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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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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이 한동훈에게 “애초 ‘생태계 교란종’ 쿠팡이 만든 문제입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기고]
‘초심야 배송’은 쿠팡의 1·2차 사회적 협약 교란에서 비롯… 끊이지 않는 과로사, 방지 대안은 왜 제시하지 않나
등록 2025-11-13 21:14 수정 2025-11-18 15:34
전국택배노동조합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2025년 10월21일 서울 서대문구의 전국택배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쿠팡 로켓배송의 과로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전국택배노동조합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2025년 10월21일 서울 서대문구의 전국택배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쿠팡 로켓배송의 과로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제공


2025년 10월28일 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민노총과 민주당 정권의 새벽배송 전면금지’를 막아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새벽배송이 금지되면 맞벌이 부부를 비롯한 2천만 국민의 일상생활과 생산자, 소상공인, 택배기사들의 삶이 모두 망가질 것이라는 주장이 담긴 글이었다.

한 전 대표가 이 글을 쓰기 약 일주일 전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3차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3차 사회적 대화)의 1차 회의에서 ‘심야배송 및 주 7일 배송 개선 방안’을 제안했다. 일단 오해부터 바로잡자면, 택배노조는 이 방안에서 한 전 대표의 말대로 ‘새벽배송 전면금지’를 주장한 적이 없다. 택배노조는 소비자가 누리는 새벽배송 서비스는 유지하되, 배송기사들은 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초심야시간에는 배송을 멈추고 새벽 5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물량을 소화하게 하자고 제안했을 뿐이다.

‘새벽배송 전면금지’가 아닌 야간노동 최소화

 

배송기사가 본래 업무가 아닌 분류 업무와 프레시백 회수 업무를 떠맡지 않고, 품목 지정으로 새벽배송 물건을 나눌 수 있다면, 초심야시간 노동이 없어도 새벽배송이 가능하다는 것이 택배노조의 주장이다. 현행 주간-야간 배송 구조를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는 주간1팀과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는 주간2팀으로 나눠 고강도 장시간 야간노동 자체를 최소화하자는 제안이다.

당연히도 이 제안은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제시된 초안이다. 결사투쟁을 불사한 최후통첩이 아니다. 1차 회의에서 각 택배사는 다음 회의에서 의견을 제시하기로 했고, 고용노동부는 심야배송이 택배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번 3차 사회적 대화가 2021년 타결된 1차와 2차 사회적 대화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급증한 2020년부터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했고, 2021년 국회와 택배업체, 택배노조, 택배대리점협회, 사회단체와 소비자단체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가 이뤄졌다. 그 결과 택배비를 170원 올려 분류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를 별도로 고용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당시 1차 합의문에 “특별히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밤) 9시 이후 심야배송은 제한한다”는 원칙도 명시했다.

하지만 이 합의가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사회적 합의를 해보자고 구성한 게 3차 사회적 대화다. 어느 순간부터 앞선 사회적 대화의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게 된 이유에는 쿠팡이라는 ‘생태계 교란종’이 자리하고 있다. 쿠팡은 1차와 2차 사회적 대화에 불참했다. 처음에는 택배 사업자로 등록돼 있지 않아서였지만, 등록 이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어느덧 쿠팡은 온라인쇼핑 시장을 지배했고, 최악의 노동환경을 만들어놨다.

2025년 초 공개된 고용노동부의 쿠팡 야간노동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쿠팡 야간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2.25시간이다. 근로복지공단이 과로사를 판정할 때 야간노동에는 30%의 시간을 가산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쿠팡 야간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과로사 판정 기준인 60시간을 초과한다. 2024년 ‘개처럼 뛰고 있다’는 가슴 아픈 말을 남기고 과로사한 쿠팡 야간 택배노동자 정슬기님은 이런 환경에서 3회전 배송(하룻밤에 배송기사가 물품을 싣는 캠프와 배송구역을 세 번 왕복하며 배송하는 형태)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2025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쿠팡과 쿠팡씨엘에스(CLS)의 평균 재해율은 5.9%로 산업 전체 평균의 8.9배이고 건설업의 4배나 된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 전 대표는 노동안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에 도움이 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대신 논의를 왜곡하는 길을 택했다. 택배노조의 안을 ‘새벽배송 전면금지’라고 규정하며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사회적 합의 자리는 ‘특정 세력’ 대 ‘2천만 국민’의 대결로 둔갑시켰다. 백해무익한 갈라치기였다. 나는 페이스북에 물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이 당연한 상시적 과로사회에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있습니까? 모든 시민의 저녁이 있는 삶, 같이 만들 책임이 한동훈 전 대표에겐 없습니까? 자기 정치 이익을 위해서 과로하느라 장 볼 시간도 없는 노동자와 야간노동하는 노동자 갈라치면 좋습니까?”

