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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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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국경을가다3] 가도 가도 철조망은 없었네

등록 2004-03-25 00:00 수정 2020-05-02 04:23

EU 가입 맞아 국경이 사라져가는 동유럽… 서유럽과의 경제적 격차는 단기간에 해결 불가능

에스테르곰(헝가리) · 체스케부데요비체(체코)=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줄게.”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자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여권을 발급해주세요.”

“에이구, 귀여운 것! 그러니까 나랑 단둘이 살고 싶단 말이지.”

1980년대 폴란드의 권력 실세와 그의 귀여움을 받던 여배우 사이에 있었다는 대화의 한 토막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옛 사회주의가 망하기 전 동유럽에서는 여권 발급 자체가 특권이었다. 당시 동유럽 국경은 사실상 폐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유럽 사람들이 외국으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지난 2월 말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출입국 심사대는 내국인과 외국인이 아니라 유럽연합(EU)과 ‘유럽연합이 아닌 나라들’로 나뉘어 있다. 무뚝뚝한 표정의 독일 출입국 관리는 유럽연합 출신 입국객에게는 간단하게 입국 확인 도장을 찍어주고, 비유럽연합 출신에게는 “독일에는 뭐하러 왔느냐” “돌아갈 비행기표는 있느냐” 같은 질문을 해댔다. 유럽연합 출범 이후 유럽에는 유럽연합 사람과 유럽연합이 아닌 사람들이란 ‘인간 식별법’이 등장한 셈이다.

쇼핑하러, 조깅하러 국경을 넘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유럽연합에 가입한 서유럽끼리는 사람과 물자, 돈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주부들이 물가가 싼 이웃나라로 장보러 가거나, 국경을 건너 출퇴근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끼리는 사실상 국경은 없어진 셈이다.

5월1일부터 사이프러스, 체코, 헝가리,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말타,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중부유럽 10개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한다. 옛 사회주의권이 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동유럽은 아직도 ‘철의 장막’이란 우울한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 가입을 앞둔 동유럽 사람들에게 국경은 어떤 의미일까.

3월3일 오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에스테르곰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우리나라 버스 2대를 이어놓은 것 같은 길쭉한 버스를 타고 눈 덮인 언덕과 평원을 따라 다뉴브강을 2시간쯤 올라가니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국경 도시인 에스테르곰이 나왔다.

슬로바키아 국경까지 가려고 하는데 교통편을 알 수 없어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택시를 잡았다. ‘슬로바키아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40대 중반의 택시기사는 대뜸 5천원을 내라고 했다. 택시는 10분 동안 다뉴브 강변 도로를 내려가다 좌회전한 뒤 다리를 건넜다. 서울 한강의 한남대교 규모 다리였다. 다리 중간쯤에서 택시기사가 ‘여기부터 슬로바키아다’라며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다리 중간 교각에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다뉴브강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인 셈인데, 한강이나 임진강처럼 강 양쪽에 경비 초소나 철조망 따위는 없었다.

“100년 전부터 오가며 살았다”

다리를 건너자 바로 헝가리-슬로바키아 출입국 검문소가 나왔다. 택시에서 내려 10m가량을 걸어가 검문소에서 슬로바키아 입국 도장을 받은 뒤 슬로바키아로 들어갔다. ‘이렇게 간단하게 걸어서 국경을 통과할 수도 있구나’ 싶어 신기해하는데 체육복을 입은 헝가리 젊은이들과 장바구니를 든 헝가리 여인들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었다. 검문소에서는 헝가리나 슬로바키아 여권을 내밀면 표지만 확인하고 통과시켰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말 그대로 동네 마을가듯 국경을 넘나들고 있었다.

러닝화와 조깅복을 날렵하게 차려입고 국경 검문소를 지나온 헝가리인 앤드라스(31)는 “헝가리쪽 다뉴브 강변 도로에서만 뛰면 단조로워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강 맞은편 슬로바키아쪽 다뉴브 강변에서 뛰다 다시 헝가리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바구니를 든 40대 헝가리 여성들은 “슬로바키아쪽 가게 구경도 하고 물건값도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기차를 타고 독일-체코, 폴란드-헝가리 국경을 통과할 때 체코와 헝가리 국경 검문소 관리들은 여권을 힐끗 보기만 할 뿐, 입국 도장도 찍지 않았다. 입국 도장이 없었지만 출국할 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체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에서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살벌한 국경 풍경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류우종 사진기자는 국경을 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아무리 찍어도 고속도로 휴게소 풍경이지 사진에서 국경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그에게 “휴전선 같은 국경이 동유럽에는 없다.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위로를 건넸지만 쓸모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 동유럽 국경 통과가 서유럽에 비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렸으나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국경 통과 절차도 간소화되기 시작했다. 다만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등과 접한 폴란드 동쪽 국경지대는 불법 입국자를 막기 위해 적외선 감시장비 등을 동원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3시간가량 남쪽으로 가면 남보헤미아 지방의 중심도시인 체스케부데요비체가 나온다. 체스케부데요비체는 맥주로 유명한 도시다. 미국의 버드와이저 맥주는 부데요비체의 독일어 표기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버드와이저 맥주의 원조가 체코 부데요비체 맥주인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인 국경 도시답게 오스트리아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체스케부데요비체의 식당에서는 영어, 독일어, 체코어로 된 차림표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의 한 호텔 식당 종업원 파블리세크(26)는 “100년 전부터 우리 동네는 오스트리아와 도로와 놓여 서로 오가며 살았다. 유럽연합 가입 뒤 오스트리아 손님이 더 많이 오게 되면 좋겠다. 유럽연합에 가입한다고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고 국경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유럽 노동시장을 초토화한다면…

