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에 대한 편견이 빚은 ‘선거 나이 19살’ 결정… “총을 드는 나이보다 투표 나이가 빨라야”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18, 18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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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8살이 화났다. 또다시 한국사회가 18살을 ‘왕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3일 정부는 성년 나이를 만 20살에서 19살로 낮추는 민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법에 맞춰 선거 나이도 만 19살로 낮춰질 전망이다. 민주노동당이 18살로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9살로 낮추는 안에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의무는 18살, 권리는 19살”
이로써 65만여명의 19살은 잃어버린 시민권을 얻게 되겠지만, 64만여명의 18살은 여전히 참정권을 박탈당한 채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청소년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선거 나이를 18살로 낮추라고 줄곧 요구해왔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10대 당원들은 지난해 선거 나이를 20살로 규정한 현행 선거법에 대해 위헌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무부 민법개정 특별분과위원회는 19살을 성인 나이로 정했다. 18살들이 ‘이유 있는 반항’을 시작할 기세다.
올해 18살인 김지현(한국 애니메이션고3)씨는 2002년 대선과 2003년 총선 때 ‘낮추자’(downage2004.net) 운동을 했다. 청소년들이 중심이 돼 선거 나이를 18살로 낮추기를 요구하는 운동이었다. 김씨는 투표 당일 서울 명동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모의투표를 진행하고, 투표 전에는 다양한 선거 나이 낮추기 캠페인을 벌였다. 김씨는 “청소년단체와 시민단체가 선거 나이를 18살로 낮추라고 요구해온 지가 10년이 넘었다”며 “이번에는 18살로 낮춰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고 씁쓸해했다. 그가 소속된 ‘낮추자’는 18살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으려는 정치권에 대한 항의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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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교 청소년인 최준호(18)씨는 더욱 화가 난다. 전화 설문 일을 하는 최씨는 매달 3만원가량의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최씨는 마음만 먹으면 군대도 갈 수 있고, 운전면허도 딸 수 있고, 공무원도 될 수 있다. 하지만 투표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대한민국법은 ‘국민의 의무’를 지는 나이는 18살로 규정하고 있지만, ‘시민의 권리’를 갖는 나이는 19살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원재 문화연대 정책실장은 “최소한 총을 드는 나이보다 투표를 하는 나이가 빨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김종철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의무는 18살, 권리는 19살”이라며 “잃어버린 1년은 누가 보상해주느냐”고 지적했다.

이처럼 법마다 다르게 규정돼 있는 성인 나이를 통일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다. 시민사회단체는 만 18살을 그 기준으로 제시해왔다.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도 성인 기준은 18살 이상”이라며 “권리를 주든, 보호를 하든 18살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월 선거 나이를 20살에서 18살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전달했다. 인권위는 의견서를 통해 “선거권 부여는 독자적으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판단 능력의 여부이므로 민법상 성년 나이와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민법상 성인 나이가 19살이라도 선거 나이는 18살로 정할 수 있다.
100여개국이 ‘선거 나이 18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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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세계에서 선거 나이는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1969년 영국을 시작으로 독일(1970), 미국(1971), 프랑스(1974), 중국(1975) 등이 잇따라 선거 나이를 18살로 낮췄다. 현재 선거 나이를 18살로 규정한 나라는 100여개국에 이른다. 심지어 이란은 15살, 브라질은 16살부터 선거권을 주고 있다. 현재 선거 나이를 20살로 정한 나라는 일본 등 3개국뿐이고, 19살인 나라는 오스트리아 1개국뿐이다.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청소년의 사회 참여가 강조되고, 청소년의 권리를 일찍 보장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8살은 안 된다’는 논리가 거세다. 대한민국 18살 중 대다수가 고3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민법개정 특별분과위원회가 민법 개정안의 성인 나이를 18살이 아닌 19살로 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낮추자’의 박준표씨는 “고등학생은 미성숙하다는 대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며 “고등학생, 대학생의 구분이 곧 미성숙과 성숙의 기준이 된다는 폭력적인 논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는 몇 개월 사이에 갑자기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일부에서는 19살 선거권이 오히려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강화한다고 비판한다. 이에 반해 18살 선거권은 고등학생을 사회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박준표씨는 19살 선거권에 대해 “대세에 따라 하향은 하되, 기존 체제가 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낮추는 타협”이라고 비판했다.

18살에게 선거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등학교가 정치에 휩쓸릴 것을 우려한다. 헌법재판소도 1997년 “고등학교에 정치적 기운을 주입하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다”며 위헌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하지만 인권운동가들은 18살 선거권이 오히려 교육개혁과 청소년 인권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원재 문화연대 정책실장은 “교육 분야는 정책 대상자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빠져 있는 유일한 분야”라며 “학생들이 투표권을 가지면 교육개혁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와 정치권이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입시정책이나 교육정책을 결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18살 선거권이 청소년 인권 개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고등학교 학생회가 독립적인 자치기구로 인정받고, 학생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배경내 활동가는 “학생들이 선거권을 가지면 학교 내 권력관계에도 재편이 일어난다”며 “무분별한 체벌, 일방적인 벌점에 제동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18살들도 어른들에게 ‘18살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고 주장한다. ‘낮추자’의 김지현씨는 “고등학생이 함부로 투표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른들의 불안과 우려일 뿐”이라며 “우리는 모의투표를 통해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이 다른 나이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 ‘낮추자’가 실시한 두번의 청소년 모의투표에서 후보와 당의 득표 순위는 성인투표 결과와 똑같았다. 그는 오히려 “어른들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어떤 선거운동을 하고,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 18살 선거권을 꺼리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마지막 참정권 운동’은 계속된다
또 다른 18살인 최준호씨도 “언젠가는 선거 나이를 19살에서 18살로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어차피 낮출 바에야 국제기준에 맞추어 18살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설령 이번에는 선거 나이가 19살로 정해지더라도 18살로 낮춰지는 기간이 부디 짧아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올해 선거 나이를 낮춘다 해도, 20살에서 19살로 선거 나이가 낮춰지는 데 무려 42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마지막 참정권 운동”으로 불리는 선거 나이 낮추기 운동. 21세기에도 마지막 참정권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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