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국경을 가다 8회- 볼리비아 · 페루]
‘자유무역’ 성행하는 국경마을 데사구아데로… 볼리비아 농산물과 페루 공산품 무관세로 거래
데사구아데로(볼리비아)=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남미 대륙의 서쪽을 남북으로 가르는 안데스 산맥 곳곳엔 뜨거운 여름을 이겨낸 산꼭대기의 만년설이 장관을 이룬다. 만년설로 남지 못하고 녹은 눈은 볼리비아와 페루 국경의 티티카카 호수로 흘러든다. 호수의 파란 물빛은 새하얀 만년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호수는 해발 3812m에 자리잡고 있다.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지대에 그렇게 큰 호수는 없다. 티키카카의 면적은 자그마치 8300㎢나 된다. 수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돈 쥐어주면 통과하는 검문소
티티카카는 잉카의 창시자 망코 카파쿠 황제가 그의 여동생 마마 오크료와 함께 호수의 태양의 섬에 내려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잉카족에게는 성스로운 호수다. 티티카카는 아이마라어로 표범을 뜻한다. 호수의 모양이 표범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오래 전에는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표범이 많이 살기도 했고, 잉카문명은 표범을 신처럼 떠받들었다고 한다. 호수는 안데스의 고산족 아이마라의 삶의 터전이고 잉카의 후예들인 남미 인디오들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볼리비아와 칠레가 해안 국경 문제로 오랜 원한을 쌓아온 것과 달리, 볼리비아와 페루는 오래 전부터 친구의 나라다. 실제 칠레와 싸운 이른바 ‘태평양 전쟁’에서 그들은 연합국이었다. 두 나라는 그들의 정신적 고향인 티티카카도 사이좋게 절반씩 나눠갖고 있다. 티티카카 호수의 남단에 자리잡은 데사구아데로 마을은 볼리비아와 페루가 육로로 만나는 곳이다.
데사구아데로 마을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112km 떨어져 있다. 자동차가 시 외곽으로 향하자 길 위 곳곳에 개들의 주검이 널부러져 있어 운전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주인 없이 버려진 개들은 들개가 되어 거리와 사막을 배회하다 사람이 지나가면 달려들어 먹을 것을 요구하곤 한다. 개들은 달리는 차에게도 함부로 달려들다 그렇게 처참하게 생애를 마감하곤 한다. 그러나 개의 주검을 치우는 사람은 없다.
데사구아데로 마을을 20km가량 남겨둔 곳, 구아끼 마을에 검문소가 있었다. 군인들은 직접 손으로 차단막을 올리고 내린다. 외국인인 취재진은 차에서 내려 검문소를 지나야 했다. 물론 여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검문은 간단히 끝났다. 데사구아데로 마을 입구에도 경찰 검문소가 있었다. 경찰은 “되는 대로 (돈을) 달라”고 했다. 강제로 받으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라파스에서 온 버스에서는 열댓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차에서 뛰어내려 경찰 검문소에 달려가 돈을 냈다. 대개는 1~2볼리비아노(한화 150~300원)를 낸다.

마침내 차가 데사구아데로 마을로 들어섰다. 우리를 발견한 한 젊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손짓을 하며 차를 열심히 뒤따른다. 그는 “차를 지켜주겠다”고 했다. 볼리비아쪽엔 집이 300여채쯤 돼 보였다. 그러나 거리는 한가했다. 곳곳에 사람이나 짐을 실어나르는 세발 자전거(트리시 택시)가 있다. 주로 소년들이 운전한다. 페루에서 왔다는 한 소년은 “2볼리비아노를 주면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국경다리까지는 100여m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짐 때문에 트리시 택시를 많이 이용했다.
