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재명 정부의 슈퍼 경찰, 길 위의 시민 목덜미를 짓눌렀다

방송의날, ‘비정규직이제그만’ 활동가 업어치기 당하고 목 눌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연상 충격
등록 2026-09-10 21:31수정 2026-09-11 11:04
2026년 9월3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 인근 도로변에서 경찰관이 무릎으로 김남규 ‘비정규직이제그만’ 활동가의 목을 누르고 있다. 엔딩크레딧 제공

2026년 9월3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 인근 도로변에서 경찰관이 무릎으로 김남규 ‘비정규직이제그만’ 활동가의 목을 누르고 있다. 엔딩크레딧 제공


젊고 건장한 정복 차림의 경찰관이 길바닥에 모로 엎어진 남성의 목과 어깨 사이를 오른쪽 무릎과 검은색 진압용 장갑을 낀 손으로 짓누르고 있다. 그가 고함치듯 속사포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다. 얼굴과 사지가 납작하게 깔린 남성이 가까스로 입술을 몇 차례 달싹인다. “하지 마”라는 말이 신음에 섞여 희미하게 들린다.

흡사 흉악범이나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듯한 이 장면은, 2026년 9월3일 사위가 훤한 서울 용산의 대로변에서 벌어졌다.

2026년 9월3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파크 호텔 인근 도로변에서 경찰관이 무릎으로 김남규 ‘비정규직 이제그만’ 집행위원의 목을 누르고 있다. 엔딩크레딧 제공

2026년 9월3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파크 호텔 인근 도로변에서 경찰관이 무릎으로 김남규 ‘비정규직 이제그만’ 집행위원의 목을 누르고 있다. 엔딩크레딧 제공


영상의 길이가 21초인 걸로 미뤄, 경찰관이 남성을 쓰러뜨리면서 시작된 제압 과정은 적어도 21초 이상이었을 터다. 하릴없이 강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2020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다. 당시 경찰관은 용의자 플로이드를 체포하면서 7분46초 동안 무릎으로 목을 눌렀고, 플로이드는 힘겹게 “엄마, 숨을 쉴 수 없어요”라는 말을 되풀이하다 끝내 질식사했다. 용산의 그 남성은 죽지는 않았다. 바로 직전으로 돌아가보자.

 

체포 만류하자, 곧바로 업어치기

 

이날 오후 6시30분, 이 현장에서 가까운 드래곤시티 호텔 31층 ‘르 시엘 31’에서 제63회 방송의날 기념식이 열렸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방송·미디어 규제 기관장, 방송사 임원, 언론현업단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앞서 6시10분 행사장 앞 로비에서 10여 명이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엔딩크레딧’(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인권 단체), ‘문화예술노동연대’,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방송 비정규직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요구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섰다.

호텔 보안요원, 호텔 쪽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들과 실랑이가 있었으나, 기자회견은 6시37분 회견문 낭독으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인근 전철역으로 향했다. 그때 한 경찰관이 차헌호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차헌호가 거부하자 경찰관은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며 수갑을 채웠다. 같은 단체 소속인 김남규가 만류하자 다른 경찰관의 업어치기가 들어왔다. 김남규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앞의 영상은 그 직후 시작된다. 축 늘어져 누워 있는 김남규의 손목에도 곧 수갑이 채워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12명 가운데 10명이 곧장 서울 용산경찰서로 연행됐다. 나머지 두 명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김남규와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이었다. 변호사와 통화하느라 체포 현장에서 벗어났다 돌아온 김수억은 경찰관한테서 “체포 대상이 아니다”라는 고지를 듣고, 김남규 보호자로 구급차에 탔다. 그런데 10여 분을 달리던 구급차가 멈추더니 경찰관이 올라탔고, 도착해보니 용산서였다. 김수억은 그길로 체포됐다. 김남규는 그제야 병원으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진통제를 맞은 다음 용산서로 압송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집회시위인권침해감시변호단의 최종연 변호사를 비롯해 공익변호사 여덟 명이 용산서로 달려갔다. 연행된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업무방해, 퇴거불응, 공무집행방해 등이었다. 경찰은 자정쯤 연행자 전원을 석방할 때까지 권리고지 확인서와 신체상태 확인서 서명 요구 같은 최소한의 절차 말고는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다. 용산서를 나온 최 변호사는 모든 혐의가 터무니없고 외려 체포가 불법이었음을 사실관계와 법리, 판례로 조목조목 밝히는 글을 일사천리로 써내려갔다. 그만큼 모든 게 명백했다.

