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공격설에도 ‘안전하다’ 주장하는 아르빌 정부… 뒤에선 특권층 전용도로로 탈출구 마련해놔
▣ 아르빌= 김영미/ 분쟁전문 프리랜서 PD
지난주 ‘안 살르 이슬람’이라는 테러단체가 이라크 아르빌에 머무는 한국군과 민간인들을 공격한다는 믿을 만한 테러 첩보가 전해져 아르빌에 머무는 한국인들을 한동안 떨게 만들었다.
이 첩보는 구체적으로 ‘금속업체’라는 한국 기업을 노린다는 것까지 명시됐다. 이 첩보는 처음 오스트리아에 있는 일본 기자가 입수했고, 그 뒤 아르빌로 전해졌다. 그 기자는 현재 일본 모 신문사의 비엔나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첩보 전달자를 밝힐 수는 없으나 비엔나에는 많은 쿠르드인들이 살고 있다. 그 중 한명이 내게 이 사실을 알려왔다. 자신이 받은 메시지는 사실이며, 나는 이라크에 대해 잘 모른다. 더구나 아르빌에 어떤 한국 업체가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키우는 옛 성
첩보는 말 그대로 첩보지만, 그냥 지나치기 힘든 대목은 안 살르 이슬람이라는 테러단체 때문이다. 이 단체는 원래 아르빌에서 공식 활동을 하던 단체였다. 그들은 아르빌 시내에 사무실도 있었고 당당하게 간판을 걸고 활동했으나, 미군이 들어오던 지난해 이란과 모술쪽으로 이동했다. 이슬람 수니파로 과격 테러단체로 알려졌고 최근 모술에서 조직 정비를 마치고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바그다드의 유엔 건물 폭파와 적십자 건물 폭파 사건의 배후로 알려졌고, 미국이 37번째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아르빌에도 여전히 숨어 활동하는 세력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르빌 시내 한가운데는 7천년 가까이 된 옛 성이 자리잡고 있다. 키르쿠크에도 성이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고 잡초만 우거져 있었다. 그러나 ‘쿠알라’라고 불리는 아르빌의 성에는 무려 8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옛날에는 외세나 짐승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렇게 높은 곳에 성을 만들어 살았고, 불과 70여년 전만 해도 이 안에 사는 사람들은 성 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1만여명의 주민들이 성 안에 살고 있다. 원래 살던 원주민들은 20여년 전 사담 정부의 정책으로 모두 쫓겨났다. 그 뒤 다시 이 성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이 성 주민들은 아르빌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살라(60)는 “갑자기 새로운 주민들이 와도 그들은 왜 이곳으로 이사를 왔냐고 묻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돈이 없어 이곳까지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 안에는 모스크가 두 군데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코란을 배운다. 성 안에는 학교도 없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성 밖 학교를 다니기가 힘들다. 아르빌 정부도 학교와 교육에는 아직 신경을 쓰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이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대신 이렇게 코란을 공부하러 오는 것이 유일한 교육이다.
가난하고 힘든 가정에 태어나 유일하게 배우는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이고, 이런 상황은 아이들을 잘못된 이슬람 원리주의로 이끌기 십상이다. 성은 이슬람 전사를 키우는 온실 같은 곳이다. 안 살르 이슬람도 이런 환경에 쉽게 스며들 수 있다. 최근 아르빌에는 안 살르 이슬람에 대한 첩보가 많이 나돌고 있다. 하루에도 서너장 분량의 첩보 내용이 쏟아지는 실정이다. 이들이 조직 정비에 나서고 모술에 근거지를 확보하고, 그곳 저항세력과 함께 테러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한다.
아르빌 시내에는 한국군이 영어 통역인을 100명이나 뽑는다는 소문이 나돌아 너도나도 영어 붐이 불었다. 영어교사뿐 아니라 좁은 아르빌에서 영어 한마디라도 하는 사람이면 모두들 통역원에 뽑히고 싶어 안달이다. 사람들은 필자에게까지 “통역으로 일할 수 있게 힘을 써달라”며 부탁을 한다. 한국군은 쿠르드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력이 한명도 없기 때문에 영어 통역을 구할 수밖에 없다. 아르빌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또한 한국군은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미군의 경우를 보더라도 통역인들이 정보를 저항세력이나 테러단체에 제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신원 조회라는 것이 쉽지 않고 전산망으로 사람을 관리하지도 않으니, 통역인이 어떤 의도로 한국군 기지에서 일을 하려는지 알 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안 살르 이슬람과 같은 단체의 조직원도 기지 내에서 통역원으로 일할 수 있다.
관리들도 쥐 죽은 듯 조용
안 사르 이슬람뿐만 아니라 아르빌에 대한 첩보가 쏟아지면서 아르빌은 오히려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정부 관리들은 되도록이면 사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한다. 각종 회담이나 미팅도 눈에 띄게 줄었다. 마치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다. 모 정부의 고위 관리는 “아르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 위험한 순간은 눈치채지 못할 때 오기 때문이다. 과거 수많은 사건들이 아르빌에서 벌어졌다. 그런 것들을 겪고 나서 얻은 생존의 지혜다”라고 말했다.
