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전교조와의 합의 어기고 서버 수 감축 · 시행 연기 등 추진하자 다시 논란 일어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다시 교육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NEIS는 지난 2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의 합의로 인권침해 논란을 빚은 교무·학사, 입·진학, 보건 3개 영역을 별도로 관리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새 시스템의 시행 시기를 늦추고 서버 수도 대폭 줄이는 등 합의를 어길 조짐을 보여 전교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월 단행된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교무·학사 등 3개 영역을 관리할 독립적인 서버를 마련하고 △예산은 애초 NEIS를 개발하는 데 쓰인 520억원을 초과하지 않으며 △이른 시일 내 새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민감한 정보는 학교 담장을 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 아래 고교와 특수학교(장애인학교)는 학교별로 하나씩 서버를 두고, 초·중교는 15개 학교당 1대씩 서버를 둬 학생들의 정보인권을 보호한다는 게 합의의 고갱이다. 이 합의에 따르면 대략 3천대의 서버가 필요하다.
“예산에 더 중점 둘 수밖에”
하지만 교육부는 최근 서버 수와 관련해 이 합의를 어기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서버 운영 방안을 포함한 새 시스템 개발 용역을 지난 5월 한 컨설팅 업체에 맡겼는데, 컨설팅 결과에 따라 서버 수를 줄일 수 있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양열모 교육부 교육행정정보화추진팀장은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성능이 좋은 서버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3천대의 서버를 520억원 예산에 맞춰 구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서버 수와 예산 중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교육부는 예산을 지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경재 교육부 국제교육정보화국장은 “예산과 서버 수를 동시에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교육부는 책임 있는 정부 부처로서 예산을 지키는 것에 더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이런 방침은 합의 내용을 사실상 위반하는 것이다. 지난 2월 합의 때 중재에 나섰던 윤영민 교수(한양대)는 “3개 영역을 다룰 서버를 독립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합의정신이기 때문에 서버 수를 줄이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교육정보화 자문회의에서 예산과 서버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적게 드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교육부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합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단 한 차례도 써본 적이 없는 공개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NEIS는 국가적 대사이기 때문에 성능이 검증된 서버를 구축해야 한다”며 “나중에 오류가 발생하면 결국 교육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교육부로서는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개 소프트웨어의 안정성은 이미 입증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관계자는 “미국 연방통계국의 인구통계 시스템과 스웨덴 연금청의 업무 시스템이 공개 소프트웨어로 구축되는 등 많은 나라들이 국가 전산망에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IBM과 HP 등 세계 유수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이미 자사의 시스템에 공개 소프웨어인 리눅스를 사용하고 있고, 세계적 정보기술(IT) 시장 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세계 서버시장의 30%가 리눅스를 쓰고 있다.
교육부의 NEIS 굳히기?
전교조와 교육부는 새 시스템 도입 시기를 둘러싸고도 마찰을 빚고 있다. 교육부는 9월부터 새 시스템 개발에 착수해 1년 동안 시험운영을 한 뒤 2006년 3월부터 전면 시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전교조는 이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교육부의 방침은 지난 단체교섭에서 2004학년도 학사업무를 새 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한다고 합의한 것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2006년에 새 시스템을 시행할 경우 2004학년도 학생생활기록부 업무를 시작하는 올 연말에 NEIS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지금까지 소신에 따라 NEIS를 거부하고 수기나 단독컴퓨터(SA)로 학교생활기록부 업무를 처리했던 교사들이 다시 학교쪽과 마찰을 빚게 된다”며 “학교 현장이 다시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예산과 시기 문제를 앞세워 ‘NEIS 굳히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전교조 관계자는 “올 연말 학사업무도 문제지만, 새 학년 때 교사들의 전근이 시작되면 더 큰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교조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NEIS에 대한 저항이 약해질 것을 우려한다. 수기를 고집했던 교사들이 NEIS만 쓰는 학교로 이동할 경우 갈등을 빚을 게 뻔한데, 같은 학교에서 함께 NEIS를 거부했던 교사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결국 NEIS 싸움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교육부가 이 점을 노리고 고의로 시기를 늦추고 있다”고 비난했다.
삭제 항목 다시 부활하는가
하지만 교육부도 시기를 양보할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이미 NEIS 시행착오로 한 차례 타격을 입은 교육부로서는 새 시스템에서 오류라도 발생한다면 대규모 문책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공개 소프트웨어 사용 등 국책사업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전교조가 이런 사정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교육부를 의심하고 있는 ‘근거’는 또 있다. 전교조는 인권침해 요소가 너무 강해 아예 삭제하기로 했던 항목 중 일부를 교육부가 복원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교육부의 의뢰를 받은 컨설팅 업체가 지난 8월13일 배포한 토론회 자료를 보면 생활기록부에서 삭제하기로 했던 동거가족 수와 장기결석자 처리 항목을 다시 기록하는 것이 교육부 담당 부서의 견해로 나타나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건강기록부는 대부분 담임선생님의 수첩에만 기록하는 항목들이 많은데, 교육부는 이 항목들을 다시 NEIS에 기록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토론회에서 거론된 것일 뿐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교육정보화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급 기관 산하에 이를 감독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영민 교수는 “지난 2월 합의한 대로 국무총리 산하에 감독기구를 구성해 합의를 지킬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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