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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유 40달러 넘으면 오일쇼크

등록 2004-08-19 00:00 수정 2020-05-03 04:23

한국경제, 투자와 소비 위축에 이어 실업 확대되는 악순환 우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우리 경제는 경기 부진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판인데 날마다 국제유가가 치솟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 내수가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그나마 수출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 노릇을 해왔지만 유가 충격으로 수출마저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오승구 수석연구원은 “고유가는 국내 경제 회복세를 발목 잡고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며 “기업 수익을 악화시켜 투자와 민간소비를 더 위축시키고 경제침체가 가중돼 실업이 확대되는 악순환 고리로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유가는 세금으로 일부 통제 가능

현대경제연구원은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40달러(하반기 평균)를 넘어서면 우리 경제가 제3차 오일쇼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선임연구원은 “두바이유가 45달러(서부텍사스중질유(WTI) 기준 50달러)까지 오르면 1차 오일쇼크 때의 실질가격에 육박하게 된다”며 “올 하반기 유가가 평균 40달러까지 치솟는다면 국내 경제성장률은 1.2%포인트 감소하고 물가는 1.2%포인트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유가 급등은 한국 경제를 외끌이하고 있는 수출에 당장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고공 행진하면서 수입 단가가 상승해 지난 4월 순상품교역지수가 84.8을 기록했다. 역대 최저치이던 지난해 3월의 85.1을 제치는 등 교역 조건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수출 단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반면, 고유가로 인해 수입 단가는 지속적으로 오르는 탓에 상품 한 단위를 수출해 벌어들인 돈으로 해외에서 물건을 사들이는 실질구매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유가 급등 요인은 2∼3개월의 시차를 두고 교역 조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근의 고유가 상황이 제대로 반영되면 상품교역지수는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가도 고유가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섰다. 국제유가가 10% 상승할 때 기업들이 제조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 인상으로 모두 전가할 경우 국내 소비자물가는 0.34%포인트 상승 압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0∼2003년 평균 원유도입 물량(8억4천만 배럴)을 고려할 때 국제 유가가 10% 상승하면 13억3천만달러의 무역수지 악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평균가격은 지난해 배럴당 26.8달러였으나 현재 배럴당 38달러까지 올라 지난해에 비해 약 40%나 올랐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이 충격이 국내 기름값에 곧바로 전달되겠지만, 그 영향은 어느 정도 통제될 수 있다. 석유제품 소비자 가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휘발유의 경우 65%)을 정부가 조정해 유가 인상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의 고유가 사태가 수요-공급 같은 펀더멘털보다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측면이 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통세 등 세금을 낮춰 유가 충격을 흡수하는 방안에 대해 쉽게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석유 수급에 지장이 없는 한 정부가 세금 인하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는 현재의 유가 폭등 사태를 1, 2차 석유위기 같은 ‘오일쇼크’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저유가 체제가 막을 내리고 ‘고유가’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사실 국제유가 급등이 최근에 갑자기 발생한 현상은 아니다. 국제유가는 이미 지난 한햇동안 12달러(35%)가량 올랐다. 최근에는 상승세가 더욱 가팔라졌다는 것뿐이다.

선진국보다 개도국에 엄청난 타격

유가 급등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고유가가 세계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겠지만 세계 경제 회복을 완전히 가로막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고유가가 성장을 늦추겠지만 경제회복 추세를 이탈 또는 후퇴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유는 유가 급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 1, 2차 오일쇼크 때에 비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들은 지난 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와 비교할 때 석유 의존율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2003년 세계 각국의 석유소비 금액 합계치는 세계 전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18%로 나타났다. 이는 1981년의 6.42%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으로, 그만큼 유가 급등의 충격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산유국도 각종 공업화와 건설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고유가로 인해 석유수입국에서 산유국으로 이전된 소득이 다시 세계 경제의 수요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벌어들인 엄청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산유국들이 수입을 늘리고 이에 따라 전세계 수출이 증가하는 효과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40달러일 경우 2003년 유가수준(WTI 31.14달러)에 비해 전세계적으로 2607억달러가량 추가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2004년 세계 명목 GDP의 0.65%에 달하는 것으로, 전세계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선진국과 개도국 경제가 받는 고유가 충격은 큰 차이가 난다. 선진국의 경우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에서 지식집약형 산업구조로 전환돼 유가 급등의 영향이 감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은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서야만 미국의 경제회복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경제전문가 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3분의 2는 유가가 연일 사상최고치를 깨고 있지만 배럴당 60달러 이상으로 올라야 미국 경제회복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3분의 1은 유가가 50달러대로 오를 경우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답했으며, 현재 유가 수준이 미국 경제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한 응답자는 한명도 없었다. 고유가로 인해 비록 미국의 하반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낮아졌지만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반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 아시아 개도국들의 GDP 감소율은 0.8%, 저개발국은 1.6%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개도국일수록 상품 한 단위를 생산하는 데 선진국보다 두배 이상 많은 석유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산유 개도국은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띠고 있는데다 고유가로 국제수지가 악화될 경우 통화가치 절하 압력에 시달리게 되는 등 외환 및 금융시장 불안까지 발생해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공급 물량 중단, 최악의 시나리오

한편, 원유 가격이 오르는 것도 충격이지만 더 큰 비상 사태는 원유 공급 물량 축소 또는 중단이다. 아무리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도 원유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쇼크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현재 국내 비축유는 정부 비축분과 민간 재고분을 합쳐 113일분에 달한다. 세계 석유 공급이 완전히 중단됐을 때도 약 넉달간은 버틸 수 있는 물량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요 원유 도입처가 정세가 불안한 중동 지역인데, 산유국의 유전과 생산시설이 파괴될 경우 공급물량 절대 부족이라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중국·일본으로의 중동산 원유 해상 수송로인 말라카해협에서 분쟁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말라카해협은 페르시아만 호르무즈해협과 더불어 2대 해상 병목지점으로 불리는데, 해적의 선박 절도가 해마다 수백건 발생하고 있고 테러조직의 테러 위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수송로는 미국의 군사력이 지켜주고 있으며, 중국은 미군의 말라카해협 주둔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SK경영경제연구소 김세진 연구원은 “미-중 관계가 악화돼 말라카해협 주둔 미군이 이 해협을 며칠간 막아버리거나 유조선 통과를 지연시킬 경우 아시아 지역 원유 수급에 엄청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이 와중에 괜히 우리나라가 돌을 맞아 원유 공급에 큰 타격을 받을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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