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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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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린 회사, 우리가 사겠다”

등록 2004-05-21 00:00 수정 2020-05-03 04:23

워크아웃 조기졸업한 대우종합기계 매각…‘종업원 소유기업’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천=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5월14일 인천시 동구 화수동 대우종합기계(옛 대우중공업·이하 대우종기) 인천공장. 인천 앞바다 근처 12만평에 달하는 공장부지 한쪽에 붙은 엔진공장은 작업장 기계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폭주하는 물량을 감당하느라 모든 기계설비가 풀가동되고 종업원들도 쉴 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민수부문(굴삭기·지게차·엔진·공작기계)과 방산부문(장갑차·미사일)을 주력으로 하는 대우종기는 2001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한 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경상이익 2천281억원)을 냈다.

“대출과 성과급 출연으로 인수”

버스와 트럭에 들어갈 디젤엔진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종업원 노아무개(54)씨는 “우리가 그동안 임금 동결과 상여금 삭감 등 고통을 감내해 회사를 살려놨는데 외부 업체가 들어와서 성과를 다 챙겨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며 “외환위기 이후 어떤 회사라도 다른 업체에 인수되면 사람 자르는 칼바람이 숱하게 불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입사 21년째인 차준규(45)씨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회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외부 업체가 인수하면 사업부서들을 쪼개 돈만 빼먹을 것”이라며 “우리가 회사를 아예 인수하자는 안에 공장의 직장, 반장들까지 모두 스스로 서명했다”고 말했다.

대우종기의 최대주주는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캠코·지분 35.96%)이고 2대주주는 산업은행(지분 21.91%)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는 지난 1월 캠코의 공적자금 지분 중 4700만주(27.98%)를 기업인수·합병(M&A) 방식의 공개 경쟁입찰로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다가 다시 산업은행 지분까지 합쳐 51%를 파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분 50% 이상을 팔아 경영권 획득을 보장해주는 이른바 ‘51%+알파(경영권 프리미엄)’를 매각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매각 주간사인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톤(CSFB)은 국내외 26개 업체와 전략적 투자자(두산중공업·로템·효성·한화·통일중공업·팬택 등)들로부터 인수 의향서를 제출받은 상태다. 공자위는 민수부문과 방산부문을 분할 또는 일괄 매각하되 일괄 인수 업체에 가산점을 줄 방침이다.

그런데 대우종기의 지분 매각을 둘러싸고 ‘새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대우종기의 임직원 4400여명이 똘똘 뭉쳐 회사를 직접 인수하겠다며 ‘올인’에 나선 것이다. 회사 인수를 위해 대우종기 생산직 노조와 사무직 사원협의회로 구성된 ‘지분매각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4월27일 우리사주조합을 전격 결성했고, 여기에 1천여개 중소 협력업체들까지 공대위를 돕겠다고 가세했다. 과연 국내 최대 종합기계업체인 대우종기가 ‘종업원 소유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이번 시도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공기업 매각 반대’나 ‘고용승계 보장’을 외쳐온 것을 넘어, 회사가 다른 업체에 M&A로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종업원과 회사가 손잡고 직접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금속노조 대우종기지회 안재석 부지회장은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 부실기업을 M&A 방식으로 매각하면서 항상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였다. 그동안 수업료는 많이 치렀고, 이제 매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종업원들이 갑자기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한 건 수천억원에 이르는 지분 매각대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우리사주조합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국장은 “현행 근로복지기본법은 우리사주조합에 차입이 가능한 법적 자격을 주고 있다”며 “차입형 우리사주제(ESOP)로 한국증권금융에서 인수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각대상 지분이 캠코 지분(27.98%) 4700만주일 경우 주당 1만원으로 쳤을 때(5월17일 현재 대우종기 시가는 6750원) 매각대금은 4700억원에 이른다. 만약 우리사주조합이 캠코에서 넘겨받을 주식을 담보로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돈을 빌린다면 1인당 7천만원(연리 9%)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대우종기지회 권광섭 정책국장은 “중소 협력업체가 조성할 1천억원에다가 종업원 1인당 3천만∼5천만원까지 대출받은 뒤 10년간 성과급과 임금 일부를 출연하는 방식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간다면 인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우종기와 거래하고 있는 중소협력업체 1천여곳 가운데 일부 업체들은 이미 3억∼5억원씩 총 400억원을 대우종기 인수자금으로 청약해둔 상태다. 공대위는 우리사주조합의 입찰 참여가 확정될 경우 협력업체 펀드 1천억원은 쉽게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재석 부지회장은 “대우종기가 그동안 협력업체에 기술지원을 해주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외부 업체가 회사를 인수할 경우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등 불공정거래가 판치고 거래관계를 끊어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협력업체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그래서 협력업체들까지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고 말했다.

