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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된다 헷갈린다 행정수도

등록 2004-08-20 00:00 수정 2020-05-03 04:23

당론 정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속사정… 논의 과정에서 절충안 부각될 가능성도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정부가 8월11일 행정수도 예정지를 충남 연기·공주로 확정 발표한 이후 한나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당론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론을 정하기는 정해야 할 텐데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정할지에 대해서조차 당내 의견이 엇갈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수도 이전에 관한 사안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난 6월 이후 2개월여 동안 박근혜 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의 지도부의 문제제기를 보면 반대로 받아들일 만한데,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면 “찬성과 반대를 결정할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는 식이다. 심지어 “왜 찬성과 반대만 당론이냐. 이 시점 한나라당의 당론은 신중 재검토”라는 희한한 논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당론 준비 중’이 한나라당의 당론이라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박근혜 대표는 8월16일 상임운영위에서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해 국민 대토론회, 공청회 등을 열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당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도록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당 수도이전대책위(위원장 이강두 최고위원)가 5일 전 예정지에 대한 대통령의 승인이 예정된 “연말께”라고 밝혔던 점에 비춰보면 당론 결정 시기를 대폭 앞당긴 것이다.

표만 의식했던 과거의 잘못

박 대표의 “이른 시일”과 관련해 임태희 대변인은 “공청회, 전문가 작업 의뢰 등을 놓고 볼 때 시한을 못박기는 힘들다”며 “정기국회 예산심의 때 입장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국회 각 상임위가 본격적으로 내년 예산심의를 시작하는 10월께 정도로 추정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이 언제 어떤 식의 당론을 결정할지를 점쳐보기 위해서는 그동안 한나라당이 당론 결정을 미뤄온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공식적인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관련 공약을 제시했을 때 수도권 표를 의식해 반대를 했고, 2004년 총선을 앞두고는 충청표를 의식해 찬성하면서 오락가락했던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최대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솔직하게 말하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면서 그 정책의 문제점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서 결론을 낸 것이 아니라 결국 선거와 표를 의식했던 것”이라며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아니면 다른 절충점을 찾든 간에 이번에는 결론을 내리는 절차를 중시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느린 행보에는 ‘절차 중시’ 이외의 다른 계산도 깔려 있는 듯 하다. 당론 없이 어정쩡하다는 비판에 시달릴지언정, 그동안 정치적 부담 없이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 짭짤한 실익을 거둬온 것이다. 한나라당이 앞장서 적극적으로 반대여론을 조직하지 않더라도 친한나라당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보수언론이 반대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상태여서 적절한 시점에 ‘지원사격’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천도 수준의 ‘수도 이전’에는 대체로 반대하지만 해법을 놓고는 조금 거칠게 얘기하면 찬반 정도의 격차가 나는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섣불리 당론을 결정하기 힘든 속사정 때문이다. 한나라당 지지가 강한 영남권과 이재오·김문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일부 수도권 의원들은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비등해진 만큼 반대당론 천명, 폐기법안 제출을 통해 이를 백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당내 개혁파를 중심으로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자”는 의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목소리는 이강두 수도이전대책위 위원장과 이한구 정책위의장 등 ‘반대성 문제제기’에 가려 빛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당론 결정 과정에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원천 무효’ 주장해도 소수당 한계

원희룡 최고위원은 박 대표의 ‘빠른 시일 내 당론 결정’ 표명 이후 “수도 이전은 반대하지만 제2행정도시 건설 정도의 절충안이 가능하고 그런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의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정책통으로 꼽히는 박형준 의원의 설명은 좀더 구체적이다. “올 오아 나싱(all or nothing)이 아니라 얼마든지 절충점이 있을 수 있다. 청와대와 행정·입법·사법이 모두 이전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이전 대상과 범위를 놓고 얼마든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수도 이전이 아니라 행정특별시를 건설할 수도 있고, 행정부 가운데서도 수도권의 안보 불안감과 이전 비용(한나라당은 새 안보 시스템을 갖추려면 약 8조원가량이 들 것으로 추정)을 줄이는 방안으로 국방부를 남기는 방안도 가능하다. 충청권의 기대심리가 한껏 높아진 상태에서 백지화는 또 다른 지역주의를 부를 수 있는 만큼 객관적 타당성 검토를 거쳐 정치적 절충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대서명운동을 통해 폐기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쪽이 전면 백지화라면, 절충론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의 방향을 바꾸자는 정도로 여겨진다.

한나라당 내에서 절충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배경에는, 한나라당이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폐기 법안을 제출하더라도 소수당의 한계를 뛰어넘기는 힘들다는 현실적 계산도 깔려 있다. 관련 예산 심의를 거부하겠다는 선언도 16대처럼 다수당일 때 위력이 있지, 최악의 경우 정부·여당이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면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다. 게다가 행정수도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할 경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또다시 여권에 끌려다니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표는 “빠른 시일 내에 당론을 결정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정부·여당과의 절충점을 찾기에 앞서 당내 이견의 폭을 좁히는 데에 적지 않은 땀과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 7월 대표 당선 이후 현 정부의 정체성 논란을 제기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비주류 의원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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