쿠팡은 사회적 합의를 무시했다

 

그런데 한 전 대표는 동문서답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편의점의 24시간 개점, 야간경비 업무 등 다른 수많은 야간, 새벽 근무 업종도 못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고 했고, “조악하고 감성적인 논리”로 “‘모두가 새벽에 일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국민들 상대로 훈계”한다고 했다. 전형적인 섀도복싱이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막고 노동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0~5시 새벽배송 제한 논의의 핵심을 벗어나 누구도 하지 않은 말들을 상대로 날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정치인이 그런 포즈를 취한 것을 근거 삼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전 대표에게 ‘새벽배송 금지’에 대한 공개토론을 요청한 까닭이다. 자기 진영의 입맛에 따라 사안을 왜곡하면서 공론장을 ‘쇼츠 촬영장’으로 만드는 식의 논의를 지양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각자의 주장을 맞대어보자는 제안이었다. 10월31일 한 전 대표가 제안을 받아들였고, 11월3일 시비에스(CBS)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생방송 라디오 토론을 했다.

40분 동안의 짧은 라디오 토론에서 많은 쟁점을 다룰 수는 없었다. 나는 택배노조가 사회적 대화에 제출한 방안이 무엇인지 정확히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앞서 말했듯 택배노조의 방안은 새벽배송 서비스를 가능한 한 유지하면서도 초심야시간 노동을 줄이자는 절충안이기에 정말로 ‘새벽배송’ 자체를 금지하고 싶은 입장에서는 외려 아쉬운 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논의의 핵심은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방지하고 건강권을 지키도록 노동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일이기에 이 방안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쿠팡CLS 쪽이 2024년 2월8일 쿠팡 퀵플렉서(택배기사)로 일한 고 정슬기(41)씨에게 빠른 배송을 종용하는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 전국택배노조 제공

쿠팡CLS 쪽이 2024년 2월8일 쿠팡 퀵플렉서(택배기사)로 일한 고 정슬기(41)씨에게 빠른 배송을 종용하는 정황이 담긴 문자메시지. 전국택배노조 제공


 

그래서 나는 쿠팡의 야간 장시간 고강도 노동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이고, 택배노조의 방안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대안 제시 없는 논의 왜곡

 

한 전 대표는 이 문제를 직업 선택의 자유 문제로 접근했다. 과로는 새벽배송만의 문제가 아니고, 새벽배송 노동자는 누군가의 강요로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맞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가 씨름하는 문제는 사람들이 선택한 직업이라고 해도 그 일 자체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뿐만 아니라 기업과 소비자, 정치인과 시민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들이 원한다는데 왜 ‘비당사자’가 나서느냐는 힐난은 이 사안을 납작하게 만드는 동시에 이 문제의 사회적 차원을 소거한다. 우리는 개인들의 총합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다. 우리가 이 논의를 통해 지난겨울의 광장에서 간절히 외친 ‘다시 만난 세계’가 윤석열만 없고 ‘새벽 장보기는 필수인 사회’였는지 묻는 일은 중요하다. 노동안전에 관한 사회적 대화에 다수의 시민이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 입 다물라고 다그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 전 대표는 택배노조의 안이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끝까지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대안이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한 전 대표가 택배노조의 제안을 두고 노동자 과로사 방지와 건강권 보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다고 말한 부분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상대의 진의를 의심하고 보는 행동은 사회적 대화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번 토론에서 스스로 가장 아쉬운 점은 쿠팡의 책임을 충분히 짚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새벽배송 문제는 쿠팡이 지난 1차와 2차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이를 존중했다면 이렇게 불거질 이유가 없었다. 자회사 특수고용이라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계약조건’을 흔들며 수많은 사람을 심야 고강도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고 그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쿠팡이라는 기업의 문제는 앞으로 사회적 대화에서 반드시 핵심적으로 다뤄야 한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집중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5년 초 쿠팡 야간노동을 하다 사망한 장덕준님, 정슬기님, 김명규님의 유가족이 주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5만 시민이 참여한 것에 힘입어 국회에서 ‘쿠팡 청문회’가 성사됐고, 청문회에 출석한 쿠팡 대표들이 줄줄이 질타를 받았다. 쿠팡은 노동자들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한사코 회피하다가 청문회 직전에야 유가족과 합의했고, 물류센터 환경 개선과 택배노동자에게 관행적으로 부여된 분류 업무 등을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 그조차 90% 이상 불이행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동안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쿠팡을 비롯한 기업의 책임 인정과 개선책 도입은 필수 불가결하다.

야간노동 내몰며 산재 책임 없다는 쿠팡

 

거듭 말하지만, 택배노조의 방안은 다른 모든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0~5시에 노동자의 택배 배송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택배노동자가 되도록 주간에 일하면서도 야간노동과 다르지 않은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도 책임을 다하고, 만약 비용이 발생한다면 소비자도 그 비용을 함께 분담하자는 것이다. 1차와 2차 택배 사회적 대화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11월10일, 또 한 명의 쿠팡 야간 배송노동자가 새벽에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자 시민으로서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택배 과로사 방지와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대화가 진전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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