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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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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건은 첩첩산중이어라

등록 2004-08-20 00:00 수정 2020-05-03 04:23

한국군 도착 이후 다양한 에피소드… 부족장들과 정부의 힘겨루기부터 난감한 상황

▣ 아르빌= 글 · 사진 김영미/ 분쟁전문 프리랜서 PD

한국 자이툰군이 아르빌에 주둔하면서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지난 7월29일 아르빌 시내에서 제일 큰 호텔인 촤추라 호텔에서는 한국군에 납품할 업체들을 선정 계약하는 사업설명회가 열렸다. 가전제품이나 사무용 가구, 공사용 자재 등을 납품할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서다. 이제껏 아르빌에는 정부에 대충 잘 보여서 줄을 대 공사를 따내는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아르빌 의사들은 바짝 긴장

따라서 이런 선진화된 공개 구매 계약 방식은 그들에게는 처음인 셈이다. 아르빌 지역의 많은 업체들은 사업설명회에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 넓지 않은 아르빌에 한국군이 뿌린 화제 가운데 하나다.

그 밖에도 한국군 도착 이후 다양한 에피소드가 피어나고 있다. 이곳 아르빌만큼 한국군 파병에 민감한 곳은 없다. 한국군 도착 소문이 돌자마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은 아르빌 시내에서 자그마한 개인병원을 하고 있는 의사들이었다. 아르빌 시내에는 세 군데의 종합병원이 있다. 그리고 ‘사라 독토라’, 즉 ‘의사들의 거리’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거리에 100여개의 개인병원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다. 의사들은 나시리아에서의 한국군 활약상을 이미 전해들은 터다. 이들은 한국군이 아르빌에서 큰 병원을 차리거나 무료로 진료를 한다면 본인들의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내과 개업 의사인 술래만(47)씨는 “우리는 영세한 병원들이다. 그리고 환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한국군은 약도 좋고 시설도 최첨단이라던데, 우리 같은 의사들이 어떻게 그들과 경쟁하겠는가. 그래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맞은편에서 치과병원을 연 아델(39)씨는 “한국군은 주민들에게 돈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시리아에서도 공짜로 환자들을 진료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생계를 위해서 돈을 받아야 한다. 주민들은 돈을 내지 않는 한국군에게 진료받기를 원할 것이다. 더구나 우수한 의사들이 한국에서 온다는데 우리 같은 의사들은 갈 곳이 없어질 것이다. 이는 아르빌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차라리 우리들에게 그 기술을 나눠주면 어떻겠는가”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군이 그들에게 첨단의술을 전수한다면 아르빌 의사들의 우려는 별것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더 오랫동안 한국을 좋게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군은 지금 천막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르빌 시민 사이에 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에어컨이란 반드시 건물 안에 설치하는 것으로 안다. 에어콘이 싸지 않은 탓에 일반 시민들은 ‘에어쿨러’라는 물을 담아 돌리는 선풍기 비슷한 것을 쓴다. 하지만 한국군은 천막 안에 그 비싼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군은 어떻게 천막 같은 곳에다 에어컨을 설치하느냐”며 박장대소를 한다.

전기가 평화재건의 관건

아르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한국군이 아르빌시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군은 어느 마을에 길을 만들어줄 것이냐, 전기는 24시간 쓰게 해줄 수 있냐, 현대나 삼성 같은 큰 한국 기업은 왜 아직 들어오지 않느냐 등 꼬리를 이어 질문 공세를 폈다. 사실 아르빌 시내 중심부의 도로는 대부분 비교적 잘 닦여 있다. 이미 전쟁 이후 터키계 건설회사들이 공사를 할 만큼 했다. 심지어는 전쟁 중에도 폭격 하나 맞은 적이 없다. 걸프전 이후 이곳은 자치지역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비행금지 구역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빌과 인접한 살라아딘으로 가는 도로는 보기에도 시원하게 아스팔트 길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밖에도 아르빌의 도로 사정은 다른 이라크 지역보다 잘 되어 있다. 지금도 시내 곳곳에서 도로공사가 터키 회사에 의해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니 남은 곳은 시내 중심부를 벗어나는 곳인데, 그런 곳은 대부분 주요 가문들이 모여 산다. 이곳은 씨족사회다. 마을 이름만 들어도 어느 가문이 사는지 안다. 한국군이 길을 만들어준다는데 도대체 어느 마을이 우선순위냐고 묻는다. 그 이유는 “한국군이 어느 가문을 위해 길을 만들 수 있느냐”가 궁금한 탓이다. 한국군이야 다 같은 아르빌이고 취약한 마을을 우선순위로 정하겠지만, 이들에게는 그것이 아닌 듯하다. 한국군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지만 7천년 넘게 이곳에서 터 잡고 숱한 역경을 딛고 살아오면서 굳어진 이들의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르빌 시내와 주변 마을은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 물론 자체 발전기를 갖춘 집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집들은 하루에 10시간도 채 공급되지 않는 전기에 불만이 많다. 한국에서야 전기세를 내면서 전기를 쓰지만, 이라크에는 전기세가 없다. 전기는 국가에서 알아서 제공해주는 공공서비스의 상징인 셈이다. 아르빌 지역에서 제법 큰 부족인 솔치니 가문의 부족장인 오마르(62)씨는 “우리는 그간 임시행정처(CPA)에 많은 실망을 했다. 그들은 우리 부족 마을이나 아르빌 시내의 전기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군에 다시 한번 기대를 하고 있다. 우리 부족은 아르빌에서도 큰 부족이다. 우리는 한국군이 우리 부족을 위해 전기뿐 아니라 많은 것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노골적으로 주문했다. 아르빌 시내의 유일한 대학인 살라아딘대학의 인문사회학과 교수인 압둘 오마르(42) 교수도 “전기를 풍족하게 해주면 이라크 사람들은 ‘국가가 우리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만약 전기 사정이 안 좋으면 ‘국가가 해준 것이 없다’가 되는 것이다. 한국군이 더도 말고 전기만 24시간 나오게 해주면 성공한 평화 재건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바르자니의 피묻은 손

