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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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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 대출 감독? 공무원끼리 미루기 급급

1월부터 25개 구청으로 대부업체 감독권 떠넘기는 서울시…
책임 떠맡은 시·군·구청은 수동적 관리·감독만
등록 2010-01-29 12:05 수정 2020-05-03 04:25

“서울시가 대부업체 관리·감독을 구청으로 떠넘겨버린 건, 올 지방자치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고 봐야죠. 생색도 안 나고 욕만 얻어먹는 게 대부업체 업무거든요. 앓던 이 하나를 뺀 것처럼 시원하겠죠.” 서울에 있는 한 대부업체 사장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서울시는 올 1월부터 대부업체 감독권을 25개 구청에 넘겼다. 서울시는 구청으로 감독권을 넘기면 더 많은 관리 인력이 생겨 서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지난 2007년 6월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당원들이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등록 대부업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지난 2007년 6월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당원들이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등록 대부업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서울에만 대부업체 6365개, 감독 인력은 6명뿐

과연 그럴까? 대부업 감독은 주 이용자인 서민을 보호하는 중요한 업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 감독을 맡길 꺼린다. 오히려 탈 많은 분야라 틈만 나면 감독 책임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기 바쁘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대부업 업무를 공무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기피 부서다. 조직 안에서 승진이 안 되거나 사고를 친 사람이 가는 코스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 사기가 떨어진다. 대부업 관련 업무에 발령이 나면 1년도 안 돼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은 더욱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1만6천여 곳에 이르는 대부업체에 대한 최종 감독 권한은 시도지사가 갖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를 비롯해 광역 시도들은 대부업 업무를 자치구·시·군으로 위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광역 지자체들은 자체 조례를 만들어 도에서 시로, 광역시에서 구청으로 위임해왔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대전·경북을 뺀 시도에서 조례를 개정해 구청이나 군청 등 하급 기관에 감독권을 이관해놓은 상태다.

광역 지자체들이 기초 지자체로 대부업 관련 업무를 위임하고 있으나 기초 지자체에는 담당 인력 배정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대부업 관리·감독 책임을 시도가 시·군·구에 떠넘기는 상황이 계속되면 서민이 겪을 고금리 횡포와 불법 추심의 피해는 더욱더 심각해질 것이다. 기초 지자체로 갈수록 전문성과 집행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부업체를 관리·감독할 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국 대부업체를 감독하는 공무원 수는 시·군·구를 모두 합해도 180명에 그친다. 한 사람당 100여 개 대부업체를 감독해야 한다. 불법 대부업체들은 지능적이고 은밀하게 영업을 하고 있어 현재 인력으로는 단속하는 데 역부족이다.

공무원들은 등록·폐업 신청 서류를 수리하는 일만 하기도 벅차다. 대부업체를 방문해 불법행위를 하는지 단속할 겨를이 없고, 민원인에게 친절히 상담해주기도 힘들다. 지자체마다 대부업체 등록·변경 업무 외에 실질적인 관리·감독이나 위법행위의 단속·예방이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홍재형 민주당 의원은 “서울시에 등록된 대부업체 수는 지난 2005년 4755개에서 2009년 8월 말 현재 6365개로 33% 급증했지만, 이들 업체를 관리하는 5급 이하 담당 직원은 5명에서 6명으로 1명 늘었다”며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대부업체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관리·감독이 허술한데다 민원이 제기돼야 금융감독원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수동적인 업무 처리로 일관하고 있다”며 “각 자치구에 사무를 위임한다 해도 서울시 차원의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대부업체 관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별 등록대부업체 및 담당자

지자체별 등록대부업체 및 담당자

지금까지 영업정지 한 건도 없어

감독권이 힘없는 기관으로 계속 내려가다 보니 감독의 품질도 저하된다. 담당 공무원 중 상당수가 금융업 지식이 부족하고, 금융민원 처리 경험도 없다. 그 결과 대부업자에 대한 행정처분도 △2006년 13건 △2007년 327건 △2008년 114건에 그치고 영업정지는 단 1건도 없다. 책임소재도 흐려져 불법 대부업체로 인한 서민 피해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의 한 고위 간부는 “전국 지자체에 금감원에서 파견한 대부업 관리·감독 인원은 13명이다. 이들이 보낸 보고서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보낸 것과 질적으로 차별화된다. 그만큼 전문성이 중요하다. 지자체들이 대부업 관리·감독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무원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과 카드사 등 대형 금융기관은 금감원에서 매년 한두 차례씩 정밀 검사를 한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부족한 인력으로는 과감한 현장 밀착 행정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9년 1~7월 접수된 불법 사금융 사건은 모두 1만4천 건이었지만 금감원이 적발해낸 건수는 2006년 15건, 2007년 47건, 2008년 65건밖에 되지 않았다. 대부업 피해가 한 해에 1만여 건에 이르렀으나 금감원이 3년 동안 적발해낸 건수는 100건에도 못 미쳤다.

정부 차원의 대책도 미온적이다. 일단 대부업을 총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이러다 보니 금융위원회·행정자치부·법무부 사이에 정보 공유와 업무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부업체의 관리·감독 주체는 행정기관인 각 시도 자치단체장이며, 금융위원회 등 금융 당국이 대부업 관련 주요 정책의 수립·추진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경찰·검찰이 불법 채권 추심이나 이자율 제한 위반을 단속해 형사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금융위원회는 관리·감독권이 시도에 있다며 행정안전부에 맡겨버리고, 시도를 관리하는 행정안전부는 형사처벌 문제가 걸려 있다며 법무부에 떠넘기고, 법무부는 별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한 경찰 간부는 “대부업법 위반은 대부분 약식기소된 뒤 벌금으로 몇백만원만 부과받는 일이 많아 ‘걸려도 벌금만 조금 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 때문에 검경도 단속 시점이 정해지면 움직일 뿐 보통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 사채업자들과 불법 대부업자들이 다른 관할로 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자산 규모가 70억원 이상이거나 2개 이상 시도에 등록한 대형 대부업체는 금융위원회가 직권으로 검사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업체들은 워낙 영세하다 보니 감독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일본·미국·영국 등은 국가가 나서 감독

다른 나라는 어떨까? 일본에선 내각총리대신(총리) 또는 시도지사가 3년마다 등록을 받고 관리·감독하고 있다. 미국은 ‘주(州) 은행법’에 따라 주 은행감독 당국이 인가를 해주고 감독한다. 영국은 공정거래청, 프랑스는 중앙은행 산하 여신 및 투자회사위원회, 독일은 연방금융감독원에서 감독하고 있다. 선진국은 대부분 국가 차원에서 관리·감독하고 있는 것이다.

사채업자의 덫에 내몰린 한 자영업자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불법 대부업체와의 전쟁’을 선언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찍겠다”고 말했다. 그 역시 불법 대부업체 때문에 거리에 내몰릴 상황에 있지만, 그 어떤 사람한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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