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팔루자에서 무차별 살상 자행한 미군… 정작 미국인 살해범 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보경/ 문화방송 국제부 기자 · 이라크 순회특파원 bklee@mbc.co.kr
이라크에 뜨거운 여름이 예고되고 있다. 전쟁 2년째로 접어들면서 이라크 각지에서 미군과 저항세력간의 전투가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을 추종했던 수니파의 기존 저항세력에 더해, 지금까지 반미 저항을 자제해왔던 시아파의 일부까지 무장투쟁을 실천하고 나서면서 전선이 일정하지 않은 전쟁터가 이라크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오는 6월30일 이라크 주권이양 시한을 전후해서 6월과 7월이 이라크 사태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라크인들이 점령국들을 의심하고, 점령국들이 이라크 주권이양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는 한, 양쪽에 어떤 데드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재앙일 수 있다.
5월 광주와 겹쳐지는 팔루자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을 개시한 지 1주년이 되던 지난 3월20일, 세계 곳곳에서 반전의 외침이 울리는 가운데 정작 이라크는 태풍의 눈과 같은 불안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물론 그 이틀 전 바그다드 도심의 자발 레바논 호텔에 차량폭탄 테러가 일어나 수십명이 죽거나 다치고 북부 키르쿠크에서 경찰서가 습격당하는 등 크고 작은 공격이 있었다. 하지만 1주년 당일에는 미군이 특별히 삼엄한 경계를 펼친 때문인지 바그다드 등지에서 우려했던 유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얼음 같은 정적이 커다란 파열음을 낸 건 그로부터 11일 뒤인 3월31일, 바그다드 서쪽 도시 팔루자에서 저항세력에 의해 사살된 미국인 4명의 주검이 주민의 환호 속에 심하게 훼손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서였다. 미국의 각 방송은 하루 종일 이 사건을 보도했고, 는 1면에 불태워진 채 몸체가 잘려나간 주검이 유프라테스강 다리에 내걸린 사진을 커다랗게 실었다. 미국 언론들은 물었다. “부시 대통령의 의문은 이거다. 즉, 팔루자에 보복을 가할 경우 이라크전 정당성 문제와 이 점령이 대가를 치를 만한지에 관한 미국 내 여론이 흔들리게 될까 하는 거다”라고 <usa>는 분석했다. 부시의 응답은 보복 실행으로 나타났다.
팔루자는 4월5일 미군에 의해 봉쇄됐다. 요르단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향하는 고속도로가 한때 전면 폐쇄되고 팔루자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혔다. 통신도 두절돼 철저히 고립된 팔루자에서는 그날부터 미군 제1대대 5해병대의 작전이 벌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는 상태가 2~3일 계속됐다. 외신들은 기껏해야 팔루자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느니 하는 뻔한 내용을 반복해서 타전했을 뿐이다. 군의 대형 작전이 개시됐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3월 말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돌아와 국제부 기사를 체크하고 있던 기자에게 1980년 광주가 연상된 건 그래서였다. 인명에 관한 첫 소식은 4월7일 저녁 7시가 넘어서야 <ap>가 전했다. 현지 병원 관계자들을 인용해, 팔루자 교전으로 이라크인 60명이 숨지고 130여명이 다쳤다는 내용이었다.
팔루자에는 모하메드(가명)씨가 있다. 아랍어를 영어로라도 정확히 번역해서 봐야 할 내용이 있으면 그의 도움을 받았다. 연로한 부친을 모시고 부인과 어린 딸 하나를 둔 평범하고 성실한 장년이다.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밥 한끼를 함께 먹길 좋아하는 여느 이라크인처럼 그도 우리 팀을 여러 번 초대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집에는 한번밖에 가지 못했다. ‘또 가야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팔루자는 수니 삼각지대니 저항세력 근거지니 하는 ‘드센’ 곳인 동시에, 이슬람의 전통양식인 초록색 양파 모양의 지붕을 얹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가라앉은 분위기의 전형적인 이라크 도시이기도 했다. 두건을 두르고 긴 치마 같은 전통복장을 한 채 거리를 오가고 장사를 하는 남자들의 음산한 눈빛이 어둠이라면 어둠이었다.
