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국경을 가다- 북한 · 중국 · 러시아]
중-러와 맞닿은 한반도의 국경 지대… 분쟁의 아픈 역사를 껴안고 번영의 내일을 꿈꾸다
▣ 핫산=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 옌지 · 훈춘 · 투먼=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의 내~님을 싣고….”
지난 5월14일 핫산 국경초소 언덕에서 내려다본 두만강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굽이굽이 흐르는 두만강물은 은빛 비늘을 퍼득이며 화려함을 뽑냈다. 사람의 발길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강변의 긴 모래밭은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한가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핫산의 철조망엔 긴장감이…
하지만 이런 감흥도 잠시, 두만강 한쪽을 점유하고 있는 러시아 국경수비대 초병들의 날 선 눈빛을 마주치노라면 금세 쭈뼛해진다. 그곳에 노 젓는 뱃사공들은 보이지 않고 대신 무장한 초병들만이 낯선 이방인을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다. 이곳은 아직도 평화와는 거리가 먼 예민한 국경지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을씨년스러운 풍경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지역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도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곳이다. 러-북-중 세 나라 국경이 핫산에서 갈라지는 셈이다. 사실 러시아는 강 건너 북한보다는 철조망을 국경선으로 삼는 지척의 중국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핫산은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극동지역을 가르는 수천km에 이르는 기나긴 국경선의 출발점이다.
핫산은 러시아의 가장 오지이면서 군사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국경수비대의 한 관계자는 “이곳은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는 곳”이라며 “통행증을 발급받은 자만이 국경지대를 둘러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을 취재하러 온 한국인 기자를 안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그도 일반인들이 좀처럼 들여다볼 수 없는 러시아-북한을 잇는 철로인 ‘조-로 친선교’ 바로 앞 초소까지는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허용했으나, 두만강 너머 북쪽 국경쪽 사진 촬영은 끝내 허용하지 않았다. 양국을 오가는 기차의 승객이나 화물을 검사하는 검문소 안에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할 경우 접대하기 위해 지어놓은 ‘쏘조친선각’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옆에는 양국간 친선 등을 과시하기 위해 간단한 의전행사를 치를 수 있는 광장이 마련돼 있다.
북한 사람들 수시로 방문
러시아가 사회주의 옛 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된 지 꽤나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냉전의 기운이 감지된다. 이는 러시아가 중국과 그간 크고 작은 영토분쟁에 끊임없이 시달린 탓인지도 모른다. 1839년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자 외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땅을 나눠갖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의 통치력이 약해진 틈을 타 제정 러시아는 1858년 지금의 아무르주를 러시아 영토로 만드는 베이징조약의 체결을 강요했다. 이 조약에서 중국은 헤이룽강 북쪽 연안의 모든 땅을 포기한다고 서명했으며, 연해주의 핫산 지역도 러시아에 넘겨줘야 했다. 그 뒤 러시아는 중국인들이 헤이룽강 북쪽의 아무르주로 침입해오는 것을 영구히 막기 위해 러시아 농민들을 아무르주의 곡창지대로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1860년대부터 1917년 사이에 대규모 농업이민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중국인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당시 한반도에 사는 조선족(훗날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는 크게 늘었다. 1906년 34만명이던 연해주 조선족 수는 1914년 64만명으로 두배나 늘었다. 러시아 당국도 중국인들과 달리 조선족들은 크게 반겼다. 조선족들은 부지런했으며 순종적이었고, 극동 러시아의 몬순 기후에 알맞은 벼, 콩, 조 등의 재배방법을 도입해 현지 농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조선족들의 러시아 극동지역 이주 통로인 핫산은 이처럼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1937년 스탈린의 특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전까지 핫산 지역에는 8만여명의 조선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려인 리 페트로비치(55)씨는 “부모님들이 가끔 핫산에 살던 추억들을 얘기한 적이 있다”면서 “초기 정착시의 모습을 짐작케 하는 유적들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고려인들이 두만강만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는 핫산에 대해 중국 옌볜자치주의 옌지보다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나선시와 함경북도에 사는 북한 사람들은 핫산을 거쳐 러시아 극동지역을 수시로 방문한다.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이도 있고, 광할한 삼림지대에서 벌목을 하거나 웬만한 건설현장에서 땀 흘리는 이들은 거의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다. 핫산과 가까운 포시에트항 근처에는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봉제공장이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다. 양국 국경 사람들간의 교류는 생각보다 활발한 셈이다.