퍼즐 조각처럼 맞닿은 지리적 특성상 동유럽 안에서 국경은 옛 사회주의 시절 같은 ‘통제’ 기능은 옅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휴전선 같은 국경 개념과 동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국경 개념은 많이 달랐다. 예를 들어 폴란드나 헝가리는 7개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들에게 국경은 소통과 교류 지점으로서 의미가 더 컸다.

독일과 서쪽 국경을 맞댄 헝가리는 서유럽쪽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사이에는 헝가리 치과 여행이 유행이다.

헝가리로 독일 등 서유럽인 치과 환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헝가리가 독일, 오스트리아 등과 가까운데다 기술은 뛰어나고 값은 싸기 때문이다.

주로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들이 7~10일 동안 헝가리에 머무르면서 40~60% 싸게 치료를 받는다. 예를 들어 4개의 임플랜트를 헝가리에서 할 경우 독일에서보다 약 4천유로(약 560만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싸고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영국이나 아일랜드 등에서도 헝가리로 치과 여행을 올 정도다.

서유럽 치과 환자들이 즐겨 찾는 지역은 소프론 등으로 이 지역에만 약 1천개의 치과가 있다. 특히 소프론은 주민 80명에 치과의사가 1명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치과 도시다. 이 근처에 온천이 있어 치료를 받고 쉴 수도 있기 때문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관광사에서는 ‘헝가리 치과 여행’ 패키지 상품도 내놓고 있다. 헝가리의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헝가리 ‘치과 여행’에 대한 인터넷 홍보와 여행사들의 패키지 상품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섹스 산업의 ‘허브’로 떠오른다

체코 프라하에서 외국인 회사에서 일하는 베로니카 코우버코바는 동유럽 10개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더라도 무늬만 단일 시장의 일원이 될 뿐이고 서유럽쪽 국경 통제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체코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비자 없이 서유럽에 가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어려울 것 같다. 기존 가입국이 한꺼번에 중동부 유럽 노동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 조처를 취하고 있다. 기존 15개 회원국들은 3단계로 나누어서 최대 7년까지 중동부 유럽 출신 노동자에게 자국의 노동 시장을 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단일 시장의 출범이란 유럽연합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확대되면 서유럽의 노동시장이 동유럽 출신의 노동자에 의해 초토화되리란 불안감도 만만찮다. 동유럽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서유럽 노동자의 20%가량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유럽연합 확대에 앞서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에서는 1천여명의 임시 용역 직원을 뽑았는데, 2만5천명 가운데 2만명이 넘는 사람이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출신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폴란드 남부 국경지대에서 자영업을 하는 루치안 잘레브스키(56)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딸이 대학원을 나와 영어 교사를 하고 있다고 한참 자랑했다. 잘레브스키에게 ‘폴란드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국경이 없어질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1만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우리 같은 사람에게 바뀔 게 뭐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양지만 있는 게 아니라 음지도 있다. 최근 동유럽에서는 서유럽과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성매매, 포르노 비디오 제작 등 향락산업이 번성하고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체코 프라하 중심부에는 ‘섹스숍’ 간판이 붙어 있고 업소 안에서 여성들이 벌이는 쇼 장면을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통해 가게 밖으로 보여주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도 외국인 상대 섹스숍이 성황이다. 이들 업소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고급 호텔에도 공공연히 업소 홍보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외국인들의 주머니를 노려 영어로 외설적인 공연을 한다. 주로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출신 여성들이 이런 업소에서 불법 취업해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향락산업 때문에 동유럽이 유럽 향락산업의 새 ‘허브’(중심)가 됐다는 말까지 생겼다.

