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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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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의 충동, 빈곤우울증!

등록 2005-01-06 00:00 수정 2020-05-03 04:23

만성적 빈곤에 무기력감 빠져들다 자포자기… ‘현실감 제로’의 상태에서 죽은 아들을 장롱속에 넣기도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그는 고개를 숙였다. 평소 몸이 아프던 네살배기 아들은 몇달째 밥을 잘 먹지 못했다. 특히 숨지기 직전 일주일 동안은 거의 밥알을 씹어넘길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켜보기만 했다.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 아들이 죽자 아내는 주검을 이불에 싸서 장롱에 넣었다. 역시 그는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무력감에 아들이 죽었다.


이런 실험이 있다.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우리에 쥐를 가둬놓고 1분마다 전기자극을 가한다. 쥐는 통증을 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1분에 한번씩 가차 없이 통증이 계속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쥐는 더 이상 자극을 피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실제로 쥐의 신경계가 통증에 무감각해지도록 변했다는 것이다. 쥐의 신경계는 고통에 대해 더 이상 경보 신호를 울리지 않는다. 쥐가 통증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 순간 쥐에겐 진정한 무력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극심한 경기 불황 속에서 빈곤이 ‘내상화’하고 있다. 매분마다 전기자극이 반복되듯, 불황은 빈곤의 한계선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해일처럼 덮쳐온다. 출구 없는 쥐가 탈출의 노력을 포기하듯, 가난한 사람들은 체념의 수렁에 빠진다.

“내 짐이 무거워 어찌할 바 몰랐다"

사건은 이렇다. 12월18일 대구시 한 월셋방 장롱에서 빼빼 마른 네살배기 어린이가 숨져 있는 것을 이웃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부검 결과 아이는 또래 체중의 3분의 1인 5kg으로 기아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의 여동생(2) 또한 심한 탈수 증세와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아이의 아버지 김아무개(38)씨는 아이가 아픈데도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죽은 뒤 장롱에 넣어둔 이유에 대해 “내가 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 어찌할 바 몰랐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판단 정지’ ‘현실감 제로’의 상태가 되는 이유를 ‘완벽한 무력감’으로 설명한다. 신영철 박사(강북삼성병원 정신과)는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면 시야가 좁아지고 융통성이 떨어지게 된다. 자신에게 생각나는 유일한 방법, 그것도 보통 사람에겐 아주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마치 해당 사건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신 박사는 ‘분리’(Detach)라는 일종의 방어 기제인데 무관심을 통해 죄책감이나 공포, 불안을 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이가 죽은 다음날 아버지는 평소처럼 일감을 찾아 용역회사로 출근했다가 저녁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귀가해보니 아내가 숨진 아이를 이미 이불로 싸서 장롱에 ‘안치’한 상태였다. 김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집에서 잠을 잤고, 이튿날 인근 성당 교인이 쌀과 김치를 가지고 방문해 아이의 안부를 묻자 선선히 장롱 속 아이를 보여주며 “이미 죽었다”고 밝혔다.

김씨가 처음부터 이처럼 무력했던 것은 아니다. 숨진 아이를 3년 넘게 진찰했던 소아과 의사 김호씨는 “처음엔 부부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왔었다. 결코 부유한 차림새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화목해 보였고 뒤늦게 결혼사진을 찍은 기념으로 떡을 했다며 병원에 갖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4년 동안 속해 있던 용역회사의 차아무개 소장도 김씨에 대해 “착하고 성실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상 신호’가 주변 사람들의 눈에도 포착됐던 듯하다. 차 소장은 “예전엔 한달에 26~27일까지 일할 정도로 악착같았는데 1년여 전부터 인력시장에도 늦게 나오고 게을러졌다. 2달 전엔 아이가 아프다기에 그러면 더 열심히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꾸짖기도 했다. 12월엔 보름 정도밖엔 일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김호 원장도 “지난해부터 부인의 뺨에 멍 자국이 자주 눈에 띄었고, 올해 초엔 형편이 어렵다며 큰딸(7)을 사회복지시설로 보내기로 했다고 전해와 가정 상황이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직감했다”고 덧붙였다.

불화의 부피가 불어나는 것과는 반비례로 가난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최근 5년 동안 김씨네 가족은 한 동네에서만 세 차례 이사를 다녔다. 전세 1천만원 → 보증금 350만원·사글세 300만원(1년) → 보증금 100만원·사글세 250만원(1년)으로 형편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여기에 두 아이가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찰랑거리는 불행의 잔이 흘러넘치기 직전, 마지막 한 방울이 되었던 듯하다.

