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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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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아봐 달라질 거야

등록 2002-12-26 00:00 수정 2020-05-02 04:23

향기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허브와 아로마 관련 산업 호황

“인간의 코는 수천 가지 냄새를 인식할 수 있고, 극히 미미한 냄새까지도 지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냄새는 붙잡기 매우 어려운 현상이다. 이를테면 색깔과는 달리 냄새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우리는 냄새를 묘사할 때 비유를 통해 후각 경험을 표현하려고 애쓰며, ‘냄새가 뭐 같은가 하면…’이라고 말해야 한다. 냄새는 기록할 수도 없다. 향기를 포착하거나 저장해둘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다. 후각의 영역에 있어서는 묘사와 기억으로 이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중에서, 콘스탄스 클라센 등 지음·김진옥 옮김, 현실문화연구 펴냄)

다양한 제품 쏟아져

회사원 강순중(33)씨에게선 특별한 ‘냄새’가 난다. 처음에는 약간 달콤한 느낌이다. 풀냄새인지, 숲냄새인지 모를 산뜻한 향기가 뒤따라 은은히 전해진다. 그에게서 풍겨나는 이 냄새의 정체는 뭘까 그의 안주머니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천연 허브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을 나름대로 배합해 향수를 직접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우선 유칼립투스 2방울, 만다린 1방울, 오렌지나무에서 추출한 네놀리와 지중해 연안과 남부 유럽이 원산지인 클라리세이지도 각 1방울씩 섞습니다. 여기에 제라늄 1방울을 떨어뜨리면 완성되죠. 이렇게 만든 향수를 솜에 묻혀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하루종일 은은한 향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강씨는 “향기는 음악과 같다”고 말한다.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에 민감하게 호소하기 때문이란다. “식물에서 나오는 천연 추출물은 인체 대사물질과 가깝기 때문에 인체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작용을 해줍니다. 후각은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가운데 가장 민감하고 뇌와 밀접히 연결돼 있지요. 이 때문에 좋은 향기를 맡으면 두뇌활동에도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강씨가 내놓는 향기 예찬론이다.

그가 향기에 빠진 것은 3년여 전 우연한 기회에 아로마테라피(향을 뜻하는 ‘Aroma’와 치료를 뜻하는 ‘Therapy’의 합성어로 식물에서 추출한 방향성 오일을 이용해 건강을 돌보는 자연의학의 한 형태) 관련 강좌를 들으면서부터다. 사람마다 성격이 제각각이게 마련인 것처럼 향기의 특성도 천차만별이다. 활달하고 자극적인 향기가 있는 반면, 다소곳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있다. 그가 요즘도 매주 2~3시간씩 아로마테라피 동호인 모임에 나가 과외공부를 할 정도로 ‘냄새’에 푹 빠져 지내는 이유도 향기가 가진 이런 다양한 매력 때문이다.

‘향기’에 취해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호사가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겨지던 허브와 아로마테라피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김현수 국제임상아로마테라피센터 이사는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시간여유가 많아지면서 개인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건강과 휴식을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인지 2년여 전부터 허브와 아로마테라피 등 향기의 매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시장에 나오는 제품도 다양해졌다. 양초·비누·오일 등 ‘전통적인’ 제품은 물론 ‘머리가 좋아진다’고 알려진 로즈마리 오일이 담긴 수험생용 목걸이와 레몬그래스와 유칼립투스 오일을 혼합한 금연 보조제품 등 온갖 상품이 소비자의 코를 간지럽히고 있다. 이미 연간 3천억원가량의 시장규모가 형성됐다는 것이 업계 추산이다. 아로마 전문업체인 사라인터네셔널 김현주 대표이사는 “소득수준 1만달러가 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브와 아로마 관련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우리 정서에 맞는 적절한 향기가 나온다면, 피부관리 업체와 목욕 업체는 물론 대체의학 분야로까지 수요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기의 효능을 무시하지 말라

향기에 민감한 세대로는 20·30대가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서울 송파구에서 허브농장을 운영하는 조강희씨는 “예전에는 주로 외국생활을 하면서 허브제품을 소비해본 경험이 있는 30·40대로 구매층이 제한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20대 말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신혼부부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가장 왕성한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로즈마리와 라벤더 등 비교적 잘 알려진 품종과 함께 민트류와 세이지류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싸한 민트향이 짙은 페퍼민트는 기분을 풀어주는 데 그만이다. 은은한 라벤더는 편안함을 더해주고, 로즈마리는 머리를 맑게 해준다. 최근 들어 방아나 자소 같은 우리나라 전통 허브쪽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허브마을(www.herbmaul.net) 김용준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약용이나 식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식물군인 허브로 분류된 품종은 모두 4만5천여 가지가 있다. 변종과 아종을 합하면 45만 가지에 달한다”고 말했다. 수요에 따라 공급은 무궁무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브와 아로마테라피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아기 예수를 맞이한 동방박사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준비했다고 성서는 전한다. 아라비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자생하는 유향은 통증을 완화하고 종기를 없애는 효능이 있다. 아프리카 동부 해안가가 원산지인 몰약은 악취를 제거해주며, 예부터 진통제나 방부제로 사용해왔다. 허브와 아로마테라피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사례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임상실험 결과가 나와 있는 상태다. 영국 워익대에서는 최근 캐머마일 향은 혈압을 낮추고, 로즈마리는 혈압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했다. 아로마를 이용해 혈압을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또 최근 늘고있는 알레르기성 비염에는 코알라가 좋아하는 유칼립투스가 효과가 있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의학계의 연구보고도 있다.

그러나 3년여 전부터 허브와 아로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자신의 홈페이지(www.gyoonoh.pe.kr)를 통해 관련 정보를 나누고 있는 안균오(34)씨는 “가장 큰 효과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몸이 피곤하면 에센셜 오일 몇 방울 떨어뜨리고 목욕을 하면 피로가 풀린다. 하지만 오일을 넣지 않고 목욕을 해도 효과는 비슷할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을 편히하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향기’가 도움을 준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직접 키워보는 것도 좋은 경험

허브와 아로마테라피의 세계에 문을 두드리려는 이들에게 전문가들은 허브를 직접 키워볼 것을 권한다. 일반 화원에서도 조그만 화분에 심어놓은 각종 허브의 어린 모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 가까운 허브농장을 직접 찾아가면 꽤 자란 모종도 1만대 안팎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로즈마리나 페퍼민트 등 대중적인 허브 모종을 기르면 허브차를 언제나 즐길 수 있다는 잠점이 있다. 잎을 따서 말려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생잎을 따서 그대로 녹차처럼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면 된다.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 대통령 선거가 지나가고,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자칫 과음·과식으로 몸을 버리기 쉬운 계절이다. 잠깐 짬을 내 허브차 한잔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려보면 어떨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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