“두 나라 잔돈 다 준비해놓았다”
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개울이 볼리비아와 페루를 가르는 국경이다. 다리 위에 세명의 촐리타(원주민 여자)가 땅콩을 팔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뜨개질을 하고 있던 한 촐리타는 “10년째 여기서 일했다. 하루에 20~30볼리비아노를 번다”고 말했다. 볼리비아에서 일반 노동자의 일당이 3달러(25볼리비아노)가량이므로, 비슷하다. 양말을 신지 않은 촐리타들은 하나같이 이를 새로 해넣었다. 어려서부터 청량음료에 찌들어사는 볼리비아인 중에서 이가 성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국경을 건너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누구도 여권을 보여달라거나 통행세를 요구하지 않았다. 국경 다리 앞 세관에는 페루로 건너갈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다리를 건너 페루쪽에 이르자 환전상 10여명이 길가에 좌판을 펴놓고 앉아 있다. 페루쪽 데사구아데로는 볼리비아쪽보다 훨씬 사람이 많고, 마을도 크다. 곳곳에 노점이 있어 간단한 먹을거리를 팔기도 한다. 페루쪽은 국경 가까이에 제법 큰 도시가 여러 곳 있고, 농산물 값이 싼 볼리비아쪽에서 장을 봐가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페루 세관원 앙헤이는 볼리비아쪽으로 늘어선 차에 무엇이 실려 있느냐고 묻자 “플라스틱 병”이라고 말했다. 그는 “볼리비아에서 수입하는 물품은 간장, 기름, 그리고 밀과 콩 같은 농산물”이라고 말했다. 그것만은 아니다. 볼리비아에서 페루쪽으로 머리를 향한 대형 트럭들엔 대부분 고철이 가득 실려 있었다. 볼리비아엔 철강공장이 없어 고철도 그렇게 페루로 수출되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주요 수출품 중엔 천연가스 등 광물자원도 포함돼 있다. 국경에서 통관을 기다리고 있던 가스차 운전사 로돌프 메딜라는 트란솔이란 천연가스 회사 직원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페루의 아르키바란 도시로 가스를 배달한다고 했다.
양국을 합해 5천여명이 산다는 데사구아데로에서는 볼리비아 돈이나 페루 돈 모두 자유롭게 통한다. 식료품가게 주인 말다는 “볼리비아 사람들은 잉카콜라(페루에서 생산한 노란색 콜라)를 많이 사간다”며 “어느 나라 돈이든 잔돈을 다 준비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데사구아데로를 찾은 날은 월요일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이 가장 북적이는 것은 자유시장이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말다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장이 서는데, 금요일이 훨씬 분주하다”고 말했다. 자유시장이 열리는 날 국경다리를 건널 때는 2볼리비아노의 통행세를 내야 한다.
국경은 세금 뜯어가는 장벽?
장날엔 상인들이 몰려들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도 수천명씩 몰려든다. 이 마을에서의 거래에는 관세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무역이다. 페루인들은 값싼 농산물, 또는 음료수, 과자 식용유, 이불 등 생필품을 볼리비아쪽에서 사간다. 라파스 한인회 최희진 총무는 “볼리비아의 농산물은 페루에 비해 절반 가까이 싸다”고 말했다.
볼리비아 사람들은 페루의 데사구아데로에서 주로 공산품을 사간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볼리비아쪽 데사구아데로 마을엔 커다란 신발가게가 눈에 띄었다. 페루쪽에는 없던 것이다. 볼리비아에서 생산한 것일 리는 없다. 실은 페루쪽은 세금이 비싸, 볼리비아에서 수입한 보세신발이 값이 더 싸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아무 제약 없이 물건을 사고 친구를 사귀었다.
볼리비아와 페루인들에게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데사구아데로에서 ‘국경’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페루의 푸노에서 ‘장을 보기 위해’ 데사구아데로에 들렀다는 아밀다는 “볼리비아에서 물건을 사면 값이 반값이다. 서로 싸게 물건을 사고 팔면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니냐”고 잘라말했다. 보호해야 할 자국 산업이라는 개념이 없는 그들에게 국경은 그저 세금을 뜯어가고, 사람을 귀찮게 하는 장벽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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