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 지금은 남북경협시대 3회]
중국 경제개방의 결실인 푸동과 쑤저우가 주는 교훈… 금융부실과 빈부격차의 부작용도 기억해야
▣ 상하이 · 쑤저우=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 협찬/ 한국토지공사
“저것 보세요! 정말 굉장하죠?” 지난 4월21일 중국 상하이 루후항. 취재팀을 안내하던 로리 구오(현대상선유한공사 경리)가 차창 밖을 가리키며 신나게 떠들었다. “다리 길이만 장장 31km예요. 흐린 날에는 저 수평선에 있는 교각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죠.” 중국인들이 본래 ‘뻥’이 좀 세다고 하지만, 로리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31km 다리를 만들게 한 힘
로리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돌기둥 수백개가 세워져 있었다. 육지와 가까운 쪽의 돌기둥들 위에는 육중한 콘크리트 상판을 얹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다리의 이름은 루양대교(2005년 완공 예정. ‘동해대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하이에서 동쪽으로 80km 떨어진 루후항과 이곳에서 31km 떨어진 양산섬을 잇는 큰 다리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 공사는 현대의 토목 기술로는 분명 놀랄 일은 아니지만, 루양대교는 그 규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상상해보라. 서울에서 분당 거리의 바다를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공사를. 육지에서 바라보면 다리 끝이 수평선에 묻혀 보이질 않는다. 공사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이곳을 처음 찾는 관광객들은 “밤마다 포세이돈(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이 나타나 공사를 돕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개성공단의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상하이 푸동 경제특구를 찾은 취재팀을 현대상선 중국본부가 루양대교로 먼저 안내한 것은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루양대교는 욱일승천하는 중국 경제의 상징이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으로 물류 수요가 날로 늘고 있는 중국 상하이항 개선 공사의 시작이 바로 루양대교 건설공사다. 상하이항은 물류 수요가 팽창하고 있다. 지난 한햇동안 1300만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해 부산항을 제치고 세계 3위 항만으로 뛰어오른 상하이항은 오는 2008년에 2300만∼2500만TEU까지 물류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상하이항은 장강(張江) 삼각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다른 항만보다 수심이 낮은 지리적 한계를 갖고 있다. 수심이 8m 정도에 그쳐서 컨테이너를 많이 실은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중국 정부는 매년 준설선을 동원해 장강을 따라 밀려내려온 모래를 퍼내고 있지만, 자연의 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예 상하이항에서 100여km 떨어진 양산섬에 새로운 물류 터미널을 설치하기로 하고 양산섬과 대륙을 연결하는 루양대교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대규모 공사를 낳게 한 것이 바로 푸동 경제특구다. 푸동은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황푸강의 동쪽 지역을 일컫는다. 황푸강을 따라 펼쳐진 533㎢의 강변 지역이 지난 1990년부터 경제특구로 개발되면서 중국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푸동은 중국의 6개 경제특구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개방 초기인 1990년 푸동의 국내총생산(GDP)은 60억2400만위안에 불과했지만, 개방 10년째인 1999년에는 800억500만위안으로 껑충 뛰었다. 푸동의 성공으로 상하이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향상됐다. 상하이의 1인당 GNP는 2003년 현재 5000달러로 중국에서 가장 높다. 수치상으로는 서울보다 낮지만, 중국은 사회보장제도가 한국보다 발달해 있어서 가처분소득은 상하이가 서울보다 높은 셈이다. 이처럼 경제적 위상이 높기 때문에 상하이는 중국의 상징인 용의 머리로, 푸동은 용이 품고 있는 여의주로 불린다. 현대상선 중국본부(현대상선유한공사)의 문인환 과장은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을 ‘촌놈’으로 부를 정도로 경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외자유치에 정부가 ‘올인’하다
푸동 경제특구가 이처럼 성공한 이유는 뭘까.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주재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 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꼽는다. 대한통운 중국사무소 최재완 소장은 “중국에서 요즘 한국 드라마 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중국 정부의 외자 유치를 위한 노력은 그야말로 ‘올인’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외국 자본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푸동과 같은 경제특구에 진출하는 합작법인에는 법인세 면제·감면과 부과세 환급, 지방소득세 면제 등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준다. 또 외국 기업의 주재원들이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병원, 외국인학교, 쇼핑센터, 외국인 전용 아파트 등 각종 생활기반 시설을 잘 마련해놨다. 심지어 푸동의 치안유지를 위해 이 지역으로 이사오는 중국인들에게 전과자가 아니라는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기도 한다. 최근 상하이시는 2007년까지 장애인들이 완전히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무장애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장애인 복지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도시 이미지를 개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외자 유치에 효과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경제특구는 지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투자 유치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외자 유치 실적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한다. 이러다보니 공무원들이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상하이에서 서북쪽으로 87km 떨어진 쑤저우 공업원구도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이곳은 개성공단과 입지 조건이 매우 비슷하다. 개성에 고려 유적지가 많듯이 쑤저우는 북송 때부터 이름난 관광지였다. 을 쓴 마르코 폴로가 이곳을 ‘동양의 베니스’라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와 수로로 유명하다. 쑤저우 배후에 상하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있는 것처럼 개성도 60km 떨어진 곳에 서울이라는 세계적인 도시가 있다. 쑤저우는 지난 1995년 시 외곽에 70㎢ 넓이의 광활한 중국-싱가포르 공업원구가 들어서면서 유서 깊은 관광지에서 국제적인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한다. 2003년 현재 세계 500대 기업 안에 드는 80개 기업이 쑤저우에 진출해 있다.
