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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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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시크리트, 아직도 1천 박스”

등록 2000-12-20 00:00 수정 2020-05-02 04:21

베트남전 관련자료만 3만8천 박스… ‘군사정보의 보고’ 미 국립문서보관소를 가다

RG(Record Group) 472.

베트남전과 관계된 모든 문서는 RG 472로 분류돼 있었다. 이 지난 334호와 이번 339호에 보도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의혹’ 미군 비밀보고서도 RG 472에 묶인 한 박스에서 나온 것이다.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콜리지 파크에 위치한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를 찾았다. 2차대전 이후 발행된 미국의 군사기록과 문서를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1934년 미국에서 가장 처음 생긴 국립문서보관소는 워싱턴 중심가 펜실베이니아 거리에 있지만, 1985년 메릴랜드에 또다른 국립문서보관소가 생긴 이후 대다수의 군사정보는 이곳으로 옮겨진 상태다. 이도영 박사가 발굴했던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사진들과 가 처음 보도한 ‘노근리 학살’ 공식문서도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찾아주는 것’일 뿐”

미국 국립문서보관소가 보존하고 있는 정보량은 실로 방대하다. RG 472에 묶인 베트남전 자료의 양은 얼마나 될까. 군사정보 담당 아커비스트(Archivist·문서보관소 연구원) 클리포드 신더는 “3만8천 박스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차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의 공식문서들이 집중적으로 보존돼 있는 문서보관실 270호로 기자를 안내하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 방에만 14만4천 박스의 자료가 있다. 1940년 이후 자료부터 보관하고 있는데, 이런 규모의 방이 21개나 된다.” 최근에는 워싱턴 중심가 문서보관소에 있는 제1차대전 관련 자료들도 일부 이쪽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한다. “이곳으로 넘겨지면 대부분 영구보존된다. 그리고 큰 문제가 없으면 30년 만에 비밀해제를 시킨다. 72년 닉슨 정부 때 결정된 일이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의혹과 관련된 비밀보고서가 왜 지난 6월1일자로 비밀해제됐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그러나 베트남전 관련자료 3만8천 박스 중 아직도 1천 박스가 비밀해제되지 않은 상태로 별도의 보관실에 있다고 귀띔했다.

비밀문서들은 보통 세 가지로 분류된다. 컨피덴셜(Confidential), 시크릿(Secret), 탑 시크리트(Top Secret). 비밀해제되지 않은 1천 박스는 탑 시크리트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군사정보 담당 선임 아커비스트 리처드 보일렌(54)은 ‘탑 시크리트’의 대부분이 개인 신상정보나 중앙정보국(CIA)이 관리하는 정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범죄가 개인적인 사안일 경우 그가 생존해 있다면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시한은 무려 75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물론 꼭 정보공개가 필요할 경우엔 해당 개인의 주민등록번호(Social Security Number)만을 지우고 해제될 수도 있다.
리처드 보일렌은 베트남에서 군생활을 했다. 1969년 10월부터 1년간 주월미군사령부에서 군사기록을 보존하는 일을 했다. 제대 직후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인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자신이 취급했던 자료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캄보디아 침공에 대한 자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단 한마디 이외엔 입을 닫았다. 자신은 ‘아커비스트’일 뿐이지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우리는 한국인이 한국전이나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학살문제를 조사하든, 미군을 비판하든 신경 안 쓴다. 아커비스트의 역할은, 있는 기록을 최대한 찾아주는 것일 뿐이다.”

