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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재테크’가 벤처 정신?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본업과 무관한 ‘부동산 관련 업종’ 추가하는 기업들… IT업계 중심으로 ‘비생산적 투기’에 눈 돌리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1990년 5월8일 발표된 ‘기업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 조처’(5·8조치)는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의 주범으로 지적됐던 기업의 부동산 과다 보유에 대대적인 칼을 들이댄 조처였다. 당시 정부는 49개 그룹이 갖고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 5700여만평과 금융기관의 과다 보유 부동산을 강제 매각토록 했고, 생산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비업무용 부동산의 신규 매입을 금지했다. 당시 재벌기업들이 보유한 골프장·스키장은 레저산업 진출이라는 명분 아래 업무용으로 둔갑하기도 했고, 넓은 벌판에 벽돌 몇장 쌓아놓고 공장 증설용 부지라고 우기는 기업들도 있었다. 재벌기업들이 설립한 각종 스포츠단체도 연습장 확보를 핑계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 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는 대부분 해소됐다. 이에 따라 자연히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용 대출을 금지하는 것 같은 금융기관의 여신금지 업종 규제도 폐지 혹은 완화됐고, 법인의 비업무용 부동산의 양도차익에 대해 법인세 이외에 특별부가세를 물리는 것도 없어졌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기업들이 또다시 부동산을 통한 ‘비생산적 투기’에 눈을 돌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월25일까지 사업목적을 바꾸겠다고 공시한 82개 기업 가운데, 부동산 관련 업종을 사업에 추가한 회사는 모두 19개로 전체의 23.2%를 차지했다.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정관을 변경해 부동산 매매업과 임대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 중에는 주력사업이 매립지 재정비 등이어서 부동산 개발이 기존 영업과 무관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본업’이 부동산과 무관한 정보기술(IT) 업체들이다.

소유한 공장·사무실 임대 사례도 있지만…

최근 부동산 임대업 등을 사업목적에 새로 추가한 업체는 광학전자화상시스템을 생산해온 썸텍, 무선 인터넷 업체인 유엔젤, LCD업체인 프롬써어티와 세진티에스 등이다. 역시 부동산 관련 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상신브레이크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이고, 지엔텍은 대기오염 방지 시설업체, 산성피앤씨는 골판지 생산업체다. 시스템통합(SI) 업체인 퓨처인포넷과 플라스틱 부품 원료 업체인 폴리플러스, 필름콘덴서 업체인 필코전자도 부동산 매매업 혹은 임대업을 새로 넣었고, LG홈쇼핑은 부동산 공급과 분양대행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부동산 매매업 또는 임대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이들 상장·등록기업은 ‘사업 확장 예상에 따른 목적사업 추가’나 ‘신규 사업 진출’ 등을 사업목적 변경의 사유로 들고 있다. 부동산 매매와 임대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고 공시한 화학제품 제조업체(거래소 상장기업) ㅇ기업쪽은 “현재 특별히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관련 사업은 없는데, 혹시나 해서 이참에 정관을 개정할 때 집어넣은 것”이라며 “나중에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제조업 활동에 수반되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고 건물도 짓게 되므로 부동산을 팔거나 임대하는 등 부대적인 사업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부동산 사업의 신규 진출을 투기라고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통신업체인 KT가 전국 각지에 보유한 부동산을 활용해 부동산 개발·임대업을 하듯 기업들이 부동산 매매·임대업에 나서는 건 대개 사업확장 외에 기존 공장·사무실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경우가 많다. 필코전자 관계자는 “부동산 임대 및 매매업은 자산가치 증대를 위한 것”이라며 “일부 공장설비를 중국으로 이전할 계획인데, 놀리게 된 건물과 부지를 제3자한테 임대해주려고 한다.