가난의 무게가 점점 쌓여가면서…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빈곤이 끼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 이같이 설명한다. “정신과에서는 객관적인 스트레스 요인을 단계별로 정해놓은 것이 있다. 개인이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든 만성적 빈곤은 매우 극심한 수준의 스트레스 단계에 속한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늘 압박을 받게 되면 신경이 무뎌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선 ‘비상 경보’를 울릴 수 없게 된다.” 그는 이런 정신적 손상을 신체가 마비된 환자들에게 빗대어 말했다.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들은 못에 찔리거나 뜨거운 게 닿아도 통증을 느낄 수 없다. 아프지 않으니 그대로 상처를 내버려두기 때문에 패혈증이나 욕창 등이 심해져 결국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만성적 빈곤으로 무기력감에 빠져들면 이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보다는 물결에 떠내려가는 듯한 자포자기 심정이 돼버린다. 자신을 비롯해 가족의 고통에도 둔감해지는 것이다.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이 최근 상담했던 한 가정도 그런 사례다. 호텔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던 40대 초반의 가장 김아무개씨는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잘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습지 교사를 하던 부인이 승진을 위해 신용카드로 구매했던 교재 2천만원어치가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왔다. 카드 몇장으로 돌려막기를 하며 몸부림쳤지만 빚은 빚을 굴렸다. 실직한 남편은 처음 몇달 동안은 발품을 팔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이내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됐다. 무능한 가장을 탓하는 가족들과는 말문을 닫은 채 강아지만 껴안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류 소장은 “남편에겐 아내보다 세상과 접촉하는 유일한 끈인 강아지가 더 걱정스러운 존재였다”고 말한다. 아내가 점심을 굶어도 무심한 남편은 강아지만은 꼭 끼니를 챙겨줬다. “집안 가구 전체에 압류 딱지가 붙었는데도 꼼짝 안 하던 남편은 법원 집행관들이 강아지 귀에 압류 종이를 스테이플러로 박자 불같이 날뛰었어요. 생명을 이렇게 험하게 다뤄도 되냐면서.”

등교 안하는 아이, 방치하는 아버지

류 소장은 ‘빈곤우울증’에는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처음엔 발버둥치는 단계입니다. 일자리를 찾거나 새로운 일을 구상하면서 바쁘게 보내죠. 하지만 원하던 성과를 내지 못하면 더 이상 남에게 상처받는 것이 겁나는 단계에 이릅니다. 남에게 소외되기 싫으니까 스스로 소외를 시키는 거죠. 점점 사회의 관계망에서 고립되면 우울증이라는 자기만의 방에 갇히는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빈곤이 대물림되는 것처럼 우울이 대물림되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의 재개발 동네에 사는 형태(16·가명)는 3개월 전부터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2살 때 어머니와 사별한 뒤 함께 살던 할머니조차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이래 형태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다. “그냥 학교에 가기 싫어 등교를 하지 않게 된” 형태는 가끔 복지관에 가서 인터넷을 하는 이외엔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해 한달에 100만원 정도를 버는 아버지는 형태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아들이 집에서 하루 종일 지내면 전화 통화를 많이 할까 염려되어 전화도 놓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없는 형태는 학교에 나가지 않아도 선생님들조차 연락하지 않는다. 송파종합사회복지관의 이윤주 상담원은 “어릴 적부터 무관심과 무력감이 몸에 배어 그런지 형태는 어디서나 방관자처럼 행동한다. 가끔 어떤 일에 흥미를 잠깐씩 보이기는 하나 관심은 절대 갖지 않는다. 학교를 비롯해 사회적인 관계 속에 자기는 동떨어진 사람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복지관에 등록된 극빈층 아동·청소년들은 복지관에서 어느 정도 보살핌을 줄 수 있지만 형태처럼 아버지가 근로 능력이 있는 가정의 아이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마련”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발버둥치느니 노숙자 쉼터에서"

빈곤으로 인한 무기력감은 노숙인이 되어가는 심리적 과정에서 극대화된다. 노숙자쉼터에서 정신 상담·치료 활동을 하는 정신과 의사 김현수(사는기쁨 원장)씨는 이를 “관습적인 삶의 포기”라고 명명했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관습·규범을 따라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절대적 한계 상황에 이르면 범죄·노숙·유기 같은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어차피 이 사회에서 내가 발버둥쳐봐야 관습이나 규범 안에선 행복할 수 없으니 내게 편한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삶’에 눈뜨고 난 뒤 노숙자들은 예전의 기억을 스스로 말소하기도 한다. 부정·회피가 계속되다 보면 과거의 일부가 저절로 잊혀지기도 하는 것이다. 김현수씨는 “때로 노숙자들이 자활후견기관 등을 통해 일자리를 얻더라도 이내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꼭 돈이나 물질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계층상향 이동이 절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선 치유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무조건 돈 벌어야 하고 땅 사둬야 하고 서울대 가야 한다고 부르짖는데, 이런 절대적 기준들을 절대로 채울 수 없는 빈곤층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단지 취업시키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는 “빈곤층에게 필요한 것은 빵뿐만이 아니다. 영혼의 빵, 장미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말 굶어죽었을까

