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엄지에 살고 엄지에 죽는다. 콘텐츠 제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엄지손가락.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시절도, 스마트폰으로 혼자 영상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도, 목표는 하나다. 어떻게 해야 당신의 엄지를 멈출 수 있는가?
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스크롤을 내리는 것은 엄지 끝의 살갗이지만 요즘 내가 가장 공들이는 것은 그 반대편에 있는 엄지손톱, ‘섬네일’(thumbnail). 영상의 내용을 한 컷으로 요약해 클릭을 유도하는 강력한 이미지와 한두 줄의 문구. 4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려 공들인 몇 년의 시간도,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사람의 얼굴도, 마지막에는 결국 이 엄지손톱만 한 그림 한 장으로 납작해진다.
작가인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섬네일에 들어갈 한두 줄의 문구를 쓰는 것인데, 때로는 45분짜리 원고보다 이 두 줄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 내가 만든 상품을 광고하는 카피라고 생각하면 상품의 장점을 어필해야겠지만 이상하게도 시청자는 좋은 말보다 나쁜 말에 끌린다. 이제 ‘비밀’이나 ‘비결’ 같은 맹숭맹숭한 말로는 무심히 스크롤을 내리는 엄지손가락을 멈출 수 없다. ‘진실’이나 ‘고백’도 덧없다. 섬네일에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는 ‘충격’ ‘경악’ ‘발칵’. 무어라 한데 묶을 수 없는, 고약한 말들의 연속.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엄지는 이토록 충격적이며 경악스럽고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는 소식에도 점점 더 무뎌지고, 최근 내가 마주한 가장 고약한 단어의 조합은 이것이다. ‘○○○, 반응 안 좋은 이유’.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 크고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 부른다. 무언가를 위험으로 간주할 때 인간의 생존 본능은 한껏 민감해진다는 것. 당신의 엄지가 ‘안 좋은 이유’ 앞에서 멈추는 것은,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의 수많은 장사꾼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국에 밥 말아 먹으면 안 좋은 이유, 상장지수펀드(ETF) 투자하면 안 좋은 이유, 지금 당신의 기분이 안 좋은 이유, 당신이 직장 동료와 사이가 안 좋은 이유….
진짜 장사꾼들은 여기에 ‘반응’이란 단어를 슬쩍 더하며 이것이 다수의 의견이라는 뉘앙스를 보탠다. 생존 본능에 군중심리까지 파고드는 상술을, 나약한 엄지손가락이 어찌 견딜까?
하지만 당신의 엄지는 생각보다 강하다. 엄지손가락은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오직 인간만이 가진 권력.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의 엄지는 다른 네 손가락과 마주칠 수 있는 ‘맞섬’ 능력이 압도적이라 물건을 쥐고 조작하는 데 유리하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 되는 데 엄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당장 엄지손가락을 쓰지 않고 한 시간만 있어본다면, 왜 엄지가 손 전체 기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엄지손톱만 한 그림 한 장에 속지 말고 그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라고, 당신의 엄지를 당신이 진짜 원하는 곳에 두라고 말하기에 나의 직업은 그 손톱보다도 옹졸하지만, 그래서 궁금하다. 당신의 엄지손가락은 ‘반응 안 좋은 이유’라는 이 헤드라인에 과연 반응했을까?
김영희(필명)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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