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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개혁이냐 방송개혁이냐

등록 2004-05-12 00:00 수정 2020-05-02 04:23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논객의 언론개혁 혈전… 족벌신문 편집권 독립 제도화 vs 신문사 자율

▣ 사회 · 정리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은 정치권에서 언론개혁 분야의 대표적 논객으로 꼽히는 김재홍(열린우리당), 박형준(한나라당) 당선자를 초청해 1대1 토론을 마련했다. 토론에서 김 당선자는 여론상품의 공공성 철학에 근거해 신문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반면에 박 당선자는 신문보다는 방송의 편파성이 문제라면서 민영화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토론은 5월10일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했다.

논조는 토론과 합의로 만들어져야

김재홍= 언론이 대체적으로, 특히 몇몇 신문의 경우 국민 다수 의사와 동떨어져 있음에도 계속 자기들의 주장과 논리를 전파함으로써 여론 형성을 왜곡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예컨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최소한 65%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보수적 논조를 가진 조중동은 이 정책에 대한 비판 차원을 넘어 적대적 태도를 보였다.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한 신문사는 자유민주 이념을 인정하지 않는 대북 협상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탄핵 문제도 그렇다. 국민이 뽑은 지 1년도 안 된 대통령을 야당이 무리하게 탄핵하려는 데 보수적 신문들이 대통령은 선거법을 위반한 게 사실이라면서 탄핵소추의 논리를 제공했다. 보수신문에서도 언론인들이 자유롭게 토론해 그런 논조가 나왔다면 괜찮다. 그러나 내부 민주화가 되지 않은 가운데 사주 1인의 권한 때문에 이런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박형준= 우리나라 신문·방송의 편파성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며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조중동 손보기를 곧 개혁이라고 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언론개혁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맞춰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차원으로 관심사가 확장돼야 한다.

또 신문보다 방송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추세를 감안할 때 방송의 편파성이 더 큰 문제다. 신문이 소수에 의한 족벌지배라는 비판을 받지만 방송은 정치권력이 장악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탄핵 문제에서 조중동은 국회 의결 전날까지 사설로 반대 입장을 밝히되 대통령의 사과를 함께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반면에 방송은 탄핵 당일부터 탄핵을 매개로 야당을 공격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누구 이익을 떠나 방송이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은 온당치 못하고 국민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

김= 조중동이 사설로 탄핵에 반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야당이 탄핵 사유로 제시한 선거법 위반 부분을 마치 옳은 것처럼 계속 씀으로써 야당쪽에 확신을 제공했다. 방송 편파성 문제는 이렇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자기 논조와 철학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편집·제작·보도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 언론인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를 거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방송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노조를 중심으로 내부 민주화가 상당히 이뤄졌다. 노조를 통한 공정보도 감시활동이 강력하다. 그런 점에서 사주 체제인 거대 신문사와 비교하기 곤란하다. 방송에 어떤 논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민주성의 산물로 성격이 다르다. 언론을 흔히 ‘제4부의 권력’이라고 하는데, 신문사주는 국민에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면서 영원히 교체되지도 않는다. 방송은 정권이 장악한 것도 아니지만 정권의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이 선택한 정권에 의해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신문이며 방송 개혁은 차순위다.

좌파적 정권의 좌파적 방송?

박= 노무현 정권은 좌파적인 권력이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 노조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 즉 방송에서 좌파적 관점이 지배적이라면 언론의 권력감시라는 고유 기능이 상실되는 문제가 생긴다. 우파 권력일 때 방송 노조가 좌파라면 생산적으로 권력을 비판하겠지만…. 과거에도 방송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에 모두 심하게 권력과 유착했다. 족벌신문이 문제라면 방송 역시 권력과 유착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 김재홍: 언론을 흔히 ‘제4부의 권력’이라고 하는데, 신문사주는 국민에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면서 영원히 교체되지도 않는다. 방송은 정권이 장악한 것도 아니지만 정권의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국민이 선택한 정권에 의해 바뀌는 것이다. 문제는 신문이며 방송 개혁은 차순위다.

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국민이 좌파냐? 방송노조가 좌파냐? 개혁을 해달라는 국민의 의사를 사회주의적, 좌파적, 심지어 친북적이라고 하는 게 보수 논리인데 이건 반국민적 인식이다.

