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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완장’을 살인마라 부르자”

등록 2004-08-26 00:00 수정 2020-05-03 04:23

박 대표 ‘확전 선언’에 적극 찬성하는 박사모… ‘극우적 단말마’에 내부 자성의 목소리도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과거사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만 가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8월19일 박근혜 대표의 친북·용공 조사범위 확대 발언 이후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워지고 있다. 가장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대표적인 박 대표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이다.

문패만 가리면 조갑제 사이트

박사모는 박 대표의 ‘확전 선언’ 이후 이례적으로 “과거사 정리에 적극 찬성한다”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나라 대통령의 장인 손에서 죽은 양민의 숫자만 11명이 넘으니 다시 말하여 한 사람 눈먼 장님의 붉은 완장에 학살당한 사람만 그 숫자이니 이들을 살인마라 부름이 정당한지 아닌지 국민들에 물어보자.” “이 나라 역사가 너희들의 더러운 흑심이 계산한 대로 재단될 바 아니니, 너희들보다 오히려 자격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나라 과거사를 정확히 밝혀….” 이름은 성명서라고 달았지만,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선전포고문’에 가깝다.

이 성명서는 박사모의 정광용(46·ID 나라사랑) 회장이 기초를 잡고, 15명의 운영진과 32명 지역장의 온라인 연석회의를 통해 확정됐다고 한다. 정 회장은 “암울했던 우리 역사의 흐름을 보면 일제 36년에서 비롯된 친일, 좌우 갈등, 유신으로 이어진다”며 “과거사를 규명하자면서 어떻게 친일에서 유신으로 바로 가나. 열린우리당이 ‘붉은 완장’ 시기를 빼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하려면 슬픈 역사를 전부 발가벗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지지하는 박 대표의 트레이드마크가 남북과 동서, 그리고 좌우로 갈라진 국민들을 통합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여권이 국민갈등을 야기하는 소재를 끄집어낸 만큼 과거사를 제대로 규명해야 궁극적으로 국민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성명서를 냈다”고 말했다.

그래도 박사모의 공식 성명서는 다른 글들에 비해 그나마 ‘점잖은’ 편에 속한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네티즌들이 할 테니 정치권은 빠져 있으라며 각종 의혹과 설들이 쏟아내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의혹은 박사모 사이트 내에서는 이미 기정사실이 됐고, 최근에는 “노무현의 아버지 빨갱이 행각”이라는 글까지 등장했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인민군과 내통했고 빨치산과 지리산으로 잠적했다가 아들들을 데리고 생존을 위해 김해 진영으로 숨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권 고위인사 가족들의 친일·친북 혐의를 전파하고 있다. 사이트의 문패를 가리고 보면, 극우 성향을 띠고 있는 조갑제 발행인이나 북핵저지시민연대 등의 사이트와 차별성이 없다. 정치인 박근혜 팬클럽이 우익 역사전쟁의 본진으로 탈바꿈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이트 운영자도 문제점 인정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사모 회원 가운데 자성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경’이란 아이디를 가진 한 회원은 “지금처럼 맹목적이고 단말마적인 글들이 난무하면 일반인은 고사하고 박 대표도 눈살을 찌푸려 방문하지 않을 것 같다”며 “단말마적이고 비명에 가까운 글들을 남기시는 분들이 대의를 생각한다면 침묵하는 게 모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사이트 운영자인 정광용 회장도 일정 부분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정 회장은 “회원이 2만5천명에 달하다 보니 지나치게 앞서가는 사람이 있고 과격한 내용을 담은 글도 있어 퇴출과 정화작업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다”며 “현재는 나를 포함해 운영진 전원이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 모여 박사모 활동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을 검증하는 것은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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