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무지 · 현란한 테크닉에 사라진 얀 구넹의 감각
박혜명/ 기자 morning@hani.co.kr
는 (1998)을 연출한 얀 쿠넹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그의 데뷔작 은 쉴 틈 없이 날아다니는 카메라워크와 재치 있는 화면분할, 과장된 앵글 등 스타일리시한 형식뿐 아니라 화면 위로 발산되는 폭력적인 분노의 에너지가 웬만한 할리우드 액션영화들보다 거칠고 대담한 매력을 뿜었던 영화다. 뮤지컬 형식을 차용한 나 영화 전체를 저속촬영한 같은 단편도 흥미롭다. 늑대와 빨간 두건 소녀의 동화를 모티브로 삼은 은 천명의 빨간 두건 소녀들을 이유 없이 죽이는 괴물과 그가 망가뜨려놓은 다리로 살아가는 늙은 999번째 빨간두건 소녀, 그리고 그녀에게서 다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마지막 빨간 두건 소녀의 비극적인 이야기. 동화 속 같은 숲에서 끔찍한 상황이 태연하게 벌어진다. 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마녀들과 초현대적인 도심의 독특한 시각적 대비를 보여주면서 쫓고 쫓기는 관계의 역전을 재치 있게 묘사한다. 머리를 도끼로 내려찍는 잔인함도 아무렇지 않게 뒤섞인다. 형식은 기발하고, 잔인한 폭력성과 적나라한 증오는 무겁지 않게 표출된다. 주제의식은 없어도 보는 재미가 짜릿하다.

안타깝게도 는 이러한 개성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공식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는 마이크와 월리의 대결을 통해 (아마도) 인간의 내면에 잠재할 수 있는 악한 영적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 듯하다. 불가사의한 이 존재를 거대하고 두려운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영화가 택한 방법은 추상적이며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CG) 영상을 아낌없이 쏟는 것이다. 한번이면 족할 어지러운 고공촬영도 고집스레 반복하며 ‘신산은 신비한 곳’임을 세뇌시킨다. 왜 그곳이 신비하고, 왜 그 존재를 불러들이는 건지, 그 존재는 인간에게 어떤 힘을 부여하는지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인디언=신비’라는 용감한 무지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인디언과 소통하는 영적 존재를 얄팍하게 이해한 채 현란한 테크닉만 의미 없이 남용한다. 빠져도 상관없을 마이크와 마리아(줄리엣 루이스)의 로맨스는 너무 상투적이라 실소가 나온다. 단순한 줄거리조차 힘있게 밀어붙이는 에너지, 세련된 형식과 도발적인 내용을 조화시키는 얀 쿠넹의 감각은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을 “만화세대”라고 말한 바 있는 얀 쿠넹 감독의 는 1960년대에 발표된 만화 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공동 각본가 장 지로가 이 만화의 원작자. 그러나 이 영화는,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자신의 개성을 맘껏 발휘했던 때와 달리 공감을 얻기 힘든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얀 쿠넹은 지금까지 자신이 천착해왔던 인간의 악함, 그 본성의 기원을 탐구하려다 여기에 이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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