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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메트릭스로 보호하라

등록 2004-10-29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 각종 상황에 대비한 과학적인 재난관리 시스템 가동…테러의 상처 딛고 올라가는 유리건물들</font>

▣ 뉴욕=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10월13일 뉴욕 맨해튼. 이 파워 넘치는 메트로폴리탄의 지하철 선로에 돌아다니는 새끼 쥐를 멍하니 바라보다, 마침내 내린 역의 이름은 아직도 세계무역센터였다. 지하철은 곧바로 광활한 폐허와 이어져 있었다. 기초적인 공사가 시작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그라운드 제로는 아직도 ‘제로’의 허전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시민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폐허 한켠에 반부시 구호가 적힌 피켓을 세워놓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지나가는 다른 젊은이가 그를 향해 욕하는 풍경. 이것은 지금 그라운드 제로가 껴안고 있는 상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시 환경을 고려하는 강화유리

뉴욕시는 2003년 공모를 통해 건축가 대니얼 리베스킨드의 프리덤 타워 설계안을 선정하고 지난 7월4일 독립기념일에 기공식을 가졌다.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우뚝 설 예정인 프리덤 타워는 수많은 논란 끝에 지금은 리베스킨드의 손을 떠나 SOM이라는 설계회사에 맡겨져 있다. 세계무역센터를 장기 임대한 개발업자가 시의 계획을 무시하고 회사를 바꿨기 때문이다. 어쨌든, 리베스킨드의 머리에서 시작된 기본적인 설계안은 최첨단 과학과 건축기술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독립한 1776년을 기념해 세계 최고의 높이인 1776피트(약 533m)로 짓는다는 계획은 테러의 상처를 덮어야 한다는 미국의 강박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최첨단 강화유리로 된 투명한 몸체는 자유의 여신상을 연상시키도록 뒤틀린 형태로 만들어진다. 3월14일치 는 이 건물이 테러를 포함한 각종 재해에 대비해 설계되고 있다고 전했다. 건물 중심부에 독특한 케이블 구조를 만들어 어느 한 부분이 파괴돼도 다른 부분이 케이블에 매달려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든지, 항공기가 부딪치면 케이블 때문에 조각나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든지 하는 계획은 엔지니어들이 얼마나 9·11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 보여준다.

프리덤 타워는 테러와 건축이 부딪치는 단적인 예다. 세계무역센터의 거대한 몸체가 주저앉아버린 사태는 건축 자체를 긴장시키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지난 6월 세계무역센터 조사팀의 권고를 받아들여 건물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기존 방화시설 강화, 엘리베이터 환기시설 설치 등 구체적인 고층건물의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회사 KPF 뉴욕 본부에 있는 건축가 이진석(34)씨는 “테러 이후 사람들이 메트로폴리탄의 고층건물에서 일하거나 살기를 거부한다”고 지적했다. 9·11 뒤 맨해튼의 고층건물 프로젝트들은 상당수 취소되거나 보류됐다. KPF 창립자 진 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몇년 동안 고층빌딩은 미국이나 유럽쪽에 건설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든 반성이든 고층건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맨해튼의 건물들은 히틀러의 참호처럼 지어지고 있을까.

도시의 상처를 지워내는 작업

대답은 ‘노’다. 뉴욕은 커튼월(curtain wall) 공법으로 만든 화려한 유리건물들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커튼월이란 건물의 외벽을 커튼처럼 유리로 두르는 공법을 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강화유리를 사용한 커튼월 공법이 외부의 폭발 충격을 막아주고 유리 파편을 만들지 않는 안전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공법은 1947년 유엔본부 건물을 지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놀라운 경지에 도달해 있다.


맨해튼 42가와 43가 사이에 지어지고 있는 타임스 스퀘어 빌딩은 아직 골격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최첨단 유리건물을 예고하고 있다. 세라믹 재질과 결합된 강화유리는 낮에는 파란색, 저녁 노을이 지면 붉은색으로 하늘의 상태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안전성, 냉난방 등의 효율성과 함께 건물 색과 하늘 색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올해 맨해튼 중심부 ‘컬럼버스 서클’ 주변에 완공된 타임워너 빌딩은 반사가 거의 없는, 매우 투명하고 비싼 강화유리를 사용했다. 실제로 건물 안에 들어서면 건물 안과 밖의 풍경이 혼동될 정도다. 이들은 모두 기둥을 보강하는 등 9·11 뒤 안전성을 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유리건물은 돌건물처럼 육중하고 위압적이지 않다. 이들은 건물 안에서 도시의 스펙터클을 선사할 뿐 아니라 도시의 환경과 조화를 꾀한다. 컬럼비아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정현태(35)씨는 테러 이후 늘어가는 유리건물에 대해 독특한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세계무역센터 사건은 뉴욕에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프리덤 타워를 보라. 사람들이 죽은 그 자리에 상업적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공사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고 사건 자체를 스펙터클하게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도시는 상처를 지워내고 계속 성장한다. 뉴욕은 원폭 공포에 시달리던 1950년대처럼 건물 지하에 벙커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정씨의 말에 따르면 지금 번성하고 있는 유리건물들은 자본주의의 자기증식을 보여준다.


