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미군 군속의 차적관리 한국정부로 이관… 20년만에 교통주권 되찾았다
“주한미군 범죄는 70% 이상이 도로교통법 위반이나 경미한 교통사고입니다. 한국의 도로교통법을 어기더라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일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작용한 거죠.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질 겁니다. 이번 합의로 주한미군의 범죄율 자체가 상당히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외교통상부 관계자)
북한의 ‘핵 보유 시인’ 발언으로 나라 안팎이 시끌하던 지난 4월25일 한-미간에는 ‘의미 있는’ 관계 진전이 이뤄지고 있었다. 주한미군과 미군 군속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자동차의 차적관리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잊혀져 있던 한국의 ‘교통 주권’을 20여년 만에 되찾는 순간이었다.
교통위반 범칙금 무시해온 주한미군

그동안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의 교통위반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소유주에게 범칙금 통보서를 보내도, 교통법을 위반한 차량 소유주에게 벌금을 물려도, 주한미군은 아예 이를 무시했다. 그렇게 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간 주한미군이나 군속·가족의 도로교통법이나 주정차금지 위반을 적발한 경우에도 우리 경찰이나 단속요원은 현장에서는 적발통지서만 발급할 수 있다. 범칙금·과태료 통지서는 이후 인편이나 우편으로 전달되는데, 우리쪽에서는 주한미군 영내로 직접 들어갈 수 없어 주한미군 장병안내소(TMO)에 전달했다. 통지서는 이곳을 거쳐 해당 군인·군속에게 간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이를 무시해도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 내국인의 경우 면허정지 40일 또는 차량압류 등의 행정제재가 가해지고 이를 거부할 경우 차량을 되팔거나 폐차를 할 때 한꺼번에 납부해야 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미군에 대한 이런 관행은 엄청난 ‘특혜’였다.
실제로 서울 용산구청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소유한 차량의 불법주정차 과태료 납부율은 지난해 11월까지 8%선에 그쳤다. 미납액을 모두 따지면 1만6996건에 6억8678만원에 이른다. 개별차량에 대한 기록은 더욱 가관이다. 미군 소유인 ‘SOFA 서울1037***’은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119번이나 불법주차 단속에 걸렸다. 열흘에 한번꼴이다. 체납액은 476만원이었지만 한번도 납부된 적이 없다. 조사결과 50회 이상 과태료를 내지 않은 주한미군 소속 차량 소유주도 9명에 이르렀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단속내용을 정리해보면 주한미군 차량은 1대가 10번 이상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주차위반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이 같은 ‘전횡’은, 무엇보다 주한미군의 개인차량 관리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사정에서 비롯한다. 보통 과태료나 범칙금을 내지 않은 차량 소유주는 차를 사고팔 때 과태료나 범칙금을 정리해야 한다. 이 같은 정리가 가능한 것은 자동차의 ‘주민등록증’인 ‘차적’(차대번호, 소유주, 주소 등이 담긴 문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차적에 대한 자료가 우리 정부에 없으니 과태료를 물어야 할 주한미군이나 군속·가족 등이 차를 팔아버리고 한국을 떠나도 아무런 조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가 시작된 것은 1982년께부터였다. 당시 정부는 중앙정부가 관할하던 차량등록 관리를 시·군·구청 단위로 이관했다. 이때 서울시 등은 주한미군과 등록절차 간소화를 이유로 사유차량의 차적 관리를 미군이 알아서 하도록 했다. 이후 주한미군과 우리 정부의 정보교환은 끊임없는 ‘동맥경화’ 현상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사유차량에 대한 정보를 2000년부터 올해 초까지 전혀 받지 못했다. 주한미군이 2000년 2월 ‘차적정보를 일제 갱신한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한 이후 정보공개를 거부한 것이다. 용산구청의 경우 그 이후 3번에 걸쳐 미군에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자고 요청했으나, 미군은 “구청은 대화상대가 아니다”며 거절했다.

미 외교관은 과태료 100% 납부해와
이런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결 노력은 지난 1월에 시작됐다.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부터 시작해보자는 판단에서였다.
문제해결은 뜻밖에 쉬웠다. 외교관들의 과태료 납부 관행이 참고가 됐던 것이다. 우리 정부가 확인한 결과 주한 미 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은 주차위반 과태료를 100% 납부하고 있었다. 통상 외교관들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따라 면책특권을 받고 있어 이를 악용하는 외교관들이 주차위반 벌금 등을 물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해외 주재 자국 외교관들에게 “주재국이 부과한 교통범칙금이나 과태료에 대한 면책특권은 없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주한미군은 그 적용대상이 아니었다. 면책특권도 없는 주한미군이 오히려 더 ‘특혜’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미 두 나라가 석달 만에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주한미군쪽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협상을 진행했던 외교부 관계자는 “주한미군쪽에 과태료 미납내역 실태를 통보하니 깜짝 놀라는 상황이었다”며 “그 때문인지 오히려 미군쪽에서 협상에 더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
협상에 따라 오는 8월부터 한국 정부는 주차위반을 하거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차량이 이를 물지 않을 경우 월 단위로 주한미군에 통보하게 된다. 주한미군 헌병대는 명단을 받는 대로 3일 안에 해당 차량의 매매를 금지시킨다.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벌금을 내고 나서 그 영수증을 지휘관에게 내야 한다.
주한미군의 자동차 보험가입도 의무화
이번 합의에서 이뤄진 또 다른 성과는 주한미군의 자동차 보험가입 의무화다. 국내에 머무는 기간이 1∼2년밖에 되지 않는 주한미군의 특성상 일부 미군이 책임보험에도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이 모는 차량에 사고를 당한 이들은 손해배상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한국 정부가 차량등록 전산조회를 통해 주한미군의 보험가입 여부를 수시로 점검하고, 보험에 들지 않은 차량이 발견되면 국내법에 따라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미군쪽의 태도 변화는 크게 나타났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한국 정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후부터 주한미군의 주차위반 벌금 납부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며 “8% 정도이던 납부율이 최근에는 20%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이소희 사무국장은 “이번 합의는 실질적으로 주한미군이 한국법의 규제를 받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를 계기로 주한미군이 좀더 경각심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큰 성과를 얻은 협상이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석달 만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지난 20년 동안 에둘러온 사실이 새삼스레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태희 기자/ 한겨레 사회부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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