매각 지분 51%로 늘리면 부담 커

대우종기 임직원들이 성과급 출연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매각 지분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기업 정상화를 위해 그동안 희생과 양보를 해왔는데, 다른 업체로 회사가 넘어가면 고용이 불안해지고 각 사업부문이 쪼개져 회사가 공중 분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 캠코가 “일정기간 동안 사업부문을 분리할 수 없도록 인수업체와 약정을 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우종기 인수에 군침을 삼키는 각 컨소시엄 업체들은 사업부문별 비공식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송태경 국장은 “약정을 지키더라도 컨소시엄 업체들이 독립채산제 형태로 사실상 사업부문을 분리 운영할 수도 있고, 다른 데서 빌린 매입자금을 갚기 위해 이사회 승인을 거쳐 일부 사업부서를 매각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특히 대우중공업 시절의 오너 경영에서 탈피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뀐 대우종기는 사장이 두달에 한번씩 경영현황을 종업원들한테 직접 설명하면서 노사화합을 이룬 사업장이다. 대우종기지회 권광섭 국장은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하더라도 경영권을 가질 생각은 없다”며 “기업 소유지배구조에서 지금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되, 다만 무리한 투자라고 판단되면 열람권을 요구하고 건설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만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분의 51%, 즉 캠코 지분뿐 아니라 산업은행 지분(21.91%)까지 매입해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럴 경우 인수자금은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약 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송태경 국장은 “공자위가 지분 51% 매각을 강행하고 있다”며 “이 경우 우리사주조합과 종업원들의 부담이 너무 커서 우호적인 국내 펀드와 전략적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하는데, 촉박한 시간 안에 마땅한 펀드를 찾기도 어렵고 결국 회사 인수를 위해 계속 뛰어야 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공자위는 애초 캠코 지분만 팔기로 했다가 입맛을 당기는 업체가 의외로 많이 나타나자 산업은행 지분까지 묶어 ‘51%+알파’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진다. 송태경 국장은 “공적자금 지분 매각의 원칙은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적정가격 매각’과 ‘국민부담 최소화’인데 산업은행 지분까지 끼워서 M&A 방식으로 매각하는 건 원칙을 버리는 것일 뿐 아니라 노사관계 악화를 초래해 국민경제에도 부담을 주게 된다”며 “정부가 M&A 방식을 고집하는 배경에는 M&A 시장의 입찰 과정에 참여해 막대한 수수료를 챙겨온 모건스탠리 등 외국 투자증권회사들의 이해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대위가 매각 지분 인수에 성공할지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입찰 참여 자체가 성사될지 아니면 ‘불발’로 그칠지조차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월 공자위의 지분 매각 방침이 발표된 뒤 공대위는 “정부가 기업 부실의 최대 피해자이자 기업 정상화의 최대 공헌자인 종업원들의 입찰 참여를 배제하고 있다”며 매각 방안 재검토와 우리사주조합의 입찰 참여 보장을 줄곧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회사 ‘내부자’인 우리사주조합은 입찰에 참여시킬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우리사주조합 입찰 참여 조건에 반발

하지만 원내 제3당으로 등장한 민노당이 우리사주조합을 지원사격하면서 국면은 달라졌다. 공자위와 캠코에 대한 항의 방문 때 민노당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나서고 청와대 일각에서도 공대위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결국 정부는 우리사주조합에도 입찰 참여를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5월11일로 돼 있던 예비입찰 마감시한도 5월18일까지로 늦췄다. 우리사주조합에 입찰 준비기간을 주기 위해서다.

