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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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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공모] 페트병 죽부인, 에어콘 기죽이다

등록 2004-08-12 00:00 수정 2020-05-03 04:23

독자들이 공개하는 ‘방콕’ 피서비법… 웰빙 추어탕 · 소포 이용법에서 아내사랑 러브타임까지


‘방콕비법’ 응모에 독자들의 성원이 뜨거웠습니다. 정신력으로 극복하라는 ‘스님형’ 비법에서부터 ‘나만의’ 은밀한 해답이라 하기엔 온 국민의 여름나기법인 ‘수박 먹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비서(秘書)들이 날아왔습니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모든 독자의 글을 실어드리지 못하는 점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약속대로 글을 보내준 모든 분들께 (우종영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을 보내드립니다. 고심 끝에 선정한 7개의 방콕비법, 당신도 실천해보십시오. -<i>편집자</i>


나는 페트병 실용주의 노선

- 최현옥/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청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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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다. 하지만 즐거운 방콕을 위해선 에어컨이 필요할 거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고? 직접 에어컨을 만들어낸다. 그 비법을 공개하겠다.

일단 빈 페트병을 여러 개 모아선 물을 가득 채워 냉장고에서 얼린다. 날이 더운가? 자, 얼린 페트병을 꺼내와라. 선풍기를 틀고 페트병을 그 앞에 쫘르르륵 늘어놓는다. 그러곤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바람을 느껴보시라. 선풍기조차 더운 바람 낸다고 툴툴거리던 분들!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시는가? 찬 기운이 솔솔 몰아치는 게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얼른 실천해보시라. 그래도 부족하다고? 그렇다면 큰 수건을 하나 가져와라. 그리고 얼려놓은 페트병을 수건으로 감싸서 안고 잔다. 일명 페트병 죽부인. 이즈음 되면 에어컨이 절대 필요 없다. 더울수록 꽉 안아주길 바란다.

그렇게 얼렁뚱땅 페트병의 도움을 받아 낮잠을 즐기고 나면 조금 서늘해진 초저녁에 수박을 사러 나간다. 통통하고 맛있는 놈으로 하나 고른다. 그런데 수박 사러 갔다왔더니 덥다고? 다시 페트병이 등장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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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에 물을 받아선 얼려놓은 페트병 몇개를 넣어준다. 미지근한 물이 정말 차가워진다. 얼음을 넣으면 어느 순간 못 견디게 시려워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지만, 페트병이라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너무 물이 찰 때는 그냥 간편하게 페트병을 빼면 된다. 시원하게 목욕 한번 해보기 바란다. 좌욕이 만병통치약이라나 뭐라나. 수박도 욕조 한구석에 담가주면 금세 차가워진다. 그러곤 이 기분을 그대로 살려서 공포영화를 본다. 무더운 여름이 엄청 서늘해진다.

나의 방콕 스타일, 페트병 몇개만 있으면 장땡!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길.

자기야, 우리 함께 샤워나 할래?

- 김기섭/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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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과감하게 바캉스 개혁에 착수했다. 이름하여 방캉스! 방(房)에서 즐기는 즐거운 바캉스.

우선 아이들을 나의 휴가 일정에 맞춰 여름캠프를 보낸다. 애들도 엄마아빠 손 잡고 놀기보단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니 이 결정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집 강아지. ‘도그 캠프’가 있으면 보내련만 할 수 없이 그냥 데리고 있는다. 그리고 아내. 실과 바늘 같은 부부는 함께 있어야 한다. 가을 단풍여행을 약속하며 일단 아쉬움을 무마하고.

