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입법 위한 병역법 개정안 공청회… “처벌규정 너무 가혹… 판정위는 병무청서 독립해야”지적도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마침내 대체복무제 입법이 본격화됐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지난 8월19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입법을 위한 병역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었다.
평화 · 생태주의 신념도 병역거부 인정
이날 공청회에서는 임종인 의원이 발제를 맡았고,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이덕우 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위원장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먼저 발제에 나선 임종인 의원은 “감개무량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논산훈련소에서 6년 동안 군법무관으로 근무했다”며 “아마 여호와의 증인을 가장 많이 감옥에 보낸 사람일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임 의원은 “당시에도 법률 서적을 읽으면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마침내 대표 발의자로 대체복무제 법안의 입법에 나서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대법원 판결에서 절반에 가까운 대법관이 사실상 대체복무제 입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며 “한해 600명이 감옥에 가는데도 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일부의 우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임 의원은 “나 자신이 군법무관 출신으로 군에 대한 애정이 깊다”며 “병역 거부자가 현역 입영자의 0.2%에 불과해 국방력에 손실을 주지 않고, 오히려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인권과 복지를 향상시켜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정 법률안의 뼈대를 소개했다. 개정 법률안은 병역 거부의 인정 대상을 ‘종교적 신념’에 국한하지 않고, ‘양심의 확신’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까지 포함했다. 여호와의 증인 등 종교인뿐 아니라 평화와 생태주의적 신념 등에 기반한 병역 거부자까지 인정한다는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행 육군복무 기간 24개월의 1.5배인 36개월로 정했다. 병역 거부자를 심사할 기구인 ‘양심적 병역거부 판정위원회’는 병무청과 지방병무청 산하에 두도록 했다. 판정위원회는 교수, 법조인, 공무원, 종교인 등 9명으로 구성된다.
법안에 따르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보충역인 사회복지요원으로 편입돼 대체복무를 하게 된다. 사회복지요원은 사회복지시설에서 아동·노인·장애인 등의 보호·치료·요양·자활 또는 상담 등의 업무를 보조·지원하는 일을 한다. 사회복지요원은 단체숙박 생활을 원칙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 출퇴근도 허용된다. 현재 수감 중인 병역 거부자는 판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병역 거부자로 인정받으면 형의 집행을 면제받는다.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은 현행 병역법의 개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미 병역법에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사 등의 형태로 대체복무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나라 · 국방부 관계자는 참석 안해
첫 번째 토론자로 유시민 의원이 나섰다. 유 의원은 “나는 병역 거부에 동의하지 않지만 양심을 지키기 위해 감옥살이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급격히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사회복지가 취약한 상황에서 사회복지요원 제도의 도입은 복지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유시민 의원은 처벌 조항의 가혹함을 지적했다. 개정 법률안 제86조 2항은 양심의 확신을 빙자하여 병역 거부를 신청했을 경우, 신청인을 1년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회복지요원에 편입된 때에는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 의원은 “신청해서 ‘아니면 그만’이지 처벌까지 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지나치게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는 심리적 거부의 벽을 넘어야 한다”며 “법안 통과를 낙관할 수는 없지만 통과를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위원장인 이덕우 변호사는 법안의 미비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병역 거부권의 ‘마그나 카르타’(헌장)로 불리는 유엔 인권위원회 1998년 77호 결의안에 비추어 병역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병무청 산하에 판정위원회를 두면 심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서구 국가처럼 보건복지부, 노동부 산하에 판정기관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이 변호사는 또 “36개월의 복무기간 동안 단체합숙 생활을 하도록 한 규정은 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다. 98년 결의안은 △독립적인 공정한 심사기구를 설치할 것 △현역 복무 중인 군인의 병역 거부권을 보장할 것 △대체복무제의 기간이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지 않는 등 대체복무제가 징벌적 성격을 띠지 않을 것 등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석태 민변 회장은 해외 사례를 들어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2000년에 이어 2004년 4월에 대만에 다녀온 이석태 변호사는 “두 번째 방문은 병역 기피자가 얼마나 생겼나를 확인하러 간 것이었는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였다”며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이 처음 33개월에서 26개월로 줄어들고 평가도 매우 좋았다”고 전했다. 그는 “독일이 징병제를 폐지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징병제 폐지로 대체복무자가 없어지면 독일의 복지 시스템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체복무제가 실시만 되면 대만처럼 좋은 제도라는 인식이 퍼져 복무기간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일단 도입의 관문을 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제법 전공인 장복희 가톨릭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장 교수는 “대체복무제의 기간과 종류는 각국의 현실에 따라 서로 다르고 국제 기준에 완벽하게 도달한 나라는 흔치 않다”며 “우리도 우리 실정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 대표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 위원인 정진우 목사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정 목사는 “대체복무제의 도입 노력이 특정 종교를 가진 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은 분단과 군사주의로 얼룩진 야만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권보장의 사회로 도약하는 시험 문제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외국에서 병역 거부권이 문제가 된 때는 평화 시기가 아니라 전시 상황이었다”며 “분단으로 전쟁의 위협이 존재하는 현실은 오히려 병역 거부권 도입을 논의해야 할 좋은 조건”라고 주장했다. 유럽에서 병역 거부권이 보장된 것은 1,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이었고, 미국에서 병역 거부권이 논란이 된 때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때였다.
이날 토론회에는 한나라당 의원과 국방부 관계자가 참석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참석을 고사했고, 국방부는 국방대학원 교수를 토론자로 내보내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인 의원실 김제동 보좌관은 “그동안 찬반토론은 충분히 거쳤다”며 “법률안 내용을 중심으로 실무 점검을 하는 자리에 국방부가 실무담당자 대신 학자를 내보내겠다고 고집해 공청회 참석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31명 발의참여 약속… 9월 정기국회에 제출
병역법 개정안 발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원은 늘어나고 있다. 8월20일 현재까지 이종걸, 이광철, 송영길 등 열린우리당 의원 17명, 노회찬, 천영세 등 민주노동당 의원 10명, 고진화 등 한나라당 의원 2명, 손봉숙 민주당 의원, 무소속의 신국환 의원 등 31명의 의원이 발의 참여를 약속했다. 민주노동당은 병역 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당론으로 정했다. 병역법 개정안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과 의원들의 무관심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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