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임기 끝나는 국민은행장의 불안한 연임설… 쌓여가는 적자와 정부의 곱지않은 시선이 부담
▣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오는 10월 말로, 3년 임기가 끝나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연임할 수 있을까? 김 행장 본인은 연임을 바라고 있음을 이미 간접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그는 지난 3월 초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를 통해 적절한 후임 행장 후보를 찾고, 이들을 평가하려면 2년가량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합병은행이 완전히 자리를 잡기까지 1년 정도는 더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김 행장의 연임 여부는 사외이사와 주주대표로 구성된 행추위가 그를 이사회에 다시 추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국민은행의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 개입할 통로가 없다. 그러나 국내 최대 은행의 장을 선임하는 데 정부의 뜻이 전혀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국민·주택은행 합병 이후 김 행장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활발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정부, 부실회계건으로 발목 잡을까
금융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김 행장이 그동안 정부의 보이지 않는 금융시장 개입에 반발해와 정부의 눈 밖에 났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그런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지난 4~5월에 실시한 국민은행 검사에서 회계 처리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감독 당국이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이 국민카드와 합병하면서 회계 처리를 통해 1500억원의 법인세를 감면받은 부분과 적자규모 축소 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7월29일 “국민은행이 지난해 적자 규모를 축소하는 등 일부 회계기준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다만 SK 사태 때처럼 고의적인 회계기준 위반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쪽은 “뉴욕증시에도 상장돼 있는 우리 은행의 회계보고는 미국 회계기준까지 충족시킬 수 있도록 회계법인의 엄밀한 평가를 거쳤다”며, 금감원의 지적을 수긍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이 김 행장을 문책한다면, 문책 수위에 따라서는 그나 주주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연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금감위의 결정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김 행장으로서는 가뜩이나 나쁜 은행의 경영실적 때문에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주택은행장 시절만 해도 그는 ‘김정태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지난 1998년 8월 동원증권 사장에서 주택은행장으로 전격 발탁되자,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감안해 ‘연봉을 1원만 받겠다’고 선언하고, 경영성과에 대한 스톡옵션만을 요구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리고 부실화되던 대우그룹의 여신 1조9천억원 중 무려 1조5천억원을 신속히 회수해 주택은행을 건실한 은행으로 남게 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으며, 훗날 국민은행과 대등한 통합을 이루는 초석을 다졌다. 그가 은행장이란 이유로 주택은행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는 한국에서 ‘CEO 주가’의 원조로 떠오르기도 했다. 김 행장은 마침내 지난 2001년 11월 통합 국민은행의 출범과 함께 국내 최대 은행의 ‘장’이 됐다.
카드사업과 개인대출에서 위험관리 못해
그러나 이후 2년 반이 지난 현재 국민은행의 주가는 김정태 행장의 ‘CEO 주가’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 7월30일 현재 국민은행 주가는 3만550원이다. 이는 통합 국민은행이 출범하던 지난 2001년 11월1일의 주가 4만2천원에 비하면 27.2%나 떨어진 것이다. 다른 은행의 주가는 어떻게 됐을까? 증권거래소 은행업종 지수는 당시 133.75에서 현재 151.11로 15.9% 올라 있다. 국민은행 주가는 시장평균 대비 무려 43%나 폭락해 있는 셈이다. 이는 국민은행이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큰 폭의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통합 첫해인 지난 2002년에는 1조319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자기자본이익률은 13.04%로 신한은행의 19.79%보다는 한참 낮았지만, 시중은행 전체의 10.95%보다는 높았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7533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해 상반기에도 406억원 적자를 내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국민은행의 실적은 시중은행 중 최악이다.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의 영업 여건은 좋은 편이다.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가 빨리 떨어지면서 예대마진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수수료 수입도 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은행의 실적이 나쁜 것은 대출에 대한 위험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에만 무려 4조405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대손충당금이란 부실해진 대출채권에 대해 부실 정도에 따라 손실 처리할 돈을 미리 적립해둔 것을 말한다. 국민은행의 총여신 대비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은 다른 은행에 비해 매우 높은데, 이는 그만큼 부실 여신이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은행의 경영실적에 치명타를 안긴 것은 국민카드와 BC카드 등 카드사업 부문이었다. 윤종규 부행장은 “전체 대손충당금 중 지난해의 경우 70% 이상, 올해 상반기의 경우 60%가량이 카드사업에서 발생한 부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쪽은 “김 행장은 애초 카드사업 경영의 독자성을 보장했다가 2002년 하반기부터 축소 영업을 지시했으나 지지부진하자 그해 말에 국민카드 사장을 바꾸는 등 대응을 했다”며 카드사업 부실에 대해서는 김 행장의 책임이 크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국민카드의 지분 75%를 가진 대주주인 만큼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은 “국민·주택은행 통합 이후 카드사업과 개인대출을 확대한 것은 옳은 방향일 수 있지만, 위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은 결국 최고경영자의 책임”이라고 평가했다.
김 행장이 합병에 반대하는 노조를 달래고 순탄하게 합병은행의 은행장에 오르기 위해 임금을 지나치게 큰 폭으로 올렸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실제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 2001년 주택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3552만원, 국민은행의 경우 4310만원이었다. 그런데 2002년 사업보고서에는 평균연봉이 610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국민은행쪽은 “임금은 다른 은행보다 2%포인트가량 더 올렸을 뿐인데, 2000년 성과급을 2001년에 지급한 것과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면서 지급한 보조금 등이 많았던 것”이라며 “현재 임금은 은행들 중 중상위권에 속한다”고 해명했다. 주주와 고객뿐 아니라, 노동자도 이해관계자인 만큼 노동자의 복지수준을 높이는 것은 좋은 경영자의 덕목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주택은행 통합의 효과가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로 돌아갔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고객들 처지에서 보면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평균연봉 오를 때 고객 혜택은 제자리
김 행장은 국내 최초의 연공서열 파괴 인사와 인사청탁 배제, 그리고 최근에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시도하는 등 끊임없는 경영혁신을 이끌어왔다. 정부쪽에는 불만이겠지만, 김 행장은 지난 1월 LG카드 사태 때 정부의 ‘채권은행 공동관리’ 요구에 반발해 은행의 이익을 지켜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금융에 주력하던 은행들이 여신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가 외환위기 때 치명타를 입은 것처럼, 국민은행도 가계금융에 주력했다가 가계부실로 치명타를 입었다. 상황만 다를 뿐, 과거 다른 은행 경영진과 똑같은 오류를 범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 행장은 더 이상 신화의 주인공일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김 행장의 거취를 결정할 최종적 권한은 정부도 국민도 아닌, 은행 주주들에게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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