 

2026년 9월3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 인근 도로변에서 경찰관들이 차헌호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가운데)을 수갑을 채워 연행하고 있다. 엔딩크레딧 제공

2026년 9월3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 호텔 인근 도로변에서 경찰관들이 차헌호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가운데)을 수갑을 채워 연행하고 있다. 엔딩크레딧 제공


 

고함과 조롱, 광기로 얼룩진 조사

 

딱 하나, 오리무중인 것이 있었다. 용산서는 왜 그랬을까? 경찰의 인권침해라면 호가 난 여덟 명의 변호사가 머리를 맞대봤다. 최 변호사는 “다들 퇴거불응에 이토록 집요하게 신분 확인을 요구하고, 불응했다고 이렇게까지 가혹한 물리력을 써서 체포하는 건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은 “윤석열 정권 때인 2023년 방송의날엔 아예 행사장 안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호텔 쪽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온 게 전부였다”며 “나도 경찰에 몇 번 연행된 적이 있지만 이번 일은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노동 현장에서 싸우며 온갖 험한 일을 겪어온 김남규와 김수억도 이런 경우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연좌농성을 하다 연행될 때도 양팔을 붙잡히는 정도였다. 다만 차헌호는 2026년 4월 지혜복 교사 복직을 요구하며 서울시교육청 안에서 농성하다 용산서로 연행됐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유치장으로 온 경찰관이 ‘조사하러 가자’며 수갑을 채우려고 해서 거부했더니 나를 업어치기해 쓰러뜨린 다음 수갑을 채웠다. 이번에도 용산서라는 게 우연이기만 할까.” 차헌호는 이 일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그날 경찰서 안의 풍경도 여느 때 경찰서와 사뭇 달랐다. 장종수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사무처장(노무사)은 “무슨 서류에 서명하라고 해서 ‘변호사 오면 하겠다’고 했더니 ‘서명 거부’라고 반복해서 고함을 쳤다”며 “5시간 내내 심한 두려움과 모욕감을 느껴야 했다”고 말했다. 변호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변호사들끼리 법리를 두고 대화하고 있는데 뒤에서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라며 끼어들고, 법정도 아닌데 밑도 끝도 없이 ‘퇴정하십시오’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며 “반감과 조롱이 고스란히 묻어났다”고 돌이켰다.

용산서는 김남규와 차헌호 두 사람에게 9월8일 출석하라고 했다가, 당일이 되자 “너무 바쁘다”며 조사를 연기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통보도 없는 상태다. 용산서 쪽은 한겨레21의 해명 요청에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방송의날 행사를 주최한 한국방송협회는 호텔 쪽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했고, 호텔도 법적 조처를 취하한 상태다.

 

‘공룡 경찰’의 전례 없는 인권침해

 

방송의날 기자회견을 했던 단체들과 변호사들은 이날 체포·연행 등에 관여한 경찰관들을 독직폭행으로 고소하기 위해 법원에 증거보전청구서를 제출했다. 대상은 기자회견 장소와 건물 외부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용산서 형사팀 당직실 CCTV, 체포 당시 경찰의 보디캠 기록 등이다. 이참에 서울시교육청 농성으로 연행돼 차헌호가 겪은 일을 비롯해 이전 용산서의 인권침해 사건들도 살펴보고 있다. 유엔 ‘긴급호소’ 등 국제인권기구 진정도 서두르고 있다. 긴급호소는 2023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탑승 시위 진압과 관련해 3개월 만에 입장 표명을 받은 바 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대응하는 건 이번 사건이 일회성이 아닌 징후가 짙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수억은 “경찰이 가장 강력한 공권력 집단이 돼가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단체를 상대로 전례 없는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해당 경찰관들의 책임도 물어야 하지만 인권을 무시하고 폭력을 일삼아온 관행을 감독하고 개혁해야 할 경찰 지도부, 나아가 이재명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시민 인권마저 위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