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중단 1년 되는 시점에 대북 압력 내비친 미국… 주변국 협조 없어 효과 미지수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6월 위기설’이 한반도 상공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최근 아시아를 순방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은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며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내비친 뒤, 북한이 6월까지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미국은 대북 제재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게 위기설의 실체다. 그렇다면 왜 하필 6월일까.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3월25일 “현실적으로 올 6월이 되면 (3차 6자회담이) 끝난 지 1년이며, 우리도 상당히 기다린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정부 소식통도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아시아 세 나라를 돌면서 죽 얘기한 것을 유추해보면 미국은 1년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다음 절차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3차 6자회담은 지난해 6월23일부터 나흘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안보리 회부는 곧 선전포고”
라이스는 3월18일부터 아시아 순방을 시작하면서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계속 거부할 경우 대북 압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내비친 바 있다. 그는 아시아 순방 마지막 날인 21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는 공공연히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지 않으면 ‘다른 선택’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이 계속해서 6자회담을 거부한다면 어떤 조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다른 선택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국제기구에 다른 선택이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른 선택으로 북핵 문제의 유엔안보리 상정을 통한 제재의 뜻을 내비친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경제 제재를 염두에 둔 북핵 문제의 유엔안보리 회부 말고도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른 대량살상무기 감시와 단속 강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조처들은 실제 강행될 경우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뇌관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간단히 볼 사안은 아니다. 1994년 1차 핵 위기가 불거졌을 때도 당시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한국, 일본과 공조해 북한에 대한 혹독한 경제 제재 조처를 경고하며 압박에 들어가자,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맞불을 놓았고, 이어 “제재 부과는 곧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겠다”고 경고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이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북한의 과도한 군사력의 전방 배치와 심각한 경제난, 국제정치적 고립 등으로 인해 자포자기 심정이 되어 북한이 군사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가 북한 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북한도 당시보다 훨씬 현명하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자포자기식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것이라는 미국식 판단은 옳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만,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일본의 보수적 집권세력은 더 호전적이고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북한의 현재 입장도 지난 1차 핵 위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핵 문제가 안보리로 넘겨지는 행위 자체를 전쟁의 전초전, 즉 선전포고로 간주한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전쟁의 구실 찾기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오성철 타이 주재 북한 대사는 타이의 일간 영자지 <네이션>과의 25일 인터뷰에서 “북핵 6자회담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넘기는 것은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라며 미국이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 논의에 맡기려 함으로써 한반도의 교착상태를 전쟁 위기로 몰고 간다고 비난했다.
라이스, 중국 지도부 협조 못 끌어내
결국 라이스는 6자회담의 주요 당사자인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을 차례로 방문해 북핵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돌파구 마련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본, 한국, 중국 세 나라를 돌면서 내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했다. 어르기도 윽박지르기도 했다. “북한이 주권국가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며 모처럼 유화적인 발언을 내놓기도 했지만, 또 ‘폭정의 전초기지’라는 표현에 대해 사과하라는 북한의 요구에는 “북한이 주제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이 주제를 변화시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돌렸다.
더구나 라이스는 가장 공을 들인 중국 지도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데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18일 아시아의 첫 순방지인 일본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의 가장 큰 후원자인 중국이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수단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의 파트너들은 미국에 더 유연하고 창조적인 접근을 해달라고 요청해왔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중국에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촉구해온 그간의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라이스는 중국 지도부를 만나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데 더 힘을 써주기를 주문했으나, 후진타오는 미국에 대만해협의 평화를 위협하는 대만 독립 분열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라고 엇박자를 쳤다. <뉴욕 타임스>는 22일치에서 라이스 장관을 수행한 고위 관리들의 말을 빌려, 라이스 장관이 후진타오 국가주석, 원자바오 총리 등 중국 고위 관리들과의 회담에서 “북한과 대화해보겠다”는 무덤덤한 답변을 들었을 뿐 구체적인 대북 압력에 대한 언질을 받아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지는 징후가 뚜렷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정식 초청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가 중국을 방문해 양국 간 ‘투자 장려 및 보호에 관한 협정’을 맺는 등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은 큰 효과를 내기 힘들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라이스 국무장관이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실패할 경우 ‘다른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주변국들의 협조가 없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 뉴욕사회과학원 리언 시걸 박사도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남한과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도 대북 압박 강화를 원하는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두복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현안 보고서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노력에 가시적 성과가 없을 경우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북한 인권법을 통한 압박 수단의 동원 또는 유엔 안보리 회부 등의 방안이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이때 문제 해결의 접근 방식을 둘러싸고 미·중 양국간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부시 행정부도 높은 벽을 실감한 듯 6월 위기설을 부인하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각) 미국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기다리는 최종 시한을 6월로 잡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 “우리는 시한을 설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애덤 어럴리 국무부 부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6월 시한설’에 대해 ‘근거 없는 보도’라고 재확인했다. 그렇다면 6자회담이 끝내 열리지 않을 경우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방안은 무엇일까. 한국과 중국, 러시아가 반대하면 유엔을 뛰쳐나가 일본과만 손을 잡고 독자적으로 북한을 제재하는 방안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
남북 정상의 선택은 무엇인가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중국 단둥을 거점으로 한 대북 지원 생명선을 끊도록 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3월19일 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압박과 제재에만 골몰하는 미국과 일본의 매파적 보수세력을 지켜보면서 남북한이 취할 수 있는 다음 조처는 무얼까. 사실 지금 가장 인내심을 잃어가는 쪽은 다름 아닌 노무현 정부일지도 모른다. 목엣가시처럼 걸려 있는 북핵 문제로 집권 초기에 구상했던 남북 관계의 획기적 발전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구상들이 갈수록 빛이 바래지는 현실이다. 이제는 남북한 정상이 대담하게 발상의 전환을 모색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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