언론의 권력비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박 당선자께서 문제없다고 하는 신문의 역사를 보자.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때 제대로 했나?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 대한 비판도 비교해보자. 신문 기준으로 볼 때 봐주는 정권과 싫어하는 정권이 있었던 것 아니냐.

방송은 방송위원회나 한국방송 이사회를 여야 추천을 거쳐 구성한다. 이번 정권 들어 청와대가 한국방송 사장으로 시키려 했던 서동구씨가 탈락하고 다른 사람이 인선된 예가 있지 않나. 구시대의 방송 경영진 선출방식이 지금도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

박= 보수적인 독자는 조중동을, 진보적인 독자는 나 다른 매체를 선택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 정권 입맛에 따라 접근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사회= 신문개혁의 쟁점들을 살펴보자.

김= 주요 신문사일수록 사주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어떤 신문은 창업자의 3세, 4세가 세습하면서 경영·편집권을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기자들이 미국의 주요 신문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사주의 편집 방침에 저항해 다른 언론사를 선택할 수도 없다. 젊었을 때 입사하면 평생 옮길 수도 없는 유연성 제로 지대가 우리 신문 현실이다. 직업 언론인들이 사주 체제에서 양심의 자유를 상실하는 상황이 구조화된 것인데, 이는 사주 체제를 해체하지 않고선 개선이 불가능하다.

◁ 박형준: 노무현 정권은 좌파적인 권력이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 노조의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 즉 방송에서 좌파적 관점이 지배적이라면 언론의 권력감시라는 고유 기능이 상실되는 문제가 생긴다. 우파 권력일 때 방송 노조가 좌파라면 생산적으로 권력을 비판하겠지만….

박= 제가 만난 조중동 기자들한테서 사주 체제가 편집권을 저해한다는 주장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이 사주의 이데올로기에 젖어 그런지는 몰라도 조중동 기자들이라고 해서 양심의 자유를 포기했다고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몸담은 신문사의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 기자들에게 활동공간을 열어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율적으로 보수적 경향을 체현하는 기자들을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주의 소유지분 문제를 거론하는 의도는 알겠다. 그러나 굳이 위헌 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방식이 실효성이 있겠느냐. 시장 독과점 문제도 트러스트 형식으로 담합한다면 문제라고 하겠지만, 현재 시장 상황을 보면 조중동이 상호 경쟁이 가장 격렬한 편이다. 이것을 시장 독과점 상태라고 규정할 근거가 뭔가.

기준과 원칙, 어떻게 정할 것인가

김= 소유지분을 제한한다기보다는 소유권 분산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언론사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지배주주 혼자가 아니라 여러 주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기술이 필요하다. 또 모든 언론사에서 이런 조항을 적용하자는 게 아니라 여론시장을 독과점한 몇개 언론사에 한정해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 신문시장을 보면 보수적 논조와 이념이 똑같은 3대 신문이 72~74%를 점유하고 있다. 이래 갖고는 의견의 자유 시장 형성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시장 상황이 국민의 선택 결과로 보기도 어렵다. 지금의 거대 신문사들은 1975년, 1980년에 권력비판을 포기하고 유능하고 양심적인 기자들을 잘라냈다. 정권은 그 대신 사주들을 보호하고 지원했다. 1980년의 언론사 통폐합 조처, 그 뒤 대기업의 광고가 이들 신문사에 가도록 한 게 그렇다. 현재의 시장 상황은 독자들의 자유로운 선택 결과가 아니라 권력과 타협해 지원받은 결과이기 때문에 일단 독과점 구조를 혁파해 정상화해야 한다.

조중동이 상호 경쟁하고 있다지만 논조가 똑같은 신문들이 판촉경쟁, 경품경쟁을 하는 것은 국민들이 볼 때 의미 없는 경쟁이다. 신문은 공공재 성격이 강한 여론상품을 다루기 때문에 공정거래 기준이 더 엄정하게 적용돼야 한다.

박=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게 하면 의도와 관계없이 조중동 죽이기가 될 것이다. 물론 과거처럼 언론사에 특권이 제공돼선 안 되며 언론사도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특정 언론사를 겨냥해 개혁이라는 명분을 들이댄다면 시장논리가 들어설 길이 없어진다.

