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지역 의회 재산세 소급감면안 통과의 비밀… ‘넓은 평형 고가 아파트’ 주민 중심으로 반발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서울시가 지난 6월1일을 기준으로 부과한 각 구별 올해분 재산세 고지서 납부기한은 8월2일이었다. 따라서 납부는 이미 끝났다. 기한 내에 내지 않으면 5%의 가산금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재산세를 둘러싼 파문이 ‘뒤늦게’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와 경기도 일부 지역 주민들이 재산세 인상에 반발해 구청에 잇따라 이의신청을 내고 있고, 반발이 거세지자 지방의회까지 가세해 ‘재산세 소급 감면 조례 개정안’을 속속 통과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거둬들인 재산세를 깎아 되돌려주겠다는 것인데, 이런 흐름이 거의 모든 자치단체로 번지면서 재산세 파문은 조세행정 차원을 넘어 ‘정치 문제’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올해분 재산세부터 소급 적용
광고

재산세 징수가 다 끝난 시점에서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일까? 발단은 서울 양천구에서 시작됐다. 양천구 의회는 지난 7월29일 ‘재산세율 20% 감면안’을 전격 의결하면서 이를 올해분 재산세에 소급 적용하도록 결정했다. “목동 등 양천구 일부 아파트의 재산세가 지난해 대비 3~4배가량 올라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양천구는 아파트 재산세가 지난해보다 평균 98% 올라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양천구 의회의 결정 이후 재산세 ‘깎아주기’ 조례안은 서울과 수도권의 각 자치단체들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주민들의 재산세 반발이 심한 성동구의 경우 구의회가 지난 8월9일 재산세율 20% 감세조례안을 본회의에 넘겼고, 용산구 의회도 오는 17일 재산세 20% 감면안을 의원 발의로 상정하기로 했다. 중구·영등포구·동대문구 의회도 재산세 감세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쪽을 보면, 성남시 의회가 애초 지난달 15일 내년에 부과되는 재산세부터 세율을 30% 삭감하기로 의결했으나, 지난 7일 임시회를 다시 열어 올해분 재산세부터 소급 적용하는 쪽으로 바꿨다. 양천구의 재산세 감면 소급 적용 소식을 접한 분당구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어 구리시 의회도 지난 6일 이미 부과된 올해 재산세를 30% 깎아주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광고
각 자치구의 이런 행동에 대해 서울시와 경기도는 “재산세 과세기준일이 경과되고 납부시한이 끝난 시점에서 소급 감면하겠다고 하는 것은 세무행정의 공신력과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며 지방의회에 재의를 요구하도록 각 자치단체장에게 강력 권고하고 있다. 또 지방의회가 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재의결할 경우 법원에 조례무효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그럼에도 지방의회들은 아랑곳 없이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선출직인 구청장과 구의원들은 “주민들의 재산세 반발을 앞장서 막다가는 괜히 인심만 잃을 수 있다”면서 일단 감세 조례안을 통과시켜놓고 정부 또는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태도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가 양천구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지만, ‘원인 제공자’는 강남 지역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지난 5월 강남·서초·송파·광진구 의회가 재산세율을 각각 30%, 20%, 25%, 10%씩 이미 낮춰버렸기 때문이다. 재산세 고지서를 발부하기 이전에 강남쪽 자치단체들이 이미 발빠르게 재산세 감면안을 통과시켜 올해 부과분부터 적용해버린 탓에 상대적으로 강북 주민들의 재산세 인상폭이 더 커진 것이다. 서울시로부터 굳이 재정지원교부금을 안 받아도 되는 강남·서초·송파·광진구는 정부의 말을 듣지 않고 재산세율을 감면해준 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강북쪽 자치단체들은 “말을 듣지 않으면 재정교부금을 깎아버리겠다”는 서울시의 엄포 앞에서 정부 방침에 따라 재산세 인상 고지서를 그대로 발부한 것이다. 용산구청 세무과 관계자는 “강남구가 감면조례안을 통과시킬 때 우리도 내부에서 신중히 논의했지만, 시에서 교부금을 받아와야 하는 형편이라서 서울시와 정부의 방침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40평형 이상 아파트 주민들이 난리”
광고
따라서 이번 재산세 파문은, “왜 지난해보다 대폭 오른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일부 섞여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면 “왜 부자들이 사는 강남보다 더 많은 재산세를 내야 하느냐”는 조세 형평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강남의 시가 5억원짜리 13평 아파트보다 강북의 2억원짜리 30평 아파트 주민이 재산세를 더 많이 내는 조세 불공평을 해소하려고 정부가 올해부터 재산세율을 인상했음에도 강남 지역이 세율을 미리 깎아줘버린 탓에 똑같은 형평성 문제가 또 터지고 만 것이다.

사실 양천구도 재산세 고지서 발부 이전에 강남구처럼 재산세율 감면을 시도했으나 불발로 그쳤다. 그런데 강남 지역의 재산세 감면으로 인해 양천구가 느닷없이 재산세 인상률 1위로 올라서게 됐고,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자 구의회가 소급 감면 조례안을 제정하는 조세행정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성동구청의 경우 고지서 발부 이전에 재산세 안내 소책자까지 만들어 10여 차례 관내 아파트 단지를 돌며 재산세 인상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를 구했고 구의원들도 주민 설득 작업에 적극 나섰다. 성동구청 세무과쪽은 “그런데 나중에 강남과 양천구의 세금 감면으로 인해 조세 형평성이 무너지면서 우리 구청이 갑자기 주민들한테 몰매를 맞게 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고 털어놨다.
