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이 보는 주한미군 감축… 북 · 미 설득해 평화협정을 맺도록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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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은 일부 수구 냉전적 언론과 단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 관계의 악화 때문이 아니다. 예컨대 이라크 파병을 주저하고, 중국과 가까워지고, 북한에 많이 퍼주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한미군 감축은 한-미 관계의 변화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이해관계 변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만약 변했다면 한국 또는 한-미 관계보다는 미국의 사정이 크게 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기본전략은 해외주둔 미군을 국지분쟁과 대테러전쟁 등에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지역거점별로 신속기동군화하는 것이다. 그런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전략(GPR)의 일부로 주한미군 감축이 추진되고 있다.
감축은 반미 감정과 별개의 문제
그러나 잔류하는 주한미군의 전투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지상군 병력을 감축하는 대신, 해군과 공군 전력 증강과 첨단무기 배치 등으로 기존 전력을 유지할 예정이다. 미국은 2006년까지 110억달러를 투입해 정보수집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밀탄약 증대, 최신예 전투헬기 투입, 정밀 유도식 통합직격탄 등의 최첨단 무기의 도입 속도를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주한미군의 감축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의 정세가 불안정해져 이곳에 지상군 추가 투입이 시급해졌다. 이 지역 미군의 피로한 병력을 교체하기 위해서 주한미군 감축 시기가 당초보다 앞당겨진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이 미국의 결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한-미간 사전 논의가 부족했더라도 그것은 한국의 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미국 정부에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 주한미군 감축이 주는 정치경제적 의미를 생각할 때 그 어떤 한국 정부라 해도 미국에 충분한 논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 과정이 생략되었거나 형식적이었다면, 이는 한-미가 모두 극복해야 할 일방주의가 다시금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
최근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의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네오콘은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해 한국 흔들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은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과 참여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기에 더욱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하는 일부 미국 강경파의 흔들기는 효과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동맹과 우호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문제의 반복적인 국내 정치 문제화는 막연한 안보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 미국 정책에 대한 신뢰에 더 타격을 줄 뿐이다. 미국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최근 작성한 ‘전략과 감정-미국과 한-미 동맹에 관한 한국인의 견해’라는 보고서 역시 미국의 자세 변화가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미간 충분한 논의가 부족한 것이 마치 우리 국민들의 반미 감정과 북한에 대한 우호적 태도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책임이 한국에 있는 것처럼 오도하면 안 된다. 이런 태도는 동맹관계를 굴종적으로 인식하는 것일뿐더러 우리의 미국 정부에 대한 외교적 발언권을 스스로 깎아내릴 것이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휘말릴 수도
또 한 가지, 우리는 미국이 추진하는 주한미군 감축과 새로운 세계전략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지상군 감축 뒤 해·공군력 증강과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어 우리에게도 군비 증강을 요구할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일본과의 안보동맹을 기초로 동북아 지역에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고, 한-미 군사동맹을 미-일 군사동맹의 하위구조로 편입시키려 한다. 이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가 현실화되는 것으로 급속한 군비증강, 자위대의 정규군화 등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문제에 발언권을 높이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일본과 중국간 군비경쟁이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국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중국을 고려할 때 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많다. 최근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는 동북아 전체의 군비증가와 군비경쟁으로 이어져 동북아에 평화보다는 긴장을 고조할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군이 미군이 수행하는 국지전과 대테러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한국이 동북아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국지전이나 대테러전쟁에 휘말리거나, 굳이 동북아가 아니더라도 한국이 휘말리는 전쟁에 중국인이 피해를 입거나 중국이 상대편을 지원할 경우 한-중 관계에 심각한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동북아 지역에 신냉전구도(한·미·일 vs 북·중·러)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처럼 만일 한-미 연합군이 동아시아 기동군으로 편제된다면 상황은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가 한반도 평화 증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상상력을 동원하고, 주도성 확보를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6자회담을 동북아 지역 다자간 안보협력 대화 체제로 확대 발전시키자. 지금까지 6자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한 체제 보장 등으로 논의를 한정시켜왔다. 그러나 이제 6자회담을 다자간 지역안보 체제로 발전시켜 △중-대만 관계 △일본의 군사 대국화 △역내 국가의 군비경쟁 제한과 무력 감축 △역내 미군의 규모와 역할 등 포괄적 안보 이슈들을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동북아판 헬싱키 체제를 구축하고, 그 사무소를 서울에 두도록 하면 좋겠다. 이를 통해 동북아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헬싱키 체제가 독일의 분단을 전제로 한 것이라 비판하지만, 헬싱키 체제의 이점을 살려 독일이 결국 통일을 이룩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다음으로, 한-미 상호 안보조약과 군사동맹의 틀을 정비해야 한다. 한국군이 미군의 한반도 바깥 전쟁에 자동 개입함으로써 사실상 한-미 연합군이 동아시아 기동군으로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이 지역에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자.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대한민국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만 조약 당사국이 행동하도록 되어 있다. 또 1954년 1월19일 미 상원이 한-미 방위조약을 비준하면서 추가한 양해 사항도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규정해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적용 조건을 엄격히 사실상 한반도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한 철저한 법리적 연구 역시 이 지역에서의 평화 확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남북 대화로 무력 감축할 때
외부 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남북간 교류와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 군사분계선 선전활동 금지, 서해 충돌 방지방안 등 큰 성과를 낸 남북한 장성급 군사회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군사회담은 남북경협과 화해협력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 지상군 감축을 계기로 오히려 추가 군비확충이나 첨단무기 도입 등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남북 군사협력을 더욱더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남북 군사회담을 정례화하고 군비감축 추진으로 나아가야 한다. 남북한은 미군 재배치를 계기로 군비통제 수준(군사훈련 공개, 병력이동 통보, 핫라인 설치)의 논의에서 실질적인 무력감축(지상군 병력 축소, 첨단무기 개발과 도입 중단, 재래식 무기 축소 폐기 등)으로 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북한·미국 3자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동북아의 평화 주도권을 함께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도록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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