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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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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공포콩트페스티벌] 마네킹도 떨어뜨린 저승사자!

등록 2004-08-05 00:00 수정 2020-05-02 04:23


푹푹 찌는 여름입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만사가 귀찮습니다. 은 8월 한달간 특별한 ‘에어컨’을 준비했습니다. 독자들의 소름을 돋게 해드리는 ‘엽기 공포콩트 페스티벌’. 매주 2명의 작가들이 으시시하면서도 재미있는 콩트 한편씩을 들고 4주 동안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덜덜 떨면서 마음껏 웃어보십시오. -편집자


얼굴에 붉은 피칠한 미스 김을 잡아간 사람들… 다음날 ‘각하’의 목덜미에서 귀신 손톱자국을 보다

아파트 옥상에 걸린 달을 보아하니 오늘이 음력 보름쯤 되는 날인 성싶은디. 더위 먹은 소, 달 쳐다보고도 헉헉댄다더만 내가 그 짝이네. 아이고, 뭔 놈의 날씨가 밤낮 안 가리고 요렇게 덥다냐.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고 하도 졸라쌍께, 이 삼춘이 말이여, 등골이 오싹한 얘기 하나를 해줄 것이구먼. 시방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지어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화여, 실화. 알겄냐?

마네킹을 절벽으로 내던졌는데…

내가 이래 봬도 왕년에 영화 제작에 종사했던 사람 아니겄어. 뭐, 감독은 아니었고 조감독으로 몇년 따라댕겠제. 요새도 여름철만 되면 납량 시리즈다 뭣이다 해서 텔레비전에서 공포물들을 가끔 방영하제마는 옛날에는 영화업자들이 여름 한철에 귀신장사 해서 일년을 묵고 살았당께.

각설하고, 그해 초여름에 충청도 월악산쪽으로 영화를 찍으러 안 갔겄냐. 제목이 아마 , 뭐 그쯤 됐을 것이여. 여주인공 이름이 순례였그등. 스토리가 어떻게 되냐고? 아, 옛날 공포영화 줄거리 그거 안 봐도 뻔하지 뭔 놈의 스토리 따지려고 그래. 순례가 김 대감 집 아들 만복이한테 시집을 갔는디 애기를 못 낳응께 새 각시 맞이하려고 아들·부모가 짜고 며느리를 죽인 것이여. 죽은 순례가 귀신이 돼 나타나서 복수를 한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여. 그란디 그 영화 내용이 무섭다는 것이 아니고, 영화를 찍다가 우리가 진짜배기 귀신을 만나부렀다, 이것이 겁나는 사건이랑께.

영화를 찍던 그날 밤도 꼭 지금처럼 달이 솟아 있었제. 출연자들 분장이 시작됐는디,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미스 김’은 머리를 산발하고 귀신용 덧니를 달고 입술 언저리에 붉은 물감을 섞은 토마토즙을 더덕더덕 칠하면서도 그날 밤 내내 기분이 좋아서 들떠 있었어. 왜냐고? 하루 전에 발행된 주간지에 자신이 표지모델로 등장했그등. 이라고 알랑가 모르겄는디 그 잡지에 끈 달린 헝겊 쪼가리만 대충 걸치고 요염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나온 것이여. 앗다, 내가 봐도 요샛말로 하자면 실물보다 더 섹시하드랑께. 감독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겄제. 파격적으로 신인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발탁했는디 ‘ 주인공 맡은 팔등신 미녀…’ 어쩌고 하는 기사로 영화선전을 미리 해줬으니 말이여.

“자, 182번 신, 준비됐나? 달밤에 만복이가 귀신에 홀린 듯이 허둥지둥 산길에 나타난다, 이때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에 피를 칠한 순례가 무덤 옆에서 불쑥 일어선다, 만복이가 공포에 질려 뒷걸음친다, 그 장면이야 알겠지? 카메라 준비하고 레디, 고!”

평소 성질이 불같아서 스태프와 연기자들 사이에서 호랑이로 소문난 그 감독은, 목소리마저 호랑이 울대를 타고나 달빛에 고여 있던 계곡이 쩌렁쩌렁 울리더랑께. 어쨌든 182번 신은 무사히 찍었제.

그 다음 신은 겁에 질린 만복이가 뒷걸음을 치다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장면이었그등. 배우를 실제로 굴러떨어지게 할 수는 없응께 마네킹에다가 만복이가 입고 있던 고쟁이하고 저고리를 입혀갖고 던지면 절벽 아래에서 카메라가 잡는 식으로 콘티를 짜놨어.

“자, 카메라 준비됐어. 마네킹 던져, 레디, 고!!”

나는 감독의 지시에 맞춰서 마네킹을 절벽 아래로 내던졌어. 허, 참, 그란디 말여, 이놈의 마네킹이 잘 내려가다가 그만 소나무 가지에 떠억 걸려뿐 것이여. 그 호랑이 감독이 노발대발 아예 나를 잡어묵을 것 같드랑께. 마네킹은 한개밖에 준비하지 않았는디, 어쩔 것이여?

