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지금 시장 보궐선거의 폭풍 속으로… 거센 여당 바람과 한나라당 ‘애정’ 사이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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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글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제 그만 닫힌 마음의 빗장을 풀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게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락할 것인가. 변함없는 한나라당의 지원자로 남을 것인가.
지역감정 타파를 전면에 내건 노무현 대통령의 집요한 공들이기에도 한나라당의 든든한 본거지 역할을 한번도 마다하지 않았던 부산광역시. 370만 시민들이 안상영 전 시장의 ‘옥중 자살’에 따라 치러지는 6월5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이런 고민에 휩싸였다.
안 전 시장의 뒤를 이어 7개월 동안 시정을 책임지며 ‘한나라당 시장감 1순위’로 입지를 굳힌 듯하던 오거돈(55) 전 시장권한대행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전격 출마해 정무부시장 출신인 한나라당 허남식(55) 후보와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열린우리당”
“이제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야 하지 않나 싶습니더. 인물도 오거돈씨가 낫고, 너무 야당만 하다 보니 부산만 낙후된다 아닙니꺼. 택시기사들끼리 모이면 10명 중 4명은 열린우리당 지지라예. 세상이 바뀔 가능성이 많습니데이~.”
공식 선거전 첫날인 5월23일,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이 열리는 한나라당 부산시 당사 앞에 기자를 내려준 60대의 택시기사 김준환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대구·경북은 아직도 골수(한나라당 지지)지만 우리는 조금 바뀔 게 분명하다”며 “적어도 이번 시장선거에서는 4월 국회의원 선거처럼 큰 표차는 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김씨의 말처럼 6·5 재보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아성인 부산 곳곳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오거돈 후보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가 감지됐다. 30대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열린우리당을 향한 지지 의사를 표출하기도 했다.
“부산 민심은 지금까지 완전히 ‘딴나라’였다 아닙니꺼. 세상 사람들 마음과 너무 다르게 투표하고. 하지만 이제 많이 바뀌고 있습니더. 우리 같은 3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바뀐다 아닙니꺼. 지난 총선 때 61살인 우리 어머니를 설득해 ‘3번’을 찍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열린우리당 오거돈 후보를 지지할 것입니더.” 대형 할인점이 밀집해 있는 사상구 괘법동의 르네시떼 앞에서 만난 김인수(38)씨는 자신 있게 열린우리당 지지를 선언했다.
이마트 앞 광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한진철(30)씨도 “나이든 분들은 어쩔지 몰라도, 우리는 다릅니더”라며 “젊은 사람들은 열린우리당”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기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이동환 부산경실련 전 사무처장은 “4·15 총선을 계기로 부산의 학계나 전문가 집단에서 오 후보 선대위 참여 등의 방식으로 열린우리당에 지지를 표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한나라당 지지 일변도의 지역 분위기에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고 진단했다.
쌓인 감정이 하루아침에?
실제 지난 5월19일 출범함 오 후보의 선대위에는 서의택(부산외국어대), 박동순(동서대), 최재룡(동아대), 박경문(경성대), 이병화(신라대), 박성택(부산교대), 양승택(동명정보대)씨 등 7명의 대학총장이 고문단, 특위위원장으로 동참해 부산지역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부산시의회 강주만, 이경호, 박기욱 의원 등이 “부산은 이제 정부의 획기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도 시대의 문을 열어야 한다”며 열린우리당 입당 ‘열린의정회’라는 교섭단체도 구성했다. ‘당적 이동’이지만 한나라당 일색이던 부산시의회에서 열린우리당이 별도의 교섭단체까지 구성한 것은 처음이다.