그리고 본격적인 방캉스 돌입! 만성적 피로의 주범인 부족한 수면을 퇴치~. 한두 시간 늦게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벗고 살기~. 아이들도 없고 집에는 나와 아내 단 둘. 구태여 빨랫거리를 늘려줄 필요는 없다. 헐렁한 트렁크 반바지 하나면 충분하다. 그럼 아내는? 그것은 노코멘트다. 그리고 아내와 컴퓨터 게임~. 집에 있는 데스크톱과 사무용 노트북을 하나씩 끼고 온라인 게임을 하면 재미가 쏠쏠하다. 셋이 치는 고스톱에서 패를 의논하며 치면 정말 짜릿하다. 물론 돈을 걸지 않은 게임이니 사기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내와의 러브타임~. 애들을 키우다 보니 부부간의 애정표현은 날로 어려워지는데 이참에 신혼 기분 내본다고 아내에게 함께 샤워하자고 했다. 아내는 주책없다고 눈을 흘긴다. 그래서 등 좀 밀어달라고 욕실로 불러서 물을 확 끼얹었더니 아내도 아이처럼 내게 물을 뿌리고. 역시 물싸움은 어릴 때나 나이 먹어서나 재미있다.

그렇게 놀다가 저녁이 되면 이젠 제대로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아침 점심은 대강 챙겨먹어도 저녁만큼은 아내와 로맨틱한 디너타임을 갖는다. 요즘은 입맛대로 일식·중식·양식 배달이 되니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다. 아내와 연애할 때 함께 듣던 음악을 모아 구운 CD를 오디오에 넣고 촛불 켜고 와인만 준비하면 특급호텔 저녁식사보다 더 근사해진다.

저녁을 마치곤 아내와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오랜만에 팔짱을 끼고 걸으며 편안하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면 그동안 아내가 내게 가지고 있던 서운함과 오해까지 자연스레 풀리게 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간식거리를 사고 보고 싶은 영화도 빌리고 나서 가장 편한 자세로 집에서 영화를 본다. 그리고 취침….

이런 방캉스 4, 5일 하고 나면 푹 쉰 기분에 다시 출근할 땐 몸이 아주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휴가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동료들 앞에서 끄떡없다. 그리고 가을에 떠날 호젓한 가을여행을 생각하며 방캉스 여운을 가져본다. 바캉스? No! 방캉스? Yes!

주먹표 수박과 좋은 친구들

- 우정렬/ 부산시 중구 보수동

오래 전,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당시 자취생활을 하던 나와 친구들은 찌는 듯한 여름방학을 맞이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피서지는 꿈도 꾸지 않은 채 그저 동네에 눌러앉아 수박이나 실컷 먹고 싶었다. 대부분 집이 먼 시골에 있었고 자취방엔 세끼 밥 외엔 달리 먹을 게 없었던 것이다.

찌는 듯한 더위를 참지 못한 친구 하나가 결국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더니 시장에 갔다. 며칠째 수박타령을 했던 우리들. 친구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공수한 싱싱한 수박 한 덩어리가 눈앞에 나타나자 우린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나를 비롯한 성질 급한 친구들은 빨리 쪼개라고 재촉부터 했고, 방을 뒤져 식칼을 찾았건만 아뿔싸 칼이 없다. 단단한 수박이 ‘나 먹어봐’ 하고 속삭이는데 먹지 못하고 침만 삼키고 있자니 빡빡머리들의 심정은 말이 아니었다.

“저걸 어떻게 먹지” 모두 고민에 빠져 있는데 평소 힘이 세기로 소문난 친구 하나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 손으로 수박을 잡고 다른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퍽!’ 세게 내리쳤다. 수박은 사방으로 파편을 튀기면서 ‘쩌억’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났다. 단물을 가득 머금은 수박 속살이 드러나자 우리는 다같이 “와~!” 환호성을 질렀고, 울퉁불퉁한 수박을 하나씩 손에 들고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예쁘게 썰어 얼음까지 띄워주시던 수박보다 훨씬 시원하고 달았다. 입가에 까만 수박씨를 하나씩 붙이고 수박물을 질질 흘리며 먹던 우리의 모습은 요즘 사람들이 보면 영락없이 거지꼴이었을 것이다. 수박 하나에 마음 뿌듯했던 여름살이 시절이 있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더위를 이기는 진짜 방법은 좋은 여행지에서 즐기는 바캉스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과 좋은 친구들인 거 같다. 수박 한 조각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올여름 더위도 멀리 달아날 것이다.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 아니겠는가. 방에 앉아 냉수 한잔을 마셔도 좋은 친구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무더위는 싹 가실 게다.

