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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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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와 열받는데 돈까지?

등록 2004-04-08 00:00 수정 2020-05-03 04:23

정보통신부 6월부터 인터넷 공인인증서 유료화… 매년 4천~5천원의 발급료 ‘개인부담’ 논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지난달 회사원 박장수(40·경기 고양시 행신동)씨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사려다 포기했다. 박씨 컴퓨터에는 공인인증서가 깔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 박씨는 공인인증서를 내려받으려다 접었다. 먼저 거래 은행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은행 지점에 가서 공인인증서 발급신청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해당 은행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원 가입을 해야 공인인증서를 내려받을 수 있다. 박씨는 “회사 업무 시간에 짬을 내어 은행에 가서 공인인증서 발급 신청을 하는 게 쉽지 않다. 홈쇼핑에서는 전화로 카드번호와 결제번호만 알려주면 되는데, 인터넷 쇼핑이 너무 번거로워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회사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깐 공인인증서를 집 컴퓨터에서 쓰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에는 공인인증서를 받아둔 컴퓨터에서 인터넷 탐색기를 열어 NPKI 폴더를 찾아 이 파일을 플로피 디스켓 등에 복사후 다른 컴퓨터에 옮겨야 한다.

인터넷 쇼핑업체들 매출감소에 볼멘소리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부터 인터넷 쇼핑몰에서 신용카드로 10만원어치 이상 물건을 살 때 고객들의 정보보안을 위해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했다. 소비자 처지에서 보면 편하게 물건을 사던 인터넷 쇼핑몰이 귀찮아졌다. 대형 인터넷 쇼핑업계는 공인인증제도 실시 뒤 매출이 20~30%가량 줄었다.

인터넷 쇼핑업계의 강한 문제제기로, 4월부터 9월까지 공인인증서 의무화가 적용되는 신용카드 한도 금액이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랐다. 인터넷 쇼핑몰 전체 이용자의 95%, 구매금액 기준으로 90% 이상의 이용자가 30만원어치 이하의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에 대부분 인터넷 쇼핑몰 손님은 공인인증서 없이도 물건을 살 수 있게 됐다. 10월부터는 다시 한도 금액이 10만원으로 낮아지지만 일단 업체들은 한숨을 돌린 셈이다.

인터넷 쇼핑업체들은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에 따른 매출 감소에 볼멘소리를 냈다. 소비자들은 불편해하면서도 공인인증서가 무료였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이미 많은 소비자들은 공인인증서를 쓰고 있었고 새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는 게 귀찮으면 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6월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6월12일 이후 소비자들이 공짜로 쓰던 공인인증서가 유료화될 것으로 보인다. 6월 이후 새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거나 사용 기간이 끝나 다시 발급받으려면 매년 사용 요금을 내야 한다. 정보통신부와 금융결제원 등에 따르면, 공인인증서 요금은 개인용과 법인용으로 구분되며 개인은 연간 4400원, 법인은 연간 5만~10만원으로 예상된다. 공인인증서 사용자는 개인이 715만명, 법인이 74만명으로 모두 789만명이다. 이들은 공인인증서를 인터넷 뱅킹, 온라인 증권거래, 인터넷 쇼핑 등을 할 때 쓴다. 유료화될 경우 매년 시민들이 낼 공인인증서 사용요금은 연간 314억6천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개인용 공인인증서 무료 발급과 금융거래의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화로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사용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공인인증서 무료 제공에 따른 공인인증 기관의 수익, 영업기반 약화로 안정적 서비스 제공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유료화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공인인증 업체들도 ‘더 이상 땅 파서 장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6개 공인인증 기관은 유료화를 자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증업체들이 합의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 인증기관들의 요청이 있어 정부가 유료화 가이드라인을 4천~5천원으로 정했다. 이 비용 범위 안에서 각 업체가 자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인 요금과 시행 시기는 업체들의 신고를 받아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증업체 “땅 파서 장사하기 힘들다”

