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사건’ 불씨로 ‘이긍희 연임 불가’ 반란 일으킨 MBC 일선기자들… 3월 신임 선출에 논란 가열
▣ 손원제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wonje@hani.co.kr
나비효과인가? 이상호 기자의 ‘양심고백’으로부터 출발한 ‘구치백’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1월13일 이 기자를 포함한 관련 기자 셋의 중징계가 확정되고, 이긍희 문화방송 사장의 사과문이 <뉴스데스크> 전파를 탔지만, 그 파장이 거기서 그칠 것이라곤 아무도 믿지 않는다. 문화방송 안팎에선 이번 파문이 올 3월 초 문화방송 주주총회를 휩쓰는 지진해일로 증폭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노조 단식과 기자 성명서의 본질
이런 관측은 무엇보다 이번 주총이 새 사장을 선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긍희 사장의 연임이냐,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이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분기점을 앞두고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문화방송 사쪽이 징계와 사상 첫 사장 사과문 발표 등의 수순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처리한 데는 사태의 중대성과 함께 이번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한 상황에서 주총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는 현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문화방송의 전반적 침체가 가시화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사장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돼온 가운데, 이번 파문을 리더십 교체를 통한 문화방송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또한 광범위한 내부 반향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문화방송 차기 권력구도의 향방을 가르는 연쇄 폭발의 첫 일격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긍희 책임론’의 중심엔 노조가 서 있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노조(위원장 최승호)는 13일 오후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이긍희 사장에게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연임 포기’를 선언하라고 요청했다. 노조는 “이번 사태는 문화방송이 직면해온 여러 위기 상황 중 하나가 불거진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연임 포기’를 조기에 밝히고, 남은 기간 위기 극복에 전념해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최승호 노조위원장은 앞서 지난 10일 참회 단식에 들어가며 “시청자에 대한 사죄와 내부 자성의 촉구,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노사협의회의 ‘연임 포기’ 요청은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 의사를 한번 더 분명하게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긍희 사장은 “지금 상황에서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는 것은 문화방송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를 물리친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 관계자는 “이 사장이 연임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보도국 기자들도 지난 10일 ‘1990년 이후 입사한 문화방송 기자 34명 일동’ 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최고경영자인 사장은 회사가 처한 미증유의 위기에 대해 근본적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사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문화방송 안에선 사실상 사장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사장과 함께 구본홍 보도본부장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겨눴다. 성명서는 “보도 부문 기자 출신으로 사장과 동반 책임을 져야 할 임원들에 대해서는 더욱 추상 같은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며 “그들이 군사정권 당시 일선 기자로, 또 중견 데스크로 보여준 행태에 대해서는 분명한 역사적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구본홍 본부장 역시 유력한 차기 사장 후보의 한명으로 거론돼온 터여서, 이들의 성명은 한꺼번에 두명의 사장 후보에 대해 ‘부적격’ 평가를 내린 것이라는 해석을 불렀다.
작년 말부터 회의론 고개 들어
문화방송 노조와 일선 기자들은 이번 사태에 앞서서도 이미 이긍희 사장과 구본홍 보도본부장과 날카롭게 각을 세워온 상태였다. 노조는 ‘시청률 하락’과 ‘보도 보수화’, <pd>의 ‘송두율 교수’ 보도를 둘러싼 사장과 제작진의 갈등 같은 문화방송의 총체적 위기 상황의 근원엔 이 사장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구 본부장 또한 지난해 말 문화방송 내부를 달궜던 뉴스 보수화 논란을 통해 뉴스 경쟁력 약화의 핵심 책임자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 기자는 “이 사장과 구 본부장 모두 과거 군사정권 때부터 요직을 차지해온 사람들”이라며 “그동안 진보와 개혁성이 문화방송 경쟁력의 근간을 이뤘는데, 이들이 인사권을 통해 그 싹을 잘라버린 데서 문화방송의 위기가 비롯됐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노조는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문화방송의 위기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리더십의 방식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해나갈 계획이다. 최승호 노조위원장은 “곧 설문조사를 통해 현 경영진에 대한 평가와 새로운 경영진에 요구되는 자질과 덕목, 걸러내야 할 인물의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제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기자는 새 경영진의 자격조건과 관련해 “더 이상 군사정권의 전력이 문제되지 않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현 위기를 헤쳐갈 강력한 지도력과 개혁성을 담보한 인물이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과 구 본부장이 노조와 소장 기자들의 책임론에 부닥친 가운데, 자천타천의 다른 사장 후보들을 둘러싼 손익계산과 이런저런 분석들도 확산되고 있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문화방송 내부에선 ‘9룡’이니 ‘5룡’이니 하는 새 사장 후보군과 관련한 관측들이 제기돼온 터였다. 처음 이 사장과 구 본부장을 비롯해 본사 임원진과 지역 문화방송 사장급을 망라해 거론되던 후보군은 최근 들어 점차 5명 수준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여러 내부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이 사장과 구 본부장에 더해 엄기영 특임이사와 김택곤 광주 문화방송 사장, 고진 전 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일부에선 노조와 소장 기자들의 움직임으로 이 사장과 구 본부장의 입지가 좁아진 만큼, 다른 인사들의 걸음이 빨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소문 수준의 하마평인데다, 거론되는 인물들이 모두 문화방송 출신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한 중견 기자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지금 얘기되는 후보군들 모두 현재의 위기를 타개해나갈 만한 지도력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도 “특출하게 문화방송적 리더십을 구축한 적이 없는 구시대적 인물들도 포함됐고, 나머지 인물들도 때가 덜 묻었을 뿐, 딱히 내부 지지를 모을 만한 인물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재 풀을 문화방송 내부만이 아닌 외부로까지 넓혀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한쪽에서 일고 있다.
5인 후보 논쟁… “새로운 리더십 필요"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2년 전 이긍희·엄기영·고진씨와 장명호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처장 등 문화방송 출신 4명의 후보를 두고 두번의 투표 끝에 이 사장을 선출한 바 있다. 당시 이 사장의 선출을 두고 “방문진의 보수 쿠데타”라는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개혁성보다 내부 인물에 방점을 둔 문화방송 당시 노조의 전략적 오류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 간부급 기자는 “당시 방문진 이사회는 개혁 성향 5 대 보수 성향 4로 개혁 성향이 우세했다”며 “개혁 대 반개혁 구도가 선명하지 못한 탓에 내부 인물경쟁으로 가다 보니 개혁 성향 이사들의 표가 갈려 이 사장이 ‘어부지리’로 뽑혔던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방송 사장은 주식의 70%를 지닌 최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가 선출 권한을 갖고 있으며, 9명의 이사 가운데 과반수를 얻어야 한다. 임기는 3년이며, 이긍희 현 사장은 2003년 초 재임 1년 만에 중도 사퇴한 김중배 당시 사장의 후임으로 뽑혀 잔여 임기를 맡았다.</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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