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신한류, 관광은 드라마를 타고…

등록 2005-01-25 00:00 수정 2020-05-02 04:24

중화권 관광 트렌드 지휘해온 한국관광공사 한화준 팀장과 진종화 과장의 ‘드라마틱’한 여정

▣ 글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1997년 안재욱 주연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즈음 그 열기는 한반도에 곧장 전해지지 못했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트렌디 드라마가 보여준 특유의 인기가 본토에서 짧게 반짝일 뿐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시아의 스타가 한국에서 탄생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시아의 별이 우리의 가슴에’. 두 사람이 내민 명함에는 노란 별이 새겨져 있었다. 한국관광공사 상품개발팀 한화준(41) 팀장과 중국부 진종화(37) 과장. 두 사람은 한류 열풍이 솔솔 불기 시작한 즈음부터 지금까지 현장을 뛰며 중화권 관광 트렌드를 목도하고, 체감하고, 지휘해왔다.

안재욱 팬클럽과 함께 첫 상품

“1999~2000년 베이징에서 일하다 한국에 들어와보니 관광업계 사람들조차 한창 감이 떨어져 있었어요. 스타들에게 쏟아지는 인기를 미처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유도해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한화준 팀장은 먼저 안재욱 팬클럽에 접근했다. “마침 국내 팬들이 여름캠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연계해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8개국 팬들에게 여름캠프에 참여하는 상품을 팔자고 제안했습니다. 한류를 관광상품으로 이끈 첫 시도였는데, 500명이 참가했고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대만에서 한류가 들끓은 2001~2002년 대만 지사에서 근무했던 진종화 과장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만은 보통 ‘아시아 시장의 리트머스’라고도 합니다. 반응이 빠르고 뜨겁죠. 대만에서 인기를 모으면 중국이나 동남아도 승산이 있다는 겁니다. 대만은 케이블TV 채널이 100개도 넘기 때문에 시청률이 3%만 넘으면 대박이라고들 하지요. <겨울연가>가 3%대로 올라가고 있을 때 저 역시 인터넷을 통해 드라마를 봤어요. 용평스키장, 남이섬 등 한국의 아름다운 겨울 풍광을 보면서 ‘아~ 저건 장사 되겠다’ 했죠.” 진 과장은 즉시 촬영지를 소개하고 드라마에 쓰인 소품과 주인공들을 다룬 <겨울연가 여행안내서>를 준비했다. <겨울연가>가 종영될 무렵인 2002년 5월 발간된 <겨울연가 여행안내서>는 곧 단행본 베스트셀러로 훌쩍 뛰어올랐다. 한편으론 사진작가를 급구해 수백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찍어오게 했다. <겨울연가>와 연계한 한국 이미지 포스터를 제작해 뿌렸다. 한달 뒤인 2002년 6월엔 작가와 함께하는 <겨울연가> 촬영여행 상품을 시제품으로 내놓았다. ‘여름에 떠난 겨울여행’조차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1999년 중반 중국 언론매체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한류(韓流)는 다른 문화가 매섭게 파고든다는 뜻의 ‘한류’(寒流)의 동음이의어로 통용되며 쓰임이 굳어졌다. 한류를 연구하는 이들은 보통 2000년 중반 이후 한류 열풍을 신한류(新韓流)로 불러 종전의 한류와 구분하는데, 신한류란 국내에서 현지의 한류 열풍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하며 한 차원 더 높게 재가공해 관광·쇼핑·패션 등 연관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중국·동남아국가 현지에서 한국 스타를 흠모하고 한국 노래·드라마를 즐기는 것을 한류라고 한다면, 한국의 가수와 공연을 보거나 드라마 촬영지를 답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신한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 팀장과 진 과장은 ‘신한류’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셈이다.

“한류가 처음 거론될 때 국내의 많은 언론매체와 문화 관련 종사자들은 ‘별거 아니다’ ‘금방 그칠 거다’ ‘호들갑이다’라고 폄하했습니다. 문화패배주의적인 시각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겐 새로움이 전혀 새롭지 않은 거죠.” 한 팀장은 “경복궁이 자금성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복궁에 대해 아무리 새로운 해석을 해도 귓등으로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류를 거품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류 열풍이 주춤해질 무렵 일본에서 터진 <겨울연가> 열풍은 다시 한번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힘을 확인시켜주었다.

한류는 우연이 아니다

“90년대 들어 엘리트들이 영화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국내 시장 규모도 급팽창했으며, 이를 지원하는 펀드의 크기도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한류는 우연이 아니에요. 그렇게 될 만한 조건과 토대가 있었던 거예요.” 한 팀장은 “한류의 기획·생산·소비라는 커다란 그물 속에서 욘사마란 고기가 잡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욘사마’ 같은 대어가 곧이어 쉽사리 탄생하리라고는 내다보지 않는다. “관광공사는 사내에 ‘한류추진기획단’이란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2004년과 2005년 두 해를 ‘한류 확산의 해’로 삼고 있습니다. 한류 확산이란 몇몇의 스타들에 집중하는 마케팅이 아니라 전통문화를 비롯해 패션·공연·요리 등 한국의 다양한 모습들을 이해시키는 것이죠. 올해가 분수령이 될 겁니다.” 진종화 과장은 이런 맥락에서 궁중문화·복식·의상·한방 등의 요소가 골고루 어우러진 <대장금>을 그 교두보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대만TV에 수출된 <대장금>은 한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시청률 1위(5.31%)를 기록했습니다. 지금도 재방송을 거듭하고 있고요. 일본 에서도 일주일에 한번씩 방영되고 있는데, 대만에 비해 진도는 느리지만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어요.” 이같은 인기를 발판으로 진 과장은 지난해부터 ‘대장금 투어 코스’를 짰다. <대장금> 드라마 세트장을 경유해 화성행궁을 탐방하고 정조가 활을 쏘았던 연무대에서 국궁을 체험한 뒤 금산에서 인삼 쇼핑을 하는 코스다. 이를 위해 문화방송쪽에 드라마 세트장을 테마파크로 만들어 관광객에게 공개하도록 권유했다. 대장금 앞치마를 만들어 외국 관광객에게 무료로 선물하고 많은 관광객을 부른 여행사에는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결국 세트장에서 소품들을 촬영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하던 문화방송도 손을 들었다.

올해 장소 섭외·알선 사업 진행

관광공사는 올해 ‘필름 커미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필름 커미션 사업이란 ‘장소 섭외·알선’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각 지방자치단체에 의뢰해 ‘장소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영화·드라마·뮤직비디오를 촬영하거나 이벤트를 열 만한 적당한 장소 목록을 만들고 이를 국내외 프로덕션과 연결해주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제작업체로부터 장소 이용 대금을 받는 한편, 비 내리는 장면에선 소방대를 빌려주고 도로 교통도 막아주는 등 행정적 지원을 펼치도록 한다. 또 지자체는 후에 관광과 연계하도록 홍보하는 저작권도 갖게 된다. 관광공사는 이와 함께 대형 기획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소속 배우·가수들을 해외 관광 홍보 포스터·영상물 제작에 투입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한 팀장은 “앞으로 적어도 5~6년 동안은 한류의 완급을 어떻게 조절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한국 관광의 성패가 달렸다”고 말한다. “한류가 나오기 전까지 중화권 관광상품은 고궁 돌고 이태원 찍는, 10년 전과 똑같은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전환점에 선 것입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