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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신문-공영방송 ‘복수혈전’

등록 2004-04-22 00:00 수정 2020-05-03 04:23

MBC 기자들 ‘조선일보와의 전면전’ 공개선언… 시사프로 이 선두에서 타격

전종휘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symbio@hani.co.kr

지난 4월13일 오전 10시 저마다 바쁠 게 틀림없을 문화방송 보도제작국 소속 기자 3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을 소집한 것은 그날치 6면에 실린 ‘MBC 시사프로 갈수록 편파적… 누구 위한 방송인가’라는 제목의 통단 기사와 ‘시사매거진 2580의 ‘왜곡’ 대선후보 비교시리즈 특정 부분만 부각’이라는 상자기사였다. 기자들은 2시간여 회의 뒤 성명을 냈다. 제목은 ‘본질은 훼손될 수 없다-조선일보와의 전면전에 나서며’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우선 의 가짜 전여옥 인터뷰 사건에 대해 처절한 반성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곧바로 “조선일보는 의 실수를 빌미로 문화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을 왜곡·편파 방송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조선일보가) 수구세력과 함께 역사의 뒷길로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싸움을 마다치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선일보 “모든 수단 통해 법적 대응”

이날 저녁에는 보도국을 포함한 보도본부 소속 기자들의 각 기수대표 20여명이 모여 보도제작국 기자들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내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이날치 조선 기사는 문화방송 기자들이 손에 움켜쥔 ‘전면전’이라는 잔을 넘치게 만든 마지막 한 방울의 물에 불과하다. 조선은 와 더불어 지난 3월12일의 ‘탄핵안 국회 가결’ 이후 탄핵방송의 편파성 시비를 제기하면서부터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 사이에 공영방송을 공격하는 사설만도 6개나 게재했다. 게다가 기사와 사설이 겨냥하는 과녁은 문화방송의 에 집중됐다. 탄핵 전 친일진상규명법 입법과 친일사전편찬사업 국고지원의 좌절을 비판적으로 다룬 <pd> ‘친일파’ 편까지 고려하면 문화방송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치고 조선의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은 프로그램이 없는 셈이다.
문화방송 기자들은 조선이 탄핵역풍을 맞고 비틀거리던 한나라당을 구출하기 위해 과 에 대해 사실을 왜곡해가면서까지 공격하고 나섰다고 인식하고 있다. 두 프로그램은 기자들 소속 보도제작국에서 만들고, <pd>과 은 PD들이 만든다.
결국 문화방송 보도제작국 기자들은 조선과의 전면전을 과 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꾸준히 벌여나가기로 했다. 지난 11일 ‘조선일보의 정치개입’ 편을 내보낸 바 있는 은 곧이은 18일 ‘왜 권력을 꿈꾸는가?’ 편에서 다시 조선이 방송비판을 통해 한나라당에 구애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릇된 현실의 연원이 조선의 친일 행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고발했다. 총선 특집 프로그램 때문에 16일 방송을 쉰 도 23일 조선의 선거 관련 보도에 다시 칼을 댈 작정이다. 보도제작국 기자들은 인터넷에서의 반대 담론 생산도 중요하다고 보고 등의 인터넷 언론과 포털사이트에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다.


한국방송 노조도 점잖게 가세

총선을 코앞에 둔 지난 12·13일 예외적으로 연이어 미디어면을 운용해 문화방송을 비판한 조선은 13일치 2면 기사에서 문화방송에 대한 소송 방침을 밝히고 나섰다. 조선은 “문화방송은 공영방송으로서 최소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외면한 채 등을 통해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해왔다”며 “조선일보사는 허위사실에 근거해 조선일보를 지속적이고 악의적으로 비방해온 문화방송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반론 보도를 요구하는 한편, 가능한 모든 수단의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선에 대한 문화방송의 분노는 기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노조도 이달 들어서만 ‘박근혜호, 수구신문과의 밀월을 끝내라’(4월6일), ‘신문의 날, 조선일보에 권한다’(7일), ‘조선일보는 입을 닫아라’(13일), ‘선거방송위는 조선일보의 하수인인가?’(4월15일) 등의 제목을 단 성명을 잇달아 내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보다 못한 한국방송 노조도 14일 성명을 내어 “문제가 발생한 프로그램의 해당 부분을 ‘가차없이’ 날카롭게 비판하면 되는 일이지, 마치 문화방송의 모든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이 왜곡을 일삼고 있다는 느낌을 주도록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언론의 정도가 아니다”라고 비교적 점잖게(?) 가세했다.
문화방송 기자들이 조선에 대해 공개적인 전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1년 초 의 모태인 을 만든 뒤 수구언론과 국지전 차원의 지속적인 긴장관계를 형성하긴 했으나, 보도국 일부에선 “굳이 싸움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주화파’의 목소리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주전파’의 입지가 훨씬 강화된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6개월여 전 한국방송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지난해 9·10월 송두율 교수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동아가 공안 정국 조성에 나서며 한국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색깔론 공세를 벌이자 참다 못한 PD협회·기자협회·노조·기술인협회 등 한국방송 내 각 직능단체가 들고 일어선 바 있다. 당시에는 동아가 지나가던 소도 웃을 ‘김일성 시계 미화’ 논란을 제기하는 등 공세를 지속하자 한국방송 기자협회가 법적 대응을 회사쪽에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일로 양대 공영방송의 기자사회가 당분간 수구언론과 어떠한 형식으로든 타협이 불가능한 대척점에 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수구신문의 정파적 이해에 기초한 저급한 비판 너머 “방송도 정치적인 사안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이 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방송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임에도 프로그램에서 정파에 따라 이해관계가 첨예할 수 있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그들은 물론 프로그램의 완결성을 떠나 국민의 여론과 ‘변화와 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을 충실히 좇으려고 했다. 12일 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언론의 공정성을 묻는 질문에 방송에 대해선 48.7%(매우 공정 6.2%, 대체로 공정 42.5%)가 긍정적 평가를 한 반면, 신문에 대한 긍정 답변은 35.1%(매우 공정 2.2%, 대체로 공정 32.9%)에 그쳤다는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신문보다는 방송이 더 공정하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그동안 소유와 경영의 공공성을 근거로 늘 엄격한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받아왔다. 그렇지만 수구신문처럼 “누구에게 불리하고, 누구에게는 유리하니 보도하지 말라”는 식의 잣대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방송도 언론이기 때문에 항상 판단하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또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게 따라가야 할 의무도 있다. 그렇다면 그 한계는 어디일까?

‘공영성’과 ‘소신’의 시소 위에서…

“제작자의 양심과 소신이 프로그램 제작의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 탄핵 국면에서는 그것이 국민의 여론과 일치했다. 하지만 그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어느 쪽을 옹호해야 하는 것인가. 제작자의 양심과 소신이 절대 존중돼야 한다라고는 또 얘기할 수 없다. 제작진이 정치 지형과 국민 여론 지형 속에서 국민 여론을 계도하겠다면 위험할 수 있다. 고민해야 할 숙제다.” 전국언론노조 한 간부의 말이다.
결국 방송 제작자들의 치열한 자기 고민과 시청자들의 견제 속에서 답을 찾아나가야 할 과제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수구신문이 방송에 대해 지금 같은 접근법을 지속하는 한은 그 논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p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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