여권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는 세계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여권만 있다면 국적에 상관없이 ‘리서치 카드’를 발급받아 자유롭게 자료열람은 물론 문서공개 요구를 할 수 있다. 리처드 보일렌은 “제대로 조사연구를 하고 싶다면 이곳에 직접 와서 아커비스트들의 도움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검색(www.nara.gov)도 일부 가능하지만, 자료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과 관련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국군 자료가 따로 분류돼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참전했던 오스트레일리아나 타이 군대 자료와 함께 섞여 있는 것도 있고, 미군자료의 한 부분으로 포함돼 있기도 하다. 베트남전에 관한 자료박스 전체를 검토해야만 한국군에 관한 총체적인 자료수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한달 이상 상주하며 자료를 열람하는 세계 각국의 연구·조사자들이 부지기수인 것도 그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취재 당시 이곳에서는 10여명의 일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관한 미국쪽 문서들을 수집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파견한 조사자들이었다. 그들은 한쪽에서는 자료를 검토하고 한쪽에서는 필요한 자료를 복사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분야에 관한 자료를 완전히 ‘털’ 때까지 장기간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명의 한국인. 기자는 이곳에서 ‘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노교수를 우연히 만났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그는(한국 사학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이다), 몇달째 이 사건의 자료를 검토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직후 보도연맹 사람들을 우리 군경이 1만여명 이상 죽였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미국에 노근리 배상하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는 “억울한 사람들을 진혼해주는 것이 나의 평생 소원”이라면서 “기독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에 눈감는 것은 죄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비밀문서’라는 이름 아래 숨겨졌던 어두운 시대의 기록들. 뒤늦게나마 뒤틀린 역사를 규명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될지도 모를 그 기록들. 아직도 수많은 군사정보와 자료들이 이곳 메릴랜드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잠자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은 오늘도 그 자료의 바다를 뒤지며 진실의 조각을 찾아나서고 있다.


비밀해제, CIA가 걸림돌

미 국립문서보관서 비밀문서분류심의위원회 실행위원장 스티븐 가핑켈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거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보안심사국(Information Security Oversight Office)은 백악관 직속기관이다. 국방이나 안보와 관련된 정보의 공개와 해제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이 기구의 임무이며, 그 최종승인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정보심사국 국장 스티븐 가핑켈(55). 변호사 출신인 그는 80년 카터 행정부에 의해 임명된 이후 20년간 한번도 이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그는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비밀문서 해제여부를 실무적으로 결정하는 ‘비밀문서분류심의위원회’(ISCAP:Interagency Security Classification Appeals Panel)의 실행위원장이기도 하다. ‘비밀문서분류심의위원회’는 6개 기관의 고위관계자로 구성돼 있다. 국방부, 국무부, 법무부, CIA, 미 국립문서보관소, NCS(국가안보위). 1년에 한번 회의를 열어 비밀해제 시한이 됐거나 정보공개 요구에 부닥친 자료의 해제여부를 표결로 결정한다. 스티븐 가핑켈은 이 회의를 진행하는 당사자다.
“논란이 되는 것은 주로 CIA가 관리하는 문서들이다. 그 다음엔 국무부·국방부 순이다. 때문에 회의가 열리면 CIA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린다.” 98년엔 66년에 있었던 한 동맹국 비밀요원들과의 협력내용을 해제할 것인가를 놓고 불꽃튀는 논쟁이 벌어졌다. 투표 결과 찬성과 반대가 3 대 3으로 갈렸다고 한다. CIA는 이 문서가 공개될 경우 해당 정부와의 외교관계가 단절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반대쪽에선 20년 이상 지난 일인데 문제가 되겠느냐고 반박했다. 결국 모든 문서내용은 해제됐지만, 나라 이름은 지워진 상태로 공개됐다고 한다.
그는 가장 최근에 한국군 자료와 관련된 논쟁도 기억했다. “1970년대 초 미국 산업체 부품 수출이 한국 핵기술 개발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한 연구자가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결국 모든 자료가 공개됐다. 98년의 일이다.” 그에 따르면, 끈질기게 정보공개를 신청하는 자에게 ‘정보의 여신’은 미소를 보낸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데도 군부와 연방정부가 거부하면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 여기서 한번에 안 돼도 두번, 세번 도전하면 가능성이 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정보공개에 대한 문의를 이메일이나 편지로 보낼 경우 가능성 여부에 대한 답신은 꼭 보내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메릴랜드=글·사진 고경태 기자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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