부산지역 유력언론인 정치부의 한 기자는 “한두 사람이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가면 ‘철새 논쟁’이라도 일겠지만, 지금은 한나라당 일변도의 부산지역에서 열린우리당으로 권력 이동이 일어나는 수준의 변동이 일고 있다”며 “지역 여론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말 변하고 있는 것일까. 전국을 휘몰아친 ‘탄핵 역풍’ 속에서 잠깐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마음이 쏠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박근혜 바람’을 타고 18개 지역구 가운데 17곳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던 부산 시민들. 배짱 두둑한 경상도 사나이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금의환향해 부산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가를 불러대도, 언제나 그랬듯 외면했던 그들이 이번 보선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에서 패배한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마음의 짐’을 벗겨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누구도 그 결과를 단정적으로 가늠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부산 시민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한나라당에 대한 동류의식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젊은 세대와 여론주도층을 중심으로 “우리가 지역통합을 이루려는 ‘노통’에게 너무 야박했던 것 아니냐”는 반성의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열린우리당 출신의 시장을 허락하는 ‘임계점’까지 치고 올라가는 데는 여전히 적지 않은 한계가 엿보였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 인물도 그렇고 열린우리당 오거돈 후보가 앞서는 것은 틀림없습니더. 그런데 속마음이야 솔직히 한나라당에 더 가깝다 아입니꺼. 부산이 변해도 수십년 동안 해온 관성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꺼.” 부산역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강문영씨는 열린우리당을 향한 마음의 빗장이 좀 열렸다 해도, 수십년간 한나라당을
지지해온 부산의 민심이 투표소에서까지 발현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앞서면서도 불안, 뒤처져도 여유…
“우리끼리 만나면 ‘노 대통령 정성을 봐서라도 이제는 부산도 대통령을 도와줄 때가 됐다’고 말합니더. 나도 그리 생각합니더. 전에는 한나라당 한나라당 했는데, 요즘은 많이 변화되더라꼬. 그런데 아직 열린우리당 오 후보의 당선까지는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부산 시민들의 대표적 휴식공간으로, 지난 2월 자살한 안상영 전 시장의 유해가 봉안돼 있는 부산 서구 대신공원에서 만난 서상만(50)씨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당이 싫다. 저 사람은 아이다’고 말하는데, 우짜겠는교. 분위기가 있는데”라고 말했다.
페인트 상점을 운영하는 조영수(48)씨도 “싸인 감정이 하루아침에 다 사그러들겠는교”라고 회의적 분위기를 드러냈다.
와 등 지역 언론이 5월20일 실시해 21일 마지막으로 공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부산의 이런 속내가 잘 드러나고 있다. 두 조사에서 열린우리당의 오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한나라당의 허 후보보다 5.2~8.8%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부터 고 안상영 시장의 뒤를 이어 시장권한대행을 맡아온 유명세까지 더해져 인지도나 인물 적합도에서도 허 후보를 상당히 앞섰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만은 오히려 허 후보가 14.2~19.5%포인트차로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복잡한 부산 시민들의 속내는 선거전에 직접 뛰어든 두 후보 진영에서도 여지없이 확인됐다.
오 후보 진영은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는 않지만, 확실히 자신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선대위원장인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은 “선거 얼마 전까지도 여론조사에서는 이겼지만, 실제 투표에서 패한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부산의 유일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당선자인 조경태 선대본부장도 “표면적인 여론조사 지표에서 앞서고 우호적 분위기도 강하지만, 우리당 지지층인 젊은 세대의 낮은 투표율과 속내를 숨긴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승부는 아니다”면서 “인물론과 부산발전론 등 우리의 핵심 전략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기느냐에 승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을 압도하는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 분위기, 지역구 의원 당선자 17 대 1의 조직적 열세 등을 감안할 때 오 후보 진영이 쟁점화를 시도하는 인물론과 지역발전을 위한 강한 여당 지원론, 그리고 노 대통령의 올인 승부수인 ‘김혁규 경남지사 총리 기용 카드’ 등에 대해 부산시민들이 어떤 화답을 보일지가 열쇠라는 것이다.
반면, 후보 경선 과정에서 누적된 내부 갈등과 차기 부산시장 자리를 염두에 둔 부산지역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간의 힘겨루기 등으로 선대위 인선 및 선거전략 수립에 적지 않은 홍역을 치르고 있는 허남식 후보쪽은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다.
허 후보 진영의 공보 책임을 맡은 한나라당 부산시당 조성민 정책부장은 “현재의 지지율 열세는 오 후보가 시장권한대행이라는 프리미엄을 가진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일 뿐이며, 결국 부산 시민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정당투표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선거 중반쯤 가면 판세가 뒤집힐 것”이라고 자신했다.
