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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SBS, 휴전은 없다

등록 2004-10-21 00:00 수정 2020-05-03 04:23

끝없는 난타전 속에 일촉즉발 상황으로 비화… “감정싸움 자제하고 비판할 건 확실히 비판하자”

▣ 손원제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wonje@hani.co.kr

SBS와 문화방송 사이의 ‘보도전쟁’이라는 유례없는 사태가 눈과 귀를 잡은 한 주였다. 10월16일 SBS 기자협회의 대시청자 사과문 발표를 계기로 두 방송사간 갈등은 일단 ‘휴전’에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문화방송이 18일 밤 9시 에서 SBS 모회사인 ‘태영의 수의계약 특혜 의혹’을 보도하면서 사태는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비화하고 있다.

문화방송, SBS 윤세영 회장 겨냥

이날 보도가 ‘휴전’에 반대하는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의 성명 발표 직후 나온 것이라는 점도 공방전 재발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문화방송 노조는 성명에서 “족벌세력과 언론개혁 진영의 논쟁이라는 이번 사안의 본질상 문화방송의 보도는 그 무슨 ‘휴전’을 통해 멈춰질 성질의 것은 아니며, 사실에 기반한 보도는 진정한 방송개혁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두 방송사의 보도국 관계자들은 ‘확전’ 전망을 애써 부인하며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문화방송 보도국의 핵심 관계자는 이날 보도 직후 “경기도 양주시 검준 염색공단 수의계약 보도는 일부러 SBS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지역 기자가 지난 8월에도 취재해 보도했던 내용을 보강 취재해 보고한 것”이라고 파장을 축소했다. 그는 “SBS를 공격하려 했다면 이미 SBS의 사주와 소유문제 등을 지적한 터에 주변적인 태영 수의계약 문제를 건드렸겠느냐”고 되물었다.

SBS 우원길 보도국장도 “내일 좀더 논의해봐야겠지만, 현재로선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해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앞서 두 방송사는 16일부터 상대방을 직접 언급하는 비판 보도를 내보내지 않아왔다. SBS는 16일 에서 “SBS 기자협회가 총회를 열어 시청자의 권익을 무시한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을 결의하고 문화방송에 감정적 보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 문화방송 관련 기사를 방송하지 않았다. 전날 무려 다섯 꼭지의 SBS 관련 비판 보도를 내보냈던 문화방송도 이날부터 직접적으로 SBS를 언급하는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문화방송은 다만 17일 에서 여의도 불꽃축제의 무질서 실태를 보도하면서 주최쪽인 SBS 로고를 내보냄으로써 미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방전의 절정은 15일 문화방송의 밤 9시 였다. 문화방송은 이날 SBS와 관련한 다섯 꼭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태생적 한계’ ‘문어발식 확장’ ‘윤 회장 손 떼야’ 등의 제목을 단 이들 기사를 통해 문화방송은 SBS의 아킬레스건인 대주주 윤세영 회장의 경영권 문제를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이날 발표한 윤 회장의 사퇴 촉구 성명을 반복적으로 소개한 데 더해 열린우리당이 역시 이날 발표한 3개 언론개혁 법안에 대해 민영방송 재허가 요건 강화 등을 중심으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SBS의 설립 과정과 경영 세습 의혹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짚었다.

이날 보도에 대해 강성주 문화방송 보도국장은 “SBS를 비난하기 위해 방송한 것은 아니다”라고 의도성에 대한 의혹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강 국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날 보도가 전날 저녁 SBS 의 문화방송 관련 보도와 직접 관련된 것임은 문화방송 내부에서도 두루 인정하는 사실이다. 보도국의 핵심 관계자는 “SBS가 14일 우리 비판 보도를 세 꼭지나 내보내는 것을 보고 보도국 내부에서는 목소리가 격앙됐다”며 “마침 15일 관련 사실들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할 말을 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봉이 윤선달?”제목이 SBS 더 자극

앞서 SBS는 14일 경기도 용인과 양주 등에서도 문화방송의 땅투기 의혹이 일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또 13일 나온 문화방송의 ‘주식으로 돈벌이’ 기사를 반박했다. “SBS가 주식을 상장해 사주 일가와 모기업인 태영의 치부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기사 내용과 달리 주식 상장이 오히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합법적인 조처라는 내용을 담았다.