9·11 이후 뉴욕시는 건축보다는 효율적인 방재 시스템과 통제에 주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 10월18일 브루클린의 거대한 창고 같은 건물에 있는 뉴욕시 재난관리국(OEM·Office of Emergency Management)을 찾았다. OEM은 1996년 시장실 부속의 작은 기구로 출발했으나 테러 이후 독립적인 부서로 자리잡았다. OEM의 옛 사무실은 세계무역센터 바로 옆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7번 건물에 있었다. 9·11이 터진 뒤 사무실에서 대피하여 응급대책기구를 꾸린 OEM은 그야말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피해자의 가족들, 각 부서와 자원봉사자들이 어찌할 줄 모르며 OEM을 찾았다. OEM은 이 모든 상황을 주관하며 주검 처리까지 담당해야 했다. OEM의 미디어담당 제러드 번스타인은 당시를 “모든 것이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회상했다.

부서간의 조정과 협력이 가장 중요

건물 1층에 들어서면 비상시 작동되는 지휘본부를 볼 수 있다. 테러 같은 재해가 일어날 경우 소방국, 보건국, 교통국, 경찰청 등 수백개의 조직에서 전문가가 파견되어 단일한 지휘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지금은 비어 있는 지휘본부에는 수백대의 컴퓨터 위에 그 자리에 앉을 각 조직의 이름이 쓰여 있다. 지휘본부 옆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십대의 모니터를 볼 수 있다. 이 모니터룸은 매일 24시간 가동되며 뉴욕시의 항만, 주요 도로, 지하철 등을 수시로 감시하고, 이상징후를 보고한다. 번스타인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뉴욕시 한인을 위해 한글로 쓰인 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테러를 포함한 각종 재난에 대한 시민들의 대처법이 상세히 나와 있다. 심지어 애완동물을 대피시킬 때 어떤 도구를 갖춰야 하는지까지 가르쳐준다.
뉴욕시가 9·11을 통해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은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각 부서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과학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9·11 당시 소방국과 경찰청 등 많은 부서들이 급하게 손발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5월14일 시전역사고관리시스템(CIMS)을 완성했다고 발표했다. CIMS는 재난에 대처하는 모든 조직의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사고 뒤 조사과정까지 정해진 매트릭스에 따라 진행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CIMS는 효율적인 사고관리를 위해 모든 상황에 대비한 훈련 프로그램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OEM은 CIMS에 따라 다양한 부서, 단체, 기업들의 조정과 소통을 맡고 있는 조직이다.


CIMS는 우선 사고 발생시 각 조직의 임무를 명확히 규정한다. 예를 들면 소방국은 화재진압, 환자 처치와 후송, 피해자 구출 등을 담당하고 경찰청은 범죄 조사, 증거 보존, 현장 통제와 보완, 교통 통제 등을 담당한다. 또한 사고 유형에 따라 통합적인 지휘권을 갖게 될 부서도 정해놓는다. 항공사고와 폭발은 경찰청과 소방국, 자연·날씨 재해는 OEM과 경찰청·소방국, 물 유출은 환경국·소방국 등이 함께 맡는다.
OEM은 테러 뒤, 재난에 대비한 몇 차례의 대규모 훈련을 시청 및 지역단체들과 함께 실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3월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셰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량살상무기 공격 대비 훈련(Operation United Response)이다. 시의 주요 부서들과 적십자, 병원연합회 등이 함께하고, 1천명의 사고관리요원과 희생자를 연기한 1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대규모의 훈련이었다. 그 밖에도 지난 5월16일 볼링 그린 지하철역에서 실시한 지하철 사고대비 훈련, 지난 10월8일 실시한 물류사고 대비훈련 등에도 수십개의 단체가 참여했다. OEM은 앞으로도 인명구조 훈련, 빌딩 사고 대비 훈련 등 굵직굵직한 계획을 잡고 있다.

비상대비 요원 훈련도 진행

OEM은 응급사태 발생시 경제에 가해지는 타격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7월15일 뉴욕시와 OEM은 기업 비상 접근 프로그램(CEAS·Corporate Emergency Acess Program)을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9·11과 같은 대규모 비상 사태에 경제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CEAS는 사태 복구에 필요한 노동자들을 즉시 현장에 다시 투입하도록 만든다. 정보 시스템과 데이터 등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주는 꼭 필요한 노동자들을 선정하고, 이들은 별도의 허가증을 받는다. 2003년 12월부터 2004년 2월까지 약 20개 회사의 노동자 600명이 이런 허가증을 발급받았다.


