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경영’의 현재와 미래(상)]
환경경영 전문가 이승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에게 듣는 지속가능경영 확산의 열쇠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승규(44)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기업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각 기업들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서로 연계하고, 민간-정부 부문의 상호 연계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가능경영이 쉽사리 될 수 있다는 낙관은 금물”이라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식을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인천대 교수를 거쳐 1996년부터 KAIST 교수로 재직 중이며, 환경경영 분야에 조예가 깊다. 특히 기업 현장 사정에 밝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과연 얼마나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가
지속가능경영의 개념은 좋은데, 현실에서 잘 적용될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여전한 듯하다.
지속가능성이란 게 결국 한정된 자원을 노후나 미래 세대를 위해 얼마쯤 떼어놓고, 지금 얼마나 쓸지 하는 배분의 문제다. 그런데 개인별·기업별로 장·단기 선호도가 다를뿐더러 미래보다는 당장의 눈앞에 있는 게 커 보이기 십상이다. 미래에 대해 합당한 가중치를 두고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한 기업에서도 어렵다. 지구환경 문제에서 남북 문제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미, 중국에선 선진국들에게 ‘우리도 (당신들처럼) 배부른 뒤에 환경을 생각하겠다’는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추구임에도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지속가능경영이 대두된 배경은.
골프채 만드는 회사를 생각해보자. 100의 자원을 들여 골프채를 만들어 150을 받고 팔았는데, 그 과정에서 환경에 끼친 피해가 200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손실인데, 기업은 환경에 끼친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 가격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외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은 큰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런 ‘시장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외부 효과를 조세나 부과금을 통해 없앤다는 것인데, 이 역시 잘 작동하지 않아 ‘정부 실패’가 나타난다. 정부가 경제학 교과서에서 가정한 것처럼 ‘공익의 완벽한 대변자’가 아닐뿐더러 외부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정치적 메커니즘’이 나오게 된다. 두산의 페놀 사건, 나이키의 아동노동 사건 등 드라마틱한(극적인) 사례가 나타나면서 경보가 울리고 사회적 압력이 대두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기업의 대응에서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기업의 대응이라면.
사회적 압력은 해당 기업에 경영 리스크(위험)로 작용하게 된다. 이때 기업들의 대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반응적(reactive) 접근으로 (이미 제시돼 있는) 요구 조건을 잘 지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렇게 대응한다. 둘째는 공세적(proactive) 접근이다. 앞서 나가는 기업들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환경·인권 문제 등에서 공세적으로 리스크에 대비해 아예 문제의 싹을 자르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나.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환경친화적인 하이브리드형 ‘프리우스’를 상용화한 게 1997년이었다. 1998년엔가 자동차산업 관련 회의에서 현대자동차는 환경경영을 강조하며 하이브리드형을 개발할 뜻을 밝혔다. 그 시점에서 이미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던 셈인데, 현대차는 아직 프로토타입(견본) 개발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연비 개선 면에서 도요타에 크게 뒤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속가능경영을 중요한 문제로 여기더라도 여력이 없으면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 세계 자동차 업계의 최대 화두는 ‘5대 업체 생존론’(앞으로 살아남을 업체는 5개뿐이라는 전망)이었다. 저가의 메리트(강점)만 갖고 있던 현대차는 생존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정몽구 회장 체제 이후 현대차는 품질 우선주의로 굉장한 성과를 거뒀다. 같은 값에 더 나은 품질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1970~80년대 포드와 GM 주도의 세계 자동차시장의 ‘게임 룰’을 도요타가 뒤바꿔놓았는데, 이런 룰에 현대차가 잘 맞추고 있다. 문제는 게임의 룰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도요타와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지속가능경영을 고리로 삼아)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려고 한다.
BMW가 폐차장 업체 인수한 사연
게임의 룰이 어떻게 바뀐다는 것이며, 왜 지속가능성과 관련되는가.
독일에선 자동차에 대한 반감이 큰 편이고, 자전거 타기 등 소비자 운동도 활발하다. 또 환경 의식이 높아 폐자동차의 재활용률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BMW는 이런 움직임에 대비해 규모가 크고 노하우를 갖고 있는 폐차장 업체를 인수했다. 독일이 자국 내에 판매되는 자동차에 대해 일정한 재활용률을 지키도록 강제하면 어떻게 되겠나. 현대차가 지금은 독일에서 잘 팔리고 있지만, 갑자기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독일 업체는 재활용을 위한 인프라(기반시설)를 갖추고 있지만, 현대차는 없으니…. 그게 새로운 게임의 룰이다.
환경보호, 사회적 책임이 기업의 이윤 추구 논리와 충돌하지 않아야 지속력을 띨 수 있을 텐데….
카펫 회사인 미국의 인터페이스가 좋은 예다. 사무실에 깐 카펫의 전체 면적 가운데 닳는 부분은 20%도 채 안 된다. 특히 책상 밑은 아예 밟지 않으니 닳을 일이 없다. 사회적으로나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땐 닳아 없어지는 부분만 갈면 좋은데, 회사쪽에선 전체를 교체해야 이익이다. 재활용하면 신제품을 팔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카펫이 80% 부분은 멀쩡한데도 버려지는 이유다. 이런 딜레마에서 인터페이스는 친환경 경영으로 돌아서서 사업의 개념을 바꿨다. 카펫을 파는 게 아니라, ‘바닥덮기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카펫의 상태만 일정하게 유지해주고, 주기적으로 사용료를 받는 식이다. 이렇게 되니 재활용률을 높이는 게 회사에 득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집중적으로 닳는 부분만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타일형 카페트가 나오는 등 기술개발이 활발히 이뤄졌다.
국내 사례도 있다. 제주 신라호텔이다. 호텔은 침대 시트를 매일 교체하는데, 한 사람이 며칠씩 묵는 경우 매일 교체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판단 아래 고객의 동의를 얻어 사흘 동안 시트를 갈지 않도록 했다. 회사로선 원가를 절감하는 셈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수질 오염을 줄이는 전형적인 윈윈(상생)이다. 소비자는 환경에 공헌했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환경 문제는 그렇다 쳐도 사회적 책임 부문을 기업의 사업성과 연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 않은가.
기업의 책임은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일이다. 사회 문제 해결, 사회 안전망 구비, 약자 보호는 정부 몫이다. 기업은 옆에서 지원하는 역할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들어가는 인력이나 시간은 정부 부문의 그것과 견줄 때 얼마 안 된다. 다만, 사회에 공헌하는 여러 활동을 통해 해당 회사 종업원들의 사기가 올라간다. 해당 업체의 메인 스트림(주요 사업 부문)과 연결될 통로는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의식 수준 높이는 교육 필요
사회적 책임 면에서 볼 때 국내 기업의 실태는 어떻다고 보나.
여러 활동들이 많은데, 민간-정부 및 기업-기업의 상호 연계가 없다. 기업으로선 ‘랜덤 초이스’(무작위 선택)식으로 한다. 기업의 기부가 얼마이고, 어떤 사회봉사 활동에 얼마의 인력과 시간이 동원되고 있는지 기초 조사를 벌인 다음 이를 조직화하면 같은 노력으로 훨씬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경영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쉽게 해결 안 된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그로 인해 손해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관련 잣대를 만들고 이를 실행하는 게 우선이다. 다음에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의식 수준을 높이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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