‘장롱 속 아이’ 장에서 음식물 일부 발견… 부모 책임 놓고 근육마비 가능성 등 계속 수사



부검 결과 김씨의 아이가 죽은 이유는 ‘장기간 굶어서 죽은 기아사’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담당한 대구 동부경찰서 형사계 김태종 반장은 결론은 굶어서 죽은 것이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했다. (1) 먹을 것이 아예 없어 못 먹었거나 (2) 부모가 음식을 주지 않았거나 (3) 아이가 몸이 아파 음식을 소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쌀이 한톨도 없어 아이가 굶어죽었다는 것은 사건 발생 초반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아이를 발견한 이웃 주민이 냉장고를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고, 어머니는 정신지체장애인 3급이며, 건설 일용직인 아버지는 일감이 없어 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아버지는 매달 100만원가량은 꾸준히 벌었고, 어머니 또한 장애인 등급을 받지 않았으며, 냉장고에는 우유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모가 아픈 아이를 방치하고 음식을 주지 않았을 가능성은 어떨까. 아이의 부모는 최근 3개월 동안 사이가 매우 안 좋아져 ‘별거 아닌 별거’ 중이었다고 한다. 남편이 저녁에 귀가하면 아내는 집을 나섰다가 남편이 출근한 아침 무렵에야 들어오는 식이었다. 부모가 서로 냉담한 와중에 아픈 동생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큰딸(7)의 몫이었다고 한다. 큰딸은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아침에 밥을 해놓고 가면 내가 동생들에게 밥을 떠먹였다”라고 말했다. 김태종 반장은 “부검 결과 아이의 장에서 약간의 음식물이 발견됨으로써 음식을 의도적으로 끊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아이가 몸이 아파 음식을 받아먹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 남는다. 숨진 아이를 100여 차례 진찰했던 소아과 의사 김호씨는 “큰딸을 제외한 둘째·셋째 아이 모두 ‘늘어지는 영아증후군’ 또는 ‘선천성 척수성 근육위축증’으로 판단돼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으라고 세 차례 소견서를 써줬다.” 그러나 100만원가량 드는 검사비가 부담스러웠던 탓이지 부모는 정밀 진단을 받지 않았다. 초기엔 아이를 열심히 병원에 데리고 갔던 어머니도 점차 발길이 뜸해졌다. 게다가 아이를 무료로 돌봐주던 김호씨가 지난 7월 다른 지역으로 병원을 옮기자 부모는 더 이상 다른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다. 의사의 진찰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아이의 증세가 더욱 심각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김호씨는 “밥을 떠먹였더라도 소화기관의 근육이 마비됐다면 밥을 넘길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 병은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주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아이의 죽음에 부모가 법적으로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밝히기 위해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동부경찰서 석명기 형사과장은 “동정론이 일고 있지만 부모의 무책임도 있기 때문에 조직세포검사 등 면밀한 조사를 거쳐 사건을 종결짓겠다”라고 말했다.




‘동네’ 때문에 우울해진다?

동네 무질서·공공서비스 부족이 정신건강에 영향… 환경 개선·이웃과의 교류 나서야




성인 10명 중 1명은 일생 동안 한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높은 발병률만큼 원인도 다양하다. 개인의 유전적 요인 이외에 배우자와의 이혼, 가까운 이의 사별, 급작스런 실직 등 상황이 만들어내는 우울증의 비율도 높다. 이 가운데 최근 ‘동네’도 우울증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가 나와 눈길을 끈다.
대전대 곽현근(행정학부)·노병일(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전의 중산층 동네 10곳과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이 20% 이상 되는 가난한 동네 6곳을 골라 794명의 주민을 설문 조사한 결과 “지역사회의 빈곤이 우울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성별, 동일한 소득일지라도 어떤 동네에 사느냐가 정신건강과 관련 있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실증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가난한 동네에서 사는 것이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우선 가난한 동네일수록 무질서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른바 ‘깨진 창문’ 이론인데 깨진 창문, 길가에 버려진 고장난 자동차, 이웃끼리의 싸움, 길거리에서의 음주 등은 동네의 무질서도를 높인다. 소음·기물 파괴·범죄·쓰레기·싸움 등에 자주 노출되면서 주민들은 자신들이 일상 생활을 통제하는 데 무력하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또 빈곤한 동네는 공공서비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존중감·효능감을 약화한다. 반대로 이웃과의 교류·자치 조직에의 참여 등은 우울증을 약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연구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빈곤한 동네에서 사는 것 여부가 이웃과의 유대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네가 무질서하다고 인식할 경우 동네조직의 참여나 이웃과의 교류를 꺼린다는 것이다. 이웃과의 사회적 유대를 꺼리게 되면 자기 고립감이 심해지고, 자기가 사는 열악한 동네를 개선해보겠다는 의지도 꺾이게 된다.
노병일 교수는 “뉴욕에서는 정책 결정자들이 동네 수준에서 빈곤에 따른 무력감을 치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범죄 예방 등에 효과를 봤다”며 “담벼락 낙서를 지우고 깨진 유리창을 고쳐나가는 등의 방식으로 동네 환경을 개선하는 작은 노력도 우울증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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