주목할 대목은 각 자치단체의 모든 주민이 재산세 인상에 반발해 들고 일어선 형국은 아니라는 점이다. 강북 지역을 보면 대체로 40평형대 이상 중대형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용산구청 세무과 관계자는 “부촌으로 불리는 동부이촌동과 용문동에 사는 40평형 이상 아파트 주민들이 난리”라며 “이촌동 LG자이아파트의 경우 50평형 재산세가 지난해 60만원에서 올해 210만원으로 올랐는데, 시가 10억∼15억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20∼30% 감면해서 50만원 정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집단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의 경우 탄력세율 10% 감면을 적용해 중대형 아파트 주민들한테 재산세를 깎아주면 100억원 정도 세수가 줄어들게 돼 섣불리 감면해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성동구청 세무과쪽은 “재산세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행당동, 응봉동 등 최근에 신축한 한강변 35평형대 이상 중대형 아파트에 사는 부유층들”이라고 말했다. 공동주택(아파트) 재산세를 깎아주게 되면 세수입을 위해 내년부터 대신 단독주택 재산세를 올려야할 수도 있다.
재산세 저항이 강북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강북이라 해도 ‘넓은 평형의 고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집단 반발하는 양상인데, 이런 현상은 노원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노원구의 경우 재산세 저항 움직임이 거의 없었으나, 최근 중계동 대림벽산아파트(41·51평형)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나서면서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대림벽산아파트 관리사무소쪽은 “지난 3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왜 노원구청은 가만히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온 뒤 구청에 연명으로 재산세 이의신청을 내기로 결정했다”며 “상계동 아파트까지 합쳐 과도하게 재산세가 많이 오른 6천여 가구를 모아 재산세 반환 연합소송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민 밀집지역에선 이의신청 없어
‘강북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중계동 은행4거리 주변 대림벽산아파트(시가 6억∼7억원) 주민들이 나서면서 그동안 묵묵히 재산세를 냈던 다른 동네 주민들까지 들쑤셔놓고 있는 격이다. 물론 이 아파트 입주자들은 “서민 주거지역인 노원구에서의 재산세가 강남과 비슷하게 부과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대림벽산아파트 41평형 재산세는 지난해 18만8천원에서 올해 47만4천원으로 뛴 반면, 송파구 잠실 우성1차아파트 45평 재산세는 32만4천원이 부과됐다. 그러나 중계동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아파트값 급등으로 대림벽산아파트 41평형 기준시가는 지난해 말 3억8천만원에서 올 4월 5억2천만원으로 대폭 올랐다.
이런 양상은 성남시와 서울 중구도 마찬가지다. 성남시의 경우 구별로 올해 재산세가 수정구 9.7%, 중원구 10.2%, 분당구 50.7% 인상됐다. 그러나 분당구에서는 정자동·야탑동 아이파크 등 3개 단지를 중심으로 입주자들이 집단 서명한 1천여건의 재산세 이의신청이 들어왔지만 수정·중원구는 단 한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중구청 세무과 관계자는 “남산타운과 신당6동 등 최근 지어진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4개 단지에서 주민들이 연명으로 이의신청을 냈는데, 고가인 40평형 이상 아파트 주민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세정과 전동훈 계장은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재산세 소급 적용이 될지 안 될지 불확실한데다 기한 내에 안 내면 가산금이 붙기 때문에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약삭빠르게 일단 세금은 내놓고 이의신청을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강북의 부자 동네 부자 아파트 주민들이 주로 저항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조세 부과에 위법 행위가 전혀 없었는데도 나중에 집단 민원 때문에 세금을 환급해준 사례는 조세 역사상 한번도 없었다”며 “재산세 감면은 ‘고가’의 ‘대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만 세금을 깎아주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아무튼, 수억원짜리 비싼 아파트 단지에 사는 소수 주민들이 ‘특유의’ 부녀회 응집력 등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재산세 저항을 확산하고 있다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부의 판단이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탄핵 선고 앞두고 주말 ‘100만 시민 총집중의 날’
김건희 개인송사 지원한 대통령실…대법 “근거규정 공개해야”
금요일 밤에도 “윤석열 파면”…마지막일지 모를 100만 집회 예고
“윤석열만을 위한 즉시항고 포기” 검찰 앞 1인 시위한 판사 출신 교수
“윤 대통령, 김건희 특검법으로 힘들어해…한동훈엔 심기 불편”
‘소득대체율 43%’ 연금안, 이르면 다음주 복지위 처리할 듯
“윤석열 즉각 파면”…노동자·영화인·노인·청년 시국선언 잇따라
김새론 모친 “딸 거짓말 안 해…사이버 레카 단죄할 길 만들고 싶어”
임은정 검사 “즉시항고” 게시글, 검찰 내부망서 2시간 만에 삭제
윤석열 탄핵선고 지연에 야당 긴장감…“심상찮다” “8대0 불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