‘졸부’들, 부동산을 갖고 놀다
쑤저우도 푸동과 마찬가지로 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시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과 관련된 일화는 수두룩하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1호 외자기업인 삼성전자쑤저우반도체유한공사 장형옥 총경리(법인장)는 “지난 95년 처음 이곳에 진출했을 때 공장을 돌리기 위한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서 이를 건의했더니, 시 정부가 영국의 가스회사를 유치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줬다”며 “여기 공무원들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쑤저우 공업원구의 수출액은 지난 96년 3억6500만달러였지만, 2003년에는 50억달러로 껑충 뛰었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노리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입주 신청이 쇄도해 이곳은 현재 3기 단지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푸동과 쑤저우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특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금융부실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낳고 있다. 삼성전자쑤저우LCD(SESL) 안동기 총경리(법인장)는 “쑤저우 공업원구의 기반시설 공사에 들어가는 방대한 재원이 어떻게 나왔겠느냐”며 “부실대출은 중국 경제의 앞날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특구는 또 빈부격차라는 새로운 과제를 남겼다. 경제특구와 다른 지역간의 경제력 차이는 계층간 빈부격차와 함께 중국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산업은행 김명식 셴양지부장은 “상하이 등 중국 남쪽 도시의 생활수준은 서울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데, 중국 내륙과 만주 등 북부지역은 아직도 낙후돼 있다”며 “북쪽지방의 농민들이 상하이 등으로 몰려들어 도시 빈민과 노숙자군을 형성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와 쑤저우는 부동산 개발이익으로 백만장자가 된 ‘졸부’들이 많다. 이들은 수억원짜리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수십억원대의 고급 아파트에 산다. 김 지부장은 “중국의 부자들은 한국의 부자들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금융기관보다는 부동산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중국 경제의 미래에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상하이와 쑤저우에는 호화별장 건설 붐이 일고 있다. 취재팀이 지난 4월20일 쑤저우의 대표적 명승지인 타이후호(太湖)를 찾았을 때 그 주변 마을은 곳곳이 유럽풍의 호화별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돈이 남아도는 부자들이 앞다퉈 별장을 짓는 바람에 땅값만 크게 뛰고 있다”며 “워낙 (별장)값이 비싸서 매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개방의 열매를 골고루 나누려면…
상하이와 쑤저우 서민들의 삶은 고달프다. 상하이의 생산직 노동자 평균 월급은 3천∼4천위엔(한화 약 45만∼60만원) 수준이다. 물가가 서울과 비슷한 수준임을 감안하면 서민들은 팍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 중심가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고층빌딩들이 즐비하지만, 그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있다. 쑤저우 시내 고급 호텔은 관광객들로 넘쳐나지만, 이 관광객들은 호텔문을 나서자마자 여기저기서 한떼의 앵벌이나 노숙자들과 맞닥뜨려야 한다.
푸동과 쑤저우가 개성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북한이 과연 중국처럼 과감한 경제개방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과 일맥상통한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북녘은 물론 남쪽에도 희망임에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푸동과 쑤저우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을 얻기 위해서는 과감히 문을 열어야 하지만, 개방의 열매를 골고루 나눠가지려면 최소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개성공단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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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을 투사로서는 존경하지만, 리더로서는 존경하지 않는다. 중국의 진정한 리더는 덩샤오핑이다.” 푸동 경제특구 취재 때 통역을 맡았던 로리 구오는 중국 지도자들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내 직장 동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상하이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로리는 30대 중반의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그는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 4살짜리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남아선호가 중국의 전통적인 관습 아닌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노 모어(No more)”라고 답했다. “물가가 점점 올라 양육비 부담이 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1∼2명의 자녀를 갖는다. 상하이에서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가가 뛰고 있다. 자기 몸 하나 주체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아들 하나 보려고 자녀를 셋씩, 넷씩 낳을 수 있겠는가.” 로리는 “젊었을 때 돈 많이 벌어서 노후에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게 이곳 청년들의 꿈”이라고 덧붙였다.
상하이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주재원들은 “이곳 사람들을 보면 미국인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고 말한다. 상하이 사람들이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실용적이며 돈에 밝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유한공사 문인환 과장은 “빈부격차가 엄청난데도 가난한 사람들이 별로 부자를 욕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부자들의 근면함을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부자들도 그리 티를 내지 않는다. 문 과장은 “이곳의 부자들은 한국 부자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 있는데, 옷차림 등을 보면 평범한 시민들과 똑같다”라며 “쓸데없는 데다 돈을 쓰지 않겠다는 실용적인 사고방식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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