현재 OEM은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전공한 전문가들과 각 부서에서 오랫동안 실무경험을 쌓은 요원들로 구성돼 있다. OEM은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비상대비 요원들에 대한 훈련도 맡고 있다. 각 단체에서 수시로 사람을 파견하고, 전문가들이 이들을 교육한다. 한국인 2세 양고은씨도 대학을 졸업한 뒤 OEM에서 재난대비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양씨는 “우리는 수백개 단체들을 상대하고 있다.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9·11 뒤 통합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이 마련됨에 따라 시의 각 부서들도 주어진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뉴욕시 보건국은 생화학 테러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놓고 있다. 보건국 재난관리부 책임자인 마이클 필립스는 9·11 뒤 생화학 테러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묻자 “우리의 감시 시스템을 확장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보건국 재난관리부의 모니터 앰뷸런스가 매일 도시를 순찰한다. 앰뷸런스는 어떤 질환이 증가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화학 공격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또한 보건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즉시 문을 열 수 있는 병원들을 지정하고, 백신과 치료약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보건국은 OEM, 경찰청, 소방국, 환경청, 연방정부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연방 질병통제센터 요원들이 뉴욕 보건국에 파견돼 있기도 하다.


건물은 기본적으로 테러를 막을 수 없다. 세계무역센터는 튼튼하기로 손꼽히는 건물이었다. 재난 대책도 테러 이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바로 통제다.

강화되는 통제의 손길

외국인들은 케네디 공항에서부터 지문을 찍어야 하는 난감함에 처한다. 모든 공공건물과 주요 기업의 건물은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맨해튼 남쪽 끝에 있는 인디언 박물관과 같이 작은 박물관에서도 모든 짐을 검색대에 통과시켜야 하고, 벨트까지 벗어서 확인당해야 한다. 검색대 앞에서 벨트를 벗으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관광객은 이미 뉴욕에서 흔한 풍경이다. 급기야 일반 쇼핑몰에서도 검색대가 등장했다. 맨해튼 시티코프 건물 지하에 있는 쇼핑몰에서 커피라도 한잔 하기 위해선 모든 짐을 엑스레이 검색대에 올려놔야 한다. 미 국토안보부가 시티뱅크 기업 건물들을 테러의 잠재적 타깃으로 정한 뒤부터다. 테러의 상처를 감추고 화려하게 건설되는 유리건물들과 감시의 눈초리 속에서 뉴욕은 숨쉬고 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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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4" color="#216B9C">
재난 관리를 표준화 한다</font>

<font color="darkblue"> 인터뷰 | 뉴욕시 재난관리국(OEM) 미디어부장 제러드 번스타인</font>

OEM의 미디어부장 제러드 번스타인은 “OEM의 가장 큰 역할은 응급상황에 대비해 수백개에 이르는 정부와 민간단체, 기업 등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 말했다. 재난에 대비해 단일한 지휘체계를 세우는 것은 뉴욕시가 9·11 테러로 얻은 가장 값진 교훈이다.

- 9·11 당시 상황을 설명해달라.
= 당시 무너지는 세계무역센터 빌딩 바로 옆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7번 빌딩에 우리의 사무실이 있었다. 긴급히 대비한 뒤부터 비상지휘를 시작했는데,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자원봉사자들도 엄청나게 몰려왔지만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임무를 맡기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OEM의 역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면.
=OEM은 테러를 사전에 방지하는 기구가 아니다. 테러를 막는 것은 경찰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상대해야 할 수많은 정부기구와 단체, 기업들이 있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이들의 역할을 조정하고 훈련시키며, 체계적인 재난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여기에는 각 단체의 재난관리 요원들을 육성하는 일도 포함된다.
-시전역사고관리시스템(CIMS)은 어떤 것인가.
=CIMS를 미리 알고 있다니 기분 좋다. (웃음) 미 국토안보부가 관리하는 국가사고관리시스템(NIMS)에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NIMS가 정해놓은 표준들에 따라 뉴욕시의 재난관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CIMS를 개발했다. 각 기구들을 조정해 단일한 지휘체계를 구성하고, 재난 상황시의 매트릭스를 마련해놓았다.
-수백개 단체의 상호조정 역할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일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는 무엇인가.
=이해와 처지가 다른 조직들을 조정하는 것이 물론 가장 어려운 일이다. 정부 부서나 단체뿐 아니라 기업들, 항만주, 부동산 관리업자들까지 와서 항의하거나,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거나 질문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답을 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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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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