지난 8월11일 쿠르드 자치 정부의 총리인 리체르반 바르자니가 한국을 방문했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쿠르드 정부 고위 인사의 한국 방문은 처음이었다. 이미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들어와 있음을 의식한 탓인지 바르자니 총리는 “자이툰 부대와 이를 지원하는 민간인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점을 한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방문했다”고 말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이곳 아르빌에서도 치안에 대한 물음에는 한결같은 답이 나온다. 정부 인사나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아르빌은 상당히 안전하다. 우리는 치안을 확보했으며, 한국군의 안전은 우리가 보장해준다”라는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한 원론적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사실 바르자니 총리가 아르빌 현지의 안전 상황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원론적 답변을 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금 아르빌 정부는 여러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지난 6월까지는 연합군 임시행정처(CPA)가 재정적 뒷받침을 해줬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떠난 뒤 아르빌 정부가 재정적으로 기댈 곳이 없어졌다. 지금 이곳의 인구가 몇명인지 정확하게 나오지도 않고, 호구 조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 세금을 걷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지만 한국군이 지난번 키르쿠크를 파병지로 선정하면서 키르쿠크 주정부에 많은 금액의 지원을 약속한 사실을 기억한다. ‘그런 한국군이 아르빌로 온다면 그 돈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충분히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군이 아르빌로 오는 계획이 진행될 무렵 운 나쁘게 김선일 납치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한국 정부는 물론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도 이 사건의 여파로 정신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한국군이 들이닥친 것이다. 한국군이 아르빌에 입성하기 전에 분홍빛 지원 약속을 기대했던 아르빌 정부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얼마 전 마침내 총리를 한국에 보낸 것이다.
주정부 공식행사 안 한 지 수 개월
아르빌 정부가 한국군과 그에 관련된 민간인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겉으로는 아르빌이 별로 안전에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필자가 보는 시각은 다르다. 아르빌 동쪽으로 30분쯤 가면 살라아딘이라는 곳이 있다. 아르빌은 평지에 있으나, 살라아딘은 산악지대의 꼭대기에 있다. 그 산꼭대기에 바르자니 총리의 삼촌인 이 지역 최고의 권력자 마수드 바르자니의 요새인 게스트 하우스가 있고, 주변에 집권당의 주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들이 아르빌 시내에 자리잡지 못하고 산꼭대기에 사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그동안 중세 시대 같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터득한 지혜이다. 산악의 높은 곳에 자리잡은 탓에 전투시에는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살라아딘과 아르빌 시내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도로가 있다. 이 도로를 이곳에서는 ‘바르자니 도로’라고 부른다. 비교적 잘 닦인 이 도로는 마수드 바르자니 자신과 조카인 바르자니 총리를 비롯해 몇몇 가문의 주요 인사들만 이용할 수 있다. 평범한 시민들은 물론이고 필자 같은 저널리스트도 이 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 이는 특권층인 그들의 권세를 과시하려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항상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분이면 닿을 거리를 멀리 돌아서 1시간 가까이 걸려 살라아딘과 아르빌을 오간다.
아르빌 정부의 최고 권력자이지만 이들은 항상 자신들의 신변 안전 문제를 걱정한다. 또 8월16일은 집권당 쿠르드민주당(KDP)의 창립기념일이었다. 정부보다 권력이 더 센 당의 창립기념일임에도 공식 행사를 열지 못했다. 취재를 위해 만약 기념식 같은 행사가 있다면 알려달라는 필자의 요청에 KDP쪽에서는 “공식적인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이는 자기들 스스로 아르빌의 안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의회나 정부 건물은 아르빌 시내에 위치한다. 지난 2월 아르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312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아르빌 주지사를 비롯해 많은 정부 인사들과 KDP 주요 인물들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아르빌 정부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다섯겹에 걸친 검문도 뚫은 폭탄 사고였기 때문이다.
그 뒤 아르빌에는 어떤 공식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연 공식 행사인 6월의 도로 개통식에서도 어김없이 폭탄 사고가 났다. 그때 문공부 장관이 부상을 입었는데, 그 뒤로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지금은 새로운 문공부 장관이 임명됐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가 사망한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자신들의 홈베이스도 지키지 못하고 312명이나 되는 인명을 잃고서도 정규 군대인 한국군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경제원조’에 목매고 사건 쉬쉬
아르빌의 최대 부족인 브라도스토니 가문의 부족장 살람도 한국군의 안전 보장에 회의적이다. “한국군은 제대로 훈련받은 최첨단 군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막강한 군대를 미군 이전에 본 적이 없다. 우리의 역사는 게릴라전처럼 피가 피를 부르는 부족간 그리고 당파간 전쟁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 아르빌 정부가 우물 안에 있는 것처럼 아직 한국과 한국군을 잘 모른다. 우리 스스로도 뚫리고 있는 치안망을 감당 못하는데 어떻게 한국군을 지킨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아르빌 정부는 여전히 이곳은 안전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안전에 관련된 어떤 사건이라도 한국민들에게 숨기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7월21일께 아르빌 주택가에서 터키계 인사 2명이 피격되는 사건이 있었다. 필자는 잘 아는 터키계 주민을 통해서 그 사건을 알게 되었고, 이 사건 취재를 위해 정부의 정보국 국장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필자가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누구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며 오히려 추궁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그들은 사건 발생 자체는 시인했지만 숨길 수만 있다면 숨기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이런 경험을 감안하면 아르빌의 사건들은 필자도 한국군도 모르고 쉬쉬하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아르빌에서 안전 상황을 점검한다는 것 자체가 안개 속을 헤메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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