선대위 다른 핵심 인사는 “35% 안팎의 낮은 투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궐선거의 성격상 조직력과 지역정서가 승패를 좌우한다”며 “17개 지역구를 석권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측면 지원과 ‘부산은 그래도 한나라당’이라는 주민들의 관성이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 후보 진영은 이런 상황 판단 아래 이번 선거를 정당 대결 양상으로 몰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안상영 전 시장의 자살,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탈당, 총선 때 위력을 발휘한 ‘박근혜 바람’ 등이 판세를 뒤집는 핵심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
부산 내주면 나라까지 위태롭다?
23일 오후 부산을 찾은 박근혜 대표는 “이번 선거는 목숨을 걸면서 한나라당과 신의를 지킨 안상영 시장의 유고에 따른 선거”라며 “한나라당이 가장 어려울 때 여당으로 간 사람(김혁규 전 지사), 상아탑을 지킬 대학총장들을 선거에 동원하는 우리당으로부터 한나라당과 부산을 지켜달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허남식 후보는 아예 “한나라당의 본거지인 부산을 내주면 한나라당은 물론 나라까지 위태로워진다”면서 “목숨 바쳐 당과의 신의를 지킨 안 전 시장의 마지막 임기를 부산 시민들이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갈등하고 번민하는 부산 시민들, 그들은 과연 6월5일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모두가 손에 땀을 쥐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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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여권 일각과 지지층 내부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영남권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승부수로 내놓은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총리 기용’ 카드에 대해 정작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 진영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인물 대결’ 구도로 이끌려는 선거판을 한나라당이 의도하는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의 대결 국면으로 몰아가는 연결 고리로 작용하지 않을까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오 후보쪽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전략적으로 전국정당 유형을 갖춘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 분명하지만 부산 선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며 “우리가 쟁점화를 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혁규 총리’ 카드는 한나라당에 신의를 지킨 안상영 전 시장을 죽인 정권에 김 전 지사가 빌붙었다며 부산 시민들에게 열린우리당 후보 응징을 호소하는 한나라당쪽 공세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선대위 다른 고위 인사도 “우리당 지지 의사가 강한 젊은층보다는 50대 이후의 보수적인 영남 유권자들이 김 전 지사의 총리 기용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득표의 열쇠인데, 크게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남의 50대 이후 유권자들은 김 전 지사가 총리가 되더라도, 영남의 대표성을 인정하기보다는 한나라당을 배신한 대가로 권력을 누린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부산 시민들의 반응도 오 후보쪽의 이런 분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경상도 사람에게는 의리라는 게 있는데, 의리를 배반하면 아무리 잘나도 안 된다 아이가.” 부산시 서구 구덕산 입구 등산로에서 만난 박아무개(50)씨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열린우리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는 젊은 세대의 비판도 거셌다. “솔직히 많이 안좋습니더. 딱 까놓고 보면 안 전 시장도 동성여객서 돈 먹은 것 때문에 자살했지만, 김혁규는 배신자 아닌교.” 경남에서 살다 부산에 온 지 10년 됐다는 강기상(32)씨는 “요즘 친구들 만나면 ‘잘한다고 소문났던 김 전 지사가 왜 열린우리당에 갔을까’라는 얘기를 한다”며 “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여권으로 당적을 옮겨야 할 만큼 큰 약점이 잡혔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YMCA 오문범 정책실장은 이런 정서에 대해 “김 전 지사가 능력이 뛰어나 3번씩 지사에 당선된 게 아니고 한나라당이 밀어줘 당선됐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노 대통령이 개혁성을 갖춘 영남권 인사도 찾을 수 있을 텐데, 부산 민심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 같다”고 충고했다.
지난 2000년 총선 때 부산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내가 당선된다고 예측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총선 승부수로 띄운 ‘6·15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오히려 부산 민심을 확 바꿔놓았다”고 자주 말했다. 이번에는 노 대통령의 승부수가 그런 역풍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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