‘부동산 매각으로 손실 만회’ 솔깃한 소문

부동산 임대업이 사업 내용에 없으면 그것이 매출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사업목적에 추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설비 이전에 따른 건물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부동산 사업을 새로 추가했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 직원 사택 등을 임대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부동산 재테크’에 나서기 위한 포석으로 회사 정관에 부동산 사업을 끼워넣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벤처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지난해까지 소규모 벤처회사의 임원이었던 ㅂ씨는 “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지만 ‘영업손실을 부동산 매각으로 만회했다’는 성공 사례가 잇따르면서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부동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코스닥 등록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부동산 매매·임대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건 “경기 침체 와중에서 그나마 안정적이고 확실한 사업은 부동산”이라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본업인 생산활동을 아예 제쳐놓고 “이참에 사업을 부동산쪽으로 바꿔보자”는 기업도 있다. 구로공단에 있는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공단의 IT 경기가 침체되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업체들이 많아 빈 건물이 많이 생겼다”며 “주변에 부동산 개발·공급업으로 수익을 올린 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사업목적을 바꾼 뒤 본격적으로 부동산 임대업에 뛰어드는 제조업체도 있다는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 박동명 연구원은 “예전에도 게임, 엔터테인먼트를 사업목적으로 집어넣는 기업이 많이 생기는 등 뭐가 된다 싶으면 기업들이 그쪽으로 몰려들면서 사업목적을 추가하곤 했다”며 “요즘도 부동산이 돈이 된다 싶으니까 관심을 갖고 부동산 매매·임대업을 추가한 기업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기업들은 “부동산 시장이 뜨니까 보유하고 있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개발해 활용하려는 생각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부동산 시장이 활황세를 보였던 2003년 상반기에도 부동산 매매와 임대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한 기업이 봇물을 이뤘다. 주로 코스닥 등록업체들이 부동산 시장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는데, 당시 인터파크·미디어솔루션·와이드텔레콤 등 35개 코스닥 등록·거래소 상장기업이 3월 주총을 앞두고 ‘사업 다각화’ 등을 표방하며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땐 게임 활황… 반짝 뜨면 무조건 몰리네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경기는 위축되고 있지만,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벌어보자는 벤처기업들의 ‘재테크’는 갈수록 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들을 핵심 역량에 집중하도록 유도했지만, 신생 코스닥 등록 기업쪽에서는 전공은 제쳐두고 부동산으로 한눈을 파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가 또다시 골칫거리로 등장하게 될 것인가?



비업무용 토지엔 세금 주렁주렁

현행법상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비업무용 토지에 대해서는 취득세·등록세 등 지방세를 무겁게 물리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법인이 부동산을 취득한 뒤 3년간 유예기간을 주고 3년 뒤에도 실제 본업과 관련된 활동(고유 목적사업)에 사용하지 않으면 비업무용으로 보고 세금을 물린다.
국세청 법인세과 관계자는 “회사 정관상 사업목적으로 부동산 매매·임대업이 있을 경우 토지 매입 때, 그리고 양도차익이 발생할 때 법인의 업무와 관련된 손비로 인정해주게 된다”며 “하지만 정관에 부동산 관련 사업을 형식적으로 올려놓았어도 실제로 임대 등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비업무용으로 판정한다”고 말했다. 또 “종전에 비업무용으로 판정된 것이라 해도 단지 사업목적에 부동산 매매·임대업을 추가했다고 해서 업무용으로 봐주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당 기업의 ‘주력업종’이 부동산 매매·임대업이 아니라면, 부동산 사업을 법인 등기부에 추가했다 하더라도 부동산을 사놓고 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 경우 비업무용으로 보고 중과세한다는 것이다. 재경부 법인세과 관계자도 “법인이 투자 목적으로 비업무용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 부동산 구입에 든 차입금 이자와 부동산 유지·관리비용은 운영자금이 아니기 때문에 법인세에서 손비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쪽은 “기업이 은행에서 운전자금 용도로 대출을 일으킨 뒤 이 돈으로 비업무용 부동산을 구입했다면 대출자금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 은행이 매각을 요구할 수 있다”며 “대출자금이 부동산에 묶여 해당 기업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킨다면 은행의 대출심사역으로서는 대출금 사후관리 차원에서 회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쪽은 또 “은행이 자금을 대출해줄 때 해당 기업의 고유업종이 무엇인지 따지기 때문에 부동산 매매·임대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했다고 해서 부동산 구입자금을 쉽게 대출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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