대부분 동유럽 사람들에게서 국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신통한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이에 대해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츠 대학 한국학과 전임강사인 임성호씨는 “동유럽 사람들의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들의 국경 개념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조선시대 이후 국경선이 고정됐고 휴전선은 넘을 수 없는 분단 장벽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폴란드는 국경 안보다 국경 밖에 더 많은 폴란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오늘날 폴란드 사람들이 가장 몰려 사는 도시는 수도 바르샤바이고 그 다음은 미국 시카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EU 경제 수준, 짧아도 30년 이상 걸려

폴란드에서는 국경이 너무 자주 변하기 때문에 지리 담당 교사들에게 특별 수당을 줘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너무 자주 국경이 변했기 때문에 폴란드 지리 교사가 시기별로 폴란드가 어느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어떤 강과 지점이 국경 구실을 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게 너무 복잡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동유럽이란 용어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김상철 코트라 부다페스트 무역관장은 “동유럽이란 말은 서유럽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따지고 보면 2차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 쓰인 용어다. 유럽 지도를 펴놓고 보면 헝가리, 체코, 폴란드 같은 나라들은 동유럽이 아니라 중부유럽이다. 냉전이 이미 끝났는데 동유럽이란 용어를 쓸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동유럽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부유럽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시원 부산대 교수(사회교육학)는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스타인 뉴욕 주립대 교수에 따르면, 2차대전 이후 1989년 사회주의 개혁까지 중동부 유럽이 소련식 사회주의 경제에 편입된 사건은 이들 국가가 유럽 세계경제 체제를 잠시 벗어났던 짧은 일탈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유럽연합 경제질서 편입은 원래 소속되었던 유럽 경제질서로의 복귀인 동시에 전통적인 유럽 경제질서의 복구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5월 이후에는 우럽연합이 25개 나라로 확대된다. 유럽연합은 세계 인구의 7.3%, 국내총생산(GDP)의 28%, 상품 교역의 17.7%, 상품과 서비스 교역의 19.8%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중동부 유럽 10개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기존 회원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과학정치재단은 3월 초 10개 신규 유럽연합 가입 대상국 가운데 국민경제가 발달한 것으로 평가되는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헝가리의 1인당 수입 수준이 기존 15개 가입국 수준에 이르는 데는 30년에서 35년이 걸릴 것으로 분석했다.

맥주 한잔 마시면 다른 나라

[국경 통과 절차]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휴전선 철조망에 갇힌 한국 사람들의 국경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파인 김동환이 1925년에 발표한 ‘국경의 밤’에 나오는 아낙네의 속졸이는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국경을 가다’는 특별기획의 취지에 맞게 동유럽 출장은 주로 기차와 시외버스에 의존했다. 비행기로 획 지나갈 게 아니라 국경을 눈으로 보고, 직접 넘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중동부 유럽에 머문 8일 동안 기차만 50시간 넘게 타고 다녔다. 기차를 타고 생각보다 너무 쉽게 각 나라 국경을 넘나들면서 유럽 대륙이 한 덩어리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다 일어나 맥주 먹고 다시 자고 깨도 계속되는 장시간의 기차여행에 질려, 평소 꿈꾸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2월25일 밤 11시30분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체코 프라하행 기차를 탔다. 26일 새벽 3시35분께 6인승 침대 기차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할로, 패스포트(안녕, 여권 좀 봅시다).” 잠을 자던 동·서양인 승객 6명은 누운 채 졸린 눈으로 주섬주섬 여권을 꺼내줬다. 체코 국경수비대 2명은 내 여권을 보자마자 그냥 돌려줬다. 돌려받은 여권을 보니 아무 출입국 도장도 찍혀 있지 않았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이렇게 출입국 관리를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간단한 출입국 절차였다. 독일에서 체코 국경은 기차 침대칸에 누워 자면서 비몽사몽간에 통과했다.
2월27일 오전 11시06분 체코 프라하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출발했다. 눈 덮인 평원을 달리다 오후 4시10분 체코와 폴란드 국경 역에 도착했다. 오후 4시30분까지 기차운행을 넘겨받은 폴란드쪽에서 기차 안전 확인을 하고, 출입국 수속을 했다. 폴란드 국경수비대와, 출입국 관리들은 여권과 기차표를 확인한 뒤 별다른 질문 없이 폴란드 입국 도장을 찍어줬다. 폴란드 관리들에게 ‘국경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저기’라고 고갯짓을 했다. 기차 밖을 보니 눈 덮인 국경 역 중간쯤에 눈을 치워 사람이 다닐 길을 하나 내놓고 그게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선이라고 했다. 20분 동안 국경 역에 머물 동안 객차 옆칸에 탄 20대 폴란드 여성 3명은 휴대전화를 꺼내 열심히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두 차례 기차를 타고 국경을 통과해본 탓인지 더 이상 기차로 국경을 넘는 데 대한 호기심이 사라졌다. 3월1일 오후 8시50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밤기차를 탔다. 3월2일 오전 5시께 선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들기 위해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헝가리 관리들이 입국 수속을 하려고 기차에 올라왔다. 침대칸에 걸터앉아 한 손에 캔맥주를 들고 다른 손으로 여권을 건네줬다. 헝가리 국경은 새벽에 맥주를 마시면서 통과했다. 동유럽에서 국경을 넘는 출입국 절차는 마치 한국에서 음주운전 일제 단속에 응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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