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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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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군인도 인간이다!

등록 2004-07-07 15:00 수정 2020-05-02 19:23

장교 수감자의 제보로 알아본 군 교도소와 영창 실태… 서울 한복판 햇볕 한줌 안 드는 지하감옥을 아시는가


‘임관 거부’로 인한 항명죄로 군 영창과 교도소를 경험한 육군 소위가 제보를 해왔다. 군 구금시설이 구태를 벗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제보와 수감자들과의 면회 등을 바탕으로 군교도소와 영창의 실태를 짚어보았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서울 한복판에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지하 감옥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지난 6월 당시 육군 소위 A(24)씨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수도방위사령부의 영창은 아직도 환기시설 하나 제대로 없는 지하 영창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미결수로 2개월 동안 육군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며칠 전에 석방된 장교”라고 소개했다. 그는 “군교도소가 ‘형무소’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인권과 정의를 위해” 군교도소와 영창의 문제점을 알리겠다고 제보를 해왔다. 그의 제보와, 수감자들과의 면회 등을 바탕으로 군교도소와 영창의 실태를 짚어보았다.

흔히 ‘남한산성’으로 알려진 육군교도소는 1985년 경기도 성남시 남한산성에서 현재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으로 이전했다. 이름은 ‘육군 교도소’이지만,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지휘감독하고 육군뿐 아니라 공군, 해군, 해병대 소속 군인들도 수용하고 있다. 유일한 군교도소인 것이다. 군의 구금시설은 기결수와 미결수를 함께 수용하는 군교도소와 미결수를 수용하는 헌병대 영창으로 나뉜다. 대개 군인은 구속되면 각 사단의 영창에서 1심 재판을 받은 뒤, 군교도소에서 2심 재판을 받게 된다.

조씨는 올해 3월12일 ‘항명죄’로 구속돼 교육사령부 영창에 구금됐다가 4월19일 육군 교도소로 이감돼 5월25일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그가 경험한 육군 교도소는 일상의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이었다.

지난 5월 육군 교도소에서 한 젊은 장교 수감자가 일광욕장에 갔다가 텃밭에서 채 익지도 않은 딸기 몇알을 호주머니에 넣고 들어오려다가 근무 헌병에게 적발돼 진술서를 쓴 일이 있었다. 과일과 음료수 등 사식 반입이 일절 금지돼 있기 때문에 벌어진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 육군 교도소에는 사식 반입이 금지됨은 물론 먹을거리마저 풍족하지 못하다. 수감자들은 식사시간마다 반찬이 부족해 서로 눈치를 봐야 한다고 푸념한다. 육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아무개(40·구속 당시 소령)씨는 “나이 마흔에 앞에 선 수감자가 반찬을 많이 가져갈까봐 신경쓰는 자신이 초라하기 그지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식사시간마다 눈치 보는 수감자들

수감자들에 따르면, 육군 교도소는 “정량만 먹어야 한다”며 저울을 식당에 비치해두었다고 한다. 먹을거리 문제는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육군 교도소에 수감됐던 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사에 대한 불만사항으로 ‘부식이 부족하다’(28%), ‘양이 모자란다’(23%)가 꼽혔다. 수감자들은 면회시 가족들이 음식을 싸와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수감자들에게 현역병과 똑같은 음식을 배식한다”며 “우유와 과일도 나오기 때문에 사식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육군본부도 조 소위가 낸 민원에 대한 회신을 통해 “6월 교도관 회의를 통해 영내 매점에서 판매하는 빵, 과자류, 음료수 등의 반입을 1일 1회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조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고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민원을 내면서 시정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만, 육군 교도소에서는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아왔다. 우선 감시카메라(CCTV) 문제가 있다. 감시카메라가 수감자의 방마다 설치돼 있는 것은 물론 화장실을 비추고 있어 용변을 보는 것이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다. 이 모습이 교도소 본관 중앙의 전체통제실 등에 설치된 화면에 일일이 중계돼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재소자의 자해·자살 행위를 방지하고 근무 헌병의 가혹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오히려 인권침해의 요소로 바뀐 것이다.