추억으로 방바닥을 어질러라

- 한승우/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주엽1동

방콕이 제공하는 협소한 영토에서 이국적 묘미는 최대한 살리면서 남부럽지 않은 풍부한 감상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방콕비법을 말하자면, 우선은 ‘번거롭지 않아야 한다’는 게 패키지 방콕 상품의 전제가 되겠다. 또 곰의 겨울잠과 자웅을 겨룰 정도의 최소 에너지 소모량을 필요로 해야 한다. 남들이 ‘나 여행 중~’이라고 과시하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면서 물량 공세를 펼칠 때 이에 초연할 수 있는 도인 기질도 한시적으로 요구된다. 한편으론 끝내 득도를 하지 못한 욕구불만형도 참작해야 한다. 간단한 패키지 상품 소개를 올리겠다.

먼저 앨범 속 사진과 그동안 받은 쪽지·편지·애장품을 죄다 방바닥에 쏟아놓는다. 중·고교 시절 선생님 몰래 ‘전달’이라고 암구호를 대며 은밀히 돌리던 쪽지나 끝내 건네지 못한 연애편지 등 자질구레하면서도 추억을 일깨우는 모든 걸 찾아내 방에 어질러놓길 바란다. 방콕여행 히스테리를 해소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사정없이 헤집어놓길 바란다.

그리고 천천히 그것들을 다시 수집하는 거다. 사진은 단순히 시간 순이 아니라 애절한 순, 잊어버리고 싶은 순 등 나름의 주제를 잡고 정리해나가면 ‘어질러놓고 새삼 청소한다’는 당혹스러움을 상당량 덜 수 있다. 사진 찍었던 시절의 애틋한 감상이 문득 기억 속에서 낚아올려질 때면 한 옆에 메모하는 것도 좋다. 한편의 개인 서사시를 쓴다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줄거리를 구성하면서 이 작업에 접근하면 방콕은 이내 진지한 예술활동이 되어 은밀한 흥취를 안겨줄 것이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다간 평범한 서랍 정리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쪽지나 편지 애장품들을 잘 구분했다면 포장을 해서 친한 이에게 소포를 보낸다. ‘개봉불가! 보관요청’이라는 메시지를 붙여서 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친구야, 내가 속물이 되려 하거나 남을 등쳐먹고 살려 할 때, 혹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을 때 다시 나에게 선물해주길 바란다.” 좀 궁상맞아 보이는가? 아니다. 상자의 가치를 알아주고 내 곁에서 날 지켜봐주는 친구를 만들 수 있다면 그리 유치한 장치라고만 할 순 없을 거다.

이 방콕 상품은 ‘타임캡술’이라는 말과 함께 그럴싸하게 마무리된다. ‘나’라는 사람을 충실히 표현해내는 것들을 엄정하게 선별하여 상자에 담아 동네 어둑한 곳에 오랜 시간 묵혀두는 거다. 땅에 묻을 때 동네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런 오해들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다. 묵히는 시간은 3년 이상이면 좋겠다. 그걸 만들었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졌을 때, 갑작스런 계시를 받아 다시 파헤치는 날이 올 거다. 다시 봤을 때의 즐거움, 그건 상상 이상이 될 터. 이 정도의 은밀한 모의가 성사되면 방콕은 나만을 위한 멋진 여행이 되지 않을까.

여운형과의 진땀나는 대화

- 김양오/ 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

“문을 모두 닫아라!”

대학교 4학년 여름, 지난 4년간 전공 공부를 게을리한 걸 후회하며 ‘이번 여름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일찌감치 졸업 논문 준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으로 가자, 바다로 가자 노래하는 친구들의 달콤한 유혹을 과감히 물리친 나는 문을 굳게 닫고 몽양 여운형 선생과 대면했다. 2층 양옥의 2층에 자리잡은 우리 집, 옥상에서 내려오는 복사열로 통째 후끈후끈거렸다.