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핫산 역장은 “북한에서 화물열차는 하루에 두 차례, 그리고 여객선은 승객 수에 따라 매일 들어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쩐지 핫산은 남한 사람들에게 낯선 곳으로 느껴진다. 그럴 만도 했다. 매년 이곳을 찾는 한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는 국경도시 핫산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곳이다. 남북 관계가 발전돼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직항로가 열린다면 김포나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핫산을 가려면 적잖은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비행기로 2시간 넘게 날아가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한 뒤, 다시 튼튼한 지프차로 갈아타고 5시간 넘게 쉬지 않고 달려가야 닿을 수 있다. 그나마 도로포장이 잘 돼 있지 않아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쓸 각오를 해야 하며, 거친 자갈길이 널려 있어 반드시 여분의 바퀴를 매달고 달려야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지인 이곳에도 경제개발 열풍이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 핫산으로 가는 도로의 포장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며, 연해주 당국은 핫산 개발을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연해주 정부는 핫산과 가까운 자루비노항 운송망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남한의 속초에서 자루비노항까지 백두산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카페리가 가끔 운행되기도 한다. 한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의 하나로 핫산∼우수리스크 240km 길이의 철도 현대화 공사도 이미 착수했다. 중국은 두만강가에 관광유람선을 띄워 핫산 국경까지 오가며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간 유엔개발계획(UNDP) 주관 아래 지지부진하게 추진해왔던 러-중-북 3국간 두만강개발사업도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활기를 띨 전망이다. 국경도시 핫산은 머지않은 장래에 항구적인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듯했다.
경제개발 열풍도 뜨거워
북한-중국 국경은 서쪽의 신의주∼단둥에서 시작해 동쪽의 나선(나진·선봉)∼훈춘에서 끝난다. 단둥에서 훈춘까지는 서울과 부산 거리의 두배에 가깝다. 훈춘은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옌지 다음으로 큰 도시다. 이곳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국경이 맞닿아 있어서 단둥과 마찬가지로 무역이 성행한다. 훈춘에서 80km 떨어진 곳의 방천 풍경구에서는 북한과 러시아간의 유일한 육로 통로인 조-러 철교 ‘친선교’를 볼 수 있다. 이 철교는 북한의 두만강시와 러시아의 핫산군을 연결한다. 방천까지는 두만강을 따라 난 강변도로를 타고 달린다.
훈춘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 사이의 영토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영토전쟁의 기원은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와 일본간 최대 격전으로 기록되는 ‘장고봉 전투’가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다. 당시 러시아와 일본은 13일간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를 벌여 수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중국인도 피해가 컸다. 중국 정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장고봉 전투에서 희생된 중국인은 5940명에 이른다. 러시아와 일본은 모스크바에서 정전회담을 갖고 두만강 지대를 러시아 영토로 포함하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한 뒤 북한 정부는 “일제와 체결한 국경을 인정할 수 없다”며 두만강을 다시 점령해버렸다. 그 뒤 북한과 러시아, 중국간에 국경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조선족인 훈춘시 관광국 김강렬 과장은 “최근에는 두만강을 개발해 동해까지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문제를 3국이 협의하고 있다”며 “동해 뱃길이 열리면 이곳은 관광지와 물류 기지로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북자 수용소를 바라보며
훈춘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투먼시에 도착했을 때 취재팀은 잔뜩 긴장했다. 이곳에 탈북자 수용소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곳에 수용된 탈북자들이 집단으로 단식 농성을 벌여 중국 당국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수용소의 겉모습은 매우 평온했다. 취재팀이 사진 촬영을 위해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현지 조선족 안내인이 깜짝 놀라며 제지했다. “아예 ‘나 잡아가라’ 하고 소리를 지르슈. 여기서 사진 찍으면 중국 공안에 잡혀간다니까….” 할 수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찍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 계획은 수용소에 있는 탈북자와 인터뷰를 시도하는 것이었는데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신경을 거슬리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요. 특히 용천 사고로 탈북자 감시가 더 삼엄해졌지요.” 간도 벌판의 석양을 바라보며 짙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는 취재팀에게 조선족 안내인은 이렇게 말했다.
통일 이후 한반도와 맞닿은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 모습은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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