머슴, 기절하다

“야, 니놈 잘못으로 나무에 걸렸으니까 니가 올라가서 갖고 내려와!”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니겄어? 나도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나무깨나 타고 자랐제마는, 20m도 넘는 까마득한 높이에다, 그것도 소나무 가지 끝에 걸려 있는 마네킹을 뭔 재주로 끌어내릴 것이여? 그나저나 일단 올라가는 시늉은 해야 쓰겄드라 이 말이제.

“야, 너 그 차림으로 나무를 탈 거야? 어이, 거기 만복이, 옷 벗어서 조감독한테 입혀!”

그래서 나는 만복이 역 맡았던 남자배우가 입고 있던 고쟁이하고 저고리로 갈아입고 나무를 올랐제. 앗다, 20m 높이를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봉께 머리가 뱅뱅 돌고 사타구니에서 오줌이 찔끔 나오더라고.

“매미새끼처럼 거기 그렇게 붙어 있으면 어떡해! 소나무 가지를 밟고 마네킹 있는 쪽으로 걸어가란 말이야!”

호랑이 감독이 하도 무섭게 다그치는 바람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할 수 없이 마네킹이 걸려 있는 나뭇가지 위로 올라섰제. 그 가지가 부러지는 날엔 영락없이 황천행 아니겄어?

그란디, 얼핏 아래쪽을 내려다봤듬만 내가 떨어질 지점쯤에다 매트리스 몇장을 포개놨더라고. 거그까지는 좋다 이것이여. 카메라가 내 쪽으로 눈깔을 겨누고 마구 찍어대고 있드란 말이제. 마네킹 대신에 나보고 떨어지라는 얘기 아니겄어?

나는 배신감 때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걸음을 되물려서 내려와부렀제.

부랴부랴 다른 마네킹을 가지러 떠난 소품 담당이 돌아올 때까지 스태프와 연기자들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이틀 낮밤을 꼬박 강행군을 하다봉께 다들 지쳐 떨어졌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주인도 모르는 묘지 근처에 널브러져서 잠이 들어부렀당께.

나는 감독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한쪽에서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는디, 그때였어.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은.

“으악, 귀, 귀신이다아!”

머슴 역할을 맡은 배우 하나가 잠을 자다가 오줌을 누려고 묘지 옆으로 갔다가 귀신을 만나 기절을 한 것이여. 그 비명소리에 놀라서 순례 역을 맡은 미스 김도 반쯤 기절했고.

그란디, 생각을 해봐라, 아무리 멍청하기로서니 귀신 영화 찍는 판에 나타날 골 빈 귀신이 어딨겄냐. 감독이 여배우한테, 잠을 자더래도 분장을 지우지 말고 자라고 명령을 안 내렸겄냐. 머슴 역할 맡은 배우가 잠결에 오줌 누러 갔는디 마침 그때 묘지 옆에서 자고 있던 여배우가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던 것이여. 달밤에 얼굴에 피칠을 하고 덧니가 밖으로 삐져나온 여자가 산발을 하고 앞에 나타났으니 기절 안 하고 배기겄냐.

빨갱이를 잡으러 왔남?

뭣이라고? 재미없다고? 조깐만 기다려봐. 진짜배기로 무서운 장면 나올 것잉께.

촬영이 중단되고 두 시간쯤 지났는디, 갑자기 자동차 불빛이 촬영현장으로 다가오듬만, 검은 세단 두대가 딱 멈추는 것이여. 그 승용차 문이 열리듬만 검은 양복에다 넥타이까지 맨 남자 여덟명이 두줄로 서서 우리 촬영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드랑께. 우리는 벙쪄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제. 놈들은 눈을 두리번거리듬마는 귀신 모습을 하고 있는 순례를 딱 낚아채드니만 승용차에 태우고 사라진 것이여. 그랑께 귀신을 잡어간 것이제. 이해 못할 것은, 조금 전에 귀신 소동이 있을 때만 해도 눈도 꿈쩍 안 하던 호랑이 감독이 그 양복 차림의 저승사자들 앞에서는 온몸을 포르르 떨면서 말 한마디 못하더란 것이여.

그란디 요상하게도 고놈들이 미스 김을 납치해서 떠나자마자 소나무 가지에 걸려 있던 마네킹이 뚝 떨어진 것이여. 바람도 안 불었는디.

그 저승사자들의 정체가 뭣이냐고? 감독이 나중에 한 얘기를 들었는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아주 겁나는 동네에서 일하는 채홍사(採紅使)래. 글쎄 나는 무식해서 빨갱이 잡으러 댕기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알쏭달쏭하더라고. 아마도 미스 김이 얼굴에 붉은 피칠을 하고 있어서 잡아간 모양이더라고. 뭣이라고? 마네킹이 하필 그때 왜 떨어졌냐고? 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저승사자가 그까짓 나뭇가지에 걸린 마네킹 하나 못 떨어뜨리겄어?

다음날 저녁에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힘센 사람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는디, 아 글쎄 목덜미에 순례의 귀신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등가 어쨌다등가. 어느 시절 얘기냐고? 시방부터 정확하게 30년 전 얘깅께 느그들이 한번 계산을 해보더라고.

그란디, 느그들 내 얘기 안 무섭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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