 선을 보이지 않았다. 디카 전문 리뷰어 한동훈(30)씨는 디카의 경우엔 MP3를 안으려는 컨버전스 경향을 보이기보다는 당분간 카메라 자체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다봤다. 액정화면을 키우거나 고해상 화소 개발, 이미지 처리 속도 개선 등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시장조사는 끝났다. 대용량 HDD플레이어? 작고 가벼운 플래시메모리 타입? 50대 아줌마가 가지고 있으면 아주 신선해 보일 아이팟 셔플? 아니면 살짝 빌려쓸 수 있는 전자사전? 그도 아님 MP3폰? 아아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MP3 춘추전국시대. 용산역을 나온 MP3 초보들의 고민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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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MP3폰에 노래를 담으려면 우선 각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 MP3매니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SK텔레콤 가입자는 멜론, KTF 가입자는 굿타임뮤직, LG텔레콤 가입자는 뮤직온에서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프로그램을 이용해 MP3폰에 음악을 저장할 때 음악 파일은 암호화 과정을 거치게 되며, 변환된 파일은 사용 기간이나 복제·전송에서 제한을 받게 된다. 이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디지털저작권관리(DRM) 기술을 빌려온 것이다.
▼SK텔레콤의 멜론(www.melon.com)
월정액 5천원(2개월째부터 4500원)을 내면 다운로드·스트리밍을, 월 3천원을 내면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모든 음원은 월별 계약으로 기간이 지나면 파일이 재생되지 않는다. 단, 한 곡당 500원을 주고 내려받으면 영원히 사용할 수 있다. 비SK텔레콤 가입자도 스트리밍·다운로드 서비스가 가능하나 자신의 MP3폰에 담을 수 없다. MP3플레이어는 거원시스템의 모델만 이용 가능. 약 67만곡.
▼LG텔레콤의 뮤직온(www.musicon.com)
LG텔레콤 가입자들은 6개월 동안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MP3폰이 없는 LG텔레콤 가입자도 회원 가입을 하여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저작권료 100억원을 LG텔레콤이 대신 낸 만큼 비가입자들에겐 배타적이다. 7월부터 신규 가입자에 대해 유료화를 시작할 예정. 약 130만곡.
▼KTF의 굿타임뮤직(http://goodtimemusic.magicn.com)
후발주자인 KTF는 4월 초에 새롭게 음악 포털을 열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모바일 관련 사이트 ‘매직엔’에 소속돼 있다. 여기서도 음원 구매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곡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리바다’와 제휴해 소리바다의 MP매니저 프로그램 ‘소리바다맨’을 활용토록 하고 있다.
▼소리바다(http://www.soribada.com)
현재 ‘소리바다3’ 서비스가 가동되고 있다. 회원 가입을 하면 20곡을 검색해 다운받을 수 있는 20개의 MP(Music Point)가 생성된다. 이후 업로드·방문 횟수 등에 따라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며, 유료 MP3를 한 곡 구매하면 1주일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KTF MP3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내놓은 ‘소리바다 꾸러미’는 MP3 네 곡을 1천원에 구매해 한달간 서비스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게 한 기획상품이다.
이외에 MP3플레이어 제조업체인 레인콤은 www.funcake.com, 삼성전자는 www.yepp.co.kr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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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클래식·재즈를 즐겨듣는 최광민씨는 청계천 중고상에서 스피커를 조립해서 마련할 정도로 오디오에 관심이 많다. 소리에 예민한 그는 MP3의 음질이 ‘메말랐다’고 생각하지만 휴대성 때문에 MP3 플레이어를 이용한다. “길거리를 걸으며 록이나 가요를 듣죠. 진지하게 음악감상을 할 땐 사용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정말 MP3의 음질은 떨어지는 걸까.
MP3는 압축 코딩의 세계적 표준 규격인 MPEG(Motion Picture Experts Group)의 하나로, MPEG-1의 Layer-3에 해당된다. 진화된 MPEG-4 규격은 최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의 동영상 압축기술로 사용되고 있다.
MP3의 압축 원리는 심리음성학에 기반한다. 오케스트라에서 한 악기가 크게 소리를 내면 사람의 귀는 다른 악기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하지만 CD나 WAV 파일은 사람이 듣지 못하는 데이터까지 거의 모든 소리를 포함하여 기록하게 된다. 이에 반해 MP3는 사람이 잘 반응하지 않는 소리를 제거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용량을 가볍게 한다. 불필요한 데이터만큼의 손실이 발생하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가청 정보를 포함한 MP3는 아날로그 소리와 똑같이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광민씨 같은 이들은 “가청 영역 밖의 정보만 날렸다고 하지만 풍부함이 사라진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와 상관없이 MP3는 급속히 대중화되고 있으며, 카세트 테이프를 쉽게 MP3로 변환시켜주는 ‘플러스데크’같은 컴퓨터 주변기기가 등장할 정도다.
1980년대 독일의 프라운 호퍼 연구소에서 개발된 이 기술은 물론 공짜가 아니다. 이탈리아 시스벨, 미국 오디오임팩트 등 특허 라이선싱 업체에서 적극적으로 특허계약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국내 중소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들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레인콤,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업체들은 얼른 특허계약을 맺었지만, 생산량이 적을수록 더 많은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규정으로 인해 중소업체들은 대부분 손놓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05 세계정보가전박람회(CES)에서 시스벨쪽은 각 업체의 부스에 들러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으면 CES 참가를 막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MP3의 물결이 거센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은 MPC나 APE, FLAC 같은 다른 파일 형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MPC는 MP3보다 좋은 음질을 제공하는 손실 압축 형식이며, APE와 FLAC는 CD와 동일한 음질을 제공하는 무손실 압축 형식이다. 요즘 들어 하드디스크의 크기가 커지면서 부담스러운 용량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최광민씨도 APE 형식의 클래식 파일을 찾아 듣는다. “다시 CD로 구워도 소리가 들을 만합니다. APE 재생이 되게 해달라고 말한 어느 아이팟 유저의 후기도 본 적이 있어요. 아직은 스피커로 감상해야 하거든요.” 오디오 파일은 오늘도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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