육군본부는 민원 회신을 통해 “지난 6월21일부터 22일까지 카메라의 위치를 조절하고 화장실 앞에 가림막을 설치했다”고 알려왔다. 육군본부와 국방부는 또 낮은 조도로 시력을 해쳐온 어두운 형광등의 조도를 높이고, 조도 조절이 가능한 백열등을 설치 중이라고 알려왔다. ‘자해의 우려’가 있다고 금지해왔던 콘텍트렌즈의 반입도 허용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변호사와의 연락이 편지로밖에 되지 않아 재판 준비가 어렵다는 민원에 대해서도 “수용자의 전면적 전화 사용은 곤란하나 필요시 교도관에게 요청하면 사전 승인 뒤 전화로 가족과 변호사에게 연락하는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결정하여 시행하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수감자들은 국방부 조치의 신빙성을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씨는 “재교육 확대를 요청하면 ‘반성하러 온 곳이지 공부하러 온 곳이 아니다”라는 핀잔을 듣고, 사식 반입 문제를 이야기하면 ‘인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며 “제대로 시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사단 영창에 비하면 육군 교도소는 천국”

육군 교도소로 이감되기 전에 머무르는 사단 영창의 인권침해는 더욱 심각하다. 그래도 육군 교도소는 사단 영창에 비하면 ‘천국’이라는 것이다. 2002년 국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모두 97개의 영창이 있다. 이 중 5개가 지하 영창이다. 올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권아무개(40·구속 당시 대위)씨는 수도방위사령부의 지하 영창에 수감된 끔찍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권씨는 당시 창문 밖에서 10여명 이상의 계호병과 수용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알몸 수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하 영창의 환경도 경악스러웠다.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물론 환풍시설마저 대부분 파손돼 아침이면 먼지가 수북이 쌓이고 가래가 끓었다. 화장실 악취까지 역류했다. 또 먼지가 수북이 쌓인 밥이 제공됐다. 일광욕은 하루 평균 5분을 넘지 않았다. 일광욕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정좌한 채 독서를 강요당했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 등을 빼고는 일체의 언어 사용도 금지당했다. 또 변호사 접견을 요청하려 해도 “면회 오면 면회객에게 요청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밝혔다.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으면 변호인 접견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필기구 사용을 제한해 재판 준비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면회시에도 수갑을 차고 있어 위압감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13개 조항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며 보름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결국 군 검찰관이 급파되고, 권씨는 서둘러 육군 교도소로 이감됐다.

영창 구금자들은 정좌 강요를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꼽는다. 하지만 정좌 강요는 수도방위사령부 영창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영창에서 미결수에게 정좌를 강요하고 있다. (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영창에 구금됐던 69명 중 67명이 정좌를 강요당했다. 일과표에는 하루 2시간씩 수양정좌 시간이 명시돼 있지만 응답자의 대부분이 짧게는 하루 3시간 이상, 길게는 하루 6시간 이상까지 정좌를 강요당했다고 응답했다. 는 “특정한 자세를 강요하면서 수용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미결 구금 자체를 징벌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결수들이 영창 구금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징계병과 똑같이 취급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미결수를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어긋난다. 심지어 에 따르면 영창 수감 경험자 71명 중 37명이 체벌 수단으로 화장실 사용을 금지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창문 없는 지하 영창

영창 시설도 열악하다. 창문이 없고 난방이 잘 안 되는 영창도 많다. 올 2월에서 4월까지 3사단 영창에 구금됐던 김아무개(22·구속 당시 하사)씨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손과 발이 검게 붓고 진물이 흘러나오는 동상에 걸렸다. 육군 교도소로 옮겨진 뒤에도 피부색이 변하지 않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50사단 영창에 머물렀던 이아무개 중사(50)는 구금 일주일 만에 수온등 탓에 얼굴 허물이 벗겨지는 고통을 겪었다. 조 소위는 “수감자들에 따르면 지하 영창이 아니어도 창문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에 따르면 영창 수감 경험자의 48%가 ‘공기가 탁함’을 지적했다.