김= (개혁 대상) 언론사를 정해놓고 손질하는 게 아니다. 기준과 원칙을 먼저 정하면 거기에 해당하는 언론사가 드러날 것이다.

박= 기준과 원칙을 정할 때 미리 상정해둔 점들이 있는 것 아닌가. 공정한 기준과 원칙이 아니라 특정 언론에 문제가 있으니 그것을 고치려면 이런 원칙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김= 지나친 선입견이다. 국민여론 형성 과정이 왜곡된 현실을 진단하고 그것을 정상화하려면 황제적 1인 독과점과 시장 독과점 상황을 혁파해야 한다. 그런 과제를 세우고 나면 대상은 결과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박= 그런 일을 위한 제도적 기준이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비치지 말아야 한다.

신문 배달망 개선은 국민의 권리

사회= 신문 공동배달 제도와 편집권 독립 시스템으로 들어가보자.

김= 서울을 떠나 중소도시에 출장가면 내가 보고 싶은 신문을 사볼 수 없다. 기본적인 배달망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배달망은 자본력과 사세에 좌우된다. 그러나 국민들의 언론 선택권은 보장돼야 하는 것 아니냐. 언론사들이 부족한 자본력 때문에 배달망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국민여론 선택권 차원에서 보완해줘야 한다.

편집권의 행사 방식도 민주화해야 한다. 편집간부들이 편집권을 행사할 때 일선 언론인과 토론·합의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문제다. 한시적으로라도 편집제작위원회를 법정 기구화함으로써 기자 대표와 편집간부가 의사결정 과정에 함께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박= 그게 편집권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장치가 된다면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언론 종사자들의 여론을 수렴해볼 문제다. 그러나 신문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공영방송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곤란하다. 기본적으로는 신문사 자율에 맡기는 게 좋다. 이 문제는 신문 편집권 독립의 실상이 어떤지에 관한 실제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상업적 방송, 아예 민영화를…”

방송 분야 한나라당쪽이 적극 공세… 방송위 구성에 국민선출제 도입하자는 제안도
토론에서 열린우리당이 신문개혁에 적극적 입장을 취한 반면에, 한나라당은 방송 분야의 구조 개편 필요성을 공세적으로 제기했다.
박형준 당선자는 한국방송 2텔레비전 문제를 두고 “공영방송이 상업방송처럼 시청률 경쟁을 벌임으로써 상업주의에 휘둘리는 문제를 낳고 있다”며 “광고를 함으로써 문화방송보다도 공영성 지수가 낮다고 할 한국방송 2텔레비전은 민영화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방송 문제도 “형태상으로는 공영방송이지만 공영보다는 상업방송 기능이 많은 상태”라며 “공영 기능을 강화하든지 아니면 민영화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에 김재홍 당선자는 “현재의 언론개혁 과제는 기본적으로 왜곡된 신문산업을 어떻게 바로잡느냐”라며 “방송 종사자와 학계 의견을 좀더 수렴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틀을 크게 흔들 시급한 이유는 없다”고 반박했다. 김 당선자는 대신에 윤세영씨가 지분 30%로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는 SBS 문제와 관련해 “방송은 신문보다 공익성이 한층 더 중요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현행 방송법이 허용하고 있는 1인 지분 30% 한도는 더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SBS 문제와 관련해 박 당선자는 “한겨레신문사처럼 국민주 회사를 만들지 않는 한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을 다소 낮춰봐야 실효성이 없다”며 “사주의 전횡 문제는 다른 방송내용 규제기구를 통해 감독할 일”이라고 반박했다.
방송위원회 구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박 당선자가 “정당 추천제를 없애고, 국민의 선출 개념이 들어가는 다른 구성방식을 새로 연구해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국회 추천 방송위원 몫을 늘리자고 주장하던 것과 다른 것으로, 17대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뀐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읽혔다. 현행법에 따르면 방송위원 9명 가운데 6명은 국회가, 3명은 대통령이 지분을 갖고 있다.
이에 김 당선자는 “국회 추천 방식 외에 국민의 선출 개념을 반영할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느냐. 국민 직선을 할 순 없지 않느냐”라며 현행 틀 유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다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특보를 지낸 양휘부씨가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송위원이 된 사례 따위가 문제”라며 “정당 추천은 유지하되 정당인이 아닌 방송 전문가가 추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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