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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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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수 있을 때까지, 대법 판결도 끝이 아니다

【헌재로 간 시외버스 장애인 탑승권】
가족·직장 소재지 노선만 운영 책임 지운 법원
12년 끈 싸움, 마침내 ‘헌법소원심판’ 본안 회부
등록 2026-06-18 19:05 수정 2026-06-22 07:15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026년 3월31일 시외버스 탑승 요구 투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026년 3월31일 시외버스 탑승 요구 투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무려 12년을 끌어온 싸움이다. ‘장애인도 시외·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게 해달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2014년 시작한 소송 이야기다. 1심–항소–2심–상고–3심–파기환송심–재상고–심리불속행기각을 거친 싸움은 결국 헌법재판소로 가게 됐다. 이 와중에 소송을 냈던 장애인 세 명 중 한 명은 끝내 사망했고, 한 명은 이사로 인한 지역 이동으로 원고의 지위를 잃었다. 마지막 한 명이 포기할 수 없는 이 소송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6년 6월9일 지체장애인 김아무개씨가 장애인차별 구제소송 판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의 본안 회부를 결정했다. 앞서 장애인 권리와 관련해 첫 번째로 청구된 ‘시각장애인 웹 접근성 차별 구제소송 판결’을 각하한 헌재가 시외버스 소송을 본안 회부한 것에 장애인과 관련 단체들은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있다. 이 소송은 과연 끝을 볼 수 있을까?

 

대법, 원고 일부승소 판결 파기환송

 

긴 싸움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4년 3월 최후의 원고 김씨를 포함한 장애인 세 명은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를 마련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위반이라며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서울시·경기도), 버스 운수회사 두 곳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저상버스를 도입하거나 최소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리프트라도 설치하라는 요구였다. 초록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활동가는 “지금도 케이티엑스(KTX) 편성당 휠체어 좌석이 5개에 불과하지만, 2014년 당시엔 시·도 권역을 넘나들 수 있는 교통수단이 훨씬 미비했다”며 “서울에 있는 장애인이 지방의 가족이나 친구를 방문하는 게 너무 힘드니까 법률에 보장된 장애인의 교통수단 탑승 권리를 보장하라는 단순한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1심(2015년 7월)과 2심(2019년 1월)은 고의나 과실이 없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버스를 갖추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또한 재판부는 버스회사들에 “연도별 순차적 휠체어 접근 가능 시설 설치 의무화”를 명령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도 “장애인 시외 이동권 보장을 위해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 설비 설치 및 확충, 재정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며 국회·기획재정부·국토부에 권고했다. 절반의 승리였다.

“시외·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가게 해달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026년 3월31일 시외버스 탑승 요구 투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시외·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가게 해달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026년 3월31일 시외버스 탑승 요구 투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문제는 2022년 2월 나온 대법원 판결이었다. 대법원은 1·2심과 동일하게 차별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버스회사의 재정 등을 감안해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는 노선을 특정해 접근을 의무화하라’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에서 고등법원은 원고의 주거지, 가족 소재지, 직장 소재지를 연결하는 일부 노선에 대해서만 휠체어 접근 보장을 명령했다. 원고인 지체장애인 김씨의 주거지·직장인 서울에서 가족이 있는 부산·서부산 노선만 휠체어 접근을 보장하면 된다는 판결인 셈이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원고가 이사하거나 가족이 이사하면 어떻게 하냐. 이게 실효적 구제책이냐”라며 “평생 어디 어디 갈지 미리 노선을 정하라는 건지, 장애인은 오직 가족이 있는 지역만 방문하라는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퇴행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결과는 심리불속행기각(법이 정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며 본안 심리를 더 진행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었다. 원고 김씨와 장애인단체들은 대법원의 기각에 이의를 제기해 2026년 5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헌재가 이를 본안에 회부한 것이다.

 

“장애인은 가족 있는 지역에만 가야 하나”

 

대법원 판결에 따른 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은 기존의 전향적 판결마저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다른 유사 소송에서 2025년 2월 광주지법 1심 재판부는 “피고 운수회사는 2040년까지 모든 신규 도입 차량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도입하라”는 진일보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2심에선 특정 노선에만 도입하도록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2·3심 모두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법률단체들은 애초 법령·시행령·시행규칙이 서로 엇박자를 내게 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짚는다.

이번 헌법소원심판을 대리하는 한상원 공익인권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교통약자법과 그 시행령에는 휠체어 탑승 설비를 의무화하면서도 시행규칙에서 이를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둬 상위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게 근본적 한계”라며 “2024년 대법원은 장애인 접근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며, 시행령을 방치해 휠체어 경사로 등 설치 의무를 규정하지 않았다면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일명 ‘모두의 1층 판결’)고 결정했다. 장애인 시외·고속버스 탑승 문제도 이 판결의 연장선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책임은 본사업으로 전환돼 예산 배정까지 받은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 지원사업’에도 불구하고 현재 운행 중인 장애인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가 ‘0대’인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2019년 국토부는 서울~부산, 서울~강원 강릉, 서울~충남 당진, 서울~전북 전주 4개 노선에 10대의 휠체어 리프트 설치 시외·고속버스를 운영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해 시범사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2022년 본사업으로 전환됐지만 국토부는 ‘탑승자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2023년부터 슬그머니 10대 차량조차 운행을 중단했다.

초록 활동가는 “국토부는 2022·2023년엔 예산 5억여원 중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 비판이 나오고 전세버스까지 지원 대상이 확대되자 2024년엔 3억5천만원 중 7800만원, 2025년엔 7500만원을 사용했다”며 “이마저도 전세버스 개조와 터미널 턱을 없애는 보수 비용으로 쓴 거지 시외·고속버스에 쓴 예산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외·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가게 해달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026년 3월31일 시외버스 탑승 요구 투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시외·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가게 해달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026년 3월31일 시외버스 탑승 요구 투쟁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제공


 

대만, 왕복 5회 이상 노선에 배차 의무화

 

장애인단체는 헌법소원심판과 별도로 대법원의 퇴행적 판결에 항의하며 2026년 4월부터 전국 7곳에서 원고 34명을 모아 지역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개연성 있는 노선을 지정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맞서, 동시다발 소송으로 장애인 리프트 설치 의무화 노선을 늘리겠다는 선언적 소송이다. 초록 활동가는 “대만의 경우만 봐도 왕복 5회 이상 운행하는 버스 노선은 1일 왕복 4회 이상 휠체어 리프트가 달린 시외·고속버스를 고정 배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며 “장애인 이동권을 더는 시혜적 차원이 아닌 권리 문제로 바라보고 국가 위상에 맞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이들은 헌법소원심판 본안 심리를 통해 장애인 시외·고속버스 이동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 환기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한상원 변호사는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시외·고속버스가 ‘0대’라는 충격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국민이 많다. 현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헌재가 공개변론과 생중계를 허용하고 신속하고 전향적인 판단을 하길 기대한다. 시행규칙에 구멍을 만든 정부 책임도 반드시 묻길 바란다”고 밝혔다.

세종시에 사는 지체장애인 문경희씨는 이렇게 말했다. “시외버스 타고 대천 앞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요. 사람들은 나들이 가려면 당연히 버스 앱을 켜서 원하는 시간대에 예매하잖아요. 저는 태어나서 57년 동안 시외버스를 타본 적이 없어요. 장애인은 사소한 일상의 편리조차 누릴 자격이 없는지 헌재에 묻고 싶어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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