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과학영재 교육의 성장을 위한 제언… '사사교육'을 자원봉사로 할 수는 없는가
▣ 최승언/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 서울대 과학영재교육센터 소장
우리나라 과학영재 교육은 1998년 과학기술부의 지원에 따라 9개 대학교에 과학영재교육원이 설립돼 초등·중학교 과학영재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엄밀한 의미의 과학영재 교육은 2002년 부산 과학고가 과학영재학교로 전환되면서 지난해부터 신입생을 맞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이제 길어야 7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과학영재 교육은 양적·질적으로 팽창 일로에 있으며, 각 과학영재교육원이나 과학영재학교 등지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아직은 역사가 짧기에 시행착오도 적지 않으며 세계의 유수 영재교육기관을 벤치마킹한 시스템이 국내에 정착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미국은 학문연구 자세까지 교육받아
일반적으로 과학영재교육기관에서는 과학 분야의 내용 영역에 비해 인지적 영역에 비중을 두어 교육하게 된다. 즉, 인지적 영역의 탐구 과정 기술이나 탐구 사고가 그것이다. 과학영재 학생들은 단순한 문제 풀이보다는 고등 사고력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기를 즐긴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해법을 찾아내기도 하며, 새로운 탐구 방법을 고안하기도 한다. 이들은 다방면에 우수하기보다는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학영재 교육에서 인지적 영역만을 강조하다 보면 영재 학생들의 특성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매우 경쟁적이며, 개인주의적이며, 때로는 독선적이다. 어떤 때는 매우 도덕적이지만 어떤 때는 무척이나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여 도덕적인 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기에 과학영재 교육에서도 영재학습을 통해 정의적인 영역이나 영재 학생들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훈련하지 않으면 21세기를 주도하는 과학영재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부산 과학영재학교도 역시 이러한 면에 민감하다.
과학영재 교육의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 시카고의 3년 과정의 IMSA(Illinois Mathematics and Science Academy) 고등학교는 이러한 면들을 중요시 여겨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일리노이주의 과학영재 학생이 10학년(우리나라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 반드시 과학탐구(Scientific Inquiries)라는 교과목을 1년 동안 이수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곳의 과학영재 학생들은 탐구 중심의 과학 경험을 학습하지만 역사적·개인적·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한다(Inquiry-based curriculum that allows historical, personal and social connections to be constructed)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들은 3년 과정을 통해 학문을 연구하는 방법뿐 아니라 자세까지도 교육(훈련)받고 있다. 이러한 과학탐구 교과목은 이를 담당하는 교사들에 의해 계속적인 반성과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진다. 한번 정해놓은 교과과정을 고집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흥미 변화나 수행하는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그 시대의 과학적인 사건에 따라 교수 중간에 담당하는 모든 교사들이 모여 합의해 이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의 고정된 사고방식으로 이러한 융통성을 가지기는 쉽지 않지만 과학이라는 교과목도, 이를 반영한 영재교육도 이러한 융통성을 가지지 않고는 수행하기 곤란하다.
눈높이 맞춘 연구 · 교육 제도를
이러한 IMSA 고교의 유연한 교육 시스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기계적인 적용보다 융통성 있는 접근이 배우는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일 게 틀림없다. IMSA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을 만난 일이 있다. 그는 일반 고교와 다른 교육환경을 경험한 게 연구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과제를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기를 즐겨하면서 때로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고, 여러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다양한 생각과 방법을 전개할 수 있었다. 일반 고교를 졸업한 다른 학생과 자신이 매우 다르다는 것에 깜짝깜짝 놀란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영재 교육담당 교수와 교사, 과학영재 교육 프로그램, 과학영재 판별의 타당성과 신뢰성, 예산 및 행정 지원 상황 등 모든 면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영재 교육을 할 때 ‘다른 생각’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가르치려 하고 있다. 부산 과학영재학교 역시 교육과정 개정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교과과정의 융통성을 반영하려고 한다. 하지만 교육과정에 우리나라 일반 과학 고등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단위를 포함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적긴 해도 너무 많은 교과목을 학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과학영재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생각할 수 있고 탐구 기능을 익힐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부족을 연구·교육(Research & Education)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IMSA의 경우 그들의 사사 과정(Research in science) 속에는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연구·교육의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심도 있게 전문가와 같이 연구하고 발표했다. 연구·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과학자들이 실제로 연구하는 방법을 익히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며 탐구하고 배우고,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를 지어나가는지를 배우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시행돼온 연구·교육의 주제들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학생들의 흥미는 어느 정도 고려했는지 모르지만 수준에서는 담당 교수나 전문가의 주도하에 어디에 내놓아도 멋지고 눈에 띄는 주제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데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당장은 더디더라도 문제 혹은 주제 설정이 학생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또 세계의 유수 과학영재교육학교가 그렇듯이 IMSA의 경우, 연구·교육 지도를 하는 전문가들이 모두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할 때 이는 커다란 차이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영재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전문가들이 보수 대신 보람으로 참여한다면 과학영재 학생들과 함께 더욱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교수와 학생이 뜻을 모은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모두가 과학에 종사해야 하는가
국내에서 과학영재를 키우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또 다른 문제는 과학영재 교육에 대한 믿음이다. 예산이나 행정을 지원하는 기관은 과학영재교육기관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믿어주어야 하고, 과학영재 학생들의 부모들도 과학영재교육기관을 신뢰하는 게 필요하다. 대부분의 외국의 과학영재교육기관에서 이곳을 수료한 학생들의 70% 이하만이 과학에 종사한다는 통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영재교육기관을 수료한 학생들이 혜택을 받았으니 모두 과학에 종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다면 좀더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영재 교육에 대한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다만 역사가 짧기에 소프트웨어가 다소 미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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