대우종기 임직원들은 애초에 “인수를 탐내는 외부 업체 중에서 현재의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더 나은 노사관계와 소유지배구조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과연 있느냐?”며 “정부는 산업정책을 고려해, M&A 방식이 아니라 우리사주조합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캠코 지분 4700만주에 대한’ 정부의 매각이익 극대화 추구를 수용할 테니 우리사주조합에 공정한 입찰 기회를 부여하라”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상태다. 다만 회사 정상화에 공헌한 종업원들을 성과만 따먹으려는 외부 인수 의향 업체와 똑같이 취급하는 건 역차별이므로 우리사주조합에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는 다시 꼬이고 말았다. 공대위쪽이 “정부가 내세운 우리사주조합의 입찰 참여 전제조건이 불평등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불씨는 캠코와 산업은행이 우리사주조합에 서명 제출을 요구한 ‘비밀유지협약서’와 ‘사전 입찰동의서’에서 비롯됐다. 비밀유지협약서는 “입찰 참여 업체는 매각 주간사의 동의 없이 회사(대우종기)나 캠코의 임직원과 직·간접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 우리사주조합에만 따로 요구한 사전 입찰동의서는 “‘지분 51% 이상을 M&A 방식으로’ 매각해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는 현행 매각 절차를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송태경 국장은 “정부가 표면적으로 입찰 참여를 허용했지만, 회사 구성원들과의 모든 접촉을 금지하고 있는 두 문건에 따르면 우리사주조합은 조합장 단 한명을 제외하면 누구도 입찰 실무 참가는 물론 정보 교류도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결국 입찰 참여 기회가 사실상 봉쇄됐다”며 “회사 임직원이 우리사주 조합장, 이사, 대의원, 감사를 겸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입찰 서류를 작성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애초에 입찰 참여 자격조건을 ‘외부 법인’으로 한정해서 작성한 비밀유지협약서 조항을 ‘내부자’인 우리사주조합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차별이라는 얘기다. 대우종기지회 권광섭 국장은 “외부 법인은 전 조직을 동원해 입찰 경쟁에 뛰어드는 판인데, 비밀유지협약서와 사전 입찰동의서가 강행되는 한 우리사주조합은 경쟁에서도 불리할 뿐 아니라 입찰에 참여하는 것과 동시에 자격미달로 탈락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행 매각 방식 고수

그러나 공자위는 “매각 방식을 재검토할 만한 특별한 상황이라고 보기 힘들다”며 “우리사주조합은 회사 임직원과의 접촉과 교류 금지 등 전제조건을 수용할 때에 한해 입찰 참여가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자위 김성국 과장은 “우리사주조합의 경우 경영정보를 잘 아는 회사 이사진까지 조합에 소속돼 있고 내부자가 매수자 입장인 만큼 정보 유출 가능성 등을 고려해 우리사주조합에 법적 책임능력을 부여하려고 사전 입찰동의서를 요구한 것”이라며 “우리사주조합이 비밀협약서와 동의서에 서명해 보내오기 전에는 우리쪽도 공대위에 입찰제안서를 보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입찰 참여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금액과 자금조달 능력, 경영 능력 등을 복합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며 “우리사주조합이 예비입찰 서류를 제출하든 않든 예정대로 18일에 입찰을 마감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결국 대우종기 지분 매각을 둘러싼 공방은 노-정간 충돌로 치달을 공산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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