‘이까짓 더위쯤이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마음을 굳게 먹고 현관문, 방문, 창문, 문이란 문은 모두 닫았다. 집안이 고요해진다. 거실에 돗자리를 깔아 넓은 상 하나 펴놓고 여운형과 관련된 논문과 자료집을 잔뜩 쌓아올렸다. 그리고 하나씩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아니나 다를까 온몸은 땀에 젖어들기 시작하고 엉덩이도 축축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굴할쏘냐. 아니, 난 사실 기뻤다.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 땀구경하기 힘든 나로서는 비오듯 내리는 땀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와, 이 땀! 훌륭하다. 더 많이 흘러라. 즐겁구나.’ 선풍기는 저만치 구석으로 밀어넣고 부채질도 한번 하지 않은 채 땀으로 범벅된 내 몸을 보면서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방학은 끝났고, 나에게 한편의 논문이 남았다. 담당교수가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 명작 논문이 탄생한 것이다.

그 뒤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 전까지 항상 여름 한복판을 그런 식으로 즐기며 보냈다. 여행은 남들 일할 때 호젓하게 떠나고, 남들 피서가는 기간엔 문을 모두 닫고 고요한 절간 같은 집안에 앉아 그동안 읽지 못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독파해가면서 나의 큰 산들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땀에 흠뻑 젖어가며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아무리 어려운 책들일지라도 끝까지 다 읽게 되는 거다. 그 뒤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책을 덮고 물이라도 한번 끼얹어주면 그 어느 계곡물도 여기에 비할 수 없다.

하나 어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린 지금은 그때의 방콕피서가 꿈같이 느껴진다. 2살, 5살 된 아이들과 문을 닫고 책을 읽으면서 땀을 흘린다? 아마 책을 펼치기도 전에 아이들이 땀을 뚝뚝 흘리며 내 몸뚱이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애원할 거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무더운 여름을 가뿐하게 보낼 수 있는 엄마용 방콕피서법은 어디 없나.

수건과 흰종이만 준비하시오

- 박진희/ 전북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

내가 있는 전주는 알고 보면 평균온도가 높기로 소문난 대구나 밀양을 웃도는 더위를 보인다. 대구는 조림사업으로 기온이 내려가는 효과를 보는데 전주는 도시 녹지조성사업에 실패했다나? 뭐, 그렇다고 전주시만 탓하고 있다간 내가 타죽을지도 무른다. 위기감에 섬뜩해진 나는 더위 퇴치법을 홀로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난 조그만 옥탑방에 산다. 옥탑방은 바람이 잘 통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겨울엔 참 춥고 여름엔 참 덥다는 특징이 있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지붕에 물을 뿌리면 100도 끓는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지붕에서 내리는 물이 팔에 닿았을 때 화상 입는 줄 알았다. 방바닥은 보일러를 땐 것처럼 뜨끈뜨끈하고 수도를 틀면 온수가 나온다.

그래서 폭염이 시작된 며칠간은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우연히 무더위를 단숨에 쫓아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준비물은 단 두 가지, 물과 수건이다. 수건은 클수록 좋다. 준비됐는가? 시작한다. 빠르게 해야 하므로 집중력이 요구된다. 먼저 수건을 통째로 물에 적신다. 그 다음 몸에 감싼다. 그리고 옷을 입는다. 혼자 있다면 안 입어도 된다. 안 입으면 더 시원하다. 끝이다. 너무 허무한가?

나도 처음엔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당장 실행해보라. 선풍기·에어컨 다 필요 없다. 수건이 금방금방 마르는데 그렇다면 물을 적시고 또 적시면 된다. 정말 해보라는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다. 특별히 흥미로워 보이지도 않고 신뢰도 안 갈 거 같아 무작정 강요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이만큼 강조하는 사람의 성의를 봐서 꼭 한번 실행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시원해졌는데 별로 할 일이 없다면 잡다한 물건들을 정리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은데 이미 그런 건 다 했다고 말하겠지? 그렇다면 다른 놀이가 있다. 바로 흰종이놀이다. 준비물은 흰 종이와 볼펜이 전부다. 흰 종이에 자신이 예전에 꿈꿨던 거나 지금 하고 싶은 것, 앞으로 꼭 하고 싶은 것 등을 두서없이 적는다. 말 되는 것, 안 되는 것 가리지 않고 적는다. 구체적이어도 되고 대충 적어도 좋다. 앞날의 설계도가 될 수도 있고 과거지사 보고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바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게 된다. 덜컥 사놓고 팽개쳐둔 책이 읽고 싶어지기도 하고, 귀찮아서 내버려둔 여드름을 터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보고 싶은 누군가가 생각날 수도 있다. 나는 예전에 내팽개친 음악공부가 생각나서 다시 하고 있다. 물론 지금 내 몸엔 젖은 물수건이 감싸져 있기 때문에 한여름 음악공부는 순항 중이다.