과도통치위원회마저 미국에 등 돌려
4월8일, 미군은 전날 그 ‘양파 지붕’ 팔루자 사원을 F-16 전투기로 폭격해 은신하고 있던 저항세력 40여명을 죽였으며 미군 해병 5명도 숨졌다고 발표했다. 민간인 희생 소식은 아랍어 위성방송 가 전하기 시작했다. 수십명의 어린아이들이 숨진 처참한 모습들이 여과 없이 화면을 탔다. 이날까지 팔루자 민간인 280여명이 숨졌다는 외신이 타전됐다. 미군의 작전 엿새째인 4월10일, 아랍어 방송들은 4월12일 기준으로 민간인 사망자 수가 최소 400~600명, 부상자 수가 122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미군이 임명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도 팔루자 민간인이 400명 넘게 숨졌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숨진 가족을 신고하지 않고 땅에 묻은 주민들도 많았다고 한다. 모하메드씨 가족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통신이 두절돼 아직 알 길이 없다.
이라크인들은 과도통치위원들을 ‘미국의 하수인’이라며 불신한다. 그런 그들조차도 미군의 보복에 등을 돌렸다. 과도통치위원회 내무장관이 사임한 데 이어, 위원회 명의로 나온 성명은 미국의 팔루자 작전이 “불법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무고한 양민까지 한데 묶어 응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통곡하는 바그다드 시민들은 ‘팔루자 학살’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전 와중에 미군의 팔루자 도심 진격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4월9일 미군은 한때 공세 중단을 선언했지만 1시간 남짓 지켜졌을 뿐인데, 이마저도 제3대대로부터 해병대 병력을 보충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미군 관리가 밝혔다. 4월10일 이라크 미군 2인자인 마크 키미트 준장은 저항세력에 휴전을 공식적으로 제의했다. 저항세력도 12시간 휴전에 동의해 협상이 벌어졌는데, 미군은 팔루자에서 미국인 4명을 살해한 이라크인들을 넘겨줄 것과 저항세력이 무장봉기를 중지할 것 등을 요구했고, 맞은편은 시간을 정해 미군이 팔루자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양쪽 다 강경하게 나가자면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 요구가 어떻게 수렴될지가 주목되는데, 미군은 일단 해병대를 팔루자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가지 음미할 대목은, 미군이 팔루자에 해병대까지 투입해 양민을 포함해 400여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내고도 자신들이 원하는 살해범을 어떻게 잡지 못했는지, 않았는지 하는 거다. 이라크 전쟁을 개시하기 전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잘 쓰던 말이 있다. 이른바 ‘surgical strike’, 곧 외과수술 같은 ‘족집게’ 폭격이란 건데, 아니 족집게 정보도 없이 해병대씩이나 투입해 팔루자에서 뭘 하려 했단 말인가. 살해 사건과 작전 개시 사이에는 닷새 동안이나 시간이 있었는데, 그사이 미군 정보력의 안테나는 어디로 쏠려 있었나. 보복 작전이 어떻게 미국 내 여론과 표심으로 연결될지 저울질하는 워싱턴으로부터의 정보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을까. 아님, 이라크 무장세력의 치고 빠지는 수법과 은폐술 같은 게 날고 기는 수준인 걸까. 하여튼 이라크 제2전쟁 양상의 중부 중심이 된 팔루자 사태는 앞으로 미군과 저항세력간 협상이 진정한 성과를 얻을지, 나빠지는 국제 여론 등에 대응한 잠시의 숨고르기일지에 따라 이라크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라크 국민의 60%를 차지하면서 바그다드 이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시아파는 지난 1년 동안 점령군에 대해 이렇다 할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시아파 지도자 가운데 30살의 목타다 알 사드르가 반미 노선을 표방해왔을 뿐이다. 하지만 미군이 지난달 말 사드르가 운영하는 주간지를 폭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정간시키고, 사드르의 측근 알 야쿠비를 지난해 시아파 지도자 살해 혐의로 체포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됐다. 사드르쪽은 무장저항을 선언하고 시아파 성지인 카르발라와 나자프, 쿠트, 쿠파 등의 도시를 장악했다.
시아파까지 봉기한 저변의 이유는 뭘까. 이라크에서 기자는 수니파는 물론 시아파 사람들로부터도 “미군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후세인을 제거한 미국쪽이 자기네 말대로 과연 이라크에 재건과 민주화, 자유를 가져다줄 것인지를 지켜봐온 많은 온건 시아파들 사이에도 실망감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미국은 석유만 퍼가고 이스라엘 편만 든다는 불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ap></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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