SBS의 이런 대응 보도가 나오기 전 문화방송과 SBS 사이엔 일종의 ‘강화협정’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방송 보도국의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서로 자제하자”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에서 비판 기사를 세 꼭지나 내보냈다. 우리도 이미 14일 밤 ‘문어발식 확장’과 ‘방송 세습’ 기사는 제작해놓고 있었던 상태에서 결국 15일 소나기가 쏟아졌다.”

문화방송이 15일 ‘소나기’ 보도와 함께 사회부장 인사를 낸 것도 관심을 끌었다. 대개 언론사에서 사회부는 고발·폭로성 기사를 주무하는 부서다. 이 때문에 SBS에 대한 공격적 기사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데 따른 문책성 인사이며, 15일 보도는 신임 사회부장 작품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황용구 신임 사회부장은 “15일 기사 데스크를 아예 보지 않았다”며 “이런 문제 때문에 별도로 SBS 뒤를 훑는다든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BS가 14일 세 꼭지의 문화방송 비판 기사를 내보낸 것은 전날 ‘주식으로 돈벌이’ 기사가 SBS를 의도적으로 겨냥한 보복성 기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애초 SBS는 11일 에서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국정감사의 질의 내용을 인용해 문화방송 일산 제작센터의 땅투기 의혹을 처음 보도했다. 이어 12일 이번엔 문화방송 에서 ‘윤세영 회장 가족방송’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위 국감에서 나온 윤 회장 측근의 지분 상한(30%) 초과 의혹을 제기했다.

SBS쪽은 13일 다시 문화방송의 보도는 방송법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반박 기사를 내보냈다. 또 문화방송쪽이 일산 땅투기 의혹과 관련된 방송위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는 후속 기사를 별도로 내보냈다. 하금렬 SBS 보도본부장은 14일 “문화방송의 12~13일 보도는 법적 문제가 없는 사안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시청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이므로 뉴스를 통해서라도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4일 SBS쪽의 공격 강도가 거세진 데는 기사의 내용에 더해 제목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화방송은 ‘주식으로 돈벌이’ 기사를 14일 오전 6시 에서 ‘봉이 윤선달?’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보냈다. 이 바뀐 제목이 SBS쪽을 고강도로 자극했다는 것이다. SBS 관계자는 “한 방송사의 대표를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은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SBS가 11일 문화방송의 땅투기 의혹을 첫 보도한 배경에 대해서도 여러 관측이 나온다. SBS쪽은 “국감에서 제기된 의혹을 취재를 통해 보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방송쪽에선 달리 보고 있다. 문화방송 보도국의 핵심 관계자는 “최근 SBS 재허가와 관련해 철저한 심사를 강조한 우리 보도에 대해 가진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흠집내기용 중계를 뛰어넘어라

이번 사태와 관련해선 동업 방송사간 침묵의 카르텔을 깬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일부 따르지만, 그보다는 방송의 사유화이자 면밀한 확인 없는 흠집내기용 중계에 그쳤다는 비판이 많다. SBS 기자협회 스스로가 16일 결의문에서 “시청자의 권익을 무시한 감정 싸움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고 시청자에게 사과한다”고 한 것이 그 예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자사 이해가 걸린 사안일수록 오해받지 않도록 철저한 확인을 거쳐 사실 위주로 보도해야 하는데, 두 방송사 모두 이런 기초적 원칙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찾아온 방송사간 상호 비판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SBS 기자협회 결의문은 “이번 보도를 계기로 동종 업계 감싸기 관행을 타파하고 모든 언론기관에 대한 감시와 비판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화방송 보도국의 핵심 관계자도 “일부러 의혹을 부추기진 않겠지만 물꼬가 터진 만큼 앞으로도 계기가 있으면 문제를 짚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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