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개고기 쇼핑을 즐겨볼까

등록 2003-07-16 00:00 수정 2020-05-02 04:23

식용 합법화 논란 속에서 인터넷 쇼핑몰 진입… 다양한 메뉴 개발해도 유통상의 문제는 여전

초복이 7월16일이고 중복이 7월26일이다. 초·중·말복 때는 보신탕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난다. 개고기를 인터넷에서 살 수 있을까. 언뜻 생각해도 중년 사내들이 드나드는 뒷골목의 허름한 보신탕집과 인터넷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답게 개고기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 수 있다. 각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개고기 쇼핑몰’들이 여러 곳 나온다. 이곳에서 탕·수육·전골 등 종류별로는 물론 부위별로 개고기를 판다.

우리미트(woorimeat.co.kr) 홈페이지 초기화면에는 ‘개고기 팔아요-정직한 개고기 쇼핑몰’이란 안내글이 눈에 띈다. 지난 7월10일 이 회사 사무실에서 만난 조기선 우리미트 대표이사의 명함에는 ‘개고기 명예회복선언’이란 도전적인 글귀가 적혀 있다. 개고기의 법적 지위, 유통과정의 문제 등을 설명하는 조 사장은 1년 전만 해도 개장수와는 거리가 먼 대학원생이었다. 지난해 국민대 경영대학원에서 전자상거래를 전공하던 조씨는 ‘차세대 상거래인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라’는 과제를 풀어야 했다. 그는 과제를 해결하다 내친 김에 대학원 동료들끼리 개고기 온라인 쇼핑몰을 차렸다.

부위별로 삶은 고기·생고기 등 판매

‘개업 전에는 개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었다면서 어떻게 개고기 쇼핑몰 열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조씨의 답변은 간단했다. “당시 개고기 식용 여부가 온라인에서 네티즌들의 큰 논쟁거리였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개고기가 이야기가 된다고 봤다. 시장조사 결과 그때까지 개고기를 파는 인터넷 사이트는 없었다. 개고기는 일종의 틈새시장이라 시장 진입이 쉬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개고기는 보신탕집이나 개고기를 파는 시장 등 특정 장소에서 먹거나 살 수 있다. 한마디로 소비자의 접근이 어려운 상품이다. 인터넷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의 특성을 활용하면 폐쇄적인 개고기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우리미트는 손님의 주문이 들어오면 고기와 육수, 된장, 들깨가루, 들기름, 야채, 양념 등을 얼음 주머니에 포장해 오토바이로 배달한다. ‘과연 깨끗하게 만들까’ 걱정하는 소비자에게는 개고기 제조과정을 디지털 사진기로 찍어 보내준다. 복날을 앞두고 주로 각종 모임의 총무들이 인터넷으로 개고기를 주문한다고 한다. 판매량은 밝힐 수 없지만 주문량이 늘어나고 있다. 쇼핑몰 게시판에는 ‘잘 먹었다’는 소비자 소감들이 올라와 있다.

쇼핑몰 개설과 새 개고기 메뉴 개발에는 ‘개고기 박사’ 안용근 교수(충청대 식품영양학)의 도움이 컸다. 안 교수는 개고기를 식품영양학으로 분석한 논문과 책을 여러 편 냈다. 그는 ‘개고기 박사 안 교수의 회원방’(cafe.daum.net/drdogmeat)에서 개고기 합법화 논의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안 교수는 개고기 가공식품과 화장품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는 개고기 소화액으로 발효시킨 고추장·된장·식초·김치 등 전통식품과 개고기로 만든 순대·칼국수·라면, 개고기 소화액을 넣은 케첩·빵·과자, 개고기로 만든 햄버거·미트볼·스프 등 양식메뉴도 내놓았다.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피부 친화력이 뛰어난 개기름의 특성을 활용한 화장품 3종도 선보였다. 안 교수는 “외국인과 동물보호론자들의 개고기 식용문화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에 대한 학술적 근거를 제시하고 개고기 가공식품과 화장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가공식품·화장품 개발로 합법화 논의 주도

