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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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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 ‘5 대 1’ 압박카드

등록 2005-02-23 00:00 수정 2020-05-03 04:24

비외교적 방법까지 동원해 ‘북한 고립’ 몰아가는 미 정부… 북한의 위협 점점 확대 평가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북한 핵 광풍이 다시 한번 한반도를 난기류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지난 2월10일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 보유 선언을 한 이후 미국과 한국은 물론 주변국들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여념이 없다. 우려스런 대목은 모두들 제재 일변도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런 압박이나 제재가 그다지 실효성을 갖지 못하고 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는 점에서 최근의 흐름은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사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정책 실패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반성이 우선되어야 옳다. 하지만 분위기는 북한의 고립을 더욱 부추기는 쪽으로만 급속히 기울고 있는 듯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인권·무기·마약 문제까지 한꺼번에 쏟아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는 18일 고려대 언론인교우회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북한이) 핵을 추구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이 회담에서 배제될수록 우리(5개국)의 공통된 의지가 굳건해질 수밖에 없다”고 대북 압박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알렸다.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도 제재 동참 대열에 줄을 선 듯하다. 로버트 서터 조지타운대 교수는 17일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증언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은 미국과 관련 국가들의 정책 실패가 지속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면서 군사력의 사용을 포함한 대북 압박 강화가 위험성과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관련 국가들과 협의를 통해 대북 압력을 가중해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억제해나가는 접근법을 지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보수 언론은 6자회담의 주도국으로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 선언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대북 제재나 다른 행동을 위한 유엔 안보리 회부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시사주간지 <타임>도 북한의 핵 보유 선언과 6자회담 철수에 대응해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동 또는 단독으로 신속하게 대북 압박을 가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거들었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기 몇달 전부터 알카에다에 사용하던 기법을 근거로 북한의 마지막 남은 수입원을 봉쇄하기 위한 새로운 봉쇄 전략을 개발해, 일부는 사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이 새로운 전략을 통해 북한 정권이 위조와 마약 밀매,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기술 판매 등으로 수익을 얻는 통로로 사용해온 금융거래를 추적해 봉쇄하려는 노력을 강화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2월14일치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이같은 압박 계획이 성공한다면 김정일 정권 와해라는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비외교적 행위’에 골몰해왔다. 이는 북한을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 이끈 결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세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군사적 대응은 오히려 김정일 체제의 공고화를 돕고 한반도의 분쟁 확산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며, 무관심 전략 또한 북한의 적대감을 심화하면서 핵 등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시간을 벌게 해주어 궁극적으로 김정일의 강성대국론에 힘을 실어주어 한국과 우방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핵 문제뿐 아니라 인권 문제를 비롯해 미사일, 생화학무기, 마약 밀매 등 모든 이슈를 한꺼번에 끄집어내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도 미국의 핵문제 해결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 정부의 깊은 시름도 이런 부시 행정부의 복잡한 문제 제기와 맞닿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미간의 불신이 깊은 상황에서 모든 이슈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시도할 경우 북한은 스스로 협상 테이블을 접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늘 우려해왔다”면서 결국 이런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시 행정부의 속셈을 잘 읽고 있는 정부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부시 행정부 내 핵심 정책 결정자들의 대담한 발상 전환 없이는 북-미간의 벼랑 끝 대치의 장기간 지속이 불가피한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틈바구니에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

결국 이같은 끝이 안 보이는 정권 차원의 기 싸움에서 죽어나는 것은 그 틈바구니에 있는 북한 주민들이라는 점에서 북핵 문제가 갖는 복합적 위기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핵을 빌미로 한 미국의 대북 봉쇄 강화는 북한 내 한정된 자원의 고갈과 왜곡을 더욱 심화하면서 일반 주민의 복리는 더욱 소홀히 다뤄지기 쉽다. 제재 일변도의 북핵 해법 논의가 갖는 부정적 파급효과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당장 부시 행정부가 북한 압박 수단으로 인도적 차원의 비료 지원마저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음은 비인도적 개입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미국은 북한 제재를 강화하려는 명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실제로 사용 가능한 핵을 가질 리 없다고 애써 고개를 젓기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핵과 그 운반 수단을 갖고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포터 고스 국장은 2월16일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를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으며,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는 핵무기 크기의 탄두를 장착하고, 미국에 도달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북한이 생화학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으며, 이들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전보다 북한의 위협을 더 확대 평가하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이런저런 위협을 강조하면 할수록 스스로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중국이나 한국의 전폭적인 협력 없이는 북한에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력 사용은 동북아에서의 미국 이익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미국은 끝까지 중국과 한국을 제재에 동참시키기 위해 애쓰겠지만 이를 관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나 중국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북한과의 특수관계나 국내 정치 구조상 대북 제재에 대한 지지를 얻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존 울프스털 카네기재단 비확산담당 부국장이 17일 하원 청문회에서 밝힌 해법은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북한이 이(6자회담 등)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의 대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외교적 수단을 다 써보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북한의 노골적인 도발 행위가 없는 상황에서 대북 압박을 강화할 경우 한-미 동맹의 와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미국이 진정으로 외교적 노력을 다해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뻣뻣한 원칙론 대신 외교적 노력 보여야

북한은 6자회담의 기계적인 연속 개최가 아닌 실질적인 성과에 목말라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진전된 협상안을 계속 내놓아왔던 북한에 견줘 미국은 그야말로 뻣뻣한 원칙론에 매달려온 지난 협상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북한은 벼랑 끝 전술에 대한 유혹을 차마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은 더 아슬아슬한 추가 조처를 내놓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이는 북한 정권 나름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은 더 많은 반대급부를 노린 것이라는 미국 내 매파들의 목소리와 달리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평화 공존’이라는 두 단어만 말하면 북한 핵 문제는 결국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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