영창마다 운영 원칙이 다르고, 같은 영창 안에서도 원칙이 달리 적용되는 현실은 웃지 못할 ‘촌극’까지 만들어낸다. 올해 국방부 영창에 수감됐던 이아무개(40·구속 당시 소령)씨는 면회 중 부인이 싸온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헌병에게 제지당했다. 하지만 같이 수감돼 있던 장군은 바로 옆에서 부인이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이씨는 “소령이 삶은 계란 하나도 먹지 못하는데 사병은 오죽하겠느냐”며 “대부분의 행정이 교도소장의 권한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영창과 육군 교도소의 운영상의 인권침해도 문제지만, 제도상의 인권침해는 더욱 큰 문제를 낳고 있다. 바로 장교 기결수의 민간 교도소 이감 문제다. 현재 사병·준사관·부사관·군무원은 6개월형 미만을 받으면 각군 헌병대에 수감되고, 1년6개월형 이상을 받으면 자동 전역돼 민간 교도소로 이감된다. 원칙적으로 6개월~1년6개월의 형량을 받은 사병만 육군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교들은 형기에 상관없이 전원 육군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감 금지 규정은 군행형법에 명시된 것도 아니다. 군행형법 업무처리 지침에 따라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장교들을 민간 교도소에 넘기지 않고 육군 교도소에 수감한다. 6월 말 법학교수, 법원, 군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군사법제도개혁 전문위원 연구반이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 올린 보고서는 군교도소의 ‘문제점’으로 “장교의 경우 실형이 확정되면 당연 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이 되는데도 국방부 내부 지침에 따라 여전히 군교도소 내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것을 꼽고 있다. 수감자들은 “20년 근무한 부사관 혹은 군무원과 1년도 안 된 소위 중에서 누가 군사 보안을 많이 알고 있겠느냐”며 “민간인 신분인 사람을 장교였다는 이유로 무조건 군교도소에 수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간 교도소에 비해 가석방률이 낮고 특사 기회도 적다는 것도 육군 교도소 수감자들의 불만이다. 1년에 광복절, 성탄절 등 여러 차례 특사의 기회가 있는 민간 교도소에 비해 육군 교도소는 1년에 국군의 날 단 한 차례밖에 특사 기회가 없다. 한 수감자는 “2월에 민간 교도소로 이감된 강아무개 하사는 7월이 형 만기였지만 부처님 오신 날 특사로 가석방됐다”며 “육군 교도소는 대부분 초범이고 민간 교도소는 중범이 많은데, 육군 교도소에서 가석방과 특사가 더 적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육군 교도소 사라질 것인가

육군 교도소는 수용 인원이 꾸준히 줄어 존재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 항명죄로 육군 교도소에 한해 수백명씩 수감돼던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2001년 8월 이후 민간 교도소로 수감되면서부터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0년까지는 해마다 육군 교도소 일일 평균 수용인원이 300~500명이었다가 2001년 271명, 2002년 130명으로 줄었다. 2004년 5월10일 현재 113명이 수감돼 있다. 시설은 적정 수감인원이 431명이고, 최대 553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규모다. 이에 비해 관리 인원은 많은 편이다. 5월10일 현재 관리 인원은 189명. 관리자 1명당 수감자 0.6명 꼴이다. 민간 교도소의 경우 관리자 1명당 재소자 5.2명이다. 수감자 113명 중 기결수가 56명, 미결수가 57명이다. 미결수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 ‘교도소’로서 기능이 미약한데다 장교 기결수까지 민간 교도소로 이감되면 존립 근거가 흔들리게 된다.

더구나 군사법제도 개혁 논의와 맞물리면서 군교도소의 존폐 논의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 수감자는 “군교도소는 수용 인원에 비해 과다하게 많은 병력과 과도하게 상향 편제된 직위, 비효율적인 부대구조, 교도교화에 문외한인 부대 간부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법무부 교정국에서 인원을 파견해 전문 교정시설로 거듭나든지, 진정한 소명의식을 가진 군인들로 대체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군 구금시설은 지금 이런저런 안팎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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