한국군이 정작 넘어야 할 난관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정치와 안전 문제다. 전기나 도로건설 등을 해결하려면 한국군은 직접 부족장이나 일반 주민들을 일일히 만나야 한다. 하지만 현지 아르빌 정부는 한국군이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이곳 아르빌 최고지도자이자 행정 수반인 리체르반 바르자니 총리의 삼촌, 마수드 바르자니는 지난번 인터뷰에서 불쾌한 표정으로 “한국군은 부족장들을 만날 필요가 없다. 그들과 관계를 왜 갖느냐. 한국군은 오로지 나와 정부만 통하면 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르는 바르자니는 부족장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 또한 바르자니라는 한 부족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솔치니 가문의 부족장도 5년 전에 그가 죽였다. 지금의 부족장은 죽은 솔치니 부족장의 동생이다. 그리고 그 부족이 사는 마을의 주민들을 학살하고 불을 질렀다. 마치 중세 시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지만 불과 5년 전의 일이다. 그 밖에도 부족장들과 죽고 죽이는 혈전을 지난해 이라크 전쟁 직전까지 벌여왔다.

그런 피 묻은 손으로 바르자니는 지금의 권력을 아버지에 이어 휘두를 수 있었다. 이른바 아르빌은 마수드 바르자니의 소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한국군이 직접 부족장들이나 주민들과 관계를 가진다면 바르자니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쥐고 흔드는 아르빌 정부에 모든 것을 의존하면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부족장들에게 한국군은 눈총을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한국군은 아슬아슬하게 정치적 줄타기를 해야 할 판국이다. 따라서 자이툰 부대가 외치는 평화재건 업무가 순조롭게 이뤄질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안전 문제는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며칠 전 미군은 모술 시내 중심가를 공습해 병원에 집계된 사망자 수만도 40여명이 넘는다. 같은 날 방송에 따르면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폐허 더미에 깔린 주검들까지 합하면 사망자가 100여명에 이른다. 그리고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통행금지가 이뤄지고 있다. 그 뒤 나제프도 미군의 공습을 받아 알 사드르의 군대인 메흐디 군대가 나제프 시내 전역에 깔려 있다. 아르빌도 이라크의 한 도시 가운데 하나다.

페슈메르가가 한국군 지켜준다고?

아르빌 정부는 자체 군대인 페슈메르가가 한국군을 지켜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페슈메르가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인가. 아르빌에 와서 두달이 넘게 그들을 지켜본 모습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갈대로 얼기설기 엮은 초소에서 차나 마시고 누워 있는 장면이다. “당신들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차 마시고, 점심 먹고 낮잠 자고 또 저녁 먹고…”라고 대답한다. “그럼 초소 근무는 언제 하느냐”라고 물으면 그들은 “이것이 근무다”라고 당당하게 답한다.

브라도스토니 가문의 부족장인 살람씨는 “폐슈메르가는 민병대이다. 정식 군인이 아니다. 민병대가 한국군 같은 정식 군인을 지켜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페슈메르가 가운데 상당수 군인들은 40여년을 넘는 전투를 벌이면서 이제는 노인이 다 되었다. 젊은이들은 자치지구로 설정된 1991년 이후 전투에 참가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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