6개 공인인증서 업체 중 금융결제원이 67%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나머지 5개 업체는 사용자가 가장 많은 금융결제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융결제원이 언제부터 얼마를 받을지가 관건이다. 금융결제원은 6월12일부터 공인인증서 신규·갱신 요금으로 연간 4천원을 받겠다고 신고했다. 실제 소비자가 내는 공인인증서 요금은 여기에 부가가치세 10%를 얹어서 4400원이 된다.
지난달 ‘공인인증서 유료화 정책에 대한 의견서’를 정부에 낸 ‘함께하는 시민행동’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일부에서는 ‘돈 내기 싫으면 쓰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인터넷 뱅킹이나 인터넷 쇼핑 등의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화로 공인인증서 유료화는 결과적으로 준조세와 같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비자 처지에서 유료화 방침의 타당성, 요금 산정 기준의 적절성 등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게 많다. 그동안 공인인증 업체, 인터넷 쇼핑업계, 정통부 등을 중심으로 유료화 논의가 진행되어 정작 돈을 낼 시민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유료화가 웬말이냐’고 반발하겠지만, 유일하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도 유료화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개인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현재의 유료화 정책에는 반대한다.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정부는 유료화의 논거로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놓았지만, 온라인의 경우 개인에 대한 인증의 필요성은 개인과 업체 모두에게 있다. 특히 인터넷 뱅킹은 고객과 은행 모두에 이익이 발생한다. 고객은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편하게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고 은행도 점포나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다. 공인인증서 활용은 은행쪽에서 보면 투자인 셈이다. 공인인증서 발급으로 생기는 비용은 각 주체끼리 ‘공동 부담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공인인증서 요금 책정 방식도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업체와 정부에 요금 책정 근거 공개를 요청했지만, 세부적인 사항은 ‘영업 비밀’이라며 거절했다. 요금 책정이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근거를 돈을 낼 소비자에게 자세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 부담 원칙에 대해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비용 부담 방식은 정부가 강제할 사항은 아니란 전제로 이야기하겠다. 공인인증서 사용의 비용을 개인만 부담하는 게 아니라 전자거래 업체도 공인인증서 관련 장비·시스템을 구축·유지하는 데 비용을 이미 지불하고 있다. 공인인증서를 이용하는 업체들에게 시스템 구축 비용뿐만 아니라 인증서 발급 비용을 공동 부담하도록 하면 비용부담이 늘어나 공인인증서 이용 분야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는 국민들의 혜택도 축소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인증서 요금에 견줘 우리 요금 수준이 비싼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공 서비스인가, 상품인가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업체들이 요금을 담합했거나 폭리를 취하지 않았다. 정통부 밑에 있는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이 업체들을 조사해 공인인증서 단위 원가를 산정했다. 정부는 이를 기준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했고, 우리는 이 범위 안에서 요금을 정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는 총괄원가(3개 공인인증기관 평균 총괄원가)를 총수요량(앞으로 3년 동안 공인인증서 평균 수요량 예측치의 20%)으로 나누어서 단위당 수수료를 산정했고, 사업자 평균원가 기준 단위당 요금 범위를 3610원에서 3720원으로 산정했다.
김영홍 정보인권국장은 “대통령 탄핵과 총선 같은 현안이 있는데다 유료화 시행 시기가 아직 두달가량 남아 있기 때문에 공인인증서 유료화가 네티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700만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4400원을 부담해야 하고, 온라인상 공인인증서의 성격을 ‘보편적 서비스’인지 아니면 ‘상품’으로 규정할지도 명확하지 않은 등 정보통신 정책의 쟁점도 걸려 있다”고 말했다.


[공인인증서 발급 절차]

1. 신청자가 신분증을 갖고 공인인증 기관이나 은행, 증권사 등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 공인인증서 발급 신청.
2. 은행 등 등록기관은 신청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신청 정보를 공인인증 기관에 전송.
3. 공인인증 기관은 신청 정보를 받아 은행 등 등록기관에 전송. 등록기관은 발급 정보를 신청자에게 전달.
4. 신청자는 공인인증 기관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용자 응용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한 뒤 인증서 발급 요청.
5. 인증서 발급을 요청하는 동시에 신청자 컴퓨터에 한쌍의 전자서명열쇠가 생성되어 개인 열쇠는 신청자 컴퓨터에, 공개 열쇠가 포함된 인증서 요청 양식은 공인인증 기관에 보내짐.
6. 공인인증 기관이 신청자의 발급 정보를 확인해 공인인증서 발급. 신청자가 인증서를 받아 설치하면 인증서 발급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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