안 교수는 개고기에 대한 대표적 편견으로 ‘몽둥이로 패서 개를 잡는다’는 비판을 들었다. “요즘 개 잡는 사람 3명이 전기충격으로 개를 실신시키고 분업해 하루 종일 작업해야 100마리를 잡는 정도다. 만약 몽둥이로 패서 개를 잡았다가는 개 1마리 잡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현실에서는 개를 패서 잡으라고 강권해도 도축업자들이 손해보기 때문에 절대 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보신탕집도 새 메뉴를 개발하는 등 칙칙한 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충북 청주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남기화씨는 “기회가 되면 개고기 요리가 발달한 평양 단고기집을 방문해서 단고기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남씨는 “지난해 월드컵 때 스웨덴과 일본 기자들이 농장에서 어떻게 개를 키우는지와 보신탕 요리 과정, 서빙 과정, 보신탕 먹는 방법 등을 세밀하게 취재한 적이 있다. 취재를 마친 외신기자들은 식당과 농장이 깨끗하고 친절하다며 ‘코리아 보신탕 원더풀’이라고 외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겨울에는 보신탕을 찾는 손님이 적어 운영이 어렵지만 보신탕 전문가게란 자존심을 지키려고 겨울에도 보신탕만 고집한다.

한편, 동물애호가 등은 ‘철창 속에서 한여름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누렁이들의 눈을 보라’며 개고기 식용을 반대한다. 이들은 정부가 원칙대로 법을 집행해 개고기가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을 촉구한다. 복날에는 개고기 대신 온 가족이 함께 시원한 냉콩국수나 된장보리밥을 먹을 것을 권하기도 한다. 이들은 개고기가 합법화되면 산업자본주의 속성상 각종 가공식품과 즉석식품이 개발되고 초대형 개농장과 개공장이 전국에 들어서며, 그 이익은 몇몇 개고기 유통업자들에게 돌아갈 뿐이라고 주장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백화점·할인점 등 유통업계는 다양한 보양식품을 내놓는다. 초·중·말복 등 삼복날에는 유통업체들이 ‘보신음식전’ 행사를 마련하고 삼계탕, 장어, 한우꼬리, 건강선식, 수박 등을 10~20% 싼값에 판다. 개고기를 파는 백화점이나 할인점은 없다. 서울의 한 백화점 관계자는 “규모가 큰 유통업체에서 개고기를 파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고급스럽고 품격을 지켜야 하는 백화점의 이미지와 개고기는 맞지 않다. 백화점 주 쇼핑객인 여성들이 개고기 판매를 어떻게 볼지도 걱정이다”고 말했다.

하루 유통량 2만 마리… 여성도 43% 먹어봐

하지만 성인 남자들만 보신탕을 먹는 것은 아니다. 그랜드백화점이 최근 일산점, 신촌점, 계양점 등을 방문한 여성고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3%가 보신탕을 먹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보신탕을 먹어본 여성을 연령대별로 보면 30대(43%)와 40대(30%)가 73%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20대와 50대는 각각 17%, 10%였다. 안용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전국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식용견 수는 2만 마리 정도인데, 이 중 반 정도가 식용이고 나머지 반은 중간 단계의 유통이다. 보신탕을 파는 곳은 전국에 1만곳가량 된다. 1년 고기 소비량으로 치면 개고기는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에 이어 네 번째다

개고기 시장의 문제점으로 △법적 지위의 모호성 △비위생적인 유통과정 △들쭉날쭉한 판매가격·중량 등이 있다. 개고기는 축산물가공처리법 상 가축 용어 정의에 들어가 있지 않다. 가축이 아니므로 개를 도축하는 환경이나 위생관리, 유통과정에 대한 기준이 없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 대한 운용지침에는 ‘복지부 장관과 시·도 지사가 조리 판매를 금지하는 혐오식품군’에 개고기와 개소주가 포함되어 있다. 다만 면소재지 이하 지역으로 시·도 지사가 고시한 지역에서는 개고기를 팔 수 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의 개고기 식용 비판 때문에 만든 이 지침은 올림픽이 끝나자 곧 유명무실해졌다.

해마다 복날이면 개고기 합법화 찬반 주장이 쇳소리를 내며 부닥친다. 정부는 ‘개고기 먹고 싶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게 먹어라’며 무대책으로 버티고 있다.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 탓에 개고기는 위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상식적으로 개고기 식용이 불법이라면 못 먹게 단속을 하든가, 먹게 하려면 합법화해야 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