하지만 지나친 방콕은 몸에 안 좋다. 몸에서 곰팡이가 피기 때문이다. 집보다는 시립도서관이나 동네 나무 그늘로 나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게 건강에 좋다. 역시 귀찮다고? 그렇다면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서 물수건을 만들어와라. 크크크. 정말 시원하다.

‘자고로 잘 먹는 게 남는겨~’

- 황복희/ 대전시 동구 성남동

3년 전 여름휴가 때 유명한 해수욕장에 갔다가 바가지를 ‘제대로’ 쓴 경험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 있는고로 올해 피서도 일찌감치 ‘방콕행’으로 점지해둔 터였다.

엊그제부터 나흘간의 휴가가 시작됐다. 휴가 첫날. 밀린 빨래와 집안 청소를 하느라 하루 종일 부산을 떨다 보니 황금 휴가 첫날은 처참하게 붕괴됐다. (한국의 주부들은 실로 불쌍하다!) 그리고 둘쨋날은 김치 담그기. 오전부터 시장에 가서 낑낑거렸더니 땀방울은 비오듯 쏟아지고 고문이 따로 없었다. 둘쨋날도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오늘. 문제는 오늘이었다. 남편은 출근했고 딸도 등교했다. 무료하게 집 지키는 강아지가 돼버리면서 갑자기 나의 휴가가 너무나 황량해졌다. 그리하여 좌우고면하다가 동네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시원하게 치곤 동네 목욕탕에 갔다. 수영장 온 셈치곤 냉탕에 들어가서 한 시간을 버티고 앉아 있었다. 온몸이 냉각되니 슬슬 휴가 기분이 났다. 머리를 털고 점심 나절에 목욕탕을 나섰다.

해는 한가운데 떠 있고 더위는 아침보다 더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더위엔 냉면보단 여름 보양식이 간절해지는 법. ‘그래, 남들은 거금을 탕진해서 바다로 계곡으로 간다는데 난 이게 뭐야.’ 하여 두 눈 딱 감고 택시를 잡아타곤 추어탕을 잘한다는 식당에 갔다. ‘그래 나도 웰빙이다 웰빙.’ 추어탕 한 그릇에다 큰맘먹고 복분자술도 한병 시킨다. ‘자고로 잘 먹는 게 남는겨~’ 하지만 술에 약한 난 두잔에 어질해지고 결국 술을 싸들고 집으로 가져왔다. 술만 좋아하는 ‘웬수’ 같은 남편이지만 세상에서 하나뿐인 지아비인 걸 어쩌랴.

빨래를 걷으려고 마당에 나가니 매미가 구슬피 울고 있다. 긴긴 세월 동안 나무 수액과 이슬만 빨아먹으며 칩거하다가 세상에 나와선 고작 보름 울고 떠나버리는 너. 참 처량하게 울고 있구나. 매미야, 네가 사라질 때면 이 여름도 꼬리를 내리고 가을이 오겠지. 짧은 생 노래하다가 떠나가면서도 유유자적하는 매미 앞에서 왜 인간들은 오늘도 “더워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건지. 내 하루 남은 내일의 휴가는 너처럼 일상을 달관한 도사가 돼봐야겠다. 이 더위를 온몸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관조하는 하루를 보내리.


‘방콕비법’ 응모에 독자들의 성원이 뜨거웠습니다. 정신력으로 극복하라는 ‘스님형’ 비법에서부터 ‘나만의’ 은밀한 해답이라 하기엔 온 국민의 여름나기법인 ‘수박 먹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비서(秘書)들이 날아왔습니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모든 독자의 글을 실어드리지 못하는 점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약속대로 글을 보내준 모든 분들께 (우종영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을 보내드립니다. 고심 끝에 선정한 7개의 방콕비법, 당신도 실천해보십시오. -<i>편집자</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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