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네오콘의 북핵 견제구를 피하라

등록 2004-11-18 00:00 수정 2020-05-03 04:23

미 신보수주의자들의 대북 강경책 공세에 “6자회담 통한 평화해결" 깃발 든 한국정부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한국 정부와 미국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자 네오콘들이 ‘북핵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한판 결전을 앞둔 사람들처럼 슬슬 몸을 풀고 있는 느낌이다.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 목소리를 간간이 내며 한국의 반응을 살피는 견제구를 날리고 있는 모양새다.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 성향의 관료들이나 이론가들은 더러는 익명으로, 더러는 아예 드러내놓고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속내를 밝히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6자회담이 더 이상 진전 없으면 더 강력한 압박 수단을 써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모아진다. 은 11월8일치에서 “미국 내 강경파들은 다음 6자회담에서 구체적인 소득이 없거나 또는 다음 6자회담이 아예 열리지 않을 경우에 취할 경제 제재 등 좀더 강압적 수단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광고

네오콘의 ‘레드라인’ 언급 위험해

워싱턴의 대표적인 네오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 내에 6자회담에 대한 평가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면서 6자회담 실패를 기정사실화한 뒤 “6자회담 참가국이 모두 모여 다음 절차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병력을 보내 군사적 행동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미국은 해군과 공군에 충분한 최첨단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해 군사행동 가능성까지 은근히 내비쳤다. 그의 발언 가운데 압권은 한국 정부, 그것도 청와대를 겨냥한 비아냥이다.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부시의 재선을 ‘비상상태’로 봤다고 하더라. 나도 구체적으로 청와대의 누가 부시의 당선을 원하지 않았는지 다 알고 있다.” 청와대와 NSC에 대한 불만을 원색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한국의 외교통상부 산하 국제교류재단에서 지난 5년간 16만5천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바 있는 최대 수혜자이다. 그는 얼마 전 펴낸 논문에서도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노골적으로 제시해 눈길을 모은 바 있다. 에버스타트는 워싱턴 내 매파들의 견해를 농축해서 대변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따라서 그의 발언을 소홀히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또 이 시점에서 주목할 대목은 워싱턴의 매파들이 ‘한계선’(레드라인)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본 11월9일치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이 핵물질을 제3자에게 이전하는 데 손을 대는 단계를 레드라인으로 정하고, 이 선을 넘으면 즉각 엄격히 대처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 보도했다. 이 신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정부 관계자의 발언은 에버스타트 연구원과 일치된 견해를 보여 네오콘들의 조직적인 준동을 느끼게 한다. 이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북한에 충분한 군사적 압력을 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라크에 투입된 것은 육군”이라면서 “북한에는 해군과 공군이 주로 대처할 것이기 때문에 이라크가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역시 군사행동을 배제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강조했다.

광고

노 대통령 “대화 이외에 방도 없다"

레드라인 관련 기사는 한국 정부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한-미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레드라인 발언은 자제해왔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포기한 것으로 비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우성 청와대 외교보좌관은 “한계선(레드라인)을 내세우면 북한이 그 한계선 직전까지 행동을 하게 돼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내 매파들의 레드라인 설정 움직임에 분명한 반대의 뜻을 밝힌 셈이다. 전문가들도 레드라인 설정은 곧 선전포고와 다름없기 때문에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기조와는 크게 어긋난다는 견해들을 밝히고 있다. 부시 행정부 내 온건파들도 레드라인이 오히려 북한의 도발을 유도해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탓에 공개적인 언급을 피해왔다.

광고

미국 네오콘들의 강경 발언에 자극받은 탓인지 한국 정부의 대응 움직임도 속도감이 느껴진다. 11월13일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국제문제협의회(WAC) 오찬에서 워싱턴을 겨냥해 던진 메시지는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집권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미리 쐐기를 박겠다는 자세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잿더미 위에서 오늘의 한국을 이룩한 우리에게 또다시 전쟁의 위험을 감수하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 “이 때문에 무력 행사는 협상전략으로서의 유용성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봉쇄정책도 결코 바람직한 해결방법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11월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다소 파격적으로 비친다. 더구나 워싱턴 매파들로서는 다소 당혹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북핵 해법과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이빨 빠진 호랑이’로 간주하는 미국의 네오콘들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집단사고’를 갖고 있다. 이런 터에 나온 노 대통령의 메시지는 긴장을 자아낼 만하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역시 체제 위협에 직면했을 때 북한이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국민들에게는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대화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오는 11월20일 미 대선 뒤 조지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 정상간 격돌은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대북 정책에 대한 한-미의 견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노 대통령이 “(북한은) 안전이 보장되고 개혁과 개방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며 “결국 북핵 문제는 북한에 안전을 보장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지금의 곤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냐, 아니냐의 결단에 달려 있다”고 밝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접근법은 큰 틀에서 부시 행정부에 클린턴 시절의 대북 정책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김대중 전 정부의 설득에 의해 이라크와 같은 강제적 정권 교체를 전제로 하지 않고, 북한 지도부가 스스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게끔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결국 클린턴 전 행정부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견인하는 연착륙 정책이 한반도 전쟁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북한의 핵개발 포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간주한 셈이다.

11월20일 한-미 정상회담 분수령

그렇다면 과연 부시 행정부는 이런 보상적 접근법을 수용할까. 물론 노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은 과거 클린턴식 접근법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특히 6자회담이 북한의 핵 포기를 이루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국제적 지원과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을 제공하는 유용한 틀임을 지적한 대목이 그렇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특히 네오콘들은 6자회담을 북한 고립과 압박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비중을 두어왔다. 반면 노 대통령은 사실상 북한 개혁·개방 지원의 유용한 틀로 6자회담을 활용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던진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제안에 대해 오는 11